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차별금지법 시대의 신학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0-08-30 21:57
조회
28
평화교회연구소 강연회
차별금지법도 괜찮아! - 차별금지법, 교회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2020년 8월 27일(목) 저녁 7:00-9:00 / 평화교회연구소 온라인 강연


차별금지법 시대의 신학

최형묵(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장)


1. 평등권 보장의 정당성

1-1. 차별과 불평등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 안에서 물질적 요소와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포함하여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곧 사회적 관계 안에서 정의(正義) 형성의 요체인 분배와 인정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부당하게 대우를 받는 것을 뜻한다. 그 어떤 존재이든 각자는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갖기 마련이고 각기 고유한 특성으로서 차이를 지니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실존 조건이다. 그러나 그 차이가 위계적으로 등급 매겨지거나 우열 또는 선악의 관계로 인식될 때 차별이 되며, 그 차별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불평등이 된다.
1-2-1. 그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고 인간이 누구나 존엄한 존재로서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것은 성서로부터 비롯된 신앙의 요청이자 동시에 오늘날 보편적 인권의 요청이기도 하다.
1-2-2.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사람에게 고귀한 당신의 형상을 부여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아름다운 삶을 누리게 하셨다. 그 아름다운 삶이 파괴되어 당신의 백성이 억압받고 차별받을 때 하나님은 친히 구원의 손길을 펼쳐 해방의 길로 인도하셨다. 그 구원의 손길에 대한 신실한 믿음으로 예언자들은 과부와 고아 이방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하나님의 정의를 이룰 것을 선포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권리를 박탈당한 죄인들을 위하여 세상에 왔고,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선포하셨을 뿐 아니라 더불어 하나가 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차별도 용인될 수 없다는 사도들의 일관된 가르침은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 근거한다. 복음의 참 뜻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데 있지 않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용납하고 환대하며 사랑을 이루는 데 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1-2-3. 모든 사람이 각기 존엄한 존재로서 그 어떤 조건에 의해서든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 세계의 모든 사람이 따르는 보편적 인권의 요구이기도 하다. 인권이 참혹하게 유린당한 대전쟁의 참화를 겪은 인류는 국제연합(UN)의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보편적 인권을 전 세계인이 따라야 할 가치로 확립하였다. 뿐만 아니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및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통해 각 나라가 보편적 인권을 실정법 수준에서 확실히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어린이․여성․난민․소수자 등과 관련한 각종 규약을 통해 인권보장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국제연합(UN) 및 관련 기구들이 한국사회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편적 인권의 보장, 일체의 차별금지는 오늘날 성숙한 인류문명의 요구이며, 그것은 그리스도교 복음의 정신에 부합한다.
1-3. 오늘 우리사회 안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넘어 누구나 저마다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안전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기대가 높다. 심각한 인권유린을 동반한 독재체제를 넘어 정치적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여러 분야에서 인권신장이 이뤄졌지만, 아직도 한국사회의 인권보장은 충분하지 않다. 여전히 성차별이 온존하고 있고, 노동사회의 차별은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다. K방역으로 코로나19 위기에 모범적으로 대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배후에는 차별받는 노동자들의 고통이 가려져 있다. 일상적 삶 가운데서 우리사회 구성원 절대다수가 여러 형태의 차별을 겪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기에 우리사회 다수의 구성원이 어떤 형태로든 차별을 겪을 수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으며, 그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한 삶을 보장하는 법률의 제정을 절대 다수가 지지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국민의식조사에 의하면 10명중 9명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하고 있다.


