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씨알과 자유: 함석헌의 씨알 역사관과 민중신학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1-04-24 20:48
조회
98
함석헌 탄생 120주년 평화와 인권, 개인과 사회연대 특강
4차 강의: 씨알과 자유
2021년 4월 24일(토) 14:00-16:00 / 함석헌기념관


씨알과 자유: 함석헌의 씨알 역사관과 민중신학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한국민중신학회 회장 / 기독교윤리학)


1. 함석헌과 나 : 성서, 역사, 고난, 씨알에 이끌려

1-1. 1980년대 청년 시절 함석헌 선생님을 먼 발치에서 뵌 적은 있으나 직접 마주한 적은 없으니 ‘옷깃이나마 만져봤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1-2. 지면으로 함석헌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78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곧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고 난 후 흥분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이미 ‘성서’ 대신 ‘뜻’으로 바꾼 이후이지만, 성서적 고난의 의미로 한국역사를 꿰뚫고 있는 내용은 신실한(?) 신앙을 갖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소년을 매료시켰다. 성서, 역사, 고난, 씨알에 이끌려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1-3. 그러나 1980년대 초반 대학생 시절 이후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는 못했다. 민중신학을 접하면서 관심을 기울일 실마리를 여전히 놓지는 않고 있었지만, 선생님의 심원한 사상보다는 당대의 조직적인 민중운동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상적 모색의 방법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 탓이다. 그 이후 민중신학에 몰두하고 안병무 선생님을 만나면서, 민중신학에 끼친 함석헌 선생님의 사상적 영향을 간접적으로 언뜻언뜻 들여다보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학교에서 강의할 때 단편적으로 이야기하거나 교회에서 성서연구 대신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함께 읽은 경우가 있고 따라서 관심 밖일 수는 없으나, 본격적인 연구를 시도한 적은 없다.
1-4. 그러니 민중신학 연구자일지언정 함석헌 사상 연구자라고는 할 수 없는데, 어쩌라고 강의를 맡겨주셨는지, 아니 어쩌자고 맡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하나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새삼 연구서들을 섭렵하면서 씨알사상과 민중신학의 상관관계를 그려보기로 하였다. 이 강의안은, 현재로서는 메모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 하나의 결과이다.


2. 함석헌의 씨알 역사관

2-1-1. 놀랍도록 광활하고도 역동적인 함석헌의 사상을 한두 마디로 줄여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알짬을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역시 씨알사상에 있다고 할 것이다.
2-1-2. 함석헌의 ‘씨알’은 유영모가 『大學』을 강의하는 중에 民을 씨알로 새긴 데서 비롯된다(1956.12. 추정, 이치석, 431): “언젠가 대학 강의를 하시다가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을 풀이하시는데 ‘한 배움 길은 밝은 속알 밝힘에 있으며, 씨알 어뵘에 있으며, 된 데 머묾에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것이 참 좋아서 기회 있는 대로 써와서 이제 10년이 넘었습니다.”(「씨알」,『씨알의 소리』1970.4. 창간호) 함석헌은 이 말을 처음 듣기 8개월 전에 역사적인 존재로서 ‘참 사람’의 의미를 ‘씨’와 ‘알’로 파악하고 있었다.(「역사적인 것」/ 이치석, 432)
2-1-3. 1957년 3월 천안에서 ‘씨알농장’을 시작하면서 그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1970년 4.19혁명 10주년에 맞추어 『씨알의 소리』를 발간하면서부터 더욱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김삼웅, 236) 이전에도 민 또는 민중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지만, 고유한 우리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주체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씨알의 소리를 읽으시는 분들께』 폐간중에 드리는 첫 번째 소식, 1970.8. 14-15) ‘스스로 함’의 의미가 제대로 담겨 있다고 본 것이다.
2-1-4. “민중이 뭐냐? 씨알이 뭐냐? 곧 나다. 나대로 있는 사람이다. 모든 옷을 벗은 사람, 곧 알 사람이다. 알은 실實, 참, 리얼real이다. ... 정말 있는 것은, 알은 한 알뿐이다. 그것이 알 혹은 얼이다.”(「씨알의 설움」/ 이치석, 234-235)
2-1-5. “<ㅇ>은 극대(極大) 혹은 초월적 하늘을 표시하는 것이고, <ㆍ>은 극소(極小) 혹은 내재적 하늘 곧 자아(自我)를 표시하는 것이며, <ㄹ>은 활동하는 생명의 표시입니다.”(「우리가 내세우는 것」,『씨알의 소리』1976.1.) 함석헌의 씨알 개념에는 생명에 대한 이해와 역사에 대한 이해가 응축되어 있다.
2-1-6. “하느님과 민중[씨알], 둘이 하나다. 하느님이 머리라면 그의 발은 민중[씨알]에게 와 있다. 거룩한 하느님의 발이 땅을 디디고 흙이 묻은 것, 그것이 곧 민중[씨알]이다.”(「말씀 모임」,『전집』3, 147-148)

