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8/30 온라인 공동예배] 위기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교회 - 고린도전서 3:9~17 [동영상]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0-08-29 18:15
조회
412
[8/30] 성령강림 후 열셋째 주일, 온라인 비대면 주일 공동예배

시작 오전 11:00
인도 담임목사 / 촬영․영상편집 최시내



* 주일 11시 시작을 기준으로 하지만, 형편에 따라 정한 시간에 예배에 임합니다.

예배에의 부름 / 인도자


입례송 / “가서 외치라”(살림의 노래 5) / 다같이


함께 드리는 기도 / / 다같이

하나님,
흩어져 있지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드리게 하여 주시는 은혜를 감사합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저희의 삶의 밑바탕
교회 공동체의 진정한 기초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새삼 새기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께서 보여주신 참 삶의 길,
세상의 고통을 감싸 안으시고 더불어 아파하신 그 마음을
저희가 닮을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세상에 다른 자랑거리를 내세우기보다
그 마음으로
세상에 참 위로와 희망을 주는
저희의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광송/ “천지 주관하는 주님”(새찬송 598 / 통일찬송 244)/ 다같이


묵상과 성찰/ “내 기도하는 그 시간”(Bradbury) / 다같이

평화의 선언/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롬5:13)/인도자 *회중은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회중기도 / 김현경 교우


찬양으로 드리는 주의 기도 / “주기도문”(살림의 노래 190) / 다같이


성경말씀 봉독/ 고린도전서 3:9~17 / 채병훈 교우


말씀나누기/ 위기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교회 / 최형묵 목사


2020년 8월 30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위기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교회
본문: 고린도전서 3:9~17

