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무너진 경계와 왜곡된 신앙: 정교유착 방지 법안의 정당성과 한계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6-05-23 12:43
조회
159
『기독교사상』 2026년 6월호 특집 원고

무너진 경계와 왜곡된 신앙: 정교유착 방지 법안의 정당성과 한계

최형묵


일탈

한국 보수 기독교가 정치 행동에 나선 것은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과거 유신 독재 체제에 저항하며 진보 기독교가 정치 행동에 나섰을 때 ‘정교분리’를 내세우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현상이다. 물론 그 시절에도 표면상의 명분과 달리 실제로는 ‘정교유착’이라 할 만한 정치적 거래를 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만큼 자신들과 가치를 달리하는 정권이 들어섰을 때 그에 대해 저항하며 정치 행동에 나선 것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민주화가 진전되고 평화 체제를 지향하는 전반적 추세에 역행한 탓에 사회적으로 지탄받기는 했어도 적극적으로 가시화한 하나의 정치적 입장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24년 12.3 비상계엄 이후 그 양상은 달라졌다. 극우 집회를 이끈 전광훈과 손현보를 중심으로 하는 극우 기독교 세력은 헌정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과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2025년 1.19 서부지법 사태는 그 단적인 사례였다. 윤석열의 구속을 결정한 서부지방법원에 침입한 난동 사태는 헌정질서를 부정한 행위였다. 전광훈은 광화문 광장 집회를 통해 명백히 이를 사주하였다. 더불어 난동에 적극 참여한 이들 가운데 전광훈과 연결된 이들도 있었다. 결국 2026년 1월 전광훈은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의 배후 혐의(특수주거침입교사 등)로 구속되었다. 현재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재판은 계속되고 있다. 손현보는 서부지법 난동 사태와 직접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2025년 6.3 대통령 선거와 그 외 교육감 선거 등에서 선거법을 위반하여 실형을 선고받았다. 종교의 자유를 빌미로 설교 강단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저주와 악담을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발언과 행위를 종교의 자유를 근거로 정당화하고 있지만, 사회적 시선은 명백히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법당국 또한 명백히 위법한 행위로 여겨 그 책임을 묻고 있다.
전광훈과 손현보가 내란 정국에 광장에서 소란스럽게 목소리를 냈다면,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 행위에 나선 종교 세력도 있었다. 신천지와 통일교의 경우이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보수 정당을 지지하며 정교유착을 시도하였다. 전광훈과 손현보가 진보적 사회 및 정치 의제, 그리고 이를 옹호하는 정 치세력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면, 신천지와 통일교는 보수 정치 세력을 지원하며 정교유착을 시도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윤석열의 내란 사태가 평정되는 가운데 이들의 행보가 드러났고 현재 수사와 더불어 사법적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근래 수년 사이 신천지는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다. 기존 교회에 침투하여 교회를 접수하거나 신자를 빼 내가는 전도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기존 교회에서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교회 내 문제일 수 있었다. 신천지가 사회적으로 문제시된 것은 코로나 팬데믹 현상의 와중에서였다. 코로나가 시작된 초기 급격한 감염 확산의 매개자가 신천지 교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의 방역 조치를 따르지 않은 집회 방식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손현보 역시 정부의 방역 조치를 따르지 않았지만 요란하게 종교의 자유를 외치는 가운데 대중적으로 부상한 반면, 신천지는 정부의 방역 조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집회를 이어가는 가운데 물의를 빚은 것으로 여겨졌다. 행정당국은 강경하게 대응하였고, 특히 당시 경기도지사 이재명은 그 본부에까지 직접 출두하여 방역을 위한 행정조치를 따르도록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것이 빌미가 되었던 것일까? 신천지는 이후 보수 정당을 조직적으로 지원하고 신도들이 당원으로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대선 후보 지원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5년간 5만여 명의 신도들이 집단적으로 가입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니, 당내 경선과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신도들에 대한 강압과 자금 운용의 문제로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통일교 역시 정치권과 부적절한 유착을 시도한 것이 드러나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통일교가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해 정교유착을 시도해 온 사례는 널리 잘 알려져 있다. 오래전에서 미국에서도 문제시된 적이 있거니와, 근래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 암살 사건의 배경이 되었을 만큼 통일교의 정교유착 시도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급기야 일본에서는 통일교의 종교법인 해산 절차까지 이뤄졌다. 일본에서의 종교법인 해산 심판은 통일교에 위기 상황으로 인식되었고, 이에 따라 한국에서 입지 강화를 위한 정교유착의 시도를 강력하게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통일교는 교단 현안 청탁을 목적으로 정치인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교단 자금을 활용해 정치후원금을 불법으로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에 따라 총재와 주요 인사가 구속되었고 이에 관한 전반적인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신천지와 통일교의 경우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과 정당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무는 행위로 여겨져 사법적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헌법상 정교분리의 원칙이 뜻하는 바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이들 교단의 행위가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천지의 경우 주로 정당법에 저촉되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통일교의 경우는 형법상 뇌물죄와 정치자금법 위반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종교의 자유를 명분으로 헌정질서를 부정하는 행위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정교유착을 시도하는 행위는 일단 구별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안은 민주적 헌정 국가 안에서 바람직한 정치와 종교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민주적 헌정 국가 안에서 정교분리의 의미

