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의 직제와 의사결정 구조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6-05-13 18:13
조회
149
2026년 상반기 천안살림교회 수요 인문강좌
종교영화 보며 우리 교회 깊이알기
2026.5.13.(수) 오후 7:00시 / 최형묵 목사
우리 교회의 직제와 의사결정 구조
1. 현실 교회 구조의 상대성
한국 기독교의 교회 구조는 철저하게 위계화되어 있다. 그 위계화된 구조 안에서 능동적 주체로서 목회자와 피동적 대상으로서 평신도의 관계가 당연시되고 있고, 신도들 사이에도 일정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가톨릭교회는 사도직의 적법한 계승자로서 성직자의 역할을 강조하고 성직자 중심의 위계적 교회구조를 갖추고 있다. 개신교는 교파마다 다양한 교회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대부분 평신도의 대표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러한 교회 구조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장로교를 들 수 있다. 장로교는 평신도의 대표성을 반영한 당회의 구조를 갖춘 점에서 가톨릭의 성직자 중심의 교회 구조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지만, 여전히 소수의 권한을 보장하는 과점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성직자 중심의 독점체제에서 소수 대표들의 과점체제로의 변화는 진일보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넓은 의미의 독점체제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 교회의 구조는 시대적 산물로서 상대적인 의미를 지닐 뿐이다. 항구적으로 영속할 수 있는 교회 구조란 없다. 가톨릭교회는 봉건적 위계구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고, 개신교는 근대의 대의정치 구조를 구현하고 있다. 오늘날 대의정치도 과연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인지 의문시된다. 교회 역시 평신도의 주체성 강화를 통한 수평적 교회 구조를 만들고 누구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구조를 갖추는 과제를 안고 있다.
2. 회중의 대표성을 보장하는 교회 정치 구조
한국 교회가 경직화된 교회 구조를 고수하고 있는 동안에도 에큐메니칼 세계 교회 기구들은 오래 전부터 교회 안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대부분의 에큐메니칼 세계 교회 협의체들은 성직자 중심의 대표권을 지양하고 비례대표제를 통해 평신도의 참여를 보장하는 추세다. 예컨대 해당 협의체의 총회를 구성할 때 그 가맹 교단의 총대를 목사, 청년, 여성 순으로 안배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 에큐메니칼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의 교회들 가운데서마저도 그와 같은 교회 정치 구조를 갖춘 교단은 전혀 없다. 아직도 여성 안수를 인정하는 교단보다는 인정하지 않는 교단이 더 많고, 교회 정치에 목사와 장로를 제외한 여타 평신도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교단도 거의 없다. 기장이 수 년 전 소수의 평신도 대표권을 인정한 경우가 드문 사례일 뿐이다. 대체로 특정한 위원회에 전문가로서 평신도들이 참여하는 정도이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기본적으로 당회-(시찰회)-노회-총회 구조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협의체로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있다. 이 정치 구조에서 그 대표권이 사실상 특정한 연령대의 특정한 남성 목사와 장로 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 교회의 대표권, 그 정치 구조는 불변의 정당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오늘의 추세에서 보거나 하느님 앞에서 공평한 은사의 선용이라는 신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마땅히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3. 공평한 은사의 배분으로서 교회 직제
신약성서가 반영하고 있는 사도시대 전후의 교회 직분은 비교적 단순하다. 사도시대, 곧 예수의 제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말씀을 전파하는 사도와 주로 구제 임무를 담당하는 집사가 있었다. 사도시대 직후에는 집사 외에 감독과 장로가 혼재되어 있었다. 