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가장 보통의 교회'가 살아내는 가장 친밀한 공적 사역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6-06-24 14:02
조회
141
『월간목회』창간 50주년 기획특집 한국교회 목회 백서 / (2026년 7월호)













인권과 교회: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공적 사명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 한국교회인권센터 이사장)

생명과 인권을 옹호하는 교회

새천년 첫 주일 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교회가 지향하는 바를 공표하였다. “우리는 이런 교회를 지향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표방한 교회의 지표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으로서 ‘영적 공동체’와 ‘선교하는 교회’ 두 가지 목적을 제시하고, 이어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할 목표로서 ‘생명과 인권을 옹호하는 교회’, ‘연대하는 교회’, ‘민주적인 교회’, ‘공부하는 교회’, ‘친밀한 공동체’ 등 다섯 가지 과제를 명시하고, 마지막으로 ‘희망이 있는 교회’로 결론을 삼았다.
이는 처음 교회를 시작하기 전 지역사회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나눈 후 집약한 것이었다. 이후 2019년 말 교회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다시 가다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를 통해 처음부터 교회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고, 현재 교회 구성원은 그 가치에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여기서 첫 번째 실현 과제로 꼽은 ‘생명과 인권을 옹호하는 교회’는 그 내용을 이렇게 집약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모든 생명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 모두가 존중받는 가운데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출신이나 성별, 또는 성적 지향 등을 구실로 하여 차별하지 않고 환대하는 공동체를 이룰 뿐 아니라 동시에 세상에서도 이를 이루기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2019년 수정 보완할 때 가장 심혈을 기울인 대목이었다. 처음 내용은 생명과 인권이 존중받는 가운데 평화로운 삶을 이루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원칙적 선언 수준이었다. 수정한 내용은 차별이 일어나는 현실의 맥락을 짚고 대표적인 차별금지 사유 몇 가지를 명기하는 것으로 보완하였다. 그것으로 한정하는 의미가 아니라 대표적인 사유를 적시하는 의미였다.
가장 심사숙고했던 것은 ‘성적 지향’이었다. 때마침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다. 교회에서는 이미 2017년에 여덟 차례에 걸쳐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권리: 국민주권 시대에 다시 읽는 성서”라는 주제로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인권 사안에 대한 공부를 마친 터였다. 수요일에 진행된 강좌에 참여하지 못한 교우들이 주일 오후 ‘앵콜 강연’을 요청하였다. 그 주제는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주일 예배 가운데서도 인권운동과 관련된 학자나 운동가 등을 초청하여 말씀을 듣는 기회도 지속되었다. 교우들은 그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인권 상황을 공유하게 되었고, 당대에 첨예한 쟁점이 된 사안을 명기하는 것을 매우 의미있게 받아들였다. 명기된 사안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사안을 명기한 것은 당대의 인권에 대한 중요한 이해의 지표를 드러내는 의미를 지녔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교회

천안살림교회는 이른바 ‘특수선교’를 지향하는 교회는 아니다. 특정한 과제를 중심으로 하거나 특정한 계층을 중심으로 하여 모인 공동체는 아니라는 뜻이다. 가장 보통의 교회를 지향한다고 할까? 평범하면서도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는 셈이다.
연령별 구성에서 고령자에서 유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가 어울리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고령화하는 추세 가운데서도 청년들이 자체의 역동성으로 활발히 움직일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계층별 구성에서는 지역 시민사회 활동가도 있지만 여러 직종에 종사하는 교우들이 함께하고 있다. 고학력층이 많은 편이기는 해도 이른바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라고 할 만한 교우들 또한 적지 않다. 기존 교회에서 만족하지 못하거나 상처를 입고 찾아온 교우들이 다수이다. 특히 극단적으로 치우친 정치적 편향과 혐오 선동을 견딜 수 없어 피난처이자 안식처로 여기고 찾아온 경우가 많다. 그렇게 다양한 이들이 서로 위화감 없이 어울리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니 커다란 은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런 모습이 교회 공동체의 이상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한다.
선교적 과제 역시 특정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과 인권을 옹호하는 교회’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것은 교회가 지향하는 여러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사실은 이 지표만으로도 단일한 과제를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이라는 가치는 인권의 밑바탕이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든 피조물을 함축하는 뜻 또한 지니고 있다. 그것은 곧 자연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 과제는 창조세계의 보전을 뜻한다. 이는 특별히 기후 위기 시대에 새삼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천안살림교회가 ‘녹색교회네트워크’의 일원으로 함께하는 것도 그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인권 옹호를 중요한 과제로 삼는 교회의 몫이 돋보인다면 아마도 많은 교회들이 인권의 문제에 무심한 탓인지도 모른다. 우리로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창조신학,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옹호한 예언자들의 선포, 그리고 버림받은 이들과 함께하며 한 영혼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오늘의 인권 인식과 직결된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인권의 문제를 교회의 과제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많은 교회가 인권 옹호를 신앙의 과제이거나 교회의 과제로 받아들이지 않은 탓에 우리가 상식으로 여기는 그 태도가 두드러지게 보일지도 모른다.

