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국가보안법에 대한 인권 신학적 비판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3-04-17 23:34
조회
127
평화를 위한 한국민중신학회 연속 포럼1: 민중신학으로 본 국가보안법
2023년 4월 17일(월) 오후 5시 / 기독교회관 조에홀


국가보안법에 대한 인권 신학적 비판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 기독교윤리학)


I. 시작하는 말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인권의 요체로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보장된다는 것이 상식이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헌법 제10조) 대한민국의 헌법 역시를 이를 명문화해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빨갱이’ 또는 ‘종북’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그 상식이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또 다른 ‘상식’이 통용되고 있다. 반공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분단국가 체제를 합법적으로 뒷받침하는 수단으로서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948년 제정된 이래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시책에 이견을 제시하고 저항하는 이들에게 무시무시한 족쇄가 되어 왔을 뿐 아니라 양심과 내면의 자유까지 속박하는 엄청난 위력을 지녀왔다.
처음에 그것은 분단체제하에서 권위주의를 유지하는 임시적이고 부수적인 장치로 여겨졌지만, 실제로 그 효과는 그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상황에서도 민중운동과 통일운동을 제약하고 사상을 통제하는 장치로서 위력을 발휘해왔다. 그것은 사회적 운동을 제약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문과 예술 활동 전반을 통제하였고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규율해왔다. 국가보안법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몇 차례의 존폐논란을 겪으면서도 2023년 오늘까지 건재하며 여전히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오랫동안 국가보안법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연구 자체가 그 법의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는 만큼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금기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법이 적용된 사례와 관련된 자료들을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던 점도 연구에 어려움을 더하는 한 요인이었다. 1987년 민주화와 1990년대 초반 북방정책과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비로소 국가보안법의 의의를 재조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1990년 전후 선구적인 연구(박원순1ㆍ2ㆍ3)와 또한 1990년 처음 시작된 헌법재판소의 위헌심사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 그 법리상의 문제점은 비로소 본격적으로 검토되었다. 이후 법조계와 법학계를 중심으로 여러 연구들이 축적되어 왔고, 근래에 이르러서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발간한 저작들에서 그 법리상 문제점들이 본격적으로 다뤄졌다(민변1ㆍ2).
놀랍게도 국가보안법에 관한 신학적 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분단국가 체제를 강고하게 유지해온 장치로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신학적 논고를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사태를 어찌 이해해야 할지 탐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연구 주제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친미반공분단국가의 형성과 전개 과정에 대중을 반공이데올로기에 통합시키는 역할을 맡았던 교회(강원돈1, 375-376)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민중신학의 입장에서도 이에 관한 기왕의 논고가 없다는 것은 뜻밖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서야 했던 많은 청년학생들이 신앙의 논리로 스스로를 변호해야 했던 현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례적이다. 분단체제를 비판하면서도 내면까지 장악한 강박 규율을 미처 떨쳐내지 못한 탓일까? 공연한 상상만은 아니다. 실제로 반공주의의 금기를 넘어서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신학자들도 그 금기의 한계를 늘 의식해야 했고(서남동, 197) 그것을 넘어섰을 때는 여지없이 국가권력의 서슬 퍼런 칼날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1988년 KBS <심야토론>에서 홍근수 목사가 “공산주의가 왜 문제입니까?”라고 했던 발언은 곧바로 국가보안법 저촉 사유가 되었다. 그 사유를 포함하여 그 밖의 다른 활동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그는 1991년 구속되었다. 이전의 권위주의 체제하에서의 사정과 달리 1987년 민주화 이후 그리고 1990년대 초반 남북교류의 진전이 이뤄진 상황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여전히 한계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은연중 작동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그간 국가보안법에 대한 신학적 논고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 가운데서, 이 글은 그 논의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앞서 말했듯, 국가보안법이 지닌 법리상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법조계와 법학계에서 상당한 검토가 이뤄졌다. 이 글은 그 결과들을 참고하면서 이에 대해 신학적으로 접근할 때 특별히 어떤 점을 주목해야 할지 유념하고자 한다. 신학적 입장에서 이에 대해 접근할 때 오늘날 더는 신학적 과제로서 회피할 수 없는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먼저 그 입장을 분명히 밝힌 후에, 국가보안법이 지닌 문제점들을 간략히 재확인하고, 이어 신학적으로 접근할 때 가장 주목하여야 할 문제점이 무엇인지 고찰한 후 결론에 이르고자 한다.