이후 감독은 사제를, 장로는 평신도 회중 가운데 원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물론 성서의 근거 여부만 가지고 교회 내 직분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교회의 제도화가 불가피한 것이었다면 그 불가피한 현실 안에서 어떤 합리성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성서가 애초 지향했던 은사의 공평한 배분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인지 따져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교파의 특성에 상관없이 남용되는 직분들은 은사의 효율적 배분 수단으로서 의미를 지니기보다는 그 위계의 등급을 세분화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사실상 서열 관계를 정당화하는 직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우리 교회가 직분을 최소화하고 호칭을 ‘교우’로 통일한 것도 그런 시도 가운데 하나이다. 전통적인 기존 교회의 직제를 수용하면서도 직분을 공평한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운용하려는 것도 같은 뜻을 지닌다. 장로의 임기제, 또는 비례대표 원리를 적용한 장로 선출등이 그러한 예이다. 또한 대표권의 행사 방식 및 의사 결정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들도 이에 해당한다. 현재 대개 장로교의 경우 헌법상 당회(堂會)는 목사와 장로로, 제직회(諸職會)는 집사 이상의 직분을 받은 회중들로, 공동의회(共同議會)는 세례를 받은 모든 회중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가능한 한 전교인의 총의를 모을 수 있는 공동의회를 사실상 최고 의결기구로 재설정하였다. 만일 교회의 규모상 전교인의 총의를 상시적으로 모으는 것이 어려워 의사결정을 대의기구의 효율성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한다면 그 대의기구 자체를 기존의 직분 중심과는 달리 활동 단위 중심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 교회가 운영위원회를 둔 것도 그 예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도들은 교회의 규모와 무관하지 않다. 대부분의 대형 교회는 목회자의 제왕적 카리스마에 의존하기 때문에 목회자와 신도들 사이의 수직적 관계가 고착되어 결과적으로 교회 구성원들은 침묵하는 다수로만 머물러 있다. 그 안에서 교회의 변화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도 희박하다. 오늘 현실에서 대형화된 교회들이 권력을 향한 욕망을 부추기는 반면, 의미 있는 변화들은 작은 규모의 교회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4. 능동적 주체로서 평신도의 자각
교회의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여러 기제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 자체의 자각이 필수적이다. 그 자각은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문제시되고 있는 한국 기독교의 권력화 현상은 특정한 목회자들의 권력 욕망 때문에 빚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화된 교회 질서 안에서 목회자와 평신도의 공모 관계 안에서 빚어진 현상이다. 따라서 권력을 향한 공모의 구조를 해체하고 공평한 관계 형성을 향한 연대의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 전체의 자각과 노력이 따라야 한다.
종교영화 보며 우리 교회 깊이알기
2026.5.13.(수) 오후 7:00시 / 최형묵 목사
우리 교회의 직제와 의사결정 구조
1. 현실 교회 구조의 상대성
한국 기독교의 교회 구조는 철저하게 위계화되어 있다. 그 위계화된 구조 안에서 능동적 주체로서 목회자와 피동적 대상으로서 평신도의 관계가 당연시되고 있고, 신도들 사이에도 일정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가톨릭교회는 사도직의 적법한 계승자로서 성직자의 역할을 강조하고 성직자 중심의 위계적 교회구조를 갖추고 있다. 개신교는 교파마다 다양한 교회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대부분 평신도의 대표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러한 교회 구조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장로교를 들 수 있다. 장로교는 평신도의 대표성을 반영한 당회의 구조를 갖춘 점에서 가톨릭의 성직자 중심의 교회 구조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지만, 여전히 소수의 권한을 보장하는 과점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성직자 중심의 독점체제에서 소수 대표들의 과점체제로의 변화는 진일보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넓은 의미의 독점체제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 교회의 구조는 시대적 산물로서 상대적인 의미를 지닐 뿐이다. 항구적으로 영속할 수 있는 교회 구조란 없다. 가톨릭교회는 봉건적 위계구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고, 개신교는 근대의 대의정치 구조를 구현하고 있다. 오늘날 대의정치도 과연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인지 의문시된다. 교회 역시 평신도의 주체성 강화를 통한 수평적 교회 구조를 만들고 누구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구조를 갖추는 과제를 안고 있다.
