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 시대 기장 교회와사회위원회 정책 방향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6-02-09 22:12
조회
672
한국기독교장로회 사회선교 통합정책협의회
2026년 2월 9일(월) / 대천 한화콘도
국민주권 시대 기장 교회와사회위원회 정책 방향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 한국교회인권센터 이사장)
1. 12.3 내란을 막아낸 주권자의 힘
2024년 12월 3일 밤 한국의 비상계엄은 충격이었다. 이는 극우화된 집권 세력에 의해 퇴행을 거듭하던 한국 민주주의가 완전히 무너져 내릴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로서,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내 주는 사태였다. 그러나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봄까지 주권자 시민이 직접 나서 극우화된 집권 세력의 친위 쿠데타를 저지하였으며, 놀라운 사회적 연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였다.
주권자의 정치적 직접행동으로 친위 쿠데타를 제어한 것은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성공률 98%에 이른다는 친위 쿠데타를 막아낸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주권자 시민의 역동성을 보여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위험천만한 사태를 시민의 직접행동으로만 제어해야 하는 정치구조의 취약성 또한 드러내 주었다. 이로부터 상호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권력구조의 개편, 전반적인 사회 구성원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대의제도의 개편, 무엇보다 주권자의 직접적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의 확립 등 과제가 제기되었다. 이는 명실상부하게 국민주권을 강화하는 과제로, 198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제이다. 쟁점이 바뀔 때마다 시위 현장을 바꿔가며 지지치 않고 외친 목소리는 그 열망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윤석열 파면 이후 펼쳐진 조기 대선 국면에서는 대법원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 시도로 사법부 개혁의 과제가 새삼 부상하였다. 검찰 권력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법부 자체가 강고한 기득권 카르텔의 일부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의 규범(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은 작동하지 않았다. 정치의 사법화가 사법의 정치화로 이어졌다. 사법부의 정치 행위 역시 주권자의 직접행동으로 막아낼 수 있었지만, 그 사태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규율의 과제가 더욱 분명해졌다.
대통령의 위헌적인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주권자 시민들은 정치적 직접행동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직접행동으로 나아갔다. 처음 ‘선결제’로 상징되는 연대 행위는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갔다. ‘남태령 대첩’에서는 농민들과 2030여성 청년들이 연대했고, 이어 농산물 직거래 주문의 쇄도와 노동·농민·사회단체를 향한 기부와 연대 행위가 이어졌다. 축제와도 같은 시위 현장에는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어우러졌다. 과거 끔찍했던 계엄의 기억 탓에 또다시 야만의 시대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참여한 구세대들에서부터, 마치 공기처럼 당연한 조건으로 여겨졌던 민주주의가 순식간에 파탄 나 저마다의 일상적 삶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참여한 신세대들에 이르기까지 그 세대의 폭이 넓었다. 계급과 계층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구성을 이루었다. 노동자와 농민, 지식인과 종교인, 또는 특정 시민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그간 시위 행렬의 전형성과는 달랐다. 평소 살기에 바쁜 여러 생활인들이 함께하였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다양한 소수자들의 참여였다. 다른 국적의 거주민과 이주민들이 함께하였고, 장애인들이 위화감 없이 동참하였고, 성소수자들도 참여하여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쳤다. 광장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진 목소리는 ‘차별금지와 인권존중’이었다(「한겨레신문」, 2025.5.2.). 사회적 소수자로 배제되는 사람 없이 누구나 그 인권을 존중받으며 이루어야 할 사회적 연대에 대한 갈망이다. 이는 향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었다. 정당이든 교회든 그 목소리를 외면하면 역사의 퇴물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는 진실을 일깨워 주었다.
12.3 내란 사태는 남북 관계를 포함하여 국제적 차원에서 평화 체제 확립의 과제 또한 분명히 해주었다.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는 조치로 남북간 국지전이 벌어졌다면 그것이 어떻게 비화하였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남북 대결과 일방적 동맹에 의존한 외교정책이 결코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12.3 내란은 단지 정치적 위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드러내는 사태였다. 주권자의 놀라운 직접행동으로 파국의 위기를 넘기고 2025년 6월 3일 대통령 선거와 함께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였다. ‘국민주권 정부’로 이름한 이재명 정부는 지난 겨울 광장에서 분출한 주권자의 요구와 기대 가운데 국정을 이끌어가고 있다.