II. 보편적 인권과 그리스도교 신학

1. 보편적 인권에 대한 신학적 근거

보편적 인권의 요구를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신학적 쟁점이 되어 왔다(이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최형묵1, 72-112 참조). 근대 계몽주의의 대두 및 정치적 혁명과 더불어 제기된 보편적 인권에 대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선뜻 수용하기 어려워했던 국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근대 세계에서 비로소 형성된 ‘인권’이라는 개념과 그 문제의식이 전통적 신학의 입장에서는 낯설었기 때문이다. 또한 프랑스혁명 등 근대적 인권 개념을 형성한 일련의 정치적 혁명들이 지닌 반그리스도교적 성격 또한 그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근대의 정치혁명을 뒷받침한 계몽주의 자체가 성서 및 신학의 유산을 재해석하는 측면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 종교개혁이 진정한 근대적 주체로서 개인의 발견을 초래한 측면에 대한 인식이 점차 부각하면서 그 입장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보편적 인권의 요구는 복음의 진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점차 여겨지게 되었다. 여기에 <세계인권선언>의 탄생배경이 되었던 세계전쟁과 전체주의의 끔찍한 경험은 그리스도교 신학에도 결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학은 보편적 인권의 요구를 성서에 부합할 뿐 아니라 복음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확고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천부인권 개념과 오늘날 역사적ㆍ사회적으로 형성된 인권 개념의 관계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권을 정당화하는 근거의 차이가 인간 존엄성의 엄연한 진실을 부정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오늘날 신학적 입장에서 인권의 정당화 문제는, 한편으로 역사적ㆍ사회적으로 형성된 인권 개념과 소통하면서 그 고유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 근거를 모색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성서에서 보편적 인권의 근거로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른바 천부인권의 근거가 되는 하느님의 형상 개념이다(창세 1:26-27). 성서의 창조론은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중요한 초점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과 연대 가운데서 책임적인 존재로서 하느님의 형상을 구현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신학적인 의미에서 인간이 부여받은 하느님의 형상은 인권의 가장 근본이 되는 근거이다. 이 개념은 한편으로 피조된 인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의 고귀함을 승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 인권의 신학적 근거가 된다.
그 하느님의 형상이 온전히 구현되지 않고 지배와 억압으로 갈등을 겪는 인간의 역사적 현실 가운데서, 성서는 하느님이 억압받는 백성을 선택하여 계약을 맺고 그들을 해방하였다고 증언한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생존과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인간사회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룬다는 성서의 근본정신은 율법과 예언의 핵심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함으로써(마태 7:12, 19:19) 인간들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존엄한 존재가 되는 관계를 형성할 것을 가르쳤다. 나아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부정당한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자 하였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쳤는가 하면(마태 25:40), 스스로 죄인과 가난한 자, 과부와 고아, 억압당하는 이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였다. 예수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한 영혼의 소중함을 일깨운 것(마태 10:28; 누가 12:4-5, 누가 15:1-7) 역시 그 어떤 외적 폭력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없는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마가 2:27)는 말은 실정법적 제도의 폭력에 휘둘려서는 안 될 인간 삶을 환기한다. 그것이 복음의 진실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다는 것을 역설하였다(갈라 3:28-29). 사도 바울이 말한 인의론(認義論)은 일체의 자격이나 업적과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강조한 점에서 보편적 인권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사실 보편적 인권에 대한 성서적ㆍ신학적 근거는 매우 확고하며, 그 전거를 찾자면 넘쳐날 정도로 풍부하다. 그것은 보편적 인권의 요구가 그야말로 세계적 차원에서 당연시되는 규범적 요구로 받아들여지기 이전부터 확인된 사실이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형성될 때 인권을 옹호하는 매우 다양한 종교적 전통의 지혜들이 참조되었을 뿐 아니라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교적 유산 또한 중요한 몫을 차지하였다(Ishay, 68-70). 근대의 정치혁명 가운데 프랑스혁명의 반그리스도교적 성격이 종종 강조되기는 하지만, 영국과 미국의 정치혁명 등에서 그리스도교적 유산이 재해석되어 영향을 끼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근대적 인권 개념의 형성 과정 그 자체 안에서 그리스도교적 유산은 적극적으로 재해석되어 온 것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주제로 삼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신학적으로 검토할 때 어떤 점을 주목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때 보편적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하겠지만, 국가의 안보를 절대시하면서 인권을 유린하는 제도와 현실에 대해서는 그에 걸 맞는 접근방법이 요청된다. 보편적 인권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확인하는 것에서 나아가 국가와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욱 분명히 해야 할 필요성이다.

