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교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2-07-28 15:22
조회
185
월간목회 창간 45주년 특집 원고 / 2022년 8월호
환대와 돌봄(4): 사회적 약자들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교회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차별 없이 환대하는 공동체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차별도 용인하지 않고 구원의 빛 안에 모든 사람을 인도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는 공동체로서 교회는 그 누구든 제약 없이 맞이하는 ‘환대’를 지향한다.
환대는, 그저 베푸는 이의 선한 의지에 따라 낯선 이를 받아들이는 ‘관용’의 차원을 넘어 선다. 관용은 선한 의지의 발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타인을 낯선 상대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용인하지만 우리를 방해하지는 말라’는 의중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환대는 낯선 상대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타인을 낯선 이라 의식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맞이하는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한 공동체 안에서 누리고 있는 것을 더불어 누리고자 하는 개방성이다. 그것은 초대한 손님을 맞아들이는 것이라기보다는 예고 없이 방문하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과 같다. 그 환대는, 예수께서 가장 낮은 사람들, 사회로부터 자격을 박탈당하는 이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한 것(마 25:31~46), 그리고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가 하나라고 한 것(갈 3:28)과 같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는 교회는 그 환대의 정신을 구현하는 공동체로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예표이다.
그러나 현실로 존재하는 교회에서 환대는 여러 가지 점에서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다. 방문한 손님을 스스럼없이 맞이하기보다는 초대한 손님을 맞이하는 데 익숙하고, 그것은 언제나 선별 조건을 덧붙이고자 하는 유혹을 동반한다. 두말할 것 없이 이때 환대의 의미는 퇴색하고 만다. 또한 조건 없이 환대한다고 하더라도 방문자가 여전히 손님으로 남을 수도 있다. 특별히 배려 받는 존재가 된다면 여전히 손님일 뿐이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환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인정’이 공동체의 구성 원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각자의 정체성이 있는 그대로 긍정되고, 그것이 공동체 구성원에게 어떤 제약이나 특권의 조건이 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찬송 214)라고 찬송하지 않는가? 이 찬송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이자 동시에 그분의 복음을 따르는 교회 공동체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여러 소수자들이 소수자로서가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로 환대받고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동등하게 참여하는 교회,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환대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가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맞아들이는 이에게 조건을 요구하기보다는 교회가 그렇게 맞아들이기에 어떤 조건을 변화시켜야 할 것인지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다.