2. 국민주권 정부의 정책과 한국 사회의 과제
국민주권 정부는 과연 광장에서 분출한 주권자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고 있을까? 현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는 대체로 21대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집에 드러난 정책 방향에 드러나 있다. 공약과 실제 국정운영이 완벽하게 정합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는 더 따져봐야 할 여지가 있지만 그 기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이재명정부 123국정과제>가 작성되어(https://www.korea.kr/govVision/) 이 또한 검토하여야 하겠지만, 제한된 지면과 시간 관계로 대선후보 공약집에 한정하여 그 정책 기조를 살펴본다. 대선후보 공약집은 회복, 성장, 행복이라는 3개 비전과 더불어 15가지 정책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회복’ 분야에는 내란극복과 민주주의 회복, 경제안보와 한반도평화, 국민생활안전 및 재난대응(3), ‘성장’ 분야에는 AI 등 신산업 집중육성, 성장기반구축, 공정경제, 지역균형발전, 기후위기대응(5), ‘행복’ 분야에는 생활안정, 생활비절감 대책, 가계소상공인 부담완화 및 활력제고, 노동존중 및 권리보장, 저출생·고령화 대응, 초등학생·어르신 돌봄, 의료대란 해결 및 의료개혁(7)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대략 민주주의와 주권의 회복, 경제성장, 복지구현의 비전에 구체적인 정책과제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재명 대통령은 21대 대선을 맞이하며 지난 20대 대선 후보 시절과는 다른 입장을 표명했다. 20대 대선 후보 시절 ‘기본사회 건설’을 기치로 하여 진보·중도적인 입장을 취하였다면 21대 대선에서는 중도·보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이는 극우와 강성 보수를 배제하고 중도 보수세력을 끌어들이려는 실용주의적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기본사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의외로 탄탄하지 못하다는 현실적 판단 또한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기본사회’에 대한 구상이 철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인 정책 기조가 그 입장을 천명했을 때와 달리 후퇴한 것은 분명하다. 정책과제의 내용을 보면 민주주의 회복, 그리고 노동존중과 권리 보장 등을 포함한 복지정책에서 진취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경제성장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가적 국가’로 평가받을 수 있을 만큼 경제성장 전략에 큰 강조점이 놓여 있다. ‘코스피 5,000’을 운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기후위기 대응마저도 경제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배치되어 있다.
국민 기본권을 강화하는 민주주의 회복과 강도 높은 경제성장 정책이 병행 공존하며 균형을 이루기보다는 어긋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 정부의 정책 가운데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겨냥하는 대안은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 붕괴라는 극한의 위기를 넘기고 자유 민주주의적 정치 과정을 정상화하였기에 정부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으로 주권자의 역할을 방기한다면, 그렇게 어긋나는 현실을 머지않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결국 균형을 잡아가는 것은 여전히 주권자의 몫이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붕괴하고 나라마다 생존 전략을 찾아야 하는 엄혹한 현실을 회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오히려 바로 그 현실 때문에 국가 경제를 튼실히 하고 민주주의를 공고히 해야 하는 과제는 더욱 절실하다. 민주공화국으로서 ‘진짜 대한민국’을 이루는 과제는 주권자에게 맡겨진 중차대한 사명이다. 그 과제들은 지난 겨울 광장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앞서 말한 대로 그 과제는 주권자 시민의 정치적 직접행동과 사회적 직접행동이 함축하는 그 뜻을 구현하는 것이다.
정치적 직접행동이 함축하는 뜻은, 위헌적 내란 사태를 심판하는 데서 나아가 정치구조 전반의 개혁 요구와 직결되어 있다. 이는 상호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권력구조의 개편, 전반적인 사회 구성원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대의제도의 개편, 무엇보다 주권자의 직접적 참여를 보장하는 정치제도의 확립 등의 과제를 포함한다. 또한 검찰 권력만이 아니라 강고한 기득권 카르텔의 일부가 된 사법부 자체의 민주적 규율의 과제 또한 포함한다. 무엇보다 주권자 스스로 정치적 결정권을 행사하는 정치구조를 갖추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1987년 이래 지속되어 온 헌법을 개정하는 과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직접행동이 함축하는 뜻은, 구성원 모두가 차별 없이 존엄성을 인정받고 두터운 사회적 연대 가운데서 안전한 삶을 보장받는 사회를 형성하는 과제와 직결되어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 민주주의와 더불어 상호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 그리고 누구든 예외의 대상으로 배제하지 않는 차별금지 규범과 제도 확립의 과제를 포함한다. 생명안전기본법과 차별금지법의 제정, 그리고 변화된 노동 조건 가운데서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노동법의 개정과 노동자의 주권을 보장하는 사회적 협의 체제의 구축 등과 같은 구체적 과제 또한 포함한다. AI 기술의 상용화에 따른 노동시간의 단축과 고용안정 대책도 절실한 과제에 해당한다.
