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천안살림교회 예배를 말한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0-01-01 02:13
조회
272
월간목회 2020년 1월호 원고

천안살림교회 예배를 말한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1.
처음 천안살림교회 예배에 참석하여 낯설어하는 경우가 있다. 그 시선에서 볼 때 뭐가 가장 낯설까?
아마도 맨 먼저 찬송과 악기일 것이다. 찬송가 밖의 노래가 불러지는가 하면 장구와 같은 전통악기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예배양식도 조금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간소화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본래 리마예식을 따라 진행되는 예배양식이 한국교회에서는 오히려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꼼꼼한 성서 본문주석에 이어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적용으로 이어지는 말씀에도 가끔 놀라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그 다음에 매주일 작성되는 공동기도문, 특정한 직분을 가진 이들로 제한되지 않은 회중기도, 그리고 종종 등장하는 평신도 설교, 한 달에 한 번 세례와 상관없이 모두 참여하는 성찬식도 놀람거리가 되는 것 같다.
그 놀라움이 반갑게 느껴지는 이들은 천안살림교회 교우가 되고, 끝내 낯설게 느껴지는 이들은 결국 교회를 떠난다. 그만큼 예배는 교회공동체 구성원에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신앙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직접적 계기라는 측면에서든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라는 측면에서든 예배는 교회공동체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더욱이 한 주간에 공동예배가 딱 한 번밖에 없는 천안살림교회에서 그 예배의 비중은 더욱 크다. 어린이와 청소년예배가 있지만 그것도 각각 참여자들에게는 유일하고, 수요성서연구 모임 및 그 밖의 독서모임 등은 모두 공부모임이니 예배는 아니다. 기도모임도 자발적 의사에 맡겨져 있으니 역시 공동예배는 아니다. 주일 오후나 저녁에도 별도의 예배는 없고 각 단위별 모임 등이 이뤄지고 있으니 주일 공동예배의 비중은 더욱 절대적이다.
일주일에 단 한 번의 예배는 그 만큼 마음과 정성을 집중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물론 다른 여러 모임들이 예배와 전적으로 무관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수요성서연구와 독서모임 등은 강의와 자유로운 토론으로 이어지는 공부모임이지만, 그 기회에 이뤄진 소통은 예배에서의 교감을 강화시켜주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2.
새 천년 첫 주일에 시작하여 이제 20주년을 맞이한 천안살림교회 예배양식은 중간에 약간의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거의 일관되게 지켜져 왔다.
기본적인 예배양식은 세계의 모든 교회가 공통으로 드릴 수 있는 예배를 지향한 리마예식의 취지를 따르되, 그것을 간소화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에큐메니칼한 세계교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공통의 예배정신을 따르려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천안살림교회는 가능한 한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공동체 참여’를 중심으로 하는 예배를 지향하고자 한다.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은 오늘의 시대상황에 대해 예민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뜻하는 한편 역사적으로 주어진 문화적 유산을 향유하고 그로부터 형성된 감성을 예배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뜻한다. 그 바탕 위에서 회중이 수동적 존재로 머무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드려 참여하는 예배로서 공동체 참여의 예배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예배는 마땅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그 핵심요체로 하고 있다. 그러기에 예배의 그 기본정신을 구현하되, 그 뜻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오늘의 예배를 구현하려고 한다. 역사적으로 돌이켜봤을 때 가톨릭교회가 ‘영성체’를 중심으로 하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를 구현해 왔다면, 오늘의 교회가 새로운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공동체의 동등한 참여를 중심으로 하는 예배를 드리지 못할 까닭은 없다.

3.
천안살림교회를 처음 찾은 이들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예배요소들을 대개 그 취지에 따른 시도들에 해당한다. 이제 그 의미에 대해 조금 부연하고자 한다.
먼저 가장 낯설게 느껴진다는 찬송가 밖의 노래들과 전통 악기의 사용에 관해 생각해 본다. 천안살림교회는 <살림의 노래>라는 고유한 찬송가를 갖고 있다. 기왕에 한국교회에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 밖의 노래로서 예배에서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 모아 역어낸 것이다. 애초 찬송가를 대체하는 취지로 엮어낸 것이지만 실제로는 기존 찬송가와 병행하여 사용하고 있다. 새로운 찬송가를 필요로 했던 것은 기존의 찬송가가 오늘 우리의 신앙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의 찬송가 가사가 지나치게 타계지향적이고 개인주의적 기복신앙에 치우친 것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다른 나라의 교회들도 꾸준히 새로운 찬송가를 엮어내고 있는 것도 한 자극의 계기였다. 그래서 엮어진 찬송가 안에는 민중적 복음성가 및 전통가락으로 만들어진 찬송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전통악기로 반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수밖에 없다.