2. 하느님의 주권과 지상의 국가권력

신학적 입장에서 국가보안법을 정면으로 다루고자 한다면 인간의 삶에 앞서는 국가안보의 정당성에 관한 성찰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과연 국가권력의 절대화를 뒷받침하는 법률이 정당성을 지닐 수 있는지부터 문제시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와 관련하여 매우 오랫동안 깊은 통찰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그에 따라 풍부한 지혜를 쌓아 왔다. 그리스도교의 역사 자체가 그에 관한 분투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국가권력에 대한 통찰은 신앙의 중심적 과제였다.
우리 현실에서 국가보안법에 관한 신학적 논고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에 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1970년대 사실상 헌정질서를 유린한 유신체제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국민을 억압하고 스스로의 체제를 절대시할 때 이에 맞선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은 국가권력의 절대화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김삼웅, 217).

“인간의 기본권은 국가가 있기 이전에 하나님께 받았다. 국가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인간의 기본권인 생명과 재산과 자유를 지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축복받은 상태를 즐길 수 있게 보장하는 정치적 한 단위다. 정부는 이와 같은 목적으로 나라 살림을 위임받은 공복이다. 따라서 국가와 정부는 차원이 다르며 정부에 대한 충성이 곧 국가에 대한 충성이 아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왔다’(로마 13장)는 말은 권세에 대한 복종을 말하기에 앞서 집권자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집권자는 위와 같은 기능을 위임받은 자로서 그 한계 안에서만 그 권세를 행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의 기본권인 생존과 자유를 뺏는 권세는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것이다. 절대권은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절대권을 도용하여 상대적인 것이 절대화할 위험성을 막기 위해 땅 위에 어떠한 하나님의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십계명). 그리스도교는 상대적인 것이 절대화된 것을 우상이라 하고 그것과의 투쟁을 지상명령으로 삼는 전통을 갖고 있다.”(<한국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성명> 1974. 11.)