2. 평등법/차별금지법의 목적과 요체

2-1. 우리사회에서는 지난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부 권고안으로 차별금지법을 제안한 이래 지난 14년간 6차례에 걸쳐 제정이 시도되었지만 좌절되었다. 그러나 지난 6월 29일 정의당에 의해 ‘차별금지법안’(약칭: 차별금지법)이 국회에 발의되었고, 그 다음 날인 6월 30일 국가인권위에 의해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약칭: 평등법) 시안이 국회에 권고안으로 제출되었다.
2-2. 그 법은 “헌법의 핵심원리이자 국제인권규범이 추구하는 평등권 보장의 근거가 되는 법률”(2020.6.30. 국가인권위 설명자료)로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차별금지법안(정의당안)을 보면 제1조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법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헌법상의 평등권을 보호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국가인권위의 시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2-3. 포괄적 평등법/차별금지법이 필요한 까닭은, 차별 문제를 다루는 개별법만으로는 중첩되는 다양한 차별 현실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장애, 성별,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규율하는 법률이 있기는 하지만, 그 개별법들은 적용범위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중첩되는 차별의 사안을 다루는 데 공백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차별 현실을 종합적으로 해석하고 일관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법률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의 사안마다 별도의 법률을 두는 방식이 아니라 사실상 모든 차별을 다루는 법률로서 실질적인 평등을 보장하려는 뜻을 지니고 있다.(2020.6.30. 국가인권위 설명 자료 및 2020.8.4. 국가인권위 평등법 관련 팩트체크 참조).
2-4. 두 법안 모두 제3조에서 차별금지의 대상과 영역을 규정하고 있다.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정의당안 23개 / 밑줄 친 사안은 국가인권위안 21개 가운데 없는 것)을 이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영역으로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행정·사법절차 및 서비스의 제공·이용 네 가지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사람들의 일상의 삶 가운데서 차별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대상과 주요 영역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5.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의 평등법안과 정의당의 차별금지법안의 차이는 차별 대상이 21개와 23개로 다른 점(위에 명시),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명령권 부여 여부이다. 평등법안은 시정권고와 소송지원을 규정하고 있는데 반해 차별금지법안은 시정명령과 소송지원을 규정하고 있다. 다른 내용은 약간의 문구 차이가 있을 뿐 그 기본취지에서 거의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3. 평등법/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오해

3-1. 평등법/차별금지법안을 둘러싸고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교계에서 여러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크게 쟁점이 되는 것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차별을 다루는 개별법 또는 국가인권위원회법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옹호법이 아닌가, 차별금지법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들이다.
3-2.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까닭은 이미 앞에서 밝혔기에, 이 대목에는 재론하지 않는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법’으로 충분하지 않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만 간략히 해명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를 규정하고 있지만, 차별의 개념과 유형을 상세히 담고 있지 않기에 그것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차별행위로부터의 구제를 강화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평등권의 보장을 위한 규범 역할을 하는 법률의 필요성이 있다.
3-3-1.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옹호법이 아니냐 하는 의문은 교계에서 제기되는 가장 뜨거운 쟁점일 것이다. 그러나 평등법/차별금지법은 여러 가지 차별금지 대상 가운데 일부로 성적지향, 그리고 성별정체성을 들고 있을 뿐이다. 20여 가지에 이르는 여타의 차별금지 대상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교계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관해 부언하자면, 그것을 차별금지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 그것을 조장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여러 다른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 모두가 평등권을 향유할 주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법의 취지일 뿐이다.
3-3-2.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과는 다른 성적지향 또는 성별정체성에 대해서 신앙․신학적으로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 제기되고 있기에 여전히 쟁점이 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교회가 신학적 과제로 안고 서로 다른 견해들을 경청하는 가운데 지혜롭게 대화를 지속해갈 필요가 있다. 이미 세계의 많은 교회들이 그 과정을 밟아왔다. 그 성숙한 대화의 과정이 지금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되고 있다. 현대의학은 특정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질병으로 보지 않고 있지만, 설령 그것이 신앙의 입장에서 죄이거나 질병으로 간주된다 하더라도 차별의 요인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점에서 평등법/차별금지법은 그럴 수 없다는 오늘의 보편적 인권의 가치기준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3-3-3. 물론 성서가 이를 어떻게 말하느냐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다. 현대의 과학 또는 의학적 상식과 성서의 문자적 진술이 충돌한다고 여겨질 때,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성서해석학의 중요 과제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성서를 근거로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장애가 있는 경우 성직에 임직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와 같은 견해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열린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었다고 해서 성서의 진리가 파괴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보론에서 보충)
3-4-1. 평등법/차별금지법이 종교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의문은 상당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특히 설교중 동성애 반대 입장을 밝히는 것도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나, 이는 근거 없는 주장이다. 우선 예배중 설교는 차별금지 대상이 적용되는 네 가지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 나아가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자유권적 기본권으로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신앙과 신념의 표현으로서 어떤 견해를 밝히는 것 자체가 금지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자유권과 평등권은 모두 중요한 기본권으로서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물론 특정한 맥락에서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할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경우 맥락을 헤아려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법리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지 한편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따라서 평등법/차별금지법 자체로 종교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 오히려 평등법/차별금지법은 종교로 인해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3-4-2. 교육과 고용의 영역에서 종교적 자유가 침해받을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은 합리적 의문의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다. 예컨대 교육자(교사, 교수 등)가 동성애에 관한 입장을 밝히는 행위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 역시 설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 다만 교육이라는 공공 영역에서 특정한 신앙과 신념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강요받는 사람의 자유권을 침해한다 할 것이다. 또 다른 한편 고용의 영역과 관련하여 교회가 운영하는 기관의 직원을 선발하는 경우는 어떨까? 이 경우에는 해당기관에서 종교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는 직무와 그렇지 않은 일반적 직무를 엄밀히 구별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 교목이라든지 기관목이라든지 종교 고유의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 그 목적에 합당한 사람이 그 직무를 맡는 것이 타당하다. 이를 진정자격이라 한다. 반면에 종교 고유의 직무와 상관없다면 그 경우는 다르다. 예컨대 불교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에서 기독교인 사회복지사가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경우 어떻게 봐야 할까 생각하면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3-5. 많은 경우 그 의문이 근거가 없는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다. 평등법/차별금지법의 기본취지는 우리의 일상적 삶의 차원에서 모두가 평등한 삶을 향유하여야 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우리사회가 지금 절실하게 당면하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로 고용형태, 곧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로 얼마나 극심한 불평등을 겪고 있는지 직시한다면 평등법/차별금지법의 기본취지를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다.