안팎으로 인권 존중의 정신을 구현하는 공동체

물론 인권 감수성을 갖추기 위한 의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감수성은 우선 교회 공동체 안에서부터 길러지고 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하나의 원칙이 있다. ‘친밀한 공동체’를 표방한 것이다. 이로써 대형교회 지향을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예 200명 이내로 그 구성원을 한정하고 있다. 모든 교우가 직접 인격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적정한 규모라 여기기 때문이다. 누구든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할 때 상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 적어도 교회 안에서 그런 직접적인 인간관계가 깊어지는 경험을 나눌 수 있어야 하고 그 가운데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의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 경험을 쌓으며 밖을 향하여 자신을 열고 마땅히 함께해야 할 이들과 동행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회가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고자 하면 오히려 그 몫이 한정되지만, 자신을 열어두고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함께하고자 하면 많은 몫을 감당할 수 있다.
천안살림교회는 개척 시점부터 지역사회 어린이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방과후 학교 공간으로 개방하였고, 지금까지도 지역시민 단체인 ‘미래를여는아이들’과 더불어 지역아동센터와 그룹홈을 지원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장애인 단체에 공간을 개방하여 활용하도록 하기도 하고, 독거노인을 위한 밑반찬사업 등을 위해 주방시설을 개방하기도 한다.
지역사회를 벗어나 우리 사회에서 노동권이 침해받고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현장, 차별이 일어나는 현장에 함께하거나 지원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세월호참사 유족들과 함께하는 예배에 참여하기도 하고, 성차별과 성폭력을 막아내고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활동에도 연대한다. 최근 제정된 생명안전기본법에도 뜻을 같이하였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서도 함께 마음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25주년을 맞이하여 열린 수련회에서는 교우들이 30주년을 맞이할 때는 차별금지법이 있는 나라에서 온전한 성평등을 이루는 교회의 모범을 제시하자는 포부를 밝히기도 하였다.
그 연대는 국내로 제한되지 않는다. 국제적 차원에서 참혹한 인권 침해의 현장에 연대의 손길을 펼치기도 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올리브나무 심기 운동에 동참하기도 하고, 필리핀 인권 개선을 위한 지원 활동에도 참여한다. 시시때때로 연대하는 활동을 열거하자면 그 목록은 더 늘어난다. 지역사회를 벗어난 인권 현안과 관련된 활동은 많은 부분 담임목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교우들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뜻을 같이하고 함께한다. 담임목사의 활동이 교회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역으로 교우들의 공감과 지지가 없다면 담임목사의 그 활동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상호 관계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삶

우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교회의 사명을 특별하다기보다는 그저 마땅한 과제로 여긴다. 근대적 문제의식으로서 인권에 대한 인식이 제기되었을 때 한동안 교회가 이를 거부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인권을 내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배반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에 대한 신학적 인식은 달라졌다.
창조 이야기가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인간 존엄의 신학적 근거에 해당한다. 하나님께서 인간 삶을 긍정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더욱이 예수께서는 잃어버린 이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한 사람 한 사람 영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셨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차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였다.
성서의 그 가르침은 오늘날 인간 존엄을 보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따라서 교회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마주하며,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도록 헌신하는 것은 마땅한 사명일 수밖에 없다.
전체 0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