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복음의 진실, 차별 없는 세계 - 사도행전 10: 27~36[음성]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0-01-26 13:23
조회
5400
2020년 1월 26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복음의 진실, 차별 없는 세계
본문: 사도행전 10: 27~36



오늘 본문말씀은 베드로가 처음으로 이방선교를 하게 된 사건을 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유대 민족에게서 이방인들의 세계로 복음이 전해진 사건, 그 사건은 그저 복음의 지평이 확장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째서 만민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는지를 알려주는 사건이요,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주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10장 전체가 이 사건을 전하고 있는데, 본문말씀은 그 일련의 이야기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이 이야기는 경건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고넬료의 환상과 이에 상응하는 베드로의 환상이 마주치는 가운데 두 사람이 직접 만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이 구현되는 극적인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서두는 먼저 고넬료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가이샤라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군의 이탈리아부대의 백인대장이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군대의 한 장교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부터가 사건의 극적인 성격을 이미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와는 다른 로마의 평화는 그 군대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군대의 중요한 일원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나게 되는 극적인 사건을 본문말씀은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 그리스도를 모릅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유대인도 아니요, 또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도 아니지만, 유대교 회당을 거점으로 하는 유대인 공동체에 연대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재래의 종교를 따르는 대신 유대인들의 신앙에 호감을 갖고 연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러한 고넬료에게 환상이 보입니다. 천사가 나타나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 그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가이샤라에서 욥바는 대략 50Km로 하루쯤 걸리는 거리인 셈입니다. 오후에 출발한다면 다음 날 오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고넬료는 하인 두 사람과 경건한 병사 한 사람을 보냅니다. 이 경건한 병사는 아마도 자신과 같은 성향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욥바 가까이 이르렀을 때 베드로가 환상을 봅니다. 기도하려 하였지만 시장한 터에 환상을 봅니다.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와 같은 그릇이 끈이 달려 내려오고 그 안에는 온갖 네 발 달린 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짐승과 날짐승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
경건한 유대인이었던 베드로는 유대 전통에서 부정한 것들로 간주하는 것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부정하고 속된 것을 한 번도 먹은 일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다시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이런 대화가 세 차례나 오고 간 뒤에 그 그릇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 그릇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짐승들이 들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완강히 거부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경건한 유대인들로서는 입에 댈 수 없는 짐승들이 함께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묘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본 환상이 대체 무슨 뜻일까 하면서 어리둥절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로마군대의 장교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찾아와 베드로를 초대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초대하러 온 이들을 맞아들여 하룻밤을 잔 후 다음 날 함께 가이사랴로 떠납니다.
가이샤라의 고넬료는 사람들을 불러놓고 베드로를 정중히 맞이합니다. 26절을 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하는데, 고넬료가 엎드려 절하며 베드로를 맞이하는 장면입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장면일 수 있지만, 고넬료의 그 행위는 신적인 존재를 맞이하는 그들의 관례였습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베드로가 “일어나십시오. 나도 역시 사람입니다.”라고 하며 그를 일으켜 세웁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에 해당하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고넬료의 일행을 만난 베드로는 말문을 엽니다.
“유대 사람으로서 이방 사람과 사귀거나 가까이 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사람을 속되다거나 부정하다거나 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나를 부르러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거절하지 않고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로 나를 오라고 하셨습니까?”
이 물음 자체에 이미 극적인 사건의 진실이 모두 함축되어 있습니다. 유대 사람이 이방 사람을 상종하는 것이 율법에 어긋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속되다 하거나 부정하다 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부르러 온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자신을 불렀냐는 물음은 도대체 이 일이 어떻게 벌어지게 된 것인지를 확인하는 절차로서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고넬료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기도중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경계를 무너뜨린 것,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부정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베드로가 선포합니다.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를 본격적으로 설파합니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않는 분이시고, 그분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느 민족에 속해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이십니다.”
말씀은 계속 이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은, 바로 그 극적인 사건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 내용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추상적인 어떤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그와 같이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과 똑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기억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입니다(누가복음 10:25~37).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뿐이 아닙니다. 사실은 오래 전 구약성서의 가르침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사무엘상 16:7)

이 일관된 가르침의 뜻이 무엇입니까? 아니 오늘 본문말씀이 증언하고 있는 맥락에서 보면,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여러 가르침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교로 만든 본질적인 가르침입니다.
출신이나 민족, 그 어떤 경계에 따라 구별되는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운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요체입니다. 그 조건을 문제시하는 질서와 가치관을 거슬러 인간을 인간으로, 생명을 생명으로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 복음의 요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 안에서는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및 보호처분, 성적(性的) 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이 차별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고넬료와 베드로가 만난 극적인 사건의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삶과 죽음으로 보여주셨던 그 사건, 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 일깨워 주신 진실이 있건만 사람들은 그 진실을 따르지 않습니다. 사회적 통념에 거스르지 않은 관습을 따르면 자신에게 가장 편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전하는 사건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여기는 그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문제시하며 무엇이 사람들에게 진정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설명절 연휴 가운데 있는 주일입니다. 고유한 민속명절에는 대개 가족간의 사랑을 나누는 계기가 됩니다. 그 사랑은 동질성을 확인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질성을 바탕으로 하는 배타적인 사랑이 전부라면 세상은 결코 사랑으로 가득해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랑이 악으로 돌변하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다른 존재에 대한 관심과 연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세상을 바꿉니다. 그 길이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세계, 사랑의 유대를 만들어냅니다.
지난 주일 교회 사회선교위원회가 모여 사회선교를 위한 귀한 뜻을 담은 사회선교 헌금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결정했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사회선교사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성소수자목회연구소위원회의 목회매뉴얼 제작을 위해서, 그리고 난민지원활동에 애쓰는 한국디아코니아를 위해서 우선 할애하기로 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눈길을 돌리지 않거나, 거꾸로 적대시하기까지 하는 이들을 위해 귀한 뜻을 전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더욱 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사람들이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는 통념을 벗어나 낯선 타인에게 다가서는 놀라운 사건을 전해줌으로써 그리스도교의 복음의 요체, 그리고 그로 인해 시작된 교회의 본분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 진실을 받아들이고 구현하기 위해 결단하고 헌신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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