<보론> 동성애, 성서, 교회

1-1. 오늘날 성적 지향에 관해서는 동성애자(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이성애자라는 분류법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데,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이성애를 제외한 모든 형태가 비정상이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성적 지향에 관한 분류법은 19세기 이후 서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 분류 방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반영한다.
1-2. 오늘날 특정한 성적 지향에 관한 의학적 견해는 어떨까?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정신과 진단의 표준을 제시하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3판에서 동성애를 정신과 진단명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하였다. “동성애가 그 자체로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 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으므로, 미국정신의학회는 고용, 주택, 공공장소, 자격증 등에서 동성애자에 대해 행해지는 모든 공적 및 사적 차별에 개탄하며, 그러한 판단력, 능력, 신뢰성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동성애자에게 더 많이 지워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이와 같은 의학적 결정에도 불구하고 동성애가 질병이라는 주장이 계속되자 2016년 3월 세계정신의학회는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입장을 재삼 밝혔다.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영속시킨 불행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 의학이 동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지향과 행동을 병리화하는 것을 그만둔 지는 이미 수십 년이 지났다. 세계보건기구는 동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지향을 인간 섹슈얼리티의 정상적인 형태로 인정하고 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의 인권을 존중한다. 두 주요 진단 및 분류 체계에서는 동성에 대한 성적 지향, 끌림, 행동, 그리고 성별 정체성이 병리 현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또한 2018년 6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성별 불일치”(性別不一致, gender incongruence)를 국제질병분류(ICD)의 질병에서 제외했다
1-3.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에 대한 논쟁과는 별도로, 성적 지향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와 관련해 미국소아과학회는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신 문헌과 이 분야와 관련한 대다수 학자들은 성적 지향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즉, 개인은 선택에 의해 동성애자 또는 이성애자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성적 지향은 대개 아동기 초기에 형성된다.”

