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칼럼] 종교개혁과 한국 개신교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8-11-01 12:12
조회
9
대전일보 칼럼 05/ 2018년 10월 31일자

종교개혁과 한국 개신교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한 것은 유럽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 반박문은 성 베드로 성당의 재건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로마 교황청이 면죄부를 대대적으로 판매하자 그 부당성을 알리는 것이었다. 구원에 대한 열망을 금전으로 환산하여 부를 축적한 교회의 타락에 대한 저항이었다.

애초 그렇게 종교개혁은 부패한 교회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촉발되었지만, 그로부터 이어진 일련의 개혁 과정에서 교회 자체와 당시 유럽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인이 되는 중요한 신학적 입장들이 확립되었다. 교회에 의한 세속사회의 지배로 특징지어진 중세 유럽사회에 결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 루터의 신학적 동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자 하는 관심사였다. 루터에게서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요체는 교회가 세속적 권력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 구체적 방식은 그간 교회가 장악하고 있던 세속사회에 대한 사법권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신을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신학적 입장은 종종 곡해되고 있듯이 교회와 기독교인이 세속사에 무관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루터는 이른바 ‘두 왕국론’ 내지는 ‘두 정부론’을 통해 신의 두 가지 통치방식을 역설했다. 한편으로는 교회를 통해 복음과 사랑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를 통해 법과 이성으로 통치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교회의 작동원리와 세속사회의 작동원리를 구분하여, 각기 그에 적합한 존재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양자는 그렇게 구별되지만 동시에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이 루터의 입장이었다. 이로부터 신자로서 교회 안에서 역할을 맡음과 동시에 시민으로서 세속사회 안에서 역할을 맡는 기독교인의 책임을 루터는 분명히 하였다. 그것은 교회와 기독교인이 사회적 역할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오히려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그 몫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교회가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 권력을 내려놓고 ‘복음’과 ‘사랑’을 온전히 구현하는 방식을 따를 때 교회는 교회다워지며 세속사회에 대한 올바른 영향력을 지닌다는 것을 말한 셈이다. 루터가 그렇게 교회로 하여금 권력을 내려놓으라고 하자 세속사회가 해방되었고, 그로부터 유럽사회 안에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었다.

루터가 교회를 교회답게 해야 한다고 역설한 데는 온전히 신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해방을 초래하는 효과를 발휘하였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전의 교회는 신과 인간 사이에 수없이 많은 장치들을 설치해뒀다. 하나의 기관으로서 교회, 교회의 전통, 성사, 사제 등등을 매개해야만 신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루터가 신에 대한 직접적인 순종을 강조하였을 때 그 모든 것은 상대화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오늘날 개신교 신학의 상식이 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총으로’ 이르는 구원의 원리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일체의 업적에 따른 보상의 논리를 무너뜨린 것으로서, 교회의 위계적 질서 안에서의 어떤 직위나 역할, 그 참여 정도와 무관하게 전적으로 각 개인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한 신앙의 수용과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러한 신학적 입장은 근대적 의미의 자유로운 개인의 탄생을 예비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인격체로서 개인의 존재가 비로소 역사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결국 탐욕스러운 교회의 불의에 항거하여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자 한 종교개혁이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인간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또한 그 결과는 근대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그 정신을 오늘 한국 개신교는 과연 얼마만큼 자각하고 있을까? 근래 들어 한국 개신교의 사회적 공신력은 현저히 하락되고 있다. 그것은 한국의 개신교가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권력집단화 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다수의 교회들은 영세한 수준에 있기에 권력집단처럼 되어 있는 대형교회들의 행태와는 무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스스로의 아성에만 집착한다면 여전히 사회적 비판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오늘 한국의 개신교가 종교개혁의 정신을 제대로 새긴다면, 스스로 진정한 교회로서 면모를 갖출 뿐 아니라 사회의 빛이 될 수 있도록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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