이 밖에도 한반도 평화와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대안도 중요한 과제이지만, 이는 이번 정책협의회에서 별도로 다뤄지는 관계로 이 자리에서 논의하는 것은 생략한다. 다만 ‘경제안보’라는 개념을 설정해야 할 만큼 엄혹한 세계적 경제질서의 재편 가운데서 국민생활의 물질적 기초로서 경제운용에 관한 과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미 앞서 언급했지만, 노동과 자본의 균형을 추구하는 경제 민주화, 그리고 경제계와 생태계의 권익 균형을 지향하는 경제운용은 기본적 원칙이 되어야 한다. 또한 경제개발 이후 지속되고 있는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내수 중심의 경제 구조로 전환하는 과제 또한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과제이다. 기왕의 자유무역 체제 아래에서 지속되어 왔던 가치 사슬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서 수출 중심의 경제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재고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관세 압박에 목매어 굴욕적인 협상에 응해야 하는 것도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 때문이다.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느니 국가 경제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결코 객기 어린 빈말이 아니다.
2025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바라는 나라의 미래상으로 ‘민주주의 성숙’이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였다. 조사를 시작한 이래 30년 내내 ‘경제적 부유’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하였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그 순위가 바뀌었다. 또한 조사 이래 한국 사회 불평등 상황은 2025년 최고의 정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사실상 그 기반을 흔들어버릴 사회적 불평등의 상황이 심각하다. 지금 우리는 그 엇갈리는 상황 가운데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
3. 기장 교회와사회위원회 정책 방향 모색
해방 직후 격동기 가운데 김재준 목사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하여 새로운 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하였다(김재준, “기독교의 건국이념 – 국가 구성의 최고 이성과 그 현실성”, 1945.8. 선린형제단 강연).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분단 이후 굳어진 친미 반공주의 국가의 성격을 넘어서는 국가의 이상에 대한 상상력에 제약을 받고 있지만, 김재준 목사의 구상은 그와 전혀 달랐다. 김재준 목사는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 안에서 정교분리 입장을 견지하며 새로운 국가의 이상을 제시하였다. 김재준 목사는 우선 국가지상주의를 명백히 거부하였다. 나아가 공산주의 운동과의 협력을 용인하였고, 사회정책 면에서 소련의 공산주의와 미국의 뉴딜 정책을 동시에 참고하여 실정에 맞게 수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되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주장하였고, 국제관계에서도 영세중립국을 표방할 것을 주장하였다. 역사적으로 친미 반공주의 국가 체제가 굳어진 현실에서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그 구상은 해방정국에서 오히려 상식적인 견해에 가까웠다.
일제하 독립운동을 추구한 계열들 사이에서 대체로 합의된 공감대가 있었다. 중도우파, 중도좌파 정치세력뿐만 아니라 미군정의 여당으로서 가장 보수적이었던 한국민주당까지도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정책으로 채택하였다. ‘계획경제’, ‘중요산업의 국유화’, ‘봉건적 토지소유의 개혁’, ‘분배의 합리화’ 등은 당시 정치세력의 경제정책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내용이었다(최형묵, 『한국 근대화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평가』,168-169). 여기에 더하여 1946년 미군정청이 8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70%가 사회주의를 지지한 반면 14%가 자본주의를, 7%가 공산주의를 지지한 것으로 드러났다(김인식, 『광복전후 국가건설론』,16). 해방직후 그 경향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시 행정체제와 헌법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익균점권과 노동자 경영참여권에 대한 격렬한 논란 후 헌법 조항에 이익균점권이 포함된 것도 그 배경에서였다. 그것이 제외된 것은 박정희 때였으며,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그 취지가 되살아난 것은 1987년 이후 현행 헌법에서였다.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을 형성하는 데 그 바탕이 된 사상으로 조소앙의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균등(균권)·경제균등(균부)·교육균등(균지)의 이상이 개인·민족·국가간의 사이에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요체로 하는 삼균주의는, 최초로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부터 1948년 제헌 헌법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밑바탕이었다.
