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민중신학이 바라보는 문화신학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1-03-18 21:57
조회
149
『농촌과목회』 2021년 봄호(통권 89호, 2021년 3월 15일 발행) 원고

민중신학이 바라보는 문화신학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 한국민중신학회 회장)


“한국에서 그간 많이 진척시킨 토착화신학이 그리고 방금 새로운 치장으로 개점하려는 문화신학이 축복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겠지만 하느님의 계시의 하부구조 - 그것은 사회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는 물질 구조 - 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된다.”(서남동)1)


1.

애초 주제가 토착화신학으로 한정되었다면 비교적 문제가 간단했을 것 같다. 한국 신학사의 맥락에서 그 대상을 범주화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말 자체로는 폭넓게 사용될 수도 있지만, 한국신학사에서 ‘토착화신학’이란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특정한 신학조류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여러 유형을 포함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 복음의 요체를 전통적 종교 유산에 비추어 이해하려는 신학적 시도로서 주로 감리교 신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범위를 한정해버리면 특정 신학사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로서 의의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문제의식을 이어받고 있는 오늘의 신학사조를 포괄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에 오늘 그 평가의 의의를 확보하기 위해 보다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제목을 “민중신학이 바라본 토착화신학”이 아니라 “민중신학이 바라본 문화신학”으로 받아들인 까닭이다.
그런데 이렇게 범위를 확장하고 나면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과연 그 범위를 어떻게 확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민중신학의 경우 세대론을 통해 일정하게 그 경향을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다.2) 비록 그 구분법이 모든 민중신학의 경향들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정도 그 경향을 살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은 된다. 문화신학 역시 그런 세대론적 접근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통용되고 있는 세대론은 없는 듯하고, 그저 논자에 따라 그 이름이 다양하게 불리고 있을 뿐이다. 문화신학, 종교신학 또는 종교다원주의 신학이나 종교간 대화의 신학 등으로 일컬어지고 있거니와 그것은 대개 토착화신학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신학조류를 일컫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 이름이 함축하는 뜻을 새기면서 시대조류와 관련하여 각기 특성을 밝혀낼 수 있다면 어떤 세대론을 구성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급히 그런 시도를 하기보다 이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그 다양한 이름의 신학조류가 지니는 특성이 무엇인지 주목하고, 그 조류의 특성을 가장 잘 포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어진 주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오늘 한국신학계에서 종교신학 또는 문화신학으로 일컬어지는 신학의 경향은 1930년대 그 맹아가 형성되고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토착화신학의 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민족자주와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되었다. 민중신학 역시 그 자각과 무관하지 않지만, 문화신학이 전통 종교문화와의 관계 안에서 토착적인 신학을 추구한다면 민중신학은 당대의 정치경제적 상황 안에서 민중을 재발견하고 이를 기초로 신학적 성찰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곧 문화신학과 민중신학은 한편으로는 민족의 종교문화 전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당대의 민중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차이를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문화신학이 통시성의 날줄을, 민중신학은 공시성의 씨줄을 축으로 삼고 있다고 할까?
문화신학과 민중신학의 관계를 이와 같이 보면, 상호간의 관계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 예견된 셈이다. 그러나 이른바 문화신학과 민중신학이 실제 그렇게 순수한 이념형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시대적 맥락에 따라, 또한 각기 신학자에 따라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대략적으로 그 실체를 가늠하고 분별하는 가운데 적절한 평가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2.

