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평화가 만드는 삶의 방식 - 에베소서 2:11~22[이성철 목사 / 유튜브]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26-09-14 15:32
조회
222
2026년 9월 13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평화가 만드는 삶의 방식
본문: 에베소서 2:11~22
이성철 목사



지난 주일부터 우리는 교회력으로 창조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주 예배가 끝난 뒤 성가대 분들과 교회에 걸린 천과 주보의 색이 바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절기가 바뀔 때마다 우리 교회도 천과 주보의 색을 그 절기의 상징색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창조절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의 아름다움과 생명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창조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는 일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만들어온 질서가 온 땅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있는지도 돌아보는 시기를 우리는 지나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을 파병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더 많은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아닌지 묻기에 앞서, 우리의 삶과 경제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받아들이도록 이야기들이 불어나기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경제적 이해와 자원, 군사동맹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한쪽의 군사력이 다른 쪽의 군사력을 불러오고, 안전을 위해 준비한다는 힘이 다시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창조절을 보낸다는 것은 무엇이 정말 생명을 지키는 길인지 다시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에서 생명은 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한 지역과 다른 지역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관계가 폭력과 적대로 결합될 때 누군가의 안전은 다른 누군가의 희생 위에 놓이게 되고,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땅과 물과 온 창조세계가 함께 상처 입습니다.

오늘 읽은 에베소서는 이렇게 갈라진 관계 한가운데에서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에베소는 로마제국 아시아 지역의 도시로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오가던 곳이었습니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했고 유대인 공동체도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서가 정확히 에베소 한 교회만을 대상으로 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편지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중요한 문제로 다룹니다.

에베소서 2장은 이방인들이 한때 이스라엘의 시민권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에는 외인이었으며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11절에서는 이들을 ‘무할례자’라고 부릅니다. 할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문제는 어느 종교가 더 우월한가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역사와 정체성을 가진 유대인과 이방인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관계를 이루며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13절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전에 멀리 있던 사람들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4절은 이 변화를 한 문장으로 선언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명료한 선언입니다. 유대인들의 평화도 아닌, 할례받은 자들의 평화도 아닌, 예수를 따르고 있던 권위있던 목소리 큰 자들의 평화가 아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의 평화라고 분명하고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평화는 서로 멀리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변화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시고, 사이를 가로막던 담을 허무시고, 적대를 없앴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15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둘을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평화를 이루셨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만들다’라고 번역된 말은 명확하게는 ‘창조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두 집단을 조금 가까이 붙여놓거나 한쪽이 다른 쪽을 받아주면서 흡수되거나 합쳐지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만들고 완성한 평화는 분열을 억지로 화해시키는 것을 넘어, 새로운 존재로 창조하는 일이었습니다. 서로를 갈라놓았던 관계 자체가 달라지고, 그 자리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계가 창조됩니다.

창조절에 이 말씀이 특별하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먼 옛날 하늘과 땅을 지으신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새로운 관계를 맺고 이전에는 없었던 관계와 사건을 만들어가는 곳에서도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합쳐진다는게 말처럼 쉬운일일까요? 오랫동안 누군가를 적으로 여기며 살았다면 경계가 사라진 뒤에도 두려움은 남습니다. 상대를 경계하며 사용해온 말도 남고, ‘저들과 다른 우리’라는 구분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해온 습관도 남습니다. 인식이 바뀌기 쉽지 않습니다. 교회 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임과 공동체 안에서도, 먼저온 사람과 나중온 사람이 동등하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와서 자리잡고 이렇게까지 만들어놨는데, 나중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아, 내몫을 나눠주는 것 같고, 내가 애써 이뤄온 것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그리고 내가 선심쓰듯이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에베소서가 왜 담을 허무는 데서 끝나지 않는지도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19절에서 이방인들은 더 이상 외인과 나그네가 아닙니다. 같은 시민이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됩니다. 그리고 22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함께 지어져 갑니다.”

이미 완성된 집이 있고 그 안으로 새로운 사람을 하나씩 들이는 모습과는 다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연결되면서 하나님이 거하실 집 자체가 계속 지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공동체에 맞춰지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공동체 자체도 변화합니다.

그러므로 평화가 시작될 때 상대방만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적대 속에서 살아온 우리 자신도 달라집니다. 아니,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을 다시 살피고, 익숙하게 사용해온 말을 고치며, 공동체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방식이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었다면 그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것이 평화가 만드는 삶의 방식입니다.

지난주 최형묵 목사님과 저는 “글리온회의 40주년 기념 세계 에큐메니칼 평화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올해는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과 북의 교회가 처음 직접 만난 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국가차원의 적대 관계를 깨고 그리스도인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평화를 처음으로 실천하는 자리였습니다. 당시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편안하게 마주 앉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오랫동안 적으로 배워왔고, 첫날 식탁에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40년전 글리온에서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읽었던 성서 본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늘의 에베소서 2장의 본문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함께 읽고 마지막에는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당시의 증언은 그 성찬을 통해 보이지 않던 장벽이 허물어지고 서로를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로 만나기 시작했다고 회고합니다.

40년전 그리스도인들이 사전에 모든 작업을 마치고, 평화를 다 이루어놓고 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분단이 해결된 것도 아니었고 서로 다른 입장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평화가 완성되기를 기다린 다음 만난 것이 아니라, 적대가 남아 있는 가운데 먼저 만나고 함께 말씀을 읽고 식탁을 나누면서 이전과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40년이 지난 오늘도 한반도의 평화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정전체제 속에 살아가고 있고 군사적 긴장과 상호 불신도 계속됩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더 많은 분쟁과 폭력이 늘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이 한편으로 답답하고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동시에 평화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도 보여줍니다. 오래 쌓인 적대와 두려움은 한 번의 선언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나고 이야기하고, 상처를 마주하고 관계를 고치며, 다시 신뢰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2장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라고 말하고 끝나지 않습니다. 4장 이후로 가면 그 평화가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 됩니다.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하라고 합니다. 분노가 관계를 파괴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말을 하지 말고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하라고 합니다. 자신이 얻은 것을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과 나누라고 합니다.

결국 평화는 우리가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의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입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말을 사용하는지, 상처 입은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오래 들을 수 있는지, 나의 편안함과 안전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는지,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온 방식이 누군가를 계속 밖으로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를 살피는 일과 이어져 있습니다.

오늘은 창조절 둘째주일입니다. 평화는 폭력을 잠시 멈추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를 창조합니다. 멀리 있던 사람이 가까워지고, 외인과 나그네였던 사람이 시민과 가족이 되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갑니다.

우리도 이미 평화를 완성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때로는 두려움에 마음을 닫고, 익숙한 질서를 지키기 위해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화는 그런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고, 사용하는 말을 바꾸며,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까지 새롭게 만들어갑니다.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완성된 집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지어져 갑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 안에서 우리도 계속 새로워지고, 서로의 생명을 살리며,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 안에서 정의와 평화를 함께 일구어가는 천안살림교회 교우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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