이를 새삼 언급하는 것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초석을 닦은 선구자들이 당대의 시대정신에 얼마나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는지 확인하고자 함이다. 예언자적 정신에 투철한 신앙을 바탕으로 한 시대정신의 공유와 이로부터 이어진 선교적 실천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자랑스러운 유산이요 전통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적극적으로 사회선교를 실천해 왔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1971년에 「사회선언지침」을 제정하고 사회적 과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 지침은 교회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국제적 대 변화에 대응하면서 어떻게 예언자적 사명과 그 기능을 감당할 것이냐” 하는 문제의식을 분명히 하는 가운데 사회선언의 신학적 근거와 그 영역을 밝히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사회선언이 “사회적, 정치적 대 변화에 대응할 새로운 교회구조를 모색”하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사회적 과제에 대해 교회의 입장을 천명하는 것이 교회의 내적 구조의 변화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고 인식한 것이다. “사회선언은 이러한 교회의 갱신과 아울러 인류의 일치, 인류 공동체를 형성해가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수단으로서 그 역사적 의의를 갖게 된다.” 지침의 서언 결구는 현대 에큐메니칼 정신의 집약적 표현이기도 하다.
오늘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사회위원회의 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것도 그 유산과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구체적 과제들은 앞서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을 언급하는 가운데 일정 부분 언급하였다. 상황에 대한 인식은 곧 과제 설정과 직결된다. 이제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상황 가운데서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교회의 입장을 확인하면서 교회와사회위원회의 정책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오늘날 민주적 헌정국가 안에서 확립된 정교분리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는 가운데 수행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종교인의 정치적 참여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종교화 또는 종교의 정치화를 배제하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곧 정치적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하거나 간섭하는 행위를 배제하는 한편 종교가 정치권력에 기대어 특권적 지위를 노리는 것을 배제해야 한다는 뜻을 지닌다. 그것은 정치와 종교의 자율성을 인정함으로써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한편 독단적 세계관에 좌우되지 않는 투명한 민주적 헌정질서를 지향하고자 하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지 종교인의 신앙에 따른 정치적 참여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와 그리스도의 주권을 믿는 신앙 안에서 국가 사회가 공동선을 이루도록 헌신해야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 책임은 국가 사회가 공동선에서 벗어날 때 ‘저항’으로, 공동선을 지향할 때 ‘협력’으로 표현된다. 교회의 국가 사회에 대한 책임은 독단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과 세계관에 근거하되 사회 구성원과 소통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단지 사회 평균 수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보다는 보편적 공동선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사회적 선언을 발표할 때나 사회적 정책을 제안할 때 늘 유의해야 한다. ‘저항’의 경우는 넘쳐나기에 새삼 언급할 필요 없고, ‘협력’의 경우로는 2015년 제100회 총회가 목회자의 납세(근로소득세 납부)를 결의하여 종교인 과세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세 번째로, 교회가 사회적 책임의 수행으로 보편적 공공선을 지향할 때 정의·평화·생명의 가치 기준은 늘 그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는 일찍이 김재준 목사가 복음의 정신을 이 시대의 보편적 가치를 집약한 것으로 정식화한 바 있거니와 오늘날 세계 교회 에큐메니칼 신학이 공유하는 핵심적 가치가 되고 있다. 여기서 ‘정의’는 가장 기초적인 삶의 조건으로서 각자에게 주어지는 정당한 몫과 존엄한 존재로서의 인정을 함축하고, ‘평화’는 나라 사이에 전쟁이 없어지는 상태뿐 아니라 전쟁과 같은 일상의 폭력이 사라지는 삶의 관계를 함축하며, ‘생명’은 피조 세계와 인간 사회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랑의 관계를 함축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 가치 기준은 신앙의 요구에 부합할 뿐 아니라 오늘의 보편적 공동선이 지향하는 바에 부합한다.
네 번째로, 오늘날 가장 예민하게 그 밑바탕으로 삼아야 할 가치 기준 가운데 하나는 보편적 인권의 정신이다. 정의·평화·생명의 가치에 그 의의가 포함된 것으로 여길 수도 있으나,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가치 기준으로 보편적 인권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안목을 세계적 지평으로 열어주는 중요한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곧 세계적 차원에서 인권의 위기 상황(팔레스타인, 미얀마, 우크라이나 등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문제 해결에 동참해야 하는 과제를 일깨워 준다.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에 위배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한 현대적 가치이다. 이는 오늘 에큐메니칼 신학의 공통 인식이다. 인권과 민주주의 실현을 중요한 선교적 과제로 삼아 온 교단에서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새삼 강조해야 하는 것은 놀랍게도 교회에서 그 인식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인권 인식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일인지도 모른 채 신앙 양심을 검증하고자 하는 문구를 목회자 청빙 공고에 버젓이 올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회적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단지 교회 밖의 일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교회의 내적 구조 변화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사회에 선언하고 요구하는 것을 교회 스스로 구현하지 못한다면 과연 진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사회적 과제를 분명히 하는 것은 그만큼 철저하게 교회 자신을 돌아보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새삼 새겨야 할 것이다.