문화신학이라는 한정된 범위를 넘어서지만 한국신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때 유동식이 『한국신학의 광맥』에서 분류한 세 가지 유형을 일단 참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3) 유동식은 한국교회의 신학적 경향을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 진보적 사회참여의 신학, 문화적 자유주의 신학으로 나눈다. 이름 그 자체에 경향이 드러나 있듯,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은 성서무오설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강조하는 보수교회의 신학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진보적 사회참여의 신학은 당면한 사회적 현실 가운데서 상실된 인권을 회복하고 사회적 질고를 넘어서는 것을 인간해방 곧 구원의 과제로 삼고 있는 신학 전통으로서 민중신학을 형성하였고, 문화적 자유주의 신학은 한국의 전통사상과 기독교 사상의 조화를 모색하는 토착화 신학을 형성하였다. 유동식은 이 세 가지 신학 경향이 상호 보완하는 가운데 한국신학의 전체상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과연 이 세 가지 신학 경향이 상호 보완하는 관계인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시되고 있다. 손규태는 ‘보완성’보다는 ‘대립갈등’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 문제의 상황을 더 분명하게 진단할 수 있다고 본다.4) 그 대립갈등은 한편으로는 구미의 전통적 보수적 근본주의 사상과 제3세계의 문화적 정체성과 역사적 자주성 사이의 갈등으로, 또한 동시에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기초한 부르주아적 교회와 새로운 사회로의 변혁을 지향하는 민중들의 교회 사이의 갈등으로 파악된다. 손규태는 전통에의 ‘적응’을 추구하는 토착화신학과 현실의 ‘변혁’을 지향하는 민중신학의 차이에도 주목한다. 그 두 신학 사이에는 과거지향적 성격과 미래지향적 성격의 차이뿐 아니라 문화수용적 삶의 방식(소금)과 문화변혁적 삶의 방식(빛)의 차이 또한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신학의 차이는 서로를 배제해야 하는 이유로서보다 서로를 보완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문화신학이 과거의 전통을 소중히 하는 것은 고유한 신학을 형성하고자 하는 미래지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고, 또한 민중신학은 현실의 변혁을 추구하는 데서 과거의 전통 가운데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김경재는 토착 종교와의 상관관계 안에서 형성된 한국신학의 유형을 파종모델(박형룡), 발효모델(김재준), 접목모델(유동식), 합류모델(서남동) 등 네 가지로 구별하고 그 의의를 논하고 있다.5) 파종모델은 보수 정통주의 신학을, 접목모델은 문화변혁적 입장을 취하는 한국 개신교 진보주의적 교회들의 신학을, 접목모델은 개신교 자유주의 신학의 한 발전 형태로서 이른바 토착화신학을, 합류모델은 급진적인 한국 민중신학을 일컫는다. 여기서 한국의 문화적 토양 가운데 화육하지 못하고 전통문화와 갈등과 충돌을 지속하고 있는 파종모델은 사실상 정복모델과 동일시되기에 일단 논외로 하면 나머지 세 가지 유형이 고유한 한국적 신학으로서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신학 경향은 일단 유형상 구별되지만,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창조적인 한국신학으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 유형을 구별한 저자는 정작 선교신학으로서 접목모델을 주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유형에 대한 해석은 합류의 모델로 수렴되는 신학적 발전궤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토착화신학을 사실상 오리엔탈리즘의 한계 안에 있는 선교신학으로 평가하며 창조적인 한국신학의 형성에 관심을 기울인 이경재의 평가는 새로운 안목을 열어준다.6) 이경재는 복음과 상황의 상호관계를 통해 한국신학의 유형을 나누고 있는데 생생한 풍자적 비유를 통한 이름들이 흥미롭다. 이경재는 철저히 식민주의가 복음의 초월성을 입고 등장한 식민담론의 내화요 전형에 해당하는 보수주의 신학을 복음지상주의적 상황심판론으로서 황소개구리 선교신학이라 이른다. 이 신학은 복음 이외의 상황을 정당하게 다루지 않기에, 모든 논자에게 공통되듯이 문화신학 또는 토착화신학의 시도로서는 논외가 된다. 비로소 상황을 정당하게 다룬 토착화신학은 복음주의적 번역론 곧 격의(格義) 신학으로서 씨받이 선교신학(윤성범), 복음주의적 성취론으로서 데이트 선교신학(유동식), 복음주의적 변형론으로서 누룩 선교신학(박봉배) 등으로 그 유형을 구별해볼 수 있지만, 여전히 복음 우월주의적 이원론에서 전개되고 있는 선교신학으로서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다.
이경재는 역사에 대한 반성과 신학의 틀에 대한 끊임없는 탈식민적 고뇌를 통해 그 한계를 뛰어넘어 창조적 한국신학을 형성한 시도로서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과 서남동의 민중신학을 주목한다. 이 두 창조적 신학은 우선 복음을 잠시 괄호 속에 넣고 상황을 주체로 하여 복음이 서서히 괄호를 풀고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를 살피는 신학으로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변선환의 종교신학이 종교철학적이라면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사회철학적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은, 그 신학의 형성에 깊게 영향을 끼친 두 신학조류 가운데 토착화신학이 종교성에는 강점이 있지만 비역사성을 지니고 있고, 민중신학이 역사성에는 강점이 있지만 종교성이 약한 것을 상보(相補)하려는 시도로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교성을 가진 정치적 해방신학을 형성하려는 것이다.7) 그 종교해방신학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합류’의 개념을 통해 복음과 상황에 대한 혁명적 해석의 틀을 제시하는 데 그 독창성이 있다. 그것은 성서의 민중전통을 한국사에서의 민중전통과 동등하게 하나의 전거(참고서)로 삼는 신학적 틀의 재구성을 통해 이뤄졌다. 다시 말해 성서의 민중전통과 한국 민중전통이 합류하는 데서 일어나는 사건을 해방의 사건, 곧 하느님 나라의 현실화로 이해한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일어나는 해방의 사건을 복음의 구현으로 본 점에서 이전의 모든 토착화신학의 시도를 넘어서는 독창적 성격을 지닌다.
이경재가 통찰한 바와 같이, 이 두 선구자에게서는 그간 끊임없이 논의되어왔던 종교신학 또는 문화신학과 민중신학 사이에 상호 보완의 시도가 이뤄진 셈이다. 물론 두 선구자 당사자들에게 그 시도가 충분한 결실을 맺어졌는지는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창조적 한국신학의 시도로서 의의는 분명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미완의 과제로 남겨졌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구자들의 시도는 종교신학 또는 문화신학, 그리고 민중신학의 뜻을 이어받은 후학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으로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3.