2. 회중의 대표성을 보장하는 교회 정치 구조
한국 교회가 경직화된 교회 구조를 고수하고 있는 동안에도 에큐메니칼 세계 교회 기구들은 오래 전부터 교회 안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대부분의 에큐메니칼 세계 교회 협의체들은 성직자 중심의 대표권을 지양하고 비례대표제를 통해 평신도의 참여를 보장하는 추세다. 예컨대 해당 협의체의 총회를 구성할 때 그 가맹 교단의 총대를 목사, 청년, 여성 순으로 안배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 에큐메니칼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의 교회들 가운데서마저도 그와 같은 교회 정치 구조를 갖춘 교단은 전혀 없다. 아직도 여성 안수를 인정하는 교단보다는 인정하지 않는 교단이 더 많고, 교회 정치에 목사와 장로를 제외한 여타 평신도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교단도 거의 없다. 기장이 수 년 전 소수의 평신도 대표권을 인정한 경우가 드문 사례일 뿐이다. 대체로 특정한 위원회에 전문가로서 평신도들이 참여하는 정도이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기본적으로 당회-(시찰회)-노회-총회 구조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협의체로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있다. 이 정치 구조에서 그 대표권이 사실상 특정한 연령대의 특정한 남성 목사와 장로 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 교회의 대표권, 그 정치 구조는 불변의 정당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오늘의 추세에서 보거나 하느님 앞에서 공평한 은사의 선용이라는 신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마땅히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3. 공평한 은사의 배분으로서 교회 직제
신약성서가 반영하고 있는 사도시대 전후의 교회 직분은 비교적 단순하다. 사도시대, 곧 예수의 제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말씀을 전파하는 사도와 주로 구제 임무를 담당하는 집사가 있었다. 사도시대 직후에는 집사 외에 감독과 장로가 혼재되어 있었다. 이후 감독은 사제를, 장로는 평신도 회중 가운데 원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물론 성서의 근거 여부만 가지고 교회 내 직분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교회의 제도화가 불가피한 것이었다면 그 불가피한 현실 안에서 어떤 합리성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성서가 애초 지향했던 은사의 공평한 배분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인지 따져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교파의 특성에 상관없이 남용되는 직분들은 은사의 효율적 배분 수단으로서 의미를 지니기보다는 그 위계의 등급을 세분화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사실상 서열 관계를 정당화하는 직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우리 교회가 직분을 최소화하고 호칭을 ‘교우’로 통일한 것도 그런 시도 가운데 하나이다. 전통적인 기존 교회의 직제를 수용하면서도 직분을 공평한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운용하려는 것도 같은 뜻을 지닌다. 장로의 임기제, 또는 비례대표 원리를 적용한 장로 선출등이 그러한 예이다. 또한 대표권의 행사 방식 및 의사 결정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들도 이에 해당한다. 현재 대개 장로교의 경우 헌법상 당회(堂會)는 목사와 장로로, 제직회(諸職會)는 집사 이상의 직분을 받은 회중들로, 공동의회(共同議會)는 세례를 받은 모든 회중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가능한 한 전교인의 총의를 모을 수 있는 공동의회를 사실상 최고 의결기구로 재설정하였다. 만일 교회의 규모상 전교인의 총의를 상시적으로 모으는 것이 어려워 의사결정을 대의기구의 효율성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한다면 그 대의기구 자체를 기존의 직분 중심과는 달리 활동 단위 중심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 교회가 운영위원회를 둔 것도 그 예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도들은 교회의 규모와 무관하지 않다. 대부분의 대형 교회는 목회자의 제왕적 카리스마에 의존하기 때문에 목회자와 신도들 사이의 수직적 관계가 고착되어 결과적으로 교회 구성원들은 침묵하는 다수로만 머물러 있다. 그 안에서 교회의 변화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도 희박하다. 오늘 현실에서 대형화된 교회들이 권력을 향한 욕망을 부추기는 반면, 의미 있는 변화들은 작은 규모의 교회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4. 능동적 주체로서 평신도의 자각
교회의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여러 기제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 자체의 자각이 필수적이다. 그 자각은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문제시되고 있는 한국 기독교의 권력화 현상은 특정한 목회자들의 권력 욕망 때문에 빚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화된 교회 질서 안에서 목회자와 평신도의 공모 관계 안에서 빚어진 현상이다. 따라서 권력을 향한 공모의 구조를 해체하고 공평한 관계 형성을 향한 연대의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 전체의 자각과 노력이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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