기독교 신학의 입장에서 국가와 교회, 곧 정치와 종교의 문제는 처음부터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왔다. 그 관계 설정은 신학의 중심 과제라 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 까닭은 기독교 신앙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향과 더불어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에게서도, 사도 바울에게서도 이는 문제가 되었다. 예수의 핵심 선포로 하나님 나라는 궁극적 목적으로서 종말론적 성격을 지녔고 그 나라와 지상의 나라는 화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마가 10:42, 요한 18:36, 마가 12:13~17 등 참조). 사도 바울 역시 종말론적 이상으로서 그리스도의 주권에 의한 세상의 통치를 주장하였지만(고전 15:24, 골로 2:10 등 참조), 동시에 권위에 대한 복종을 주장하기도 했다(로마 13:1~7). 이로부터 로마의 ‘황제숭배’는 거부하지만 제국 내의 ‘공공질서’는 용인하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태도가 결정되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방대한 저서 『하나님 나라』는 그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여기서 세속국가는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하나님 나라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두 왕국론’, 그리고 칼뱅의 ‘하나님의 주권’ 또는 ‘그리스도의 주권’ 개념 등이 모두 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는 모두 각기 시대적 맥락 가운데서 양자의 관계에 대한 적절한 답을 제시하는 성격을 띠었다.
양자의 관계 문제는 근대의 정치적 혁명 과정을 통하여 분기점을 맞이한다. ‘정교분리’의 원칙이 확립된 것이다. 그 원칙은 일차적으로는 종교로부터 국가의 분리를 뜻하며 또한 역으로 국가에 의한 종교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중세적 질서의 종식을 뜻하는 것으로, 세속적 주권 국가의 입장에서 종교적 권위로부터 정부를 분리하고자 하는 요구와 종교의 입장에서 국가로부터 신앙의 자유가 침해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요구가 합치된 결과였다.
이 원칙은 정치와 종교가 무관하다는 것을 뜻한다기보다 정치의 종교화 또는 종교의 정치화를 배제하려는 뜻을 지닌 것으로 해석된다. 곧 정치적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하거나 간섭하는 행위를 배제하는 한편 종교가 정치권력에 기대어 특권적 지위를 노리는 것을 배제해야 한다는 뜻을 지닌다. 그것은 정치와 종교의 자율성을 인정함으로써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한편 독단적인 종교적 세계관에 좌우되지 않는 투명한 민주적 헌정질서를 지향하고자 하는 뜻을 지닌다. 그것이 정교분리의 요체이다. 이는 오늘날 이란과 같은 일부 신정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민주적 헌정 국가 안에서 준수되는 원칙이 되었다.
그러나 종교와 국가 모두 세계 안에 존재하고, 또한 그 안에 사는 사람은 종교인이자 동시에 시민으로서 존재하기에 그 ‘분리’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계속되는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종교인은 정치에 무관심해도 되는지, 거꾸로 국가는 사회적 공공성을 해치는 종교를 방치해도 되는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여기서 우리는 양자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 전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공동선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점에서 양자는 분리되어 있으되 협력할 수 있으며, 역으로 양자 가운데 어느 편에서 그 목표를 저해한다면 피차간에 저항과 간섭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은 사회적으로 용인되거나 용인될 수 있는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피차간 부당한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헌법에 정교분리와 신앙의 자유를 명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양자의 관계를 적절히 규율하는 법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정교분리 정신에 따르면 정치와 종교는 양자 모두 엄격한 공동의 책임을 지니고 있다. 국가가 자신의 권력을 임의로 남용함으로써 정당한 사유 없이 특정 종교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다른 한편 종교가 사회적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자 할 때 그 표현 방식은 자신의 신앙에 근거를 두되 민주적 헌정 국가 안에서 보편적 가치와 그 소통방식에 부합하여야 한다. 이는 종교적 독단에 따라 입장을 개진하는 것을 지양하고 각기 다른 세계관을 지닌 사회 구성원을 존중하고 그 가운데서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신앙의 요청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앙의 요청을 당대의 역사·문화적 환경 가운데서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또 다른 한편 각 종교는 사회 안의 다종교 상황을 유의해야 한다. 특정 종교가 국교의 지위를 가짐으로써 외부적 권위에 의지하지 않고 시민사회 안에서 각 종교가 스스로 신뢰도를 높여야 하는 조건 가운데 있다. 종교적 믿음의 체계는 그 자체로 자기완결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독단에 빠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다른 가치체계와 접촉을 통해 오히려 자기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여기서 각 종교가 사회적 신뢰를 얻기 위하여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지는 분명하다. 배타적 진리 주장과 독단적 행위에 몰입하는 종교보다는 포용력을 지닌 종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높은 현실을 유의해야 한다.


