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임보라 목사 / 음성]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19-01-27 23:34
조회
13170
2019년 1월 27일(월)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본문: 시편 36:9; 로마서 8:38-39; 마태복음 5:9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 담임목사)



시편 36:9,

9    주께는 생명 샘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봅니다.

 

로마서 8:38~39

34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6    성경에 기록된 바 7)"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5:9

9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다.


여신도 주일에 초대해주신 살림 여신도회 회원 여러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 기장 여신도회 전국연합회는 100주년을 앞두고 올해 주제를 ‘생명의 빛으로 평화를 노래하라’로 정했습니다. 오늘 저는 여신도주일 예배를 위한 세 본문을 읽되, 제목은 로마서 본문에 있는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로 정했습니다.

세상이 왜 피라미드야! 지구는 둥근데피라미드야!

세간에 화제가 된 sky캐슬 드라마에 나오는 명대사 중 하나입니다.  혜나를 죽인 살인범으로 몰려 구속된 우주를 걱정하는 쌍둥이 아들들에게 “지금이야말로 내신 등급을 올릴 수 있는 기회”라는  아버지에게 한 대사였지요. 가부장이  중심이 되는 상류층 가정, 집안일을 도맡아 해결해야 하는 여성, 맞춤형 사교육에 떠밀려 사는 자녀들 등등 누군가에게는 상상하지 못했던 현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10대 때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고 합니다.

계급제 사회를 벗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계급, 그 중, 피라미드 꼭대기로 오르려는 욕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목표지점일 것 입니다.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가야 생존한다고 하는 강박관념을 덧씌우는 사회적 프레임이 점점 강화되는 사회에서 일찌감치 비껴가지 않는 한 도중하차는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계급은 힘이 작용합니다. 갑과 을과 같이, 힘의 논리는 약한 것을 가장 먼저 쳐내게 만듭니다.

경제적으로 구분지어 지는 계급 뿐 아니라 이 사회에는 무수히 많은 힘의 역학 관계 속에서 기울어진 힘, 억압관계는 어디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19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대통령이 ‘다르다는 것이 서로에게 불편을 주고, 고통을 주지 않도록 모든 성이 평등하게 경제활동, 사회활동,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라고 했지만 성 평등이 구호로만 머무는 경향이 여전히 농후합니다.

여성인권과 젠더 이슈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요즘, 2018년 서지현 검사의 증언으로 시작된 미투는  2019년 심석희 선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8년 NCCK 인권센터 인권상 수상자이기도 한 서지현씨는 이렇게 수상소감을 전한 바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사실 솔직히 하나님을 참 많이 원망했습니다. 당신은 정의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냐고, 당신의 정의와 당신의 사랑은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이냐고, 당신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짐만 주신다던데 왜 이토록 감당하지 못할 고통을 주시느냐고.

당신이 그렇게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면서도 회개한다는 자를 용서하시는 분이시라면, 나는 당신을 외면하겠노라고, 당신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 믿었는데 도대체 이런 불의와 고통에 당신의 어떤 뜻이 있는 것이냐고 울부짖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저를 외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실 것이라면 내가 직접 하겠노라고, 내가 직접 정의를 부르짖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큰 소리치고 나온 후 돌아보니 그 모든 순간에 당신이 함께 계셨습니다. 제가 고통 받을 때도, 제가 울부짖을 때도, 제가 큰 소리 칠 때도 그 모든 걸음 걸음에 제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이끌어주신 당신이 계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여전히 저를 비롯하여 많은 피해자들이, 여성들이, 약자들이 고통 속에 있습니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만큼의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안에도 목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스스로 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고통을 그래도 짊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 합니다.

2017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발표(2017년 9월말-10월말, 기독인 천명과 비기독인 천명 대상으로 설문)에 따르면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는 9.5%였고 기독교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다(68.8%), 권위주의적이다(58.9%)라고 여긴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한 ‘교회여성 혐오 발언 설문’(2017. 3.17-24. 353명 대상) 중 여성의 입장에서 본 한국교회 분석에서는 △기독신앙에 성(性)이 빠짐, △교회는 60%이상인 여성에게 ‘불친절한 곳’, △남성중심의 직제(‘남녀질서’에 의한 남녀 분업체) 등이 부정적인 요인으로 보여 졌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교회내의 여성의 외모, 복장, 나이 등에 대한 성차별과 설교, 목회자의 성적타락과 파렴치함에 실망해 교회를 떠난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비단 한국여성들에게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성폭력, 가정폭력으로 희생되는 여성의 수는 줄기보다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사회에는 결혼 이주여성 혹은 이혼한 여성, 가정폭력을 피해 숨어 살고 있는 여성들이  남편에 의해 살해되거나 하는 일들이 빈번합니다.

전쟁과 같이 한꺼번에 엄청난 사람들이 죽는 것만이  범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 즉 살아있다 해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게 되는 성폭력 범죄는 근절과 예방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신도 주일에 여신도 으쌰으쌰도 중요하지만 오늘날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공동체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은 중요합니다.

올해가 3.1운동 100주년 기념의 해라고 하여 규모가 큰 행사들이 줄줄이 열릴 예정입니다만, 실제 기독교와 3.1운동을 보았을 때 기독교인이 많이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화, 정신, 배화학교 등 기독교계 여학생들에게는 독립운동 권유가 있었고, 비밀리에 3.1운동 준비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쉬이 간과되어 왔습니다. 게다가 교단 여전도회를 중심으로 조직력을 갖춰 나가던 기독여성들은 만세운동이 소강국면에 들어갈 무렵,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하며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등 제3의 독립 주체로 제 몫을 감당해왔다라는 것, 혹은   3.1운동을 ‘십대여성들이 주체가 된 독립운동’으로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옥살이를 해야했던 여성들 역시 성고문으로 인한 고통을 겪어야 했음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에서 3.1운동을 재조명한 적이 있습니다.

