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긍심 - 사도행전 4:32~37[유튜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6-06-07 15:26
조회
1060
2026년 6월 7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긍심
본문: 사도행전 4:32~37



현재 직면한 위기를 넘어서고자 할 때 흔히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의 위기가 심각하게 느껴질 때도 초기 교회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뜻을 환기함으로써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속되는 교회의 준거가 되는 초기 교회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본문 말씀은 그 초기 교회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초기 교회의 모습에 관한 증언은 중복되고 있습니다(2:43~47, 4:32~37). 사실상 겹치고 있는 이 증언은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당시 교회의 모습을 집약하여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사건을 통해서 잘 드러나지 않은 교회의 일상적 모습을 기록해 두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저자가 그렇게 서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덕분에 오늘 우리는 초기 교회 생활의 요체를 간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겹치는 두 본문은 약간 차이가 나기는 합니다. 앞의 증언(2:43~47)이 초기 교회공동체의 면모에 대해 보다 포괄적인 윤곽을 묘사하고 있다면, 본문 말씀(4:32~37)은 공통되면서도 특정한 측면에서 좀 더 구체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앞선 증언(2:43~47)의 요체를 살펴봅니다. 우리 교회가 처음 시작할 때 출사표 삼아 창립 예배에서 새긴 말씀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사도 2:43~47)
이 말씀이 전하는 새로운 공동체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새로운 공동체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감화를 받았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가장 낮은 이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 공동체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을 재현하는 공동체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공동체 존속의 주관적 조건입니다.
두 번째로, 새로운 공동체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누며 진정으로 사귀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등급 지우고 인간을 가르는 원천적인 조건을 철폐하고 저마다 인간 그 자체로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공동체 존속의 객관적 조건입니다.
세 번째로, 새로운 공동체는 밥상을 함께 나눴습니다. 한솥밥 먹는 사이라는 말이 있듯이, 함께 밥상을 나눈다는 것은 이 공동체가 진정으로 새로운 가족으로 다시 탄생했음을 뜻합니다. 기존의 혈연으로 제한되고, 그래서 그 혈연적 이기주의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서로 격의 없는 가족 관계를 이뤘다는 것을 뜻합니다.
네 번째로, 새로운 공동체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스스로 이룬 것에 자족하여 스스로 우상에 빠지는 것을 넘어 궁극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개방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막연히 그 어떤 힘에 기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인간들의 차이가 결코 절대화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내 곁의 타인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뤄지는 공동체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서로 상처를 낫게 해주고 서로 감싸안아 주는 진정한 공동체입니다.

본문 말씀 또한 그 대의에서 앞의 증언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굳이 말한다면, 공동체성의 물질적인 기초 또는 객관적 조건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물질을 공유하는 가운데 형성된 공동체의 실상을 조금 더 분명히 드러내 줍니다. 이에 기여한 두드러진 인물로서 바나바를 명시한 점에서도 더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바로 앞에서 성전 당국자들과 갈등을 겪은 이후 문맥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전이 표상하는 가치와 질서에 대립하는 공동체의 특성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굳이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본문 말씀 역시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증언을 중심으로(4:33) 모든 사람이 감화받고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는 것(4:32)을 핵심 메시지로 하고 있습니다.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는 것은 다른 상상력이 허용되지 않는 이념의 경직성 내지는 획일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격적으로 온전히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소통과 신뢰를 말합니다. 강압적인 규율이나 불가피한 제도 이전의 문제입니다. 초기 교회는 그와 같은 규율이나 제도로 운영되지 않았습니다. 뜻을 함께하고 마음을 함께 모으는 데서 초대교회 공동체는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함께 나누는 가운데 서로에 대한 신의, 서로에 대한 믿음, 곧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그 공동체는 시작되었고, 생명력을 유지하였습니다.
그것은 내 곁의 형제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었고, 그 믿음이 존속되는 한 지속되는 공동체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인간에 대한 믿음과 별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은 인간 역사의 희망에 대한 믿음과 별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구체화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은 인간 역사의 희망에 대한 믿음으로 구체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믿음,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표현으로서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한 믿음은 함께 한 구성원들 사이에 상호 책임적인 관계를 형성합니다. 여기서 물질의 공유가 중요한 요건이 됩니다.
본문 말씀의 앞 대목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4:32) 그리고 그 공동체를 지탱하는 중심 가치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 안에서 누리는 은혜를 강조하고(4:33), 이어서 다시 공동체의 구체적 모습을 전합니다. 이는 부활에 대한 믿음과 공동체의 내적 연관성을 말합니다. 부활을 믿는 믿음이 이렇게 삶으로 구체화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4:34)
언뜻 보면 같은 내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두 진술은 미묘한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공동체의 점층적인 발전 과정을 함축합니다. 어떤 미묘한 차이일까요? 앞의 진술은 개인적 소유를 전제하고 있고, 뒤의 진술은 그 개인적 소유마저 내놓은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부분의 말씀은 개인적 소유를 인정하되 그 소유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지 않고 사실상 공동선을 위해 활용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뒷부분의 말씀은, 전 재산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가진 소유 자체를 아예 공유로 내놓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개인적 소유를 인정하되 공동선을 위해 그 소유를 활용했다는 것은 그리스적인 미덕과 정의에 부합합니다.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의 근거가 되는 『니코마스 윤리학』이 말하는 이상적 상태입니다. 재산을 가진 자유로운 시민 공동체의 이상입니다. 플라톤의 『국가론』과 더불어 『니코마스 윤리학』은 그 이상의 중요한 기초를 제시했고,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한마음 한뜻’이라고 한 표현은 구약성서에도 등장하지만(신명 6:5 등), 그리스 세계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특히 ‘한뜻’은 ‘사랑의 공동체’를 은유하는 의미로 여겨졌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말씀, 신약성서의 말씀이 그리스-로마 세계 안에서 선포되고 있는 점을 늘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증언은 그 세계가 가장 바람직하게 여기는 이상을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서 구현했다는 자긍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선도한다는 자긍심입니다.