2026년 2월 9일(월) / 대천 한화콘도
국민주권 시대 기장 교회와사회위원회 정책 방향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 한국교회인권센터 이사장)
1. 12.3 내란을 막아낸 주권자의 힘
2024년 12월 3일 밤 한국의 비상계엄은 충격이었다. 이는 극우화된 집권 세력에 의해 퇴행을 거듭하던 한국 민주주의가 완전히 무너져 내릴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로서,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내 주는 사태였다. 그러나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봄까지 주권자 시민이 직접 나서 극우화된 집권 세력의 친위 쿠데타를 저지하였으며, 놀라운 사회적 연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였다.
주권자의 정치적 직접행동으로 친위 쿠데타를 제어한 것은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성공률 98%에 이른다는 친위 쿠데타를 막아낸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주권자 시민의 역동성을 보여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위험천만한 사태를 시민의 직접행동으로만 제어해야 하는 정치구조의 취약성 또한 드러내 주었다. 이로부터 상호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권력구조의 개편, 전반적인 사회 구성원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대의제도의 개편, 무엇보다 주권자의 직접적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의 확립 등 과제가 제기되었다. 이는 명실상부하게 국민주권을 강화하는 과제로, 198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제이다. 쟁점이 바뀔 때마다 시위 현장을 바꿔가며 지지치 않고 외친 목소리는 그 열망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윤석열 파면 이후 펼쳐진 조기 대선 국면에서는 대법원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 시도로 사법부 개혁의 과제가 새삼 부상하였다. 검찰 권력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법부 자체가 강고한 기득권 카르텔의 일부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의 규범(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은 작동하지 않았다. 정치의 사법화가 사법의 정치화로 이어졌다. 사법부의 정치 행위 역시 주권자의 직접행동으로 막아낼 수 있었지만, 그 사태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규율의 과제가 더욱 분명해졌다.
대통령의 위헌적인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주권자 시민들은 정치적 직접행동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직접행동으로 나아갔다. 처음 ‘선결제’로 상징되는 연대 행위는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갔다. ‘남태령 대첩’에서는 농민들과 2030여성 청년들이 연대했고, 이어 농산물 직거래 주문의 쇄도와 노동·농민·사회단체를 향한 기부와 연대 행위가 이어졌다. 축제와도 같은 시위 현장에는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어우러졌다. 과거 끔찍했던 계엄의 기억 탓에 또다시 야만의 시대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참여한 구세대들에서부터, 마치 공기처럼 당연한 조건으로 여겨졌던 민주주의가 순식간에 파탄 나 저마다의 일상적 삶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참여한 신세대들에 이르기까지 그 세대의 폭이 넓었다. 계급과 계층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구성을 이루었다. 노동자와 농민, 지식인과 종교인, 또는 특정 시민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그간 시위 행렬의 전형성과는 달랐다. 평소 살기에 바쁜 여러 생활인들이 함께하였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다양한 소수자들의 참여였다. 다른 국적의 거주민과 이주민들이 함께하였고, 장애인들이 위화감 없이 동참하였고, 성소수자들도 참여하여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쳤다. 광장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진 목소리는 ‘차별금지와 인권존중’이었다(「한겨레신문」, 2025.5.2.). 사회적 소수자로 배제되는 사람 없이 누구나 그 인권을 존중받으며 이루어야 할 사회적 연대에 대한 갈망이다. 이는 향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었다. 정당이든 교회든 그 목소리를 외면하면 역사의 퇴물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는 진실을 일깨워 주었다.
12.3 내란 사태는 남북 관계를 포함하여 국제적 차원에서 평화 체제 확립의 과제 또한 분명히 해주었다.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는 조치로 남북간 국지전이 벌어졌다면 그것이 어떻게 비화하였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남북 대결과 일방적 동맹에 의존한 외교정책이 결코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12.3 내란은 단지 정치적 위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드러내는 사태였다. 주권자의 놀라운 직접행동으로 파국의 위기를 넘기고 2025년 6월 3일 대통령 선거와 함께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였다. ‘국민주권 정부’로 이름한 이재명 정부는 지난 겨울 광장에서 분출한 주권자의 요구와 기대 가운데 국정을 이끌어가고 있다.