1971년 출간된 『한국여성운동사: 일제치하의 민족운동을 중심으로』에서 저자인 정요섭은 당시 교육받은 한국여성들은 일제의 교육정책이나 전통적인 여성관이 제시하는 여성상에 반하여 사회적인 각성과 지위 향상을 추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가장 특이한 현상은 여성들의 역할이었다. 약 20년 전만 해도 외국인 남자는 한국에 여러 해를 살아도 여자를 접촉해 볼 기회가 전혀 없었으며 거리에서도 만날 수 없었고, 한국인 친구의 가정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Frederick Arthur Mckenzie, 1920)

1919년 3월 「매일신보」를 장식하고 있는 기사들은 서울을 비롯한 평양, 개성, 진주, 목포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진 것을 짤막하게 사건 보도로 전하고 있다.

‘여학생이 시작했다’, ‘여성들의 소요’, ‘여학생의 음모’, ‘진주 – 기생이 앞서서’, ‘구마산 - 여자가 많았다’… 등의 제목과 기사 내용은 전국 방방곳곳에서 여성들이 항일운동을 주도했음을 말해준다.

“개성에서는 3월 3일 오후 2시에 만세성이 터졌다. 그런데 개성에서의 시위는 그 준비와 거사 거행이 모두 여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기생들은 기생조합을 통해 진주, 통영, 수원 등 각지에서 조직적인 만세시위를 벌였다. 해주에서는 기생들이 지휘하여 고을 전체가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3.1만세운동 직후인 4월 중국 상해에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정부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임시정부가 발표한 민주헌법에 “남녀평등”이 명문화되어 있었다는 점을 부각한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거나 없는 사실인듯 취급한다면 기억한다는 것 , 뜻을 기린다고 하는 의미가 없을 것 입니다. 물론 3.1운동을 주도했던 기독인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기에 가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해방 후 친미로 돌아선 이들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맥락이 이어져있는 모든 사실을 직시하는 것 없이는 갱신이 이루어질 수 없겠지요.

함께 읽은 시편36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2  악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죄의 속삭임만 있어,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의 눈빛은 지나치게 의기양양 하고, 제 잘못을 찾아서 버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3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란 사기와 속임수뿐이니, 슬기를 짜내어서 좋은 일을 하기는 이미 틀렸습니다.

4   잠자리에 들어서도 남 속일 궁리나 하고, 스스로 좋지 않은 길에 버티고 서서, 한사코 악을 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끝끝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성찰과 반성 없이 피해자들을 공갈협박이나 무고죄로 고소하려 드는 가해자들의 모습, 힘을 가진 자들의 횡포 앞에서 탄식하게 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호소입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  한결같은 주님의 사랑은 생명 샘, 주의 빛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실날 같은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는걸까요?  복음서에서는 평화를 이루면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린다고 하지만, 하느님의 자녀라고 스스로를 정체화 한다면 그 삶은 응당 평화를 일구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평화는 제국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악을, 불의를 고발하면서 힘없는 이들이 연대하는 가운데  소란스럽게 시끄럽게, 힘있는 이들을 성가시게 하면서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말처럼 순조롭지만은 않습니다.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라는 바울의 탄식과 같이 끊임없이 자기비하와 세상의 잣대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은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하나를 넘어서면 또 하나의 벽이 있고, 그 다음 또 다른 벽이 있는 것과 같은 절망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가 발견한 희망의 끈은 바로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라는 되묻기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누가 힐난을 하더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그 확신이 우리에게 희망을 잃지 않는 단서를 줍니다.

남북평화통일을 향해 가는 시대에서 평화의 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오는 탄식 소리가 멈추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환난, 곤고, 핍박, 굶주림, 헐벗음, 위협, 칼로 인한 고통은 여전합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서울에 다시 빈소가 차려진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님을 보아도 그렇고  5주년이 되도록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피눈물이 끊이지 않는 세월호 유가족들, 사지로 내몰리는 가운데 죽음과 시시때때로 사투를 벌이곤 하는 성소수자들이 그러하고, 피해자이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피해자성을 증명하도록 요구당하는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그러합니다.

앞서 읽은 서지현 검사의 수상 소감의 마지막 부분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떤 개인 혼자서 그 모든 고통을 다 감당해내라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함께 해주고, 그 고통을 나누어 지고, 그 고통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몫을 이 공동체에 남겨놓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살림이라는 이름 처럼 오늘 모여 함께 하늘뜻을 새긴 우리가 함께 그 남겨진 공동체의 몫을 감당함으로 살리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축도]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한 가족이 혈연으로 이어지듯

삼라만상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지구의 딸과 아들들에게도 그대로 닥친다.

인간들이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단지 그 그물 속의 한 올일 뿐.

그 그물에 가하는 모든 일은

스스로에게 향한 것이니.

(테드 페리·미국 시나리오 작가)

 

다같이: 맘속에 한 노래를 간직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세요.

귀 기울여 당신을 격려하는 노래를 들으세요. 소망을 나누세요.

우리들이 경험한 하느님을 서로 이야기합시다. 창조주, 그리스도,

위로자를 기억하며 항상 당신의 노래를 부르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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