그러나 그다음 증언, 곧 바나바가 자신의 소유를 내놓았고 공동체 안에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4:34~37)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약성서로부터 이어져 온 오랜 이상이 드디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 구현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모든 사람에게 내린 은혜를 언급한 것은 그 차원을 달리하여 중요한 의미를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닙니다.
초기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는 자기 재산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다수는 갈릴리 출신의 가난한 사람들이 중심이었고, 여기에 점차 다른 지역 출신의 비교적 유력한 사람들이 결합하였는데,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키프러스 출신 바나바는 자기 소유를 내놓을 수 있을 만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이 모이는 초기 교회에 그렇게 몇몇 사람들의 기여가 큰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증언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4:34) 애초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가 자신의 재산을 팔아 그것을 내놓은 사람들의 기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구약 신명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당신들이 참으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신명 15:4) 사도행전의 증언은 그 하나님의 약속이 드디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초기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역사적으로 ‘사회’에 대한 관념, ‘공동체’에 대한 관념을 자극하고,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여러 역사적인 운동을 고무하였습니다. 교회만의 이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추구하였던 모든 운동을 추동하는 끊임없는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왔습니다. 성서로부터 비롯되는 이 정신은 오늘날 인류 공통의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서의 그 보편적 정신과 메시지를 다시금 조명하며 우리 사회에 펼쳐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화의 진정한 뜻입니다.

얼마 전 파업 위기 직전까지 치달았던 삼성전자 사태는 단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공정한 부의 분배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해당 기업의 경영전략과 해당 부문 노동자들의 몫으로만 영업이익의 실체를 규명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국제적 분업 구조 안에서 해당 기업의 위치, 국가의 공적 지원, 하청 업체와 여러 관련 업체의 협력, 그리고 시장의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이 복합적인 관계망 안에서 달성된 영업이익은 해당 기업의 특정 부문만의 성취는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 이익을 나누는 일은 관련 당사자 모두와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국가의 공적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국민 모두와 관련되어 있기도 합니다.
한 복지 전문가는 삼성전자 노조가 성과급 요구를 한 덕분에, 노동자들이 정당한 분배를 요구하면 곧바로 ‘빨갱이’로 찍히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아 다행이라 말합니다(윤흥식, “고맙다, 삼성전자 노동조합!” <한겨레>, 2016.6.1.). 이념의 덫을 피해 부의 공정한 분배 문제를 제대로 논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그 공정한 규칙과 틀을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와 국가의 몫이 되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능력껏 일하고 자신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오늘 중요한 시대적 과제입니다. 더불어 기후 위기로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는 자연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중차대한 과제입니다. 이른바 ESG 경영(Environment: 환경, Social: 사회, Governance: 지배구조)은 오늘날 기업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중요한 원칙입니다. 이는 지속 가능한 기업의 경영원리를 뜻하는 것일 뿐 아니라 평화롭게 지속 가능한 사회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은 말씀이 일깨워주는 진실을 스스로 삶에서 구현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믿는 그 진실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도록 협력하고 헌신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그 진실을 이루고자 하는 데서 자긍심을 지니기를 바라며, 진정한 기쁨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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