2-2-1. 함석헌의 씨알사상의 원형은 이미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언어를 나중에 얻었을 뿐 이미 그 사상을 배태한 역사관을 갖고 있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 책은 애초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였다.
2-2-2. 이성과 신앙, 과학과 종교의 통합을 지향하였던(김성수, 270) 함석헌에게서 그 역사관은 생명과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굳이 말하면 진화론적 발전사관(‘사회진화론’과는 구별되는), 그리고 종말론적 역사관이 기본 틀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역사관의 원형은 역시 성서에서 비롯된다.
2-2-3. 성서적 입장에서 역사를 해석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성서의 진실은 그것이 전하는 꿈과 희망, 그에 대한 믿음에 있다. 인간은 누구든 그 누군가에게 속박될 수 없다는 해방의 염원, 인간을 속박하는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 사회적인 정의와 평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 등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염원과 믿음을 진솔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증언하고 있기에 성서는 변함없는 진실이 되고 있다. 함석헌은 그 뜻으로 역사를 통찰한 것이다. 그 희망을 간직하고 역사를 이어가는 주체가 민중, 곧 씨알이라고 본 것이다. 씨알의 발걸음을 방해하는 역사의 질곡으로 ‘고난’이 이어지고 있지만, 끝내 그 고난을 이겨내고 나아가는 희망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2-2-4. 함석헌이 조선의 역사를 ‘고난의 여왕’ ‘세계의 하수도’로 인식하는 것은 당대의 역사 현실에서 굴욕을 말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세계의 불의를 정화한다는 역설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함석헌이 역사를 이렇게 해석한 것은 성서의 ‘고난의 종’과 동일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된다.(김성수, 145; 김영태 80)
2-2-5. 함석헌이 김교신이 주도하는 『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연재하던 1930년대는 일제의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사 편수작업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그것은 소위 식민사관을 정립하여 조선의 얼과 혼을 말살하려는 시도였다. 그에 맞선 함석헌은 마치 골리앗 앞에 맞선 다윗과 같았다.(김성수, 136 이하)
2-2-6. 해방이후 그 이름이 바뀌고 보완된 『뜻으로 본 한국역사』(1962.3. / 김삼웅, 87)는 기본적인 기조를 유지한 채 보편적인 지평이 보다 강화된다. 이 책은 함석헌에게서 그의 사상의 토대가 된다.(이치석, 105)


3. 민중사건과 민중신학

3-1-1. 민중신학이 한국의 민중운동에 대한 증언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은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에서 맹아 형태로 드러났고, 1975년 2월 서남동의 “예수ㆍ교회사ㆍ한국교회”에서, 그리고 같은 해 4월 안병무의 “민족ㆍ민중ㆍ교회”에서 점차 신학적으로 가다듬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 민중신학이 형성된 것은 그보다 앞서 1960년대말 1970년대초 한국의 정치사회적 배경에서였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사건은 1960년대 이래 경제개발의 실질적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당한 대가를 보장받지 못하고 주변세력으로 전락한 ‘민중’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한 사건이었다. 이에 대한 충격으로부터 민중신학적 성찰이 시작된 것이다.
3-1-2. 여기에서 민중신학의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맡은 이들이 스스로 ‘민중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점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학교에서 해직되거나 감옥에 갇히는 경험을 하였다. 민중사건을 목격하고 나아가 스스로 민중경험을 하게 된 일단의 신학자들이 민중의 관점에서 새롭게 신학적 성찰을 시도한 것이 곧 민중신학이 되었다.
3-1-3.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민중신학자들이 민중사건을 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혜안과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중요한 하나의 원천이 되었다. “함 선생님의 씨알사상은 내가 민중과 민중신학을 발견하는 과정에 어떤 눈을 뜨게 해 줬어요. ... 지금도 함 선생님의 영향이 내게 끊임없이 작용해요.”(안병무 1992.7. / 김성수, 371-372)

