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대전일보 칼럼]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과 한일간의 화해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8-11-28 11:07
조회
237
대전일보 칼럼 06/ 2018년 11월 28일자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과 한일간의 화해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한일간 국가적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 가운데 지난 주간 일본을 다녀왔다. 교토지역 교회들과의 교류 20주년을 기리는 행사를 위해서였다. 그 의미에 걸맞게 한일간 평화적 교류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는 일정으로 꽉 차 있었다.

고대의 유적들을 들러보면서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긴밀한 문화적 교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통신사가 지나갔던 길목을 함께 걷고 그 기억을 되새기는 것 또한 의미 깊었다. 조선통신사를 통한 문화적 교류에 대해서는 익히 아는 터, 그 의의에 더하여 그것이 세계역사에서 드물게 200년 넘게 인접한 국가끼리 전쟁 없이 평화를 유지하게 한 외교적 지혜의 소산으로서 의의를 지닌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일본 속 재일동포의 삶의 터전을 살펴볼 때는 착잡한 심경을 떨칠 수 없었지만, 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예배를 드릴 때는 나라에 상관없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감동을 맛보기도 하였다.

한일 양국간 오랜 역사를 통해 갈등과 불화를 겪은 기간보다 실은 평화적 교류의 기간이 김에도 불구하고 오늘 여전히 국가로서 한일 양국 사이에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현대사의 불행한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탓이다. 특별히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양국간 합의에 대해 사실상 파기를 선언한 한국정부의 입장, 그리고 징용노동자의 피해배상에 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로 양국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나는 이번 교류 기간 협의회를 통해서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 수준에서 양국 교회간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일본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서의 이와 같은 기류가 일종의 민족주의적 편향의 발로로 보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 일관성 없는 한국정부의 혼란상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류가 촛불항쟁으로 표출된 민의를 따라 한편으로 남북간 평화체제를 지향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안팎으로 누적된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다는 것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 맥락에서 볼 때 현재 한일간의 문제는 단순히 민족주의적 갈등으로 환원되지 않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요컨대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사실상 합의 파기, 일제 강점기 징용노동자에 대한 배상 판결은 민주주의가 강화되는 가운데 국제적 차원에서 인정되고 있는 보편적 규범의 요구를 보다 분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보편적 규범은 이른바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시효를 두지 않고 회복의 정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징용노동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두고 일본정부의 입장에서는 한일간의 ‘1965년체제’를 기반으로부터 부정하는 것이라며 격한 반응으로 보이고 있지만, 정말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라면 1965년 한일협정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965년 한일협정이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미해결 상태로 남겨두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 문제가 그 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일본정부의 입장이 처음부터 일관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 협정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가운데 그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양국간의 지혜와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 문제는 현재 평화체제가 형성되는 가운데 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이뤄진다면, 그 시점에 또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마침 2018년 올해는 한일간 협력관계의 중대한 전환점을 이룬 김대중ㆍ오부치 게이조의 ‘한일공동선언 -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발표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것은 거시적 차원에서 한일 양국간의 이해관계의 일치점을 지향하는 한편 민주적 시민사회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동아시아 지역공동체 구축이라는 비전을 공유한 그 합의의 정신이 함축하고 있는 지혜를 오늘 되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양국의 교회는 물론 시민사회의 여러 차원에서 협력과 연대활동이 지속되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그 연대와 협력은 국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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