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남태령에서 만난 오병이어의 기적 - 요한복음 6:9~13[김후주 님 / 유튜브]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25-01-19 15:16
조회
3666
2025년 1월 19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남태령에서 만난 오병이어의 기적
본문: 요한복음 6:9~13
김후주 님



시작에 앞서 잠시 애도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차별과 혐오없이 집회 할 수 있게 시민비상행동의 자리를 만들어주신 통일운동계의 큰 어르신, 비상시국회의 상임공동대표이신 조성우 선생님께서 어제 영면에 드셨다고 합니다. 끝까지 현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하셨습니다만 퇴진을 보지 못하시고 눈감으셨습니다. 마음속으로 선생님을 떠올려주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자리를 시작하겠습니다.

남태령에서 만난 오병이어의 기적

김후주(청년여성농업인)

어렸을 때 성경을 읽으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접했을 때, 마술쇼처럼 예수님 손에서 계속 빵이 솟아 나오는 장면을 상상하며 예수님은 정말 대단하시다. 기적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마술처럼 신기하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빵과 물살이에 축복을 내려 화수분처럼 양이 늘어나도록 만드셨다고 상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고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면 그 기적은 거기에 앉아있던 오천명의 사람들이 만든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섬기는 분들의 선함, 배려, 차별하지 않음, 이웃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그 광주리들이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면서 나보다 더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을 내어놓고, 또 내어놓고 하다보니 모두가 넉넉히 먹고도 열두광주리가 차고 넘쳤던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믿고 빵 다섯 개, 생선 두 개가 들어있는 헐렁한 광주리를 군중 속에 던지셨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 앞에 광주리가 도착했을 때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요?

남태령은 우발적인 사건이였습니다. 전말을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 처음부터 잘 설명해 드릴게요. 시작은 2024년 12월 10일. 국민의힘과 윤석열에게 근조화환이 배송되고,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육개장 사발면을 먹으며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유행하던 때 온라인 소셜미디어인 ‘트위터, 현 X’에 제가 몇 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농민운동 하는 분들이 상여를 지고 시위현장에서 퍼포먼스를 하면 좋겠다는 글입니다.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아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전국농민총연맹의 전봉준 투쟁단 일원이신 농부 선배님께 알려드리면서 상여투쟁 하시는거 어때요? 여쭤보았고 그래 한번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상여투쟁할테니 후원 좀 해달라고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 거의 200만 조회수를 갱신하며 퍼져나갔고 전농에 대한 후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기적은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후원이 너무 커지다보니 겁이 나신 전농 선생님들은 후원 중단도 요청하셨지만 시민분들은 멈추질 않으셨습니다.

저도 이 난리가 난 사건발단의 책임자로서 저의 개인 SNS 계정을 거의 전농의 홍보채널로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후원은 전농이 미리 기획하고 있던 트랙터 투쟁에까지 이어졌고 트랙터 대행진에 관한 글은 374만 조회수를 갱신하며 탄핵 정국에서 전농의 상여 투쟁과 트랙터 대행진이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끝도 없이 그 글들을 퍼뜨리며 후원을 인증하고 응원하고 기대하고 기다렸습니다. 상여가 등장하면 따라 나와 행렬에 동참하고 트랙터가 동군 서군으로 나뉘어 출정했을 때 이 소식 역시 퍼 나르며 농민들이 무사히 서울까지 올 수 있도록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무사히 넘을 수 있었지 않을까했던 남태령에서 여지없이 경찰차벽에 트랙터 행진이 사면초가로 막혔습니다. 트랙터가 경찰에 의해 부숴지고, 안에 있던 농민분을 위험하게 강제로 끌어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밀고 때리고 거칠게 진압당했을 때 저는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계정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온라인에 올라온 그 장면을 담은 영상과 글이 순식간에 483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그리고 ‘우리’의 일부가 위험에 처했다는 경각심에 본능적으로 응원봉 부대는 남태령으로 향했습니다. 전농 유튜브는 남태령 시위를 생중계했고 현장에 미처 가지 못한 시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밤새도록 그 영상을 시청했는데 동시접속 시청자 수는 2만명이 넘었습니다. 시민들이 도착하고 유튜브 라이브가 시작되자 경찰들은 갑자기 온순해졌습니다. 과거 농민들은 시위를 할 때마다 처참하게 진압당하면서 부상을 입거나 연행되고 희생되어왔음에도 아무도 봐주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하는 와중에 경찰들은 거침없이 공권력을 위시한 폭력을 휘둘렀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습니다. 이젠 모두가 농민들의 싸움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응원하고 후원하고 현장에서 함께 연대하고 있다.