2. 국민주권 정부의 정책과 한국 사회의 과제
국민주권 정부는 과연 광장에서 분출한 주권자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고 있을까? 현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는 대체로 21대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집에 드러난 정책 방향에 드러나 있다. 공약과 실제 국정운영이 완벽하게 정합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는 더 따져봐야 할 여지가 있지만 그 기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이재명정부 123국정과제>가 작성되어(https://www.korea.kr/govVision/) 이 또한 검토하여야 하겠지만, 제한된 지면과 시간 관계로 대선후보 공약집에 한정하여 그 정책 기조를 살펴본다. 대선후보 공약집은 회복, 성장, 행복이라는 3개 비전과 더불어 15가지 정책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회복’ 분야에는 내란극복과 민주주의 회복, 경제안보와 한반도평화, 국민생활안전 및 재난대응(3), ‘성장’ 분야에는 AI 등 신산업 집중육성, 성장기반구축, 공정경제, 지역균형발전, 기후위기대응(5), ‘행복’ 분야에는 생활안정, 생활비절감 대책, 가계소상공인 부담완화 및 활력제고, 노동존중 및 권리보장, 저출생·고령화 대응, 초등학생·어르신 돌봄, 의료대란 해결 및 의료개혁(7)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대략 민주주의와 주권의 회복, 경제성장, 복지구현의 비전에 구체적인 정책과제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재명 대통령은 21대 대선을 맞이하며 지난 20대 대선 후보 시절과는 다른 입장을 표명했다. 20대 대선 후보 시절 ‘기본사회 건설’을 기치로 하여 진보·중도적인 입장을 취하였다면 21대 대선에서는 중도·보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이는 극우와 강성 보수를 배제하고 중도 보수세력을 끌어들이려는 실용주의적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기본사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의외로 탄탄하지 못하다는 현실적 판단 또한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기본사회’에 대한 구상이 철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인 정책 기조가 그 입장을 천명했을 때와 달리 후퇴한 것은 분명하다. 정책과제의 내용을 보면 민주주의 회복, 그리고 노동존중과 권리 보장 등을 포함한 복지정책에서 진취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경제성장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가적 국가’로 평가받을 수 있을 만큼 경제성장 전략에 큰 강조점이 놓여 있다. ‘코스피 5,000’을 운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기후위기 대응마저도 경제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배치되어 있다.
국민 기본권을 강화하는 민주주의 회복과 강도 높은 경제성장 정책이 병행 공존하며 균형을 이루기보다는 어긋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 정부의 정책 가운데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겨냥하는 대안은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 붕괴라는 극한의 위기를 넘기고 자유 민주주의적 정치 과정을 정상화하였기에 정부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으로 주권자의 역할을 방기한다면, 그렇게 어긋나는 현실을 머지않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결국 균형을 잡아가는 것은 여전히 주권자의 몫이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붕괴하고 나라마다 생존 전략을 찾아야 하는 엄혹한 현실을 회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오히려 바로 그 현실 때문에 국가 경제를 튼실히 하고 민주주의를 공고히 해야 하는 과제는 더욱 절실하다. 민주공화국으로서 ‘진짜 대한민국’을 이루는 과제는 주권자에게 맡겨진 중차대한 사명이다. 그 과제들은 지난 겨울 광장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앞서 말한 대로 그 과제는 주권자 시민의 정치적 직접행동과 사회적 직접행동이 함축하는 그 뜻을 구현하는 것이다.
정치적 직접행동이 함축하는 뜻은, 위헌적 내란 사태를 심판하는 데서 나아가 정치구조 전반의 개혁 요구와 직결되어 있다. 이는 상호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권력구조의 개편, 전반적인 사회 구성원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대의제도의 개편, 무엇보다 주권자의 직접적 참여를 보장하는 정치제도의 확립 등의 과제를 포함한다. 또한 검찰 권력만이 아니라 강고한 기득권 카르텔의 일부가 된 사법부 자체의 민주적 규율의 과제 또한 포함한다. 무엇보다 주권자 스스로 정치적 결정권을 행사하는 정치구조를 갖추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1987년 이래 지속되어 온 헌법을 개정하는 과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직접행동이 함축하는 뜻은, 구성원 모두가 차별 없이 존엄성을 인정받고 두터운 사회적 연대 가운데서 안전한 삶을 보장받는 사회를 형성하는 과제와 직결되어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 민주주의와 더불어 상호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 그리고 누구든 예외의 대상으로 배제하지 않는 차별금지 규범과 제도 확립의 과제를 포함한다. 생명안전기본법과 차별금지법의 제정, 그리고 변화된 노동 조건 가운데서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노동법의 개정과 노동자의 주권을 보장하는 사회적 협의 체제의 구축 등과 같은 구체적 과제 또한 포함한다. AI 기술의 상용화에 따른 노동시간의 단축과 고용안정 대책도 절실한 과제에 해당한다.