하느님의 주권 아래서 지상의 권세, 곧 국가권력의 한계를 설정한 그리스도교의 입장은 오랜 기원을 갖고 있다(이하 최형묵2 참조). 그 입장은 성서적 신앙을 형성한 원초적인 사건, 곧 출애굽의 역사에서부터 비롯되었고 이후 지속된 제국과 국가권력의 횡포에 맞서면서 더욱 강화되었다(민영진, 66).
성서에서 하느님의 주권 개념은 인간사회 안에서 지배와 억압을 부정하고, 따라서 하느님 앞에서 그 백성이 모두 동등한 주체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증하는 근거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백성이 제국의 권력체제로부터 탈출하여 해방된 평등주의 공동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확립되었다. 그 의의는 사사 기드온 이야기(사사 6-8장)에서, 그리고 현실적 요구로서 왕권체제의 수립 요구에 맞선 사무엘의 경고(삼상 8:4-17)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성서는 고대 근동에서 신의 주권이 지상 국가의 이념을 정당화해준 것을 거부하고, 백성을 위하여 권력을 제한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성서는 하느님의 주권에 의한 제한된 왕권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Pixley, 37). 근대 서구의 정치적 혁명과정에서 등장하여 오늘날 국가권력의 일방적 집중을 견제하는 장치로서 일반화된 삼권분립의 정신은 이와 같은 성서의 제한된 권력 개념과 무관하지 않다(Agamben, 13).
하느님의 주권 개념은 국가권력이 형성된 것과 동시에 등장한 예언자들의 선포에서도 일관된 핵심이었다. 예언자들에게서 하느님의 주권은 백성들 사이에서 정의실현 요구로 구체화되었다. 하느님의 주권은 정의의 근거이자 국가권력의 횡포에 대한 방패막이였다. 가난한 자들의 권리를 짓밟고 불의를 일삼는 국가권력에 대한 예언자들의 질타는 얼마나 신랄한가! 스스로를 절대시하며 불의를 저지르는 국가권력은 설령 그것이 민족적 정치공동체의 한 형식이라 하더라도 부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예레 21장 등). 결국 현실의 권력체제가 정의를 이룰 가능성이 희박해졌을 때 하느님의 주권 개념은 ‘새 하늘 새 땅’으로 표상되는 하느님 나라와 메시아 통치에 대한 대망으로 급진화한다(이사 65:17 등).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구약성서의 입장은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로 재확인되고 강화되었다. 예수의 말씀과 삶의 핵심으로서 하느님 나라는 궁극적 목적으로서 종말론적 성격을 지녔고, 그 나라와 지상의 나라는 화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의 통치자들에 대한 비판(마가 10:42), 빌라도와의 대화 가운데 당신의 나라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한 것(요한 18:36)은 하늘의 나라와 땅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입장을 분명히 보여 준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에 대한 논란(마가 12:13-17; 마태 22:15-22; 누가 20:20-26)은 흔히 땅의 나라와 하늘의 나라가 병존하는 현실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황제의 것에 골몰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의 것을 강조한 것으로 봐야 한다.
사도 바울은 기본적으로 종말론적 이상으로서 그리스도의 주권에 의한 세상의 통치를 주장하였지만(고전 15:24; 골로 2:10,15 등) 또 다른 한편 권위에 대한 복종을 주장하였다(로마 13:1-7). 이로부터 로마의 ‘황제숭배’는 거부하지만 제국 내의 ‘공공질서’를 용인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태도가 결정되었다(Troeltsch, 204-205). 권위에 대한 복종을 말한 사도 바울의 주장은 끊임없는 주석상의 문제를 안고 있는데(Pohle, 14), 그 주장은 가이사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구분한 예수님의 말씀과 더불어 교회역사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와 관련하여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느님의 주권 또는 그리스도의 주권과 더불어 국가권력이 병존할 수 있다는 입장이 형성되었다. 이는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포기를 뜻하지 않는다. 공동선 또는 공공성의 실현 요구에 부합하는 한 국가권력의 존재가 용인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하늘의 나라와 땅의 나라, 하느님의 나라와 인간의 나라에 대한 관계설정 문제는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어 왔고, 역사적 국면에 따라 각기 그 해법이 강구되어 왔다. 그 가운데서 주요 관심사는 세속국가와 동일시되지 않는 하느님 나라를 구별하고 과연 하느님의 주권이 어떻게 땅의 현실에서 구체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南原繁, 62). 물론 중세기에 하느님 나라를 대리하는 것으로 간주된 교회가 독단에 빠져 세속국가를 지배하는 양상을 띠기도 하였다. 그것은 사실상 하느님 나라가 완전하게 세속 국가권력의 속성에 통합되는 자가당착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 과오를 넘어서게 하는 근거가 되었고 국가권력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를 가다듬게 하는 계기를 부여하였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인은 어떤 권위에 복종하고 저항할 것인가를 부단히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최형묵3, 95).
근대 헌정국가가 등장한 이래 오늘날 정교분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종교 또는 교회로부터 국가의 분리를 뜻하며(중세적 질서의 종식) 또한 역으로 국가에 의한 종교 또는 교회의 간섭(신앙의 자유 침해 등)을 배제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와 종교가 무관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양자는 분리되어 있으되, 인권의 보장 등 공동선의 실현을 위한 목적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는 한편 역으로 양자 가운데 어느 한편이 그 목적을 위배할 때 피차간 저항과 간섭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는 세상의 모든 영역에 관철되는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그것이 배타적 독단이 아니라 다른 신앙과 신념체계를 지닌 사람들과 공존하는 현실에서 보편적 공동선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과제를 오늘 그리스도인은 짊어지고 있다.
요컨대 그리스도교 신앙의 입장에서는 그 자체의 고유한 목적으로서 ‘국가보안’이라는 개념 자체가 용인되지 않는다. 그것이 용인될 수 있다면, 그것은 국가가 공동선에 부합하는 정의를 이룸으로써 하느님의 정의를 이루는 수단으로서 복무하는 조건 안에서일 뿐이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그 평가를 위하여 국가보안법의 기원과 적용, 그리고 그것이 지니는 문제점을 간략히 살펴본다.