청년들은 트랙터를 마중하기 위해 아무런 고민 없이 남태령을 향해 달려갔고 농민들을 지켰다. 그리고 그런 농민들이 청년들을 끌어안아 밤새 서로를 지켰고 우리에게 130년 만에 우금티에서 스러져간 농민들의 영령들을 위로할 수 있는 평화로운 승리가 선물로 돌아왔습니다. 한강작가님의 의문이였던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도울 수 있는가?” 동학농민군들의 폐정개혁안을 이어받은 전농의 전봉준 투쟁단이,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달려온 청년들이, 동학 농민군들을 도와 남태령을 대동세상으로 바꿨던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남태령에서 참 신기한 일이 많았습니다. 저의 트위터로 “힘드신 분들이 잠시 쉬어가실 수 있게 히터 겸 버스를 보내려 하는데 세울 수 있게 도움 요청해도 될까요?”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난방을 빵빵하게 한 버스는 그 자체로 이동식 호텔같은 쉼터가 되었습니다. 밤샘 농성으로 저체온증에 걸린 분들은 빠르게 그곳으로 모셔 휴식할 수 있도록 조치 되었습니다. 그 후로 난방버스는 한파 농성시위에 빠질 수 없는 후원메뉴가 되었습니다.

사당에 있는 카페란 카페, 식당이란 식당에서 불나게 전화를 받아 남태령으로 온갖 음식이 배달되었습니다. 따듯한 음료들과 닭죽, 팥죽, 피자, 김밥, 도시락, 빵, 과자, 초콜릿, 핫팩, 담요, 보조배터리, 영양제, 생리대, 화장지 등등. 마치 작은 마트가 건설된 것처럼 물건들이 쌓여갔고 누구나 그 물건과 음식들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남태령역은 평소에 이용객이 엄청 적은 외진 곳인데 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으신 역장님이 첫차 운행시간보다 훨씬 일찍부터 문을 열어 난방을 켜고 불을 켜고 누구든 들어와서 쉴 수 있도록 조치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많은 여성분들을 위해 남성화장실도 임시로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게 배려해주셨다고 합니다. 여자 화장실 안에는 온갖 편의용품이 쌓였습니다. 굳건한 경찰차벽과 경찰들의 방해도 뛰어넘는 배달의 민족 배달라이더 분들도 이 투쟁의 숨은 공신입니다. 새벽에 무작정 달려오려는 시민들을 마을 옆길로 모셔다 주신 택시 운전사 분들도 위대하십니다. 여의도 시위때부터 이슈가 되었던 선결재 문화도 커피차, 어묵차, 핫도그차 등 푸드트럭 후원으로 진화하여 수백인분의 먹거리를 조달하는 임시 식당과 카페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와서는 웃으며 좋은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지만, 새벽에 분주히 움직이는, 한눈에 헤아릴 수도 없는 경찰 기동대들이 결국 농민들과 시민들을 진압하려는 조짐을 보일 때 저는 또 다시 느꼈습니다. 권력은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받는 사람들 앞에서 가장 포악해지며, 우리는 이 국가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이제는 거짓말같은 주문을 외우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여전히 두렵지만 이 폭력과 탄압에서 버텨내고 살아남고 결국엔 차를 빼고 이기는 방법 말고는, 앞으로 살아갈 길이 없다는 마음으로 엄동설한의 한해 중 가장 밤이 긴 동짓날을 뜨겁게 지새웠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며 자기가 받아왔던 국가폭력, 혐오, 차별, 소외, 부당함을 증언하며 농민들의 아픔에 공감한 동지들. 그 발언들을 들으며 그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껴안아 보호하기로 마음먹은 농민 동지들. 라이브 영상을 켜놓고 마음 졸이는 수만 명의 동지들. 그 곳에 이내 평화롭고 아름다운 태초의 형태와 가까운, 기획되지 않은, 날 것의, 직접 민주주의 공론장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그 때, 그 곳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농민들은 시민들의 말을, 시민들은 농민들의 말을 들으며 그동안 몰라왔던 농민들의 아픔을 돌아보겠다는 외침에, 농민들은 동지라 불러도 되겠냐는 물음과 감동어린 눈물로 화답했습니다. 여성농민들은 여성들이 농촌에서 겪는 성차별을 소리높여 외쳤고, 청년여성들은 연대를 약속하는 공감의 함성으로 화답했습니다. 전날까지도 아무런 접점이 없는 것 같아 보였던 두 세계가 그날 밤 “다시 만난 세계”로 거듭났습니다. 인즉천, 사람이 곧 하늘이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동학농민운동의 기조, 새로 쓴 폐정개혁안 12조와 함께 민주주의의 절대가치가 대동세상이 되어 남태령에서 빛났습니다. 차별과 혐오는 시민연대라는 거대한 불꽃에 흔적 없이 녹아 무력화되었습니다.