이 밖에도 한반도 평화와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대안도 중요한 과제이지만, 이는 이번 정책협의회에서 별도로 다뤄지는 관계로 이 자리에서 논의하는 것은 생략한다. 다만 ‘경제안보’라는 개념을 설정해야 할 만큼 엄혹한 세계적 경제질서의 재편 가운데서 국민생활의 물질적 기초로서 경제운용에 관한 과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미 앞서 언급했지만, 노동과 자본의 균형을 추구하는 경제 민주화, 그리고 경제계와 생태계의 권익 균형을 지향하는 경제운용은 기본적 원칙이 되어야 한다. 또한 경제개발 이후 지속되고 있는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내수 중심의 경제 구조로 전환하는 과제 또한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과제이다. 기왕의 자유무역 체제 아래에서 지속되어 왔던 가치 사슬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서 수출 중심의 경제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재고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관세 압박에 목매어 굴욕적인 협상에 응해야 하는 것도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 때문이다.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느니 국가 경제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결코 객기 어린 빈말이 아니다.
2025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바라는 나라의 미래상으로 ‘민주주의 성숙’이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였다. 조사를 시작한 이래 30년 내내 ‘경제적 부유’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하였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그 순위가 바뀌었다. 또한 조사 이래 한국 사회 불평등 상황은 2025년 최고의 정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사실상 그 기반을 흔들어버릴 사회적 불평등의 상황이 심각하다. 지금 우리는 그 엇갈리는 상황 가운데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
3. 기장 교회와사회위원회 정책 방향 모색
해방 직후 격동기 가운데 김재준 목사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하여 새로운 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하였다(김재준, “기독교의 건국이념 – 국가 구성의 최고 이성과 그 현실성”, 1945.8. 선린형제단 강연).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분단 이후 굳어진 친미 반공주의 국가의 성격을 넘어서는 국가의 이상에 대한 상상력에 제약을 받고 있지만, 김재준 목사의 구상은 그와 전혀 달랐다. 김재준 목사는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 안에서 정교분리 입장을 견지하며 새로운 국가의 이상을 제시하였다. 김재준 목사는 우선 국가지상주의를 명백히 거부하였다. 나아가 공산주의 운동과의 협력을 용인하였고, 사회정책 면에서 소련의 공산주의와 미국의 뉴딜 정책을 동시에 참고하여 실정에 맞게 수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되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주장하였고, 국제관계에서도 영세중립국을 표방할 것을 주장하였다. 역사적으로 친미 반공주의 국가 체제가 굳어진 현실에서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그 구상은 해방정국에서 오히려 상식적인 견해에 가까웠다.
일제하 독립운동을 추구한 계열들 사이에서 대체로 합의된 공감대가 있었다. 중도우파, 중도좌파 정치세력뿐만 아니라 미군정의 여당으로서 가장 보수적이었던 한국민주당까지도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정책으로 채택하였다. ‘계획경제’, ‘중요산업의 국유화’, ‘봉건적 토지소유의 개혁’, ‘분배의 합리화’ 등은 당시 정치세력의 경제정책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내용이었다(최형묵, 『한국 근대화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평가』,168-169). 여기에 더하여 1946년 미군정청이 8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70%가 사회주의를 지지한 반면 14%가 자본주의를, 7%가 공산주의를 지지한 것으로 드러났다(김인식, 『광복전후 국가건설론』,16). 해방직후 그 경향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시 행정체제와 헌법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익균점권과 노동자 경영참여권에 대한 격렬한 논란 후 헌법 조항에 이익균점권이 포함된 것도 그 배경에서였다. 그것이 제외된 것은 박정희 때였으며,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그 취지가 되살아난 것은 1987년 이후 현행 헌법에서였다.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을 형성하는 데 그 바탕이 된 사상으로 조소앙의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균등(균권)·경제균등(균부)·교육균등(균지)의 이상이 개인·민족·국가간의 사이에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요체로 하는 삼균주의는, 최초로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부터 1948년 제헌 헌법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밑바탕이었다.