정교분리법 취지의 정당성과 한계

오늘 민주적 헌정 국가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교분리의 취지를 따를 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종교들의 정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전광훈이나 손현보는 광장이나 교회당에서 노골적으로 헌정질서 자체를 부정하거나 실정법을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신천지나 통일교는 은밀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원한다든가 금품을 제공함으로써 실정법을 위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수사와 사법적 절차를 통해 일련의 일탈 사태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충분하다.
제22대 국회에서 이른바 ‘정교분리법안’으로 불리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2026.1.9.)이 발의된 것도 그러한 사회적 공감대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헌법적 원칙과 보편적 가치 기준을 따르는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특정 종교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적절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더불어 종교법인을 포함한 비영리법인에 대한 행정관청의 감독 권한과 절차를 명문화함으로써 행정권의 임의적 행사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재 발의된 법안은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한다 하더라도 법안으로서 취약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교계에서 여러 의견이 제기되었거니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그 법안 제기의 배경과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이 여전히 또다른 측면에서 행정관청의 자의적 법 집행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장치가 없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법인의 위법성과 책임을 판단하는 일은 행정명령이나 행정결정이 아니라, 법원의 판결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설립허가 취소가 곧바로 법인의 해산과 재산 귀속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 구조는 종교의 자유와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침해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정권의 성격에 따라 정치적으로 오용·남용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통일교, 신천지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다 – 비영리법인의 공익성 제고를 위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입장」 2026.2.4. 참조.)

비영리법인에 대한 감독 권한을 행사하는 절차와 그 효력에서 모두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인의 취소가 곧바로 해산의 효력을 지니는 것으로 되어 있어 사실상 행정관청이 전권을 가지고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그 권한은 사실상 어떤 견제도 받지 않은 채 정권의 성격에 따라 오용되거나 남용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행정관청의 임의적 판단을 배제하려는 법 조항이 오히려 임의성을 안게 되는 모순이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해당 법안에서 법인의 설립허가의 취소 요건 가운데 헌법상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반하거나 공직선거법 등을 위반한 경우만을 특정하고 있는 점도 문제이다. 그 밖에도 다양한 위헌적 또는 반사회적 행위 등이 있을 수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은 채 특정 사안만을 명시함으로써 균형을 잃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해당 법안이 바로 그 특정한 사안을 겨냥하여 성급히 만들어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로써 오히려 법안의 신뢰성과 합리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결국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사안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여론을 환기하기 위한 일종의 불쏘시개 역할을 맡은 것 정도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교분리의 정신을 훼손하는 정치 행위에 대한 규율 방안은 좀더 충분한 검토와 숙의를 필요로 한다.
먼저, 민주적 헌정질서를 부정하는 정치적 선동이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요구를 관철하려는 정교유착이든 이를 법률로 규율하고자 한다면 해당 법안이 충분한 합리성과 균형을 갖추어야 하고 정교해야 할 것이다. 법률적 규율은 쉬운 방법이지만, 그 쉬운 방법을 따르기 위해서는 입법 과정 자체가 충분한 의견 수렴을 동반하여야 하고 그 결과로서 법안이 합리성과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 행정의 권한만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면 이는 종교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 더욱 근본적인 대안은 우리 사회에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관한 규범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는 쉽지 않은 과제이기는 하지만, 법과 제도가 순기능을 담당하도록 하기 위한 필수적 요건이다. 사회적 규범이 빈약한 토대 위에 세워진 법과 제도는 취약성을 지니기 마련이다. 2025년 4월 4일 대통령 탄핵 선고에서 헌법재판관도 인용했듯이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규범의 요체라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의 위기 신호』 2018, 132.) 이는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서도 유의해야 할 규범적 성격을 지닌다. 상호 관용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말하며, 제도적 자제는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권한이라 하더라도 그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 절제를 뜻한다.
그 규범이 지켜질 때 사회는 신뢰가 유지되고 안전해진다. 반면 그 규범이 무너질 때 사회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 규범을 지켜야 할 책무는 우선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 편에 더 강하게 요구되는 것일 수 있지만, 종교 편에 또한 그 무게와 다르지 않게 요구된다. 오히려 종교 편에서 그 책무를 더욱 무겁게 느껴야 할 것이다. 종교는 권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규범을 통한 교화력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그 본령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0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