본문말씀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하나의 건축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튼튼한 기초 위에 적절한 재료로 지어진 건축물과 같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대의를 살피자면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이지만, 또 한편으로 다소 미묘한 내용이 담겨 있어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이야기를 하게 된 맥락이 무엇이었을까요? 고린도교회는 아주 복잡한 교회였습니다. 성서 기록상으로 볼 때 가장 골치 아픈 교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몇 차례 편지를 보내야 했는데, 그 가운데 남아 있는 두 편이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고린도전후서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교회 안에 파벌이 문제시되는 상황에 대한 권고로 나온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말씀 바로 앞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 편이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 편이다’ 한다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니까? 아볼로와 나는 여러분을 믿게 한 일꾼들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각 맡겨 주신 대로 일하였을 뿐입니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은 하나이며, 그들은 각각 수고한 만큼 자기의 삯을 받을 것입니다.”(4~8)
한마디로 말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 지도자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갈려 있는 교회 공동체의 상황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두 파만 언급되어 있지만, 1장 12절에는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 한다고 합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사도 바울을 옹호하고 더 적극적으로 따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 사람들을 각별히 챙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입장마저 상대화시키는 태도를 분명히 취합니다.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의역이 아니고 직역입니다. 근본적인 대의,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떠나서는 각각의 가르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전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 공동체를 일구는 데서 바울은 심는 역할을 했다면, 아볼로는 물을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한 것은 하나님이라고 바울은 그 역할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나름대로 수고한 사람은 각기 그 삯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철저한 보상의 원칙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열매를 기쁨으로 누린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전제하에서 오늘 본문말씀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건물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말은 이중적 의미를 내포합니다. 우선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의 인격과 학식에 앞서 신실하게 하나님의 대의를 따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일을 동역자로서 기꺼이 행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방적 지시에 따르기보다는 함께 거드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기쁨으로 그 일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두 가지 비유를 동시에 겹쳐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집입니다.” 앞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하나님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농원으로 비유했다면, 이제부터는 건축물로 비유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말씀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견고한 건축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중심이 되는 초점은 분명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은, 튼튼한 기초 위에 제대로 된 재질로 건축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간명한 비유는, 지금 고린도교회 공동체가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것은 흔히 범할 수 있는 잘못이기도 합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밖에 다른 기초 위에 건축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곧 그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보다 우선하여 인간 지도자를 떠받드는 교회의 현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둘째는 적절하지 않은 재질로 건축을 하는 것입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보면 이 비유가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라면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만, 바울은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불의 표상을 염두에 두면서 불에도 견딜 수 있는 재질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겨냥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실하게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곁길로 빠진 다른 가르침을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아마도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된 그 가르침은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상관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교리로 치장된 독선과 위선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의 일상의 삶을 소중히 여기기보다 자기만의 배타적 세계에 매몰된 교회의 태도입니다.
결국 교회 공동체가 그렇게 잘못을 범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공동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서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있으나마나 한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민폐가 될 뿐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소 여물통에 누워 있는 개와 같다(도마복음 102)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교회가 있지만, 사도 바울이 말한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요? 새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문말씀의 대의는 그렇게 충분히 파악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은 그 말미에 갸우뚱하게 만드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만든 작품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어떤 사람의 작품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불 속을 헤치고 나오듯 할 것입니다.”
삯을 받고, 손해를 본다는 것은 철저한 보상의 논리를 말하는 듯 보이지만, 여기서는 기쁨의 열매를 누리느냐 못 누리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를 말한 것입니다.
정작 미묘한 것은, 적절치 못한 재질로 집을 지은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불 속을 헤치고 나오듯 할 것입니다.”라고 한 구절입니다. 집은 잃지만 목숨은 가까스로 건진다는 이야기인데, 흔히 종말론적인 최후심판의 상황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입니다. 선택받은 사람과 선택받지 못하는 사람이 선명하게 엇갈리는 최후의 심판과는 다른 풍경입니다. 이 대목은 사실 바울의 생각과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는 그의 생각의 한 단면입니다. 사실은 ‘그가 지은 집은 불에 타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하면 그만인데, 그렇게 단호하게 잘라 말하지 않고 ‘그는 살아나겠지만 그가 지은 집은 불에 타 사라질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잘못 쌓아올린 집은 사라져야 하지만, 곧 잘못은 명백히 심판받아야 하지만, 사람 자체가 파멸에 이르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 이 구절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교리주의자, 율법주의자들과 다른 바울의 면모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헛일이요 소용없는 짓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결국 오늘 본문말씀의 요체는, 기초를 제대로 잡을 뿐 아니라, 그 기초 위에 제대로 된 재질로 제대로 된 과정을 통해 집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근본 대의와 방법의 일관성을 강조하는 의미입니다. 복음의 대의를 온전히 이루기 위한 철저성을, 바울은 이 비유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 말을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교회 공동체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배타적 공간으로서 유대교의 성전, 실상은 온갖 인간적 욕망으로 득실거리고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도구로서, 화려한 그 성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로서의 성전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성전의 개념이 이렇게 변화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배타적 공간으로서 특정한 건물이 아니라 세상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곧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교회 공동체를 올바른 기초 위에 올바르게 세우라는 것입니다. 다시 확인하지만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요, 그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로서 교회 공동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오늘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비대면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에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거두절미하고 말해서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예배드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모이지 않고 예배드리는 것은 교회가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생명의 위기 앞에서 그 위기에 함께 대처하는 하나의 방식 아닙니까? 예배 자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그걸 두고 반발하는 교회의 태도가 세상에 어떻게 보일까요?
지난 27일(목) 청와대에서 교계 지도자들과 대통령의 간담회 자리에서 한교총 대표회장의 발언이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영업장이나 사업장 취급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발언이었습니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취지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 총무와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의 총회장 발언은 묻혀버리고, 그 모두 발언만 언론에 공표되어 교회는 또 다시 세간의 질타를 받게 되었습니다. 비판적 언론에 부담을 느낀 청와대가 오히려 ‘유익한 이야기가 많았다’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그렇다고 주류 한국교회의 속내가 감춰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업장은 단지 영리를 추구하는 상행위의 장소가 아닙니다. 그 이전에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삶의 터전입니다. 그것마저 규제할 수밖에 없는 위급한 상황에서 교회는 그와 다르니 달리 대우해달라는 요구가 어떻게 보일까요? 삶 자체가 파괴되어 가고 있는 일상의 삶의 영역에서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아우성에 둔감해지고, 따라서 사회적 공공의식이 희박하고, 그저 자기의 소중한 것만 지키겠다는 것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같은 27일(목) 온라인으로 강연을 마치고 난 후, 역시 온라인으로 청중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중 한 분이 물었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는다면 어떻겠느냐 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는 곤두박질칠 것이라 답했습니다. 십 수 년 전 사학법 개정 때 그렇게 반대한 덕에 교회의 사회적 신뢰는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거기에 더욱 가속도가 붙게 될 것입니다. 공공의식과 인권의식이 날로 높아져 가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교회는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최근 상황 가운데서 다수의 사람들이 아예 교회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다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교의 믿음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요체요, 그것이 교회 공동체의 기초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교회는 거꾸로 가장 높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군림하고자 합니다. 그 교회는 잘못된 기초에 잘못 세워진 집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섬기는 본을 보여주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서로 섬기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신 그리스도의 삶, 곧 그 진정한 복음에 기초한 교회로서, 모든 사람이 고통을 겪고 불안해하는 이 위기의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말 필요한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교회를 이루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각기 가정에서 형편대로 정성을 모읍니다.

봉헌송/ “그대와 함께 평화가 되어”(살림의 노래 23) / 다같이


봉헌기도 / 인도자


* 봉헌기도 후 세상을 향해 나아가 하늘의 뜻을 이루고자 결단하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결단송 / “산 밑으로 내려가자”(살림의 노래 112) / 다같이


축복기도 / 담임 목사


알림 /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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