III.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보안법

1. 국가보안법 제정과 남용의 역사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1일 대한민국 법률 제10호로 제정되었다.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었다(황동하, 4). 일제의 잔재인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모방한 그 법은 ‘형법이 제정되기 전 건국 초기의 비상사태에서만 적용되는 임시조치법’으로서 한시적인 성격을 지녔다(민변1, 14). 그 제정 배경에는 명백한 정치적 동기가 있었다. 1948년 8월 정부수립 직후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이 시행되자 위기에 처한 집권세력이 10월 19일 발발한 여순사건을 빌미로 서둘러 제정한 것이다. 반민족 행위자 처벌 정국을 반공 정국으로 바꾸려는 것이 그 정치적 동기였다(민변1, 13).
1953년 휴전협정 직전 형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전시의 치안 상태 및 국민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을 고려한다는 명분으로 존속되었다(민변2, 14). 애초 6개조에 불과했던 그 법은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더욱 확대되고 보강되었다(황동하, 5).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그 해 7월 3일 별도의 반공법을 제정하여 국가보안법을 보완하였다. 국가보안법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목적”이 있는 행위만을 처벌하는 것이었지만, 반공법은 목적을 따지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언행 자체를 처벌대상으로 삼는 포괄적 성격을 지녔다. 그 포괄적 처벌조항은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반공법을 국가보안법으로 흡수 통합할 때 그대로 반영되었다. 고무ㆍ찬양, 회합ㆍ통신, 편의제공, 불고지죄 등 악명을 떨치고 있는 그 조항들이다(황동하, 9).
국가보안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제약하는 가운데 정권유지를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되어 왔다. 사실상 이적단체로부터 국가를 보호한다는 목적보다는 정권에 저항하는 행위와 노동운동을 포함한 민중운동을 탄압하고 나아가 국민의 사상까지 통제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어 왔다(서희경, 436). 그것은 이념이 다른 타자를 악마화함으로써 증오와 적대를 제도화하는 폐해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생각과 말 자체를 통제의 대상으로 삼은 점에서 내면적인 양심의 자유까지 침해하고 있다(민변2, 15-70). 대한민국은 ‘이면헌법’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말(백낙청)은 헌법을 뛰어넘는 바로 그 국가보안법의 위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것은 남북간 체제 대결의 부차적 결과에 그치지 않고 사회 내의 여러 ‘분단’ 이데올로기를 조장하고 양산한다. 이른바 ‘남남갈등’을 조장할 뿐 아니라, 여러 차별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 예컨대 ‘빨갱이’ 또는 ‘종북주의자’라는 규정은 모든 합리적ㆍ윤리적 판단을 정지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그렇게 특정한 대상을 비인간화하는 논리는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1948년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이래 몇 차례 폐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74년이 지난 오늘 2023년에 이르기까지 폐지되지 않은 채 존속하고 있다. 첫 번째 기회는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때였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이유로 무산되었다. 두 번째 기회는 1988년 정부의 7.7선언을 통한 남북간 교류 확대와 동구권 국가들과의 수교 의지 천명, 그리고 1991년 남북간 유엔 동시 가입이 성사된 즈음이었다. 그때 역시 폐지되지 않았다. 1990년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 제7조의 제한적 적용을 전제로 한 한정합헌결정과 더불어 계속 존속한 국가보안법은 국민 내부 통제수단으로 위력을 발휘하였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국가보안법 개폐를 천명한 것은 세 번째 기회였다. 당시 정부의 여러 개혁입법들(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법, 언론법, 사학법)이 동시에 반대에 부딪힌 가운데 국가보안법 폐지는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게 존속한 국가보안법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존속하는 가운데 국민의 말과 행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민변1, 12-24; 민변2, 15-70).

“국가보안법은 해방 이후 냉전과 대결의 76년 역사 속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내면을 점령한 법이다. 국민 각자의 인권과 평등을 지켜주지 못하는 헌법을 밟고 올라 인간존엄을 파괴하고 사상ㆍ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평등권을 침해하면서도 그 침해의 부당성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든, 말 그대로 헌법 위의 법이다.”(민변1, 21)