환대하는 공동체의 조건

성소수자뿐 아니라 그 어떤 형편에 있든 소수자의 처지에 있는 이들이 스스럼없이 함께 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교회가 안전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는 구체적으로 여러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교회의 기본적인 지향과 의식, 언어생활, 관행과 제도, 공간적 배려 등 여러 차원을 포함한다.
교회의 기본적인 지향과 의식은 이미 앞서 말한 바와 같은 교회의 기본 가치를 의미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성서적ㆍ신학적 논란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전제이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메시지 자체가 포용적이어야 하고 교회 구성원들의 의식 또한 이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 가운데서 개별적 의견의 차이가 있더라도 최소한 의견의 차이를 존중할 수 있는 기풍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예컨대 성소수자를 신앙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여기면서 참회를 조건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당사자가 발을 내딛을 수 있을까? 이미 의학적으로 비정상이거나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는 현상을 두고 정죄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당사자가 그런 편견을 가진 공동체에 함께 하기는 어렵다. 또한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 편견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교인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여야 한다. 상담 경험을 통해 볼 때, 이들은 끊임없이 보다 포용적인 교회를 찾고자 한다.
교회생활 언어 측면에서도 예민한 감수성과 배려가 필요하다. 근래에 성평등 의식이 높아지면서 성차별 행위나 언어가 어떤 영역에서든 금기시되고 있다. 교육기관과 공공기관에서 는 물론 일부 교단이나 교회에서도 그에 대한 소양교육이 필수적인 과정으로 설치되어 있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동일한 인식이 필요하다. 의도적인 차별이나 혐오를 넘어서야 하는 것은 물론 무의식중 차별과 배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언어 또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마도 그 대표적인 경우는 고정된 성역할을 당연시하는 언어일 것이다.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에 따른 언어생활이다. 성소수자는 성적 지향(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무성애 등)의 차이만이 아니라 성 정체성(지정 성별과 일치하는 시스젠더, 불일치하는 트랜스젠더 등)의 차이에서도 비롯되고 있는 까닭에 고정된 성역할을 당연시하는 언어는 그 당사자들에게 위화감을 안기게 된다.
고정된 성역할에 관한 언어를 넘어서는 일은 이와 관련된 교회의 관행과 제도를 바꾸는 것과도 직결된다. 단적으로 예를 들면 교회 안에서 신도회는 대개 남녀 성별을 따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여기에 세대기준을 적용해도 그 남녀 성별기준을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성소수자는 어디에도 귀속감을 가질 수 없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청년회는 그렇게 나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제를 남녀성별로 구분하는 관행이 확고한 교회 안에서 또 다른 한편 청년회와 같은 조직이 당연시된 데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이 사례는 발상의 전환이 그렇게 낯선 것이거나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환기해준다.
공간적 배려 가운데 가장 고려해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용 화장실일 것이다. 만일 남녀성별로 구분된 화장실만 있다면 트랜스젠더 교인의 경우 어떻게 될까? 이에 대비하는 것은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을 갖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 장애인 화장실을 갖추는 것은 공간을 구성하는 데서 꼭 필요한 상식이 되었다. 그 상식에 비추어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 교인도 더불어 사용할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을 갖추는 것 역시 그다지 특별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다면 시설 그 자체로 특별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성소수자를 위한 화장실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마련한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것이 없다. 여기에 더하여 교회 공간 어딘가에 장애인 표식과 마찬가지로 무지개 표식을 붙일 수 있다면 그것은 성소수자들에게 더더욱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우리 곁에 성소수자가 있다면

교회가 평소에 이상과 같은 요건들을 갖추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면, 누구나 환대하는 공동체로서 교회의 이상을 지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교회에 그런 기풍이 자리하고 있다면 성소수자 교인이 교회를 안전한 공간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성소수자 교인이 스스로 커밍아웃하지 않는 가운데 함께 할 수도 있다. 교회가 언제나 그 가능성을 열어놓고 누구나 환대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누군가 스스로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대개 염려하는 바일 것이다. 여기서 가장 평범한 상식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성애가 특별한 것이 아니듯 동성애 역시 특별한 것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태도이다. 왼손잡이를 두고 그것이 비정상이거나 특별한 것처럼 여기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성소수자’로 불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그 현실을 넘어 누구나 동등한 존재로 존중하는 태도가 가장 첫 번째로 유의해야 할 태도일 것이다. 목회자에게 성소수자 교인이 커밍아웃하는 경우 그가 겪고 있을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그를 특별 대우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지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게 지지하고 돌보는 사려 깊은 행동이 필요할 뿐이다.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비단 성소수자뿐 아니라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 교인들의 어려움을 그렇게 헤아리며 돌보는 역할을 하지 않은가? 역시 다르지 않게 그렇게 돌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성소수자로 겪어야 하는 현실이 있기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 알려지는 ‘아웃팅’으로 괴로움을 겪을 수도 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교회 내 누구나 환대하는 조건을 갖추는 것은 그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했다면 목회자로서 공동체 안에서 현명한 방안을 찾는 것이 당연하며, 그 때 무엇보다 당사자가 상처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목회자는 최선을 다하면서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서도 안 된다. 위기 상담이나 적절한 치유 과정이 필요할 경우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기관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중요하다.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예기치 못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대비하여 평상시 성소수자 현실을 제대로 알 수 있는 학습과 인식의 제고를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에 관한 길잡이로서 한국교회에서 처음으로 발간된 『차별 없는 그리스도의 공동체 - 성소수자 교인 목회 및 선교 안내서』(도서출판 기사연, 2022)를 권하고 싶다. 성소수자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헤아리며 어떤 목회적 대응이 필요한지 살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성소수자를 둘러싼 논란을 겪으며 진통하는 가운데 있다. 많은 해외 교회들이 겪어온 과정이기도 하다. 그 진통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교회들의 태도를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누구든 조건 없이 맞아들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에서 보면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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