1. 내란수괴 윤석열과 그 일당을 구속 처벌할 것
2. 내란동조 ‘국민의힘’ 해체하고 그 당의 국회의원은 전원 사퇴할 것
3. 군대와 검찰·경찰은 민주적으로 개혁하고 국정원 등 공안기구를 혁파할 것
4. 개방농정을 철폐하고 국가책임농정으로 전환하여 식량주권을 실현할 것
5. ‘경자유전’의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하여 농지를 농민에게 돌려줄 것
6. 농산물 공정가격 실현으로 농민의 생존과 존엄을 보장할 것
7. 노동차별을 철폐하고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할 것
8. 재벌개혁, 대기업 경제력 집중 해소하고 중소영세상인 생존권을 보장할 것
9. 이태원 참사, 채 상병 등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철저히 규명할 것
10. 여성, 장애인, 이주민, 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철폐할 것
11. 선거연령을 16세로 낮추고 청년정책을 우선할 것
12. 불평등조약 및 종속외교 청산하고 자주권 실현하여 한반도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갈 것

치열했던 밤이 지나 10중의 경찰 차벽이 열리고 그제서야 시작된 행진, 마지막 트랙터가 한강진을 떠나는 모습까지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소진되어 정신이 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남태령을 호명하고 남태령을 기억하자며 소리치는 현장들을 마주한 뒤 체감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외침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남태령 대첩의 환상같은 승리 이후에 엄습했던 무게감과 정체 모를 슬픔은 그 아름다운 승리가 우연에 의한 한 번의 신기루로 빛났을 뿐, 끝내는 현실이 변하지 않을까봐, 이 불꽃이 금새 사그라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우울감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태령에서 시작된 그 불꽃이 안국, 혜화, 한남동으로 번졌고, 부산으로, 거제로, 무안으로,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희망을 느꼈습니다. 현장에서 그 연대를 거듭 느끼고 평등함이 주는 평온함, 자유, 민주주의의 일원으로서 오롯이 존재하고 지지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미약하나마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그런 동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몸을 통과하면서 현실이 되고 그에 대한 자각과 인식이 시작되고 나서 저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현장에서 진심어린 연대와 저항의 경험을 하고 나면 이게 민주주의구나 라고 깨우치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이게 민주주의구나!”라는 깨달음은 단순한 민주주의에 대한 찬양, 경탄이 결코 아닙니다. 그 형식은 오히려 지독한 의심이고 환멸이고 자학적인 분노입니다. 민주주의가 얼마나 복잡한지, 지리멸렬한지, 힘든지, 허술하고 위험한지, 어쩌면 이다지도 연약한지... 반민주주의는 얼마나 정교하고 구조적이고 그 작동이 용이한지, 인류가 수천년을 고안해 낸 정치와 민주주의의 개념들, 법체계가 악의를 가진 소수의 반민주주의 위정자들에 의해 산산이 부서질 수 있다는 현실 속에서 거의 죽음에 이르는 절망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란 어찌나 아름답고 강력한지, 지켜졌을 때 우리에게 어떤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이 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단결할 수 있는지, 그 누구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가시밭길에 몸을 던지게 하는 이 절대적인 양심의 명령, 불꽃은 도대체 무엇인지 경이로움 또한 강렬합니다. 이에 대해 한강 작가는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고 물었습니다. 세계는 원래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시작됩니다.

민주주의, 그리고 나를 포함한 인류는 민주주의만큼 위대하고, 민주주의만큼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나면 그 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모순과 나도 깜짝 놀랄만한 내 악행과 무서운 생각들, 내가 저질러온 실수와 거친 언어들, 그와 또 다르게 존재하는 열정과 호기심, 사랑, 관용, 신뢰, 양심 같은 선한 덕목들. 이렇게 이질적인 것들이 어떻게 나라는 한 실체 안에 오롯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늘 궁금해하고 그 답을 찾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오로지 우리는 경험할 뿐입니다.

왜 인간이 수천 년 동안 피흘리고 눈물흘리며 여기까지 온 것인지, 왜 역사는 반복되는지, 왜 싸움은 끝나지 않고, 학살당했던 자들이 왜 다시 학살을 저지르는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성찰해도 우리는 성인이 될 수 없을만큼 오염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계속 싸우기로 결심하고 삶을 꾸려나가며, 현장에 나가야 합니다. 시지프스처럼 그 돌이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 떨어진 돌을 또 내 살과 뼈를 갈아가며 꼭대기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체로 발현된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뜨거운 현장인 집회와 결사, 연대와 투쟁의 현장에서 내게 주어진 삶이란 짧은 시간 속에서 속성으로 절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고통받던 그 때, 그 곳, 그리고 이내 이어진 투쟁의 현장에서 몸으로 겪어낸 것들로. 우리의 진심어린 강력한 연대와 민주주의의 가장 단단한 버팀목은 이 몸과 나만의 고유한 역사,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깨달음 속에 있습니다. 내가 내 것 만을 주장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평등한 시민임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때, 그 광주리가 내 앞에 왔을 때 나보다 더 약한 사람, 나보다 더 외롭고 소외받은 사람을 위해 고민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내놓을 수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차고 넘친 광주리의 빵들은 언젠가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내 앞에 선물처럼 등장할 것입니다.

토끼라는 닉네임을 가진 트위터 유저분이 남태령에 대해 말씀하신 트윗 글을 전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올해 예수님은 사흘 일찍 오셨어.
평소보다 일찍 오셔서 잔혹한 추위 속에 서로를 돕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계셨어.
그 자리에 없었어도 멀리서 안타까워하며 응원한 사람들 사이에도 계셨어.
따끈한 실내에서 벌어진 그 어느 대형교회 예배판에도 없었어.
예수님은 남태령에서 같이 맞고 계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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