3-2-1. 민중은 “생활가치를 생산하고 세계를 변혁시키며 역사를 추진해온 실질적 주체이면서도 지배권력으로부터 소외ㆍ억압되어 천민ㆍ죄인으로 전락했”지만, “역사의 발전에 따라서 자기의 외화물(外化物)인 권력을 원자리로 되돌리고 하나님의 공의 회복을 주체적으로 이끌어서 그로써 구원을 성취하도록 되었다.”(서남동, 58)
3-2-2. ‘두 이야기의 합류’: “한국의 민중신학의 과제는 기독교의 민중전통과 한국의 민중전통이 현재 한국교회의 ‘신의 선교’ 활동에서 합류되고 있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현재 눈 앞에 전개되는 사실과 사건을 ‘하느님의 역사개입’, 성령의 역사, 출애굽의 사건으로 알고 거기에 동참하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서남동, 101)
3-2-3. 안병무는 민중사건을 증언하는 것이 민중신학의 핵심적 과제라고 천명하였다. 애초 실존주의 신학자 불트만에게서 배운 ‘사건(Ereignis)’의 의미를 안병무는 역사적 지평에서 재해석하였다. 사건 안에서 예수와 민중은 분리되지 않는다. 한편은 주체가 되고 한편은 객체가 되는 관계가 아니다. 혼연일체로서 주체를 형성한다. 안병무가 사건의 의미를 강조할 때 가장 중요한 초점은 민중의 자기초월이다. 안병무는 숱한 역사적 사건 안에서 민중이 자기초월 하는 것을 본다고 역설했다.(안병무, 86-128)
3-2-4. 민중사건에 대한 민중신학의 통찰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숱한 정치적 메시아니즘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함축하고 있다. 김용복은 ‘정치적 메시아니즘’과 ‘메시아적 정치’를 구별하고, 민중 가운데서 민중을 주체화하는 ‘메시아적 정치’의 본보기로서 예수의 길을 강조하였거니와,(김용복, 109-123) 안병무의 민중사건론은 진정한 주체로서 민중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성찰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민중신학이 말하는 민중사건론의 전망에서 볼 때, 민중은 단지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사건 안에서 자기초월을 경험하는 가운데 스스로 구원에 동참한다.


4. 씨알과 민중, 고난의 담지자, 역사의 주체

4-1-1. 함석헌의 씨알사상에 대한 전이해가 있다면, 그것이 민중신학의 요체와 그대로 상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씨알/민중은 고난의 담지자이자 동시에 역사의 주체이다.(박재순1, 264)
4-1-2. 민중신학은 씨알사상이 다시 그리스도교의 신학으로 재언어화 된 것이라고 할까? 함석헌의 씨알사상과 그 역사관이 그리스도교의 성서에 밑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보편적 지평으로 확대된 것이라면, 민중신학은 그것이 다시 그리스도교적 형식으로 복귀한 것이라고 할까? 그러나 물론 민중신학은 스스로 ‘탈신학’, ‘반신학’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신학적 언어와 동일시되지는 않으며, 역시 씨알사상이 뜻하는 보편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학’으로 평가되고 있다. 함석헌의 뜻의 종교, 씨알사상이 기존의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아예 ‘이단’으로 치부되는 반면, 민중신학은 기존의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해 마치 ‘찌르는 가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4-2-1. 씨알과 민중은 언어적 형식에서만이 아니라 그 인식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함석헌의 씨알은 존재론적 의미가 강조된다면 민중신학의 민중은 역사적 의미가 강조된다. 씨알은 그 안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 강조된다면 민중은 마주치는 사건의 맥락에서 이해된다고 할까?(함석헌 외 좌담 / 전대열, 294 이하; 박재순2, 127)
4-2-2. 사실 함석헌의 삶에서 그 차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함석헌은 누구보다 역사 안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함’을 가로 막는 그 모든 것에 맞서 싸웠던 ‘저항인’으로서 그의 삶 자체가 역사적 실존이었다. 사실 모든 위대한 성현과 선각자의 삶과 사상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얼치기 도사들’에게는 그 위대한 사상이 독이 될 때가 있다. 민중신학이 역사적 사건 안에서 초월의 의미를 강조한 것은 그 위험을 방지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4-3-1. 함석헌은 격동의 20세기 현대사를 그 갈등과 모순이 집약된 한반도에서 살면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생각하며 분투하는 삶을 살았다. 동서양의 마주침과 갈등,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대립, 이데올로기의 대립(전쟁과 냉전체제의 대립), 독재와 민주주의의 대립, 경제적 발전과 불평등의 심화 등 현대사를 결정짓는 모든 역사적 장면들과 마주쳐야 했고, 그 격랑의 역사 한복판에서 고난을 겪으면서도 일어서는 민중/씨알을 보았다. 그가 경험하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지극히 ‘한반도적’이었지만, 20세기 한반도의 특수성은 세계사적 모순이 응축된 결과였다. 그 현장에서 분투하며 뜻을 추구하였던 그의 삶과 사상이 세계사적 보편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4-3-2. 민중신학이 그저 특수한 한국적 신학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적 보편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4-4-1 [사족] 동서양을 아우르고 역사의 현장에서 분투하였던 함석헌 선생에게 궁금한 점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학에 관한 것이요, 또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것이다. 오늘의 민중적 역사관을 형성하는 데 두 사상은 어떻게든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데, 동서 사상을 아우른 함석헌에게서 두 사상에 대한 평가는 인색한 편이다.
4-4-2. 동학에 대해서는 ‘자각운동’으로서 그 의의를 평가하고, 또한 씨알사상과 ‘인내천’(人乃天)이 통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미신적 요소’를 지닌 탓에 진보적일 수 없었고 ‘민중을 깨우지 못했다’고 평가한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321; 좌담, 전대열, 303) 동학에 대해서 더 깊이 들여다보지 않게 된 사연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4-4-3. 마르크스주의와 연관된 계급투쟁론, 유물사관 등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부정적이다. 젊은 시절, 특히 일본 유학시절 사회주의에 이끌린 조선 청년들 가운데서 고심한 것으로 보이지만, 역시 신앙의 동기가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해방과 분단 상황에서 국가 이데올로기화된 사회주의와 맞닥뜨리면서 더욱더 부정적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4-4-4. 그러나 인간을 물질화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지향했던 뜻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은 것 같다.(김대식, 197; 김삼웅, 116). “... 역사적인 자리에서 볼 때 사회주의에 어떤 ‘진보적’인 것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사회주의 이론에 일면의 진리가 있다 하여도 어디까지나 일면이지, 그것으로 사람을 옳게 이끌어 나갈 수는 없다. 그래 분명하게 잘라버렸다. ... 현대 사람이야 넓은 의미로는 다 사회주의자지. ‘사회’란 생각 빼고 오늘날 사람의 살림은 있을 수 없다.”(『전집』4, 46-47) “공산주의자가 미운 생각이 없어야 통일은 될 것이다.”(『전집』3, 190)


