믿음의 자라남 - 마태복음 7:7~8; 빌립보서 3:12~16 [김현경 교우]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12-04-01 18:00
조회
11074
2012년 4월 1(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믿음의 자라남
본문: 마태복음 7:7~8; 빌립보서 3:12~16
김현경 교우

제가 두 번째로 말씀나누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번 말씀 나누기에서는 기도에 대한 저의 생각들을 이야기 했고요. 이번에는 저의 믿음의 성장과정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교회를 꾸준히 다니게 된 것은 중3때부터였습니다. 그때는 나름 진지했겠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청소년기의 저의 신앙생활은 맹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 다른 고민이나 의심 없이 선생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교회생활에 착실한 것, 그것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나의 생각들이 많아지고 의구심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걸림이 되었던 것은 “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최초의 사람인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유의지의 상징인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죄인이 되었고 그 후로 모든 사람은 원죄를 갖고 세상에 태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자유의지를 선택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말인가?.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늘 머리 속에 “죄”가 맴돌고 있었습니다. 교회 전도사님께 자문을 구해보았는데 전도사님께서는 하나님께 직접 물어서 답을 찾아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답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때는 전도사님이 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현명하신 분이셨습니다. 전도사님이 저를 납득시키기 위해 여러 말씀을 하였더라고 그때의 저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제가 죄인일 수밖에 없는 여러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이 개인 윤리의 차원만으로 넘어 설 수 없는, 구조적인 것과 얽혀있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구조 속에서 ‘죄’의 범주에 속해서 살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인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죄의 문제를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죄의 문제를 수용하면서 겸손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문제는 천국과 지옥 그리고 부활의 문제였습니다. 그때 우리 부모님들이 아직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죽으면 나 혼자 천국가고 부모 형제들은 지옥에 가야하나 하는 염려에서 이 문제가 걸림이 되었습니다.
부모형제가 예수를 믿고 안 믿는 것으로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것이 마땅한 일일까?
그리고 천국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맞는 것일까?
죽음 후에 정말 부활을 하는 걸까?
천국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교육목사님을 괴롭혔습니다. 이 목사님도 제 질문에 난감해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제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죽음 뒤에 문제는 죽어봐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한 삶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책임감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고 그 이후의 일은 내 영역을 벗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그림도 제가 어렸을 때 교회에서 가르쳐 준 것과는 많이 다르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제가 최근에 답은 얻은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고 살아 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경험에 세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경험세계 안에서 사건이나 사물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사건을 가지고 저마다 이해의 관점이 다를 수 있고 한 사람에 대해서도 저 마다 다른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고 다름일 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도식화된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만난 하나님, 내가 이해하는 하나님이 다 다를 수 있습니다. 부모 형제간에도 시내가 생각하는 아빠, 엄마와 솔이가 생각하는 엄마, 아빠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치원 때, 초등학교 때, 청소년 때 느끼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변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대한 저의 생각도 많은 과정을 지나왔습니다. 근래에 저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주전체와 나를 비교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우주가 얼마나 큰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가운데 작은 별에 지나지 않는 지구가 제게는 엄청난 세계입니다. 그 가운데 대한민국이라는 작지만 제게는 역시 큰 공간, 그 안에 내가 존재합니다. ‘나’라는 그 작은 존재의 경험세계에서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겠지요.
그야말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상상초차 할 수 없는 무한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시는 하나님, 질서의 하나님 그렇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우주 공간 어딘가에 계신 하나님, 너무 먼 곳에 계신 하나님,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그저 객관적인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기도의 대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기도가 그저 나 혼자의 독백처럼 되어버리고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동안 내가 믿는다고 느꼈던 하나님은 뭐였을까? 내가 뭔가에 속고 있었나?
큰 함정에 빠진듯했습니다. 혼란스러웠지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하나님이 개입해 주시기를 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침묵기도수련 중에 새로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창세기 1장,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이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깜깜한 바닷가에 한 소녀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소녀가 ‘나’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소녀는 깜깜한 가운데 혼자 서 있었지만 두려움은 없어 보였고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여자의 자궁이 연상되었습니다. 그리고 시편의 말씀 중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라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 전부터 작용하셨던, 생명 되게 하셨던, 나와 함께 호흡하셨던, 나를 사람 되게 하셨던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나를 지으신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셨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느낌입니다. 어떻게 설명 드려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해되시는 대로, 받아드려지는 대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수용하시기 어려우시면 각자의 방법대로 하나님께 묻고 찾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냥 흘려버리셔도 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 적합한 방법으로 당신과 당신의 뜻을 나타내 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오는 동안 일관되게 집중했던 관심사는 신앙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교회, 그리고 나의 삶.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나?’하는 물음을 계속해서 물어보고, 내 안에 지금 어떤 기운이 돌고 있는지 늘 살폈습니다. 이것이 저의 기도입니다 .
제가 갖는 물음에 답들을 침묵 기도 속에서만 찾는 것은 아닙니다. 길을 걷다가 문득 알아차리기도 하고,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책을 보면서, 사람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저의 인생여정에서 되풀이 되는 물음들을 가지고 계속 씨름하고 기도하겠지요.
지금은 교회가 가장 큰 기도제목입니다. 내 안에 교회에 대한 물음이 많다는 말이겠지요.
살림교회는 잘 성장하고 있는지 늘 묻습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살림교회가 잘 되어야 한다고 목사님께서 웃으시면서 말씀하시지요.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우리만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다 잘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교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교회 때문에 상처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대신 사죄하고, 교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시각을 아주 조금이라도 바꾸는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고 무엇보다 교회 때문에 가장 큰 상처를 받으신 예수님을 위로해드리고 싶습니다.