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지속되고 있다. 특히 기독교계에서는 성서를 근거로 하여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특정한 성적 지향을 정죄하며 반대하고 있다. 과연 성서를 근거로 하여 성적 차별을 주장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는 비단 동성애 등 특정한 성적 지향과 관련해서만이 아니라, 성서의 본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함축한다. 다음에서 살펴보게 될 성서 본문은 흔히 동성애를 부정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본문들이지만, 과연 그렇게 오용되는 것이 정당할까?
2-2. 창세기 1:27~28; 2:18~25의 본문은 인류 첫 남녀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로, 남녀를 축복한 것이 특정한 성적 지향을 정죄하는 것과는 상관없다. 오히려 이 이야기는 서로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이뤄지는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2-3. 창세기 19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그리고 그와 유사한 사사기 19의 이야기는, 그 도시들에 동성애가 횡행했고 그것이 타락한 도시의 핵심적 범죄였다는 것을 증언하는 본문으로 간주되지만, 사실은 그 도시들의 핵심적 범죄는 손님을 ‘환대’하지 않은 것이었다는 것을 증언해 줄 뿐이다. 소돔의 죄가 나그네를 환대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은 예수의 말씀(마태 10:14~15)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2-4. 레위기 18장 이하 성결법의 성관계에 관한 규정 가운데 특히 18:22은 동성간의 성행위를 금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 한 구절이라도 성서가 금지하고 있으니 그것은 곧 성서가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할까? 만일 그렇게 봐야 한다면 예컨대 각종 음식물에 관한 규정과 사제의 자격에 관한 각종 규정들이 오늘날 그대로 준수되지 않은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은 성적 지향에 관한 현대의 과학적ㆍ의학적 인식이 없는 가운데 형성된 고대적 견해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굳이 문자적으로 엄밀하게 새겨보더라도 망측한 성행위의 한 형태를 문제시하는 것일 뿐 성적 지향을 문제시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2-5. 신명기 23:17~18; 열왕기상 14:24; 15:12; 22:46; 열왕기하 23:7의 성매매 금지 내지는 폐지에 관한 증언은, 당시 가나안 풍요종교/다산종교에서 행해지던 성창(聖娼)제도의 금지를 말하는 것일 뿐 동성애와는 상관없다.
2-6. 로마서 1:18~32에서 ‘사악함과 부당함’을 말하고 있는 대목에서 사도 바울이 오늘날 ‘동성애’라 불리는 현상을 왜곡된 인간관계의 한 예로 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문맥에서 볼 때 이 구절은 이성 관계까지 포함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부적절한 인간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동성애만을 정죄하려는 초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 역시 현대의 과학적ㆍ의학적 인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어쨌든 바울 서신의 전반적 맥락에 비춰볼 때 바울은 ‘성적 착취’를 더 문제시하고 있다.
2-7. 고린도전서 6:9~11의 ‘부정한 자’로 언급된 ‘탐색하는 자’(남창노릇을 하는 자?, Malakoi), ‘남색하는 자’(동성연애를 하는 자?, Arsenokoitai)는 정확히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 논란거리이다. ‘말라코이’는 남자 매춘부 가운데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쪽을, ‘아르세노코타이는’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남성을 뜻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 서신의 이 대목 또한 흔히 동성애 금지를 말하는 결정적 근거로 활용되고 있으나, 여기서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매춘행위와 (아동) 성적 착취라고 보는 것이 옳다.
2-8. 에베소서 5:33의 이상적 결혼관계에 관한 언급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부부관계를 말하고 있을 뿐 동성애와는 상관없다.
2-9. 유다서 1:7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언급은,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동성애’로 한정해서 이해해야 이 구절도 그렇게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를 정죄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구절 역시 그에 대해 정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10. 결국 성서가 확고하게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별히 예언자나 예수에게서는 동성애를 정죄하는 말이 단 한마디도 없다. 동성애를 문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반적인 문맥과 당대의 상황을 고려해 해석해야 하고, 또한 오늘의 보편적인 윤리관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

3-1. 동성애는 오랜 인류 역사에서 계속 존재해왔고, 많은 문화권에서 대체로 그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로마사회에서도 동성애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었고, 그것을 법적으로 금지하게 된 것은 6세기 이후의 일이다.
3-2. 유대-기독교 전통에서는 성도덕을 주로 생식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고, 로마사회의 성적 관행을 문란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초기 기독교에서 소돔의 죄를 성서에 근거하지 않고 동성애로 해석한 최초의 인물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기원전 13~기원후 50)였으며, 그의 해석은 이후 기독교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여러 교부들이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언급했으나, 확고하게 교회의 공식적 입장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3차 라테란공의회(1179년)에서였다. 고리대금업자, 이단자, 유대인, 상인과 더불어 동성애자가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이다. 서구의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비롯된 성에 대한 억압적 태도는 오늘날 서구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에까지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19세기 이후에 성적 지향에 대한 분류가 분명해졌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본격화된 즈음부터 성적 지향의 차이로 인한 차별이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3-3. 그러나 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여러 운동들과 함께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 철폐 운동 또한 활발히 일어났고, 더불어 과학적ㆍ의학적 인식의 발전으로 성적 지향이 차별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점차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 세계의 많은 교회들에서도 이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으며, 역시 많은 교회들이 이에 대해 포용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추세가 되어 가고 있다.
3-4. 한국교회는 성소수자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신에 비추어 이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물음, 곧 ① 모든 공동체와 교회가 여러 성적 지향을 갖고 있는 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② 이러한 성적 지향이 교회 안의 회원권과 지도력을 갖는 데 방해가 되는지 하는 물음을 제기하며, 교회에 관한 근본적 지향을 선택하여야 할 것이다. 타자에 대한 ‘환대’가 공동체 본연의 정신이며, 그것이 하나님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공유할 수 있다면 성숙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로서 교회가 바로 설 수 있으며, 그 안에서 배제와 혐오의 논리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물론 그 ‘환대’를 실천하는 길은, 그저 인식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교회 공동체의 생활과 문화 전반을 변혁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4. 교회의 사회적 입장 천명이 갖는 의의와 그 방식

