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매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삶 - 마태복음 25: 1~13[음성]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9-11-24 12:41
조회
125
2019년 11월 24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매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삶
본문: 마태복음 25: 1~13



올해도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한 달 하고 한 주간만 지나면 2019년도를 마감합니다. 교회력으로 보면 이번 주간이 마지막이고, 다음주간부터 대림절 시작으로 새로운 교회력이 시작됩니다. 하나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간을 예비하는 시점입니다.

그 절기에 마태복음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본문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말씀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로 알려져 있는 오늘 본문말씀을 다시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결혼식 잔치에 참여한 열 처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부의 들러리로 나선 처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었고 다섯은 슬기로웠다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잔은 가지고 있었으나 기름은 준비하지 못한 반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잔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함께 준비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밤중에 결혼식을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경우에 처녀들이 횃불을 준비해 신랑이 올 때까지 춤을 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등잔은 말 그대로 등잔이 아니라 횃불이었을 것이고, 여기에 사용된 기름은 올리브로 만든 기름이었을 것입니다.
하여간 횃불만 덜렁 들고 있는 어리석은 처녀 다섯과 횃불과 기름을 다 같이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 다섯이 있었는데, 신랑이 밤늦게까지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깜박 잠이 들었는데, 신랑이 왔으니 마중 나가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때 타고 있던 횃불은 꺼져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미리 준비한 기름으로 연료를 보충하여 신랑을 맞아 잔치에 들어갔지만, 어리석은 처녀들은 기름을 구하러 간 사이에 문이 닫혀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신랑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 예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실지 항상 대비하고 있으라는 종말론적 신앙의 자세를 일깨워 주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서두에서 ‘하늘나라’는 이와 같은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는데, 결론에서 ‘그날’과 ‘그때’를 말함으로써 하늘나라의 도래와 주님의 재림을 동일시하는 종말론적 성격을 분명히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달란트의 비유나, 지난 주일에 함께 나눴던 최후의 심판 이야기에서 이와 같은 종말론적 성격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사실, 한국교회에서 종종 일어났던 종말론적ㆍ말세론적 신앙운동이 지닌 문제점 때문에 종말론적 신앙 자체를 위험시하기도 합니다.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난 많은 종말론적 신앙운동이 비성서적일 뿐 아니라 반사회적이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 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신앙 자체를 위험시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날’과 ‘그때’를 기다리는 종말론적 신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요, 바로 그 신앙 때문에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종말론적 신앙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이와 같은 종말론 신앙의 참된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항상 깨어 있어서 매 순간의 삶을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삶과 신앙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성서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가장 부러운 사람이 누구냐는 물음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다가 마지막 순간에 구원받은 강도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평생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마지막 순간의 선택으로 구원받기를 바라는 기대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예수 믿으라’고 하면, ‘지금까지 탈 없이 살아 왔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살다가 죽기 전에 예수 믿으면 되지’ 하는 이야기들도 합니다.
그러나 죽고 사는 일이 제 마음대로 될까요?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시대에도 인생사가 그렇거니와 더욱이 오늘의 시대는 누구나 항상 위험에 처할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는 말하기를, 현대문명은 발전하면 할 수록 구조적으로 위험요소를 더욱 가중시키는, 한마디로 ‘위험사회’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운이 없어 위험한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든 ‘구조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통찰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가 죽을 날을 예측하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구원받을 준비를 해야지’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도무지 불가능하며 무모한 일입니다. 너무 섬뜩한 우리 삶의 현실을 말한 것일까요?
꼭 위험사회여서 죽음의 순간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온하고 안전한 사회에서도 자신의 미래를 투명하게 내다볼 수는 없고, 죽음의 순간은 더더욱 알 수 없습니다. 오늘과 같은 위험사회에서는 그 예측불가능성, 예견불가능성이 더더욱 극대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종말론적 신앙은 인간의 의지나 계획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앞날의 현실, 그에 대한 예측불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그러기에 허무주의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적극적인 삶의 태도로 나서는 신앙입니다. 한계를 체감하고 절망하는 삶의 태도가 아니라 정반대로 한계 안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누리고자 하는 태도로 나서도록 만드는 신앙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때를 알 수 없기에 언제든 그때가 오더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그때를 맞이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는 신앙입니다. 한 순간 한 순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는 신앙입니다. ‘이때 못한 것 저때 하지, 그때도 못하면 또 다른 때 하지’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내가 이 순간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하는 태도, 나와 더불어 있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더불어 나아가는 자세, 그것이 사실은 종말론적 신앙과 통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종말론적 신앙은, 허황된 환상에 빠져 현실을 내팽개쳐버리는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그 때를 예측하거나 특정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언제든 그때가 오더라도 거리낌이 없도록 준비하는 자세가 바로 종말론적 신앙의 자세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1~12절은 말합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진정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바라는 신앙이요,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간구하는 신앙의 참된 자세입니다. 우리는 그 날이 속히 오도록 절박한 심정으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한 순간 한순간, 하루하루를 깨어 있는 자세로 임하는 것입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그것은 매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상태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게 삶을 피곤하게 살아야 할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은 유난히 호들갑스러운 삶이 아니라 가장 여일한 삶입니다. 먹고 호흡하며 움직이며 쉬며 그 가운데 생각하는 삶입니다. 매 순간 순간을 그렇게 생명력 있는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일하게 지속되는 삶입니다. 그 삶이 유난스러워 보인다면, 그 삶을 보장하지 않는 현실에 저항해 그 삶을 누리기 위해 특별히 애써야 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특별히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정상적이고 여일한 삶을 누릴 수 없는 현실 가운데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지켜왔던 종말론적 신앙, 매 순간을 카이로스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소중한 진실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넋을 놓는 순간, 아니 두 분을 부릅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혼미한 상황 가운데 빠트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탈진실(post-thruth)’의 시대라고까지 하지 않습니까?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어 있다’는 경구의 진실을 오늘처럼 실감하는 때가 없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의 태도로 살고 있을까요? 우리가 오늘 말씀이 깨우쳐 주는 진실을 따라 일관할 수 있다면, 어떤 결과가 닥쳐오든 그 순간순간 자체가 의미있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있는 순간들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결과 또한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어떤 것이 될 것입니다. 지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함께 격려하며 나아가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뜻,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어쩌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듯한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리의 삶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세상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삶을 온전히 누리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라는 것을 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고 매순간을 그렇게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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