이를 새삼 언급하는 것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초석을 닦은 선구자들이 당대의 시대정신에 얼마나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는지 확인하고자 함이다. 예언자적 정신에 투철한 신앙을 바탕으로 한 시대정신의 공유와 이로부터 이어진 선교적 실천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자랑스러운 유산이요 전통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적극적으로 사회선교를 실천해 왔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1971년에 「사회선언지침」을 제정하고 사회적 과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 지침은 교회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국제적 대 변화에 대응하면서 어떻게 예언자적 사명과 그 기능을 감당할 것이냐” 하는 문제의식을 분명히 하는 가운데 사회선언의 신학적 근거와 그 영역을 밝히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사회선언이 “사회적, 정치적 대 변화에 대응할 새로운 교회구조를 모색”하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사회적 과제에 대해 교회의 입장을 천명하는 것이 교회의 내적 구조의 변화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고 인식한 것이다. “사회선언은 이러한 교회의 갱신과 아울러 인류의 일치, 인류 공동체를 형성해가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수단으로서 그 역사적 의의를 갖게 된다.” 지침의 서언 결구는 현대 에큐메니칼 정신의 집약적 표현이기도 하다.
오늘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사회위원회의 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것도 그 유산과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구체적 과제들은 앞서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을 언급하는 가운데 일정 부분 언급하였다. 상황에 대한 인식은 곧 과제 설정과 직결된다. 이제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상황 가운데서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교회의 입장을 확인하면서 교회와사회위원회의 정책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오늘날 민주적 헌정국가 안에서 확립된 정교분리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는 가운데 수행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종교인의 정치적 참여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종교화 또는 종교의 정치화를 배제하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곧 정치적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하거나 간섭하는 행위를 배제하는 한편 종교가 정치권력에 기대어 특권적 지위를 노리는 것을 배제해야 한다는 뜻을 지닌다. 그것은 정치와 종교의 자율성을 인정함으로써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한편 독단적 세계관에 좌우되지 않는 투명한 민주적 헌정질서를 지향하고자 하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지 종교인의 신앙에 따른 정치적 참여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와 그리스도의 주권을 믿는 신앙 안에서 국가 사회가 공동선을 이루도록 헌신해야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 책임은 국가 사회가 공동선에서 벗어날 때 ‘저항’으로, 공동선을 지향할 때 ‘협력’으로 표현된다. 교회의 국가 사회에 대한 책임은 독단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과 세계관에 근거하되 사회 구성원과 소통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단지 사회 평균 수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보다는 보편적 공동선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사회적 선언을 발표할 때나 사회적 정책을 제안할 때 늘 유의해야 한다. ‘저항’의 경우는 넘쳐나기에 새삼 언급할 필요 없고, ‘협력’의 경우로는 2015년 제100회 총회가 목회자의 납세(근로소득세 납부)를 결의하여 종교인 과세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세 번째로, 교회가 사회적 책임의 수행으로 보편적 공공선을 지향할 때 정의·평화·생명의 가치 기준은 늘 그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는 일찍이 김재준 목사가 복음의 정신을 이 시대의 보편적 가치를 집약한 것으로 정식화한 바 있거니와 오늘날 세계 교회 에큐메니칼 신학이 공유하는 핵심적 가치가 되고 있다. 여기서 ‘정의’는 가장 기초적인 삶의 조건으로서 각자에게 주어지는 정당한 몫과 존엄한 존재로서의 인정을 함축하고, ‘평화’는 나라 사이에 전쟁이 없어지는 상태뿐 아니라 전쟁과 같은 일상의 폭력이 사라지는 삶의 관계를 함축하며, ‘생명’은 피조 세계와 인간 사회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랑의 관계를 함축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 가치 기준은 신앙의 요구에 부합할 뿐 아니라 오늘의 보편적 공동선이 지향하는 바에 부합한다.
네 번째로, 오늘날 가장 예민하게 그 밑바탕으로 삼아야 할 가치 기준 가운데 하나는 보편적 인권의 정신이다. 정의·평화·생명의 가치에 그 의의가 포함된 것으로 여길 수도 있으나,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가치 기준으로 보편적 인권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안목을 세계적 지평으로 열어주는 중요한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곧 세계적 차원에서 인권의 위기 상황(팔레스타인, 미얀마, 우크라이나 등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문제 해결에 동참해야 하는 과제를 일깨워 준다.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에 위배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한 현대적 가치이다. 이는 오늘 에큐메니칼 신학의 공통 인식이다. 인권과 민주주의 실현을 중요한 선교적 과제로 삼아 온 교단에서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새삼 강조해야 하는 것은 놀랍게도 교회에서 그 인식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인권 인식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일인지도 모른 채 신앙 양심을 검증하고자 하는 문구를 목회자 청빙 공고에 버젓이 올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회적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단지 교회 밖의 일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교회의 내적 구조 변화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사회에 선언하고 요구하는 것을 교회 스스로 구현하지 못한다면 과연 진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사회적 과제를 분명히 하는 것은 그만큼 철저하게 교회 자신을 돌아보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새삼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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