적어도 창조적인 한국신학을 형성하는 신학적 해석의 틀이라는 차원에서 문화신학 또는 종교신학과 민중신학의 상호보완 과제는 선구적 성취의 선례를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실을 맺는 것은 오늘의 교회와 신학도들에게 맡겨진 과제라 할 수 있는데, 선구자들의 선취가 오늘 과연 어떻게 계승되고 있을까?
앞서 말했듯 특정한 시대의 신학사조로서 토착화신학을 넘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종교신학 또는 문화신학을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오늘 후학들의 신학작업 또한 주목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앞선 시대의 신학적 성취에 대해서는 기왕에 이뤄진 연구에 의존하여 거칠지만 간소하게 그 의의를 논할 수 있었지만, 오늘 당대에 펼쳐지고 있는 신학작업에 대해서는 제한된 지면에서 본격적인 논구도 하지 않은 채 섣불리 평가하기에는 조심스럽다. 여기서는 오늘날 펼쳐지고 있는 그 신학적 경향의 전모를 드러내고 본격적으로 평가하는 일을 감당하기 어렵고 그야말로 그 경향을 크게 대별하여 간략히 평가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감히 인상비평이라는 고상한 말로 둘러댈 수도 없다. 동시대의 신학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겠지만, 원고청탁을 받아들인 잘못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어 고육지책을 동원한 사연을 양해해 주기 바랄 뿐이다.
그야말로 거칠게 오늘날 문화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포괄할 수 있는 신학경향을 말하자면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여전히 전통종교와의 대화를 기반으로 하는 종교신학이며, 또 하나는 오늘 당대의 문화현상을 주목하며 신학적 성찰을 시도하는 좁은 의미의 문화신학이다. 각각의 신학적 작업은 두말할 것 없이 고유한 의의를 갖고 있다. 종교신학은 전통종교의 중심 개념을 주목한다는 점에서 과거지향적 성격이 농후해보이지만 오늘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데서 그것이 여전히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적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 특별히 종교다원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배타적 성향을 내보이며 타종교와 갈등을 야기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 시도는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오늘의 문화현상을 주목하며 신학적 성찰을 시도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복음의 육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그 현실적 의의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저마다 그렇게 고유한 몫을 감당하는 신학들이 서로 교통하며 어울릴 수 있다면 한국교회의 정신세계는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다.
민중신학의 입장에서 종교신학 또는 문화신학에 대한 어떤 평가를 시도하는 것은 그 풍요로움을 지향하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전지자의 시점에서 상대의 결점을 지적하는 것이라기보다, 한편의 입장에서 보이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폭넓은 시야로 바라볼 것을 기대하는 것이며 거기서 생산적인 대화를 시도해보려는 뜻을 지닌다고 하겠다. 그것은 여러 신학의 경향이 있는 그대로 저절로 상호 보완하는 관계를 형성한다기보다는, 서로의 대전제를 확인하고 그 공통기반 위에서 의도적으로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서로 보완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기대에 의존한다.
앞에서 창조적인 한국신학의 형성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간략히 살펴본 데서 서로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공통기반을 확인함과 동시에 상호 보완의 과제 또한 어느 정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신학의 입장에서 종교신학 또는 문화신학에 대한 입장을 다시 확인한다면, 서두에 인용한 서남동의 입장으로 대신하고 싶다. 이른바 ‘계시의 하부구조’에 대한 관심이다.
간단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예를 통해 그 중요성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진행중인 손원영 교수 해직 사태가 함축하고 있는 문제점이다.8) 개신교인에 의한 개운사 훼불사건을 접하고 모금운동을 벌인 손 교수가 해직되고, 이후 다시 복직 판결을 받았음에도 사실상 복직을 저지당하고 있는 사태는 크게 두 가지 차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훼불사건이 함축하는 타종교에 대한 몰이해의 차원, 그리고 해직사태가 함축하는 종교적 권력행사의 차원이다. 두 가지 사태는 별개의 차원이 아니라 표리관계라 할 수 있을 만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곧 훼불사건이 함축하는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은 그저 종교에 대한 이해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그와 같은 배타성을 정당화하는 권력구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종교간의 대화를 지향하는 종교신학이 그저 타종교에 대한 존중과 이해(理解)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갈등을 야기하는 몰이해와 배타성을 강화하는 권력구조와 물질적 이해(利害)관계에까지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요컨대 종교간 갈등은 단지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지를 조장하는 교권구조, 그리고 그 권력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과 관련되어 있기에,9) 종교간 대화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당대의 문화현상을 주목하며 성찰을 시도하는 문화신학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이 겪고 있는 갈등과 고통의 문제는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권력관계와 물질적 이해관계 안에서 빚어진다. 민중신학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현실이다. 바로 그 입장에서 민중신학은 종교신학 또는 문화신학을 향한 대화의 실마리를 새삼 던지고 싶다.