4-1-1. 교회의 사회적 발언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한 신실한 믿음에 근거하는 공공적 책임의 일부로 수행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물 가운데 함께 하시며 사랑하시는 백성들 가운데서 그 뜻을 펼치신다.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다. 특별히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차별받는 가장 연약한 사람들과 함께 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하셨고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선포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뜻을 이루도록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부름 앞에 신실하게 응답하는 삶을 지향한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과 발언은 바로 이 믿음에 근거한다.
4-1-2. 한편 그리스도인은 저마다 땅 위의 나라 시민권을 갖고 있다. 여기서 오늘날 민주적 헌정국가의 한 근간으로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따라야 하는 요구를 받고 있다. 이 원칙은 종교인의 정치적 참여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종교화 또는 종교의 정치화를 배제하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곧 정치적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하거나 간섭하는 행위를 배제하는 한편 종교가 정치권력에 기대어 특권적 지위를 향유하는 것을 배제해야 한다는 뜻을 지닌다. 그것은 정치와 종교의 자율성을 인정함으로써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한편 배타적 세계관에 좌우되지 않는 투명한 민주적 헌정질서를 지향하고자 하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지 종교인의 신앙의 따른 정치적 참여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4-1-3. 요컨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근원적으로 신앙의 요청에서 비롯되고 있지만, 동시에 오늘날 민주적 헌정질서가 추구하는 정교분리의 취지에 따라 규율 받는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과 그 표현방식은 신앙의 요청에 부합하는 동시에 오늘날 국가사회를 구성하는 보편적 인권의 요구, 그리고 민주주의적 가치와 그 소통방식에 부합하여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만의 세계관적 독단에 따라 그 입장을 개진하는 것을 지양하고 각기 다른 세계관을 지닌 사회 구성원을 존중하고 그 가운데서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입장을 개진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의 입장은 신앙이 그 근거가 되지만 그것이 사회구성원들에 소통 가능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2-1. 오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전광훈 현상은 정치와 종교의 잘못된 만남, 아니 타락한 신앙의 극단적인 한 전형이다. 극우적인 정치세력과 종교세력이 결합하여, 방역수칙을 어기고 폭력사태까지 빚은 8․15 광화문집회에서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만 높인 게 아니었다. 성소수자들을 향한 혐오발언과 가짜뉴스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사실상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해 코로나19 확산 위기에도 불구하고 집회를 열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 배타적 독단과 극단적 행동을 빚어내는 밑바탕은 무엇일까?
4-2-2. 전광훈 추종세력의 반사회적 태도, 결국은 반교회적으로 귀결되는 그 태도는 워낙 돌출되어 있기에 이제 분별하기가 쉬워졌다. 그들만 모를 뿐, 우리사회 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민폐를 끼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현상만 도려낸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안타깝게도 타인을 정죄함으로써 자기 정당성을 구축해온 한국교회의 고질적 병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수한 한국교회 교단들이 이단대책위를 두고 그것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그게 문제다. 건강한 신앙을 추구하고 잘못된 신앙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자 하는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에 빠져 자신과 다른 집단을 우선 정죄하려 드는 그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자기 의에 빠져 있는 확실한 증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이단대책위를 두고 걸핏하면 그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태도다. 그것은 결국 오늘 역시 유수한 교단들이 동성애대책위를 두고 있는 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4-2-3. 결국 그 도구로 성소수자들과 함께 하는 목회자(임보라 목사)를 이단으로 몰아붙이더니, 이제 성소수자를 축복한 목사(이동환 목사)를 교회 재판에 넘기고, 평생 학문에 정진해 왔던 목사(허호익 교수)가 성소수자 문제를 한국교회가 직면해야 하는 과제로 제시하는 온건한 저서를 낸 것을 두고 출교 처분하는 사태까지 일으키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평등법/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교회 안에서 신앙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다. 전광훈과 그 추종자들, 그리고 다수의 주류 한국교회는 그 점에서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전광훈은 한국교회 스스로가 배태하였다는 것을 통감하여야 한다. 자기 의에 사로잡힌 그 잘못된 신앙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랑과 환대의 복음으로 돌이키지 않는 한 한국교회는, 공공의식과 인권의식이 날로 높아져 가고 있는 우리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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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