2. 국가보안법의 법리상 문제점

국가보안법이 지닌 문제는 그 기원과 역사적 맥락, 특히 실제 적용된 사례와 그 맥락 등을 입체적으로 조명할 때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 사례들은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거니와(박원순2; 황동하 등), 이 글에서는 그 법리상의 문제점을 간략히 살펴보려고 한다. 이 역시 법조계와 법학계의 기왕의 연구를 통해 충분히 밝혀졌지만(박원순1ㆍ3; 민변1ㆍ2 등) 이 글의 논리전개 맥락상 필요한 범위 안에서 최소한으로 집약하고자 한다. 그 법리상의 문제점을 주목하면 어떻게 그렇게 불합리한 법률이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 법리상의 문제는 위헌성, 중복성, 상충성 등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박원순3, 15-62). 위헌성은 헌법에 위배되는 성격을, 중복성은 형사법과 중복되는 성격을, 상충성은 남북교류관계법 등 다른 법률과 충돌되는 성격을 말한다.
국가보안법은 헌법의 하위법이지만 사실상 헌법 위에 군림하면서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예컨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제10조), 신체의 자유(제12조), 양심의 자유(제19조), 언론ㆍ출판, 집회ㆍ결사의 자유 및 허가ㆍ검열의 불인정(제12조), 학문ㆍ예술의 자유 등을 유린해왔다(박원순3, 16; 민주법학, 15). 이는 여러 적용사례들을 통해 널리 알려져 왔다. 또한 국가보안법은 어떤 사람에게는 적용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원칙에 위배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 사례는 숱하게 많지만 1989년 평양축전의 같은 현장에 있었던 임수경은 처벌되고 박철언은 처벌되지 않은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른바 ‘통치행위’ 논리로 사법적 판단의 유보를 정당화하고 있지만, 이는 ‘행정의 법률에의 구속’이라는 근대 법치국가원리에 위배된다(박원순3, 27). 또한 국가보안법은 추상적이고 모호한 규정으로 죄형법정주의를 위배한다. 죄형법정주의란 유추해석을 동반하지 않고 명확하게 형벌의 성격을 규정하여야 하고 또한 그 형량이 적정하여야 하는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국가보안법은 그 요건에 부합하지 않고 그렇기에 수시로 오용되어 왔다(박원순3: 29-35). 이러한 문제를 야기하는 국가보안법의 핵심으로 반국가단체에 대한 이른바 찬양ㆍ고무를 처벌하는 제7조가 자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험 행동 이전에 생각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엄격히 제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헌법 제37조 2항), 국가보안법은 이를 현저히 위배하고 있다. 또한 기능상 헌법재판규범의 지위를 갖는 국제인권조약에도 위배되고 있어 대한민국이 가입한 각종 인권 규약 기구로부터 끊임없이 폐지요구를 받고 있다.
1990년 헌법재판소의 최초 위헌심사에서는 한정합헌이라는 옹색한 결정이 내려진 바 있고, 현재 여덟 번째 위헌심사가 진행되어 그 판결이 예정되어 있으나 아직까지 유보상태에 있다. 한정합헌의 논거는 위헌의 소지가 있으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경우에 한정하여 적용되고 있고, 적용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제한의 요건을 엄격히 따른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박원순3, 43). 그러나 그 신뢰가 근거 없다는 것은 실제 적용사례들을 통하여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색한 한정합헌 논리가 가능하게 된 것은 대한민국 헌법 자체가 지니는 모순된 조항에 근거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과 제4조의 통일조항의 충돌이다. 분단체제하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조항이 문제시될 것은 없으며, 이 조항에 비추어 볼 때 국가보안법은 명백히 위헌이다. 문제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한다는 조항이 과연 실효성 있는 조항인가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조항 때문에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논리가 성립하고 이에 따라 국가보안법이 정당화되는데,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논의들이 있다.