5. 하느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

5-1-1. 김경재는 그리스도교 신학과의 관계에서 함석헌 사상이 함축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집약하였다. 첫째 역사의 기조를 고난으로 본 점(메시아 사상의 집단적 인격화), 둘째 역사의 변화운동을 나선형의 창조적 과정으로 본 점(목적론적 섭리사관의 역사 내재화), 셋째 역사의 주체와 신국 실현의 장을 씨알생명의 자기실현으로 본 점(하느님나라의 구체화), 넷째 역사적 실재를 궁극적 실재의 자기창조적 외화과정으로 본 점(창조 신앙의 현대적 관철), 다섯째 역사를 자유와 정의를 핵으로 하는 인격적 생명 주체의 저항과 개혁 과정으로 본 점이다.(김경재, 366-367)

5-2-1. “나는 역사적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믿는 것은 그리스도다. 그 그리스도는 영원한 그리스도가 아니면 아니 된다. 그는 예수에게만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내 속에도 있다.” (『전집』7, 39)
5-2-2. “씨알 받듦은 하나님 나라 섬김이요, 씨알 노래함이 하나님을 찬양함이다.”(『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67)
5-2-3. “하느님과 민중[씨알], 둘이 하나다. 하느님이 머리라면 그의 발은 민중[씨알]에게 와 있다. 거룩한 하느님의 발이 땅을 디디고 흙이 묻은 것, 그것이 곧 민중[씨알]이다.” (「말씀 모임」,『전집』3, 147-148)


<주요 참고문헌>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제일출판사, 1964.

김성수, 『함석헌 평전 -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 사이에서』, 삼인, 2001.
김삼웅, 『저항인 함석헌 평전』, 현암사, 2013.
이치석, 『씨알 함석헌 평전』, 시대의창, 2015.

전대열 편저, 『싸우는 평화주의자 함석헌』, 동광출판사, 1982.
김경재, 「함석헌 사관의 기독교적 요소」,『민족의 큰 사상가 함석헌 선생』, 한길사, 2001.
박재순1, 『민중신학과 씨알사상』, 천지, 1990.
박재순2,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한울, 2012.
김대식,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모시는사람들, 2012.
김영태, 『함석헌의 사상과 삶에 대한 종교철학적 탐구』,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김용복, 『한국 민중과 기독교』, 형성사, 1981.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1987.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개정증보판, 동연,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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