제 말을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목: 믿음의 자라남
본문: 마태복음 7:7~8; 빌립보서 3:12~16
김현경 교우

제가 두 번째로 말씀나누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번 말씀 나누기에서는 기도에 대한 저의 생각들을 이야기 했고요. 이번에는 저의 믿음의 성장과정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교회를 꾸준히 다니게 된 것은 중3때부터였습니다. 그때는 나름 진지했겠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청소년기의 저의 신앙생활은 맹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 다른 고민이나 의심 없이 선생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교회생활에 착실한 것, 그것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나의 생각들이 많아지고 의구심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걸림이 되었던 것은 “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최초의 사람인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유의지의 상징인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죄인이 되었고 그 후로 모든 사람은 원죄를 갖고 세상에 태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자유의지를 선택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말인가?.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늘 머리 속에 “죄”가 맴돌고 있었습니다. 교회 전도사님께 자문을 구해보았는데 전도사님께서는 하나님께 직접 물어서 답을 찾아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답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때는 전도사님이 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현명하신 분이셨습니다. 전도사님이 저를 납득시키기 위해 여러 말씀을 하였더라고 그때의 저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제가 죄인일 수밖에 없는 여러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이 개인 윤리의 차원만으로 넘어 설 수 없는, 구조적인 것과 얽혀있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구조 속에서 ‘죄’의 범주에 속해서 살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인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죄의 문제를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죄의 문제를 수용하면서 겸손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문제는 천국과 지옥 그리고 부활의 문제였습니다. 그때 우리 부모님들이 아직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죽으면 나 혼자 천국가고 부모 형제들은 지옥에 가야하나 하는 염려에서 이 문제가 걸림이 되었습니다.
부모형제가 예수를 믿고 안 믿는 것으로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것이 마땅한 일일까?
그리고 천국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맞는 것일까?
죽음 후에 정말 부활을 하는 걸까?
천국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교육목사님을 괴롭혔습니다. 이 목사님도 제 질문에 난감해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제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죽음 뒤에 문제는 죽어봐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한 삶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책임감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고 그 이후의 일은 내 영역을 벗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그림도 제가 어렸을 때 교회에서 가르쳐 준 것과는 많이 다르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제가 최근에 답은 얻은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고 살아 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경험에 세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경험세계 안에서 사건이나 사물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사건을 가지고 저마다 이해의 관점이 다를 수 있고 한 사람에 대해서도 저 마다 다른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고 다름일 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도식화된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만난 하나님, 내가 이해하는 하나님이 다 다를 수 있습니다. 부모 형제간에도 시내가 생각하는 아빠, 엄마와 솔이가 생각하는 엄마, 아빠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치원 때, 초등학교 때, 청소년 때 느끼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변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대한 저의 생각도 많은 과정을 지나왔습니다. 근래에 저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주전체와 나를 비교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우주가 얼마나 큰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가운데 작은 별에 지나지 않는 지구가 제게는 엄청난 세계입니다. 그 가운데 대한민국이라는 작지만 제게는 역시 큰 공간, 그 안에 내가 존재합니다. ‘나’라는 그 작은 존재의 경험세계에서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겠지요.
그야말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상상초차 할 수 없는 무한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시는 하나님, 질서의 하나님 그렇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우주 공간 어딘가에 계신 하나님, 너무 먼 곳에 계신 하나님,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그저 객관적인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기도의 대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기도가 그저 나 혼자의 독백처럼 되어버리고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동안 내가 믿는다고 느꼈던 하나님은 뭐였을까? 내가 뭔가에 속고 있었나?
큰 함정에 빠진듯했습니다. 혼란스러웠지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하나님이 개입해 주시기를 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침묵기도수련 중에 새로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창세기 1장,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이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깜깜한 바닷가에 한 소녀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소녀가 ‘나’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소녀는 깜깜한 가운데 혼자 서 있었지만 두려움은 없어 보였고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여자의 자궁이 연상되었습니다. 그리고 시편의 말씀 중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라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 전부터 작용하셨던, 생명 되게 하셨던, 나와 함께 호흡하셨던, 나를 사람 되게 하셨던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나를 지으신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셨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느낌입니다. 어떻게 설명 드려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해되시는 대로, 받아드려지는 대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수용하시기 어려우시면 각자의 방법대로 하나님께 묻고 찾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냥 흘려버리셔도 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 적합한 방법으로 당신과 당신의 뜻을 나타내 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오는 동안 일관되게 집중했던 관심사는 신앙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교회, 그리고 나의 삶.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나?’하는 물음을 계속해서 물어보고, 내 안에 지금 어떤 기운이 돌고 있는지 늘 살폈습니다. 이것이 저의 기도입니다 .
제가 갖는 물음에 답들을 침묵 기도 속에서만 찾는 것은 아닙니다. 길을 걷다가 문득 알아차리기도 하고,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책을 보면서, 사람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저의 인생여정에서 되풀이 되는 물음들을 가지고 계속 씨름하고 기도하겠지요.
지금은 교회가 가장 큰 기도제목입니다. 내 안에 교회에 대한 물음이 많다는 말이겠지요.
살림교회는 잘 성장하고 있는지 늘 묻습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살림교회가 잘 되어야 한다고 목사님께서 웃으시면서 말씀하시지요.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우리만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다 잘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교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교회 때문에 상처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대신 사죄하고, 교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시각을 아주 조금이라도 바꾸는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고 무엇보다 교회 때문에 가장 큰 상처를 받으신 예수님을 위로해드리고 싶습니다.
제 말을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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