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등 역사적 환경의 변화로 이미 사문화된 조항으로 보아 폐기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설령 그 조항이 존속하고 있다 하더라도 어떤 조항이 헌법의 근본가치개념에서 우월한 효력을 지니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복잡한 법리적 논의가 필요할 수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사실상 주권국가로 간주되는 북한과 남한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합의에 따라 헌법적 규범 역시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다(박원순3, 17-23). 과거 동서독이 그러했듯 현재 남북관계는 주권국가로서 상호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면 동시에 분단국가로서 그 관계의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민변1, 286-291). 이에 대한 해법이 과제이지 현재의 모순된 헌법 조항의 일방에 의존하여 국가보안법의 합헌성을 인정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다음으로 국가보안법은 대부분의 조항이 형법 및 기타 형사특별법규와 중복되어 있다. 국가보안법이 형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임시조치법으로 제정된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형법이 제정되고 나면 마땅히 폐지되었어야 했다. 국가보안법의 해당 사항은 형법과 형사특별법규로 충분히 규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존속하는 이유가 뭘까? 딱 한 가지 조항에서 차이가 있다. 바로 제7조 1항의 찬양ㆍ고무ㆍ동조죄이다(박원순3, 48; 홍성우, 28).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험 행동 이전에 생각과 말 자체만으로 단죄할 수 있는 근거이다. 국가보안법은 바로 이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법 그 자체로 웅변해 주고 있다. 게다가 국가보안법은 특별형사소송규정을 두어 일반 형사소송법의 예외를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다. 참고인의 구인ㆍ유치, 구속기간의 연장, 공소보류 등이 그 예이며, 심지어는 담당수사관에 대한 포상 규정까지 두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공안수사기관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이른바 공안사건의 남용을 조장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민변3, 429-430).
끝으로 국가보안법은 1990년 8월 1일부터 시행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과 정면으로 상충되고 있다. 이 법률은 특별히 1988년 7.7 선언과 더불어 변화된 남북관계와 국제질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그 법률이 사실상 국가보안법 적용의 예외를 두고자 하는 방편으로 의도되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앞서 말했듯 그간 정부는 ‘통치행위론’으로 당국자의 교섭행위를 정당화해왔다. 그 옹색한 논리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법률이 제정된 것이다. 변화된 남북관계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되었을 것을, 여전히 존속시킨 채 그 적용의 예외를 보장하는 법률을 따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남북간의 관계를 대등한 법적 당사자로 전제하는 논리 위에 있는 법률, 그리고 이와 상반되는 적대적 관계의 논리 위에 선 법률이 병존하는 상황이 되었다(박원순3, 61). 이는 모두에게 법 앞에서의 평등을 구현해야 할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하고 그 대상에 따라 법률을 각각 임의적으로 적용하는 사태를 야기하고 있다. 정부의 교섭과 기업인의 교류는 합법화되지만, 민간의 통일운동은 규제의 대상이 되는 모순된 현실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기이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 밖에도 국가보안법의 법리상의 문제와 그 적용효과에 대해서는 더 지적해야 할 사항이 많다. 예컨대 잠입ㆍ탈출, 회합ㆍ통신, 편의제공, 불고지 조항 등은 그 폐해가 심각하다. 누군가를 돕는 것도 죄가 된다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며, 가족에 대한 불고지가 죄가 된다면 그것은 반인륜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제껏 국가보안법은 주로 정권에 저항하는 이들을 옥죄는 수단이 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북한을 탈출한 이들이 가족간의 재회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그 법률의 저촉을 받아 고통을 겪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가안보를 목적으로 이처럼 광범위하게 기본권이 제약 당하고 심지어는 반인륜이 정당화되는 현실이 지속되어야 한단 말인가?