예배양식이 기본적으로 리마예식의 취지를 따르고 있다는 것은 말씀과 성만찬을 동등한 비중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매주일 성찬을 나누고 있지는 못하고 한 달에 한 번 첫 주일에 나누고 있다. 이 성찬식은 세례와 상관없이 예배에 참석하는 회중 누구나 모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리는 그것이 세례와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참여하는 개신교의 예배정신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개방(open)’의 전통을 따르든 ‘제한(closed)’의 전통을 따르든 각기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겠지만, 우리는 한 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회중이라면 누구나 차별 없이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교회공동체의 정신을 온전히 구현하는 길이라 믿고 있다.
공동체 참여의 정신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예배의 구성요소는 직분에 제한받지 않는 회중기도와 종종 행해지는 평신도 설교이다. 천안살림교회의 공동예배중 대표기도는 장로 등 특정한 직분에 한정되지 않는다. 물론 세례를 받은 경우로 한정하기는 하지만 모든 신도는 원칙적으로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본인의 동의 여부를 거쳐 회중 대표기도를 맡는다. 정제된 언어로 준비된 기도는 맡은 당사자에게는 스스로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며, 회중 모두에게는 큰 감동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천안살림교회 구성원들이 어떻게 시대와 호흡하며 일상의 경험을 신앙적으로 성찰하고 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예배요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예배에서의 평신도의 적극적 참여와 능동성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평신도 설교이다. 매월 한 주일씩 신도주관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형편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 가톨릭의 경우 특수한 상황에서 평신도가 성사를 집행하는 권한을 인정하고 있지만, 오히려 만인사제직의 원리를 따르는 개신교에서 성례전을 평신도에게 허용하는 경우는 없다. 반면에 설교의 경우는 개신교에서 허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대개 미성년이 참여하는 예배에 한정되거나 성년이 참여하는 예배에서는 허용된다 하더라도 격을 달리한다. 하지만 안수받은 목회자의 말씀만 배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된다는 관념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평신도의 설교를 배제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집사 직분으로 불리는 스데반도 설교하였다(행 7장).
물론 전문적인 신학적 소양을 갖춘 목회자의 설교와 평신도의 설교가 그 성격이 같을 수는 없다. 평신도 설교는 삶에서 우러나오는 신앙고백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맡은 당사자에게는 회중기도를 맡았을 때보다 더욱 깊이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며 회중들에게는 삶에의 공감 속에서 큰 감동을 누리는 계기가 된다. 이를 통해 평신도는 목회자의 입장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고, 신도들간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 또한 깊어져 공동체성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4.
다른 교회에서 일반화되지 않은 예배형식과 내용을 일정부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파격적인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예배에서 목회자의 비중은 크고, 그만큼 목회자의 책임 또한 무겁다.
공동체의 참여를 극대화하기 위해 색다른 예배를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것 자체가 목회자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부담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 것인가?’ 공동체의 참여 정신을 구현하자는 뜻에는 모두가 기꺼이 동의하지만, 그 뜻을 구현하기 위해 누군가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 상황에 부딪힐 때 그 누구도 선뜻 나서기는 어렵다. 그럴 때마다 목회자는 설득에 나서야 하는 한편 동시에 그로 인해 누군가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평신도들이 예배내용을 준비하고 역할을 맡는 ‘신도주관 예배’를 두고 정반대로 ‘목회자 신경배가 예배’라고 볼멘소리(?)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과 역할을 맡은 당사자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거치고 났을 때 언제나 모든 회중이 맛보는 감동이 있기에 그 색다른 예배는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또 다른 한편 한국교회에서 목회자의 설교 비중은 여전히 지대하다. 천안살림교회 또한 예외가 아니다. 대개 많은 경우 교회를 처음 찾는 이들이 목회자의 설교를 최우선하는 판단기준으로 삼듯 천안살림교회를 처음 찾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암만 공동체 참여 중심의 예배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목회자의 설교 비중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천안살림교회의 예배설교는 기본적으로 성서 본문주석에 충실한 편이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그 말씀이 적용되는 현실의 사건들에 대한 통찰이 덧붙여진다. 물론 언제나 완전하게 준비된 원고에 근거하여 선포된다. 이미 익숙한 회중들은 당연한 하나의 전형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처음 접하는 이들은 놀랍게도 상반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철저하게 주석적인 설교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거의 예외 없이 빠지지 않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언급을 보고 너무 사회적이라고 느끼는 반응도 있다. 각기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대에 따라 그와 같이 상반된 반응이 나오는 것이겠지만, 설교자의 입장에서는 예민한 시대정신으로 말씀의 뜻에 접근하고 있느니 만큼 언제나 양자의 균형을 맞추고자 애쓰고 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한 손에 성경, 한 손에 신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여전히 천안살림교회가 지향하는 공동체 참여 중심의 예배를 온전히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색채가 강하다고 느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회중들의 예배의 정신을 지키는 한에서 좀 더 우리의 신앙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예배를 구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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