미주)
1) 서남동, “문화신학ㆍ정치신학ㆍ민중신학”,『민중신학의 탐구』개정증보판, (서울: 동연, 2018), 491.
2) 최형묵, “그리스도교 민중운동에서 본 민중신학”, 『신학사상』69(1990.6.), 323-347;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손이 없기 때문이다 - 민중신학과 정치경제』(서울: 다산글방, 1999) 재수록.
3) 유동식, 『한국신학의 광맥 - 한국신학사상사 서설』(서울: 전망사, 1982), 29-30.
4) 손규태, “종교신학과 정치신학의 갈등과 접맥”, 소석유동식박사고희기념논문집『한국종교와 한국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3), 187-203.
5) 김경재, 『해석학과 종교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4). 187-223.
6) 이경재, 『해석학적 신학』(서울: 다산글방, 2002), 191-225.
7) 그 시도로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변선환, “민중해방을 지향하는 민중불교와 민중신학 - 미륵신앙을 중심하여서”, 변선환아키브 편, 『종교간 대화와 아시아신학』변선환전집1(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6), 332-388을 들 수 있을 것이다.
8) 이에 대해서는 손원영교수불법파면시민대책위원회 편, 『연꽃 십자가 - 개운사 훼불사건과 종교평화』(서울: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20) 참조.
9) 이에 대해서는 최형묵, “한국종교의 배타성을 넘어”, 『시대와 민중신학』9(2006.12), 271-28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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