IV. 법치주의와 인간의 존엄

오늘날 헌정국가 안에서 어떤 법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실정적 효과를 지닌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이른바 법치주의라는 개념으로 정식화되어 있다. 한국 사회에서 법치주의 개념은 심각하게 오용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법질서에 대한 시민의 복종으로 한정되는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다.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 곧 최고의 법익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권력의 임의적 남용을 방지하는 법치의 이념은 인간존엄을 실현하는 것을 그 기본 목적으로 한다. 근대의 정치적 혁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계몽의 정신과 자연법에 대한 재해석으로부터 형성된 인간존엄의 실현이 근현대 헌정국가가 지향하는 법치주의의 핵심에 해당한다.
“인간의 존엄은 침해될 수 없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이다.” 오늘날 독일의 기본법 제1조 제1항은 그 정신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물론 독일의 기본법은 나치정권의 구체적인 비인간성에 대응하고자 했던 역사적 정황을 반영하고 있다(Maihofer, 20). 오늘날 헌정체제를 이루고 있는 모든 나라들은 각기 저마다의 역사적 정황을 반영하여 헌법을 구성하였기에, 그 나름의 독특성에 따른 차이를 지니고 있다(차병직; 김명주). 그러나 어떤 경우든 예외 없이 그 구성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을 요체로 하고 있다. 인간존엄을 바탕으로 하는 인권으로서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은 오늘날 헌정국가의 핵심적 의무에 해당한다. 각각의 법률들은 그 나름의 목적을 지니겠지만, 인간존엄의 정신을 그 밑바탕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이 때 인간존엄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존엄이 극단적으로 말살되는 한계상황에서 그 의미를 가장 강렬하게 체감한다는 것이다(Maihofer, 20). 흔히 통용되는 ‘인간답지 못한 행동’이나 ‘인간답지 못한 상황’은 자기 스스로의 행위로 자신을 인간 이하로 전락시키거나 어떤 상황에 따라 인간 이하의 상태에 처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두고 인간존엄의 ‘침해’라고 하지는 않는다. 법이 보호하는 인간존엄의 침해는 “타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위태롭게 하거나 파괴할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것은 곧 “한 개인의 행동이나 상황 그 자체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타인에 대한 행동 또는 타인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다(Maihofer, 22). 그것은 한 인격체의 운명이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타인의 의지에 완전히 내맡겨진 상태, 그리고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 없고 무력하게 굴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요컨대 타의에 의해 근본적인 인격성을 부정당하는 상태이며, 그 상태에서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연대성의 파괴 상태를 뜻한다. 그것은 곧 “나의 실존과 공존의 토대가 되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와 타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Maihofer, 26-27).
오늘날 헌정국가의 법치주의 이념은 “인간의 존엄에 반하는 삶을 강요하는 모든 법적 상태를 폐기하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법적 상태를 창출”하는 것을 지향한다. 그것은 곧 인간존엄을 파괴하는 특정한 행동으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존엄을 보장하는 특정한 상태를 형성하는 것을 뜻한다(Maihofer, 63).
신학적 입장에서 볼 때 과연 인간존엄의 이상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미 앞에서 전제한 신학적 입장에서 볼 때 그 정당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경험적 확신에 해당하는 신앙에 따른 가치규범과 역사적ㆍ사회적으로 형성된 보편적 가치규범의 관계는 언제나 신학적 논란의 대상이 되지만(최형묵1, 39이하), 그 상호간의 적극적 관계는 가능하며 또한 현실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신학적 판단은 항상 역사적ㆍ사회적 현실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존엄의 이상과 관련한 신학적 성찰을 시도하는 데서 나치의 국가권력에 온 몸으로 맞서 싸웠던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hnhöffer)의 통찰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는 오늘 현실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인간존엄이 침해되는 현실에 대한 신학적 판단을 시도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영감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현대의 역사적 지평에서 본회퍼는 그간 개신교 신학의 전통에서 소홀히 되어 왔던 ‘자연적인 것’을 재조명하여 인의론(認義論)의 관점에서 ‘자연적인 삶’의 권리가 무엇인지 규명하였다. 본회퍼에게서 “자연적인 것은 타락한 세상에서 하느님에 의해 유지되는 생명의 형태로,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인의, 구원, 갱신을 지향한다”(Bohnhöffer, 201; 강원돈2, 202). 본회퍼에 따르면 이와 같은 생명의 형태, 곧 자연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어떤 경우든 목적으로 존재한다. 육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그 삶이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삶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뿐 아니라 정신적인 삶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본회퍼가 예시하고 있는 육체적 삶의 권리에는 자의적인 살해를 당하지 않을 권리, 생식의 권리, 강간, 착취, 고문, 자의적 체포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들이 포함되며, 정신적인 삶의 권리에는 판단하는 것, 행동하는 것, 향유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본회퍼가 자연적인 것을 주목하고 자연적인 삶의 권리를 옹호한 것은, 자연적인 것을 타락과 동일시하여 부정적인 것으로만 간주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 의미를 복음의 지평에서 회복하려 한 데 있다. 그 의도는 ‘자연적인 것’을 “타락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를 지향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이를 “타락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를 거부하는 것”으로서 ‘비자연적인 것’을 대비한 데서 분명해진다(Bohnhöffer, 199-200). 여기서 ‘비자연적인 것’은 ‘자연적인 것’을 훼손하는 자의적인 시도를 말하는 것으로, 나치의 국가적 폭력의 시도는 그 대표적 실례에 해당한다.
이미 앞서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하였지만, 인간존엄을 극단적으로 파괴한 국가권력에 저항하였던 본회퍼의 통찰은 오늘의 역사적 맥락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인간존엄이 파괴되는 현실에 대한 신학적 판단의 근거를 더욱 분명히 해주고 있다. 그 신학적 입장에서 보면 인간존엄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반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형상을 복원하는 것을 뜻한다. 바로 그 신학적 입장에서 우리는 인간존엄을 침해하는 법률의 부당성을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V. 마치는 말

이상과 같이,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수용하는 신학적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주로 법리상의 문제와 실제 적용에서 나타나는 오용의 폐해를 주목하였다. 그토록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 법률이 어떻게 지금까지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존속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법률 자체가 지니는 법리상의 문제에 대한 진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분단 상황에서 반공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운 지배체제의 성격을 분석하는 것을 동반할 때 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신학적 입장에서는 그 반공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은 한 축으로서 보수교회의 성격을 다루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의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이 글은 제한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국가보안법에 관한 신학적 논고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 본격적인 논의의 물꼬를 여는 것으로 이 글은 의의를 지닌다. 성서적 지평에서 볼 때 국가보안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논지이다. 역사적으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매우 당대의 맥락에 따라 다양한 입장이 개진되었지만, 어떤 경우든 일방적으로 국가의 절대성을 용인하는 신학적 입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글이 확인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지이다. 이 글은 국가보안법에 관한 신학적 논의의 서설에 불과하지만, 향후 다양한 이에 대한 비평과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국가보안법 폐지의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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