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새역사 70년과 사회선교의 과제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2-12-05 21:01
조회
120
한국기독교장로회 제107회 총회 주제 해설 사회분야
주제: “새역사 70년, 주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소서”(시 31:15-16)
성구: 창 50:15-21, 요 13:34-35, 엡 4:3-4
집필자: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 기독교윤리학)


새역사 70년과 사회선교의 과제


1. 출범정신의 기초 위에 세워진 사회선교의 전통

1953년 새 역사를 시작한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정신은 당시 제38회 총회 선언서에 함축되어 있다: “① 우리는 온갖 형태의 바리새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복음의 자유를 확보한다. ② 우리는 전 세계 장로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건전한 교리를 수립함과 동시에 신앙양심의 자유를 확보한다. ③ 우리는 노예적인 의존사상을 배격하고 자립 자조의 정신을 함양한다. ④ 그러나 우리는 편협한 고립주의를 경계하고 전 세계 성도들과 협력 병진하려는 세계 교회의 정신에 철저하려 한다.”
이는 복음의 자유, 신앙양심의 자유, 자립 자조, 에큐메니칼 정신으로 집약된다. 그 정신은 특별한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으며 그 안에서 분명한 지향점을 갖고 있다. “온갖 형태의 바리새주의를 배격”한다는 첫 번째 문구가 드러내듯 당대의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악습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근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성서문자주의와 그에 근거한 교권구조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복음의 자유는 잘못된 교회의 악습에서 벗어나 바른 교회를 형성하고자 하는 지향점의 밑바탕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생명에 진정한 자유를 약속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장로교의 테두리 안에서 건전한 교리를 수립함과 동시에 신앙양심의 자유를 확보한다는 것은 교회의 역사 가운데 섭리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확인하고자 의지를 드러내며, 그 요체가 신앙양심의 자유에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그 어떤 속박의 굴레가 강요될 수 없으며 신실한 신앙양심으로 자유를 누리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립 자조의 정신은 그 정신을 더욱 구체화하여 노예적 의존 사상을 배격하고 주체적 신앙을 정립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배타적 독선에 빠지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오히려 세계 다른 교회들과 연대와 일치를 추구하는 개방성을 지향한다. 우리가 70년 전 그 출범의 정신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것은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지표가 되어 왔고, 그 덕분에 한국기독교장로회는 한국교회 안에서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교회로서 역할을 맡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70년의 역사를 맞이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정체성을 형성한 동인은 그 출범정신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사실 70년 전 한국기독교장로회를 형성한 출범정신은 당대 한국교회 풍토 안에서 교회의 내적 갱신을 위한 지향점으로서 성격을 지녔다. 근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성서문자주의와 그에 근거한 교권구조로부터 벗어나 신앙의 자유와 교회의 개방성을 표방하는 성격을 지녔던 것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정체성은 복음의 자유 정신과 교회의 개방성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 현장을 지향하는 사회선교 내지는 민중선교의 역동적 참여과정을 통하여 형성되어 왔다. 교회의 내적 갱신을 지향하는 출범정신에 더하여 교회의 바깥의 역사 참여를 지향하는 선교활동이 이뤄지는 가운데 그 역동적 정체성을 형성한 것이다.
남북의 분단과 정치적 독재 상황 가운데서도 자기분열의 내홍을 겪고 있던 교회에게 각성의 계기를 부여한 것은 부조리한 역사적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였던 민중들의 외침과 저항이었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김재준 목사는 그 사건을 “암운을 뚫고 터진 눈부신 전광”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한국교회를 향한 일종의 계시와 같은 사건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김재준 목사는 그 이후 박정희 정권이 졸속으로 추진한 1965년 한일협정, 그리고 1969년 삼선개헌을 통한 영구집권 시도에 대한 국민적 저항운동의 선두에 섰다. 이는 한 개인의 결단과 참여에 그치지 않았고 역사적 책임을 감당하고자 하는 교회의 역할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이자 동시에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역사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정치적 권위주의가 강화되는 동안 민중의 문제가 심각하게 노정되었다. 경제적 동원 대상이 되었지만 정치적 배제의 대상이 된 민중은 정치적 권리는 물론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가운데 고통을 겪고 있었다. 마침내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이 비인간적인 노동자들의 상황을 호소하며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해 11월 25일 신ㆍ구교 합동으로 전태일추모예배를 드릴 때 김재준 목사는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기독교도들은 여기에 전태일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나태와 안일과 위선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다.” 김재준 목사는 이를 다시 한 번 교회의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1960년대 말 심각한 양상을 띠기 시작한 민중의 현실 앞에서 민중선교를 펼치기 시작한 한국교회는, 이를 계기로 하여 사회선교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 사회선교는 1980년 광주민중항쟁과 1987년 민주화항쟁을 경유하는 동안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졌다. 노동자와 도시빈민, 농민의 현장에 다가서 그들의 권익을 위한 활동, 정치적 권위주의에 대항한 민주주의와 인권 보장을 위한 활동, 그리고 남북간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활동,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심화되어가는 생태계 위기에 대처하는 환경보호 활동 등을 포함하였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이와 같은 여러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가운데 그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개별교회와 선구적 지도자들에 의한 활동뿐만 아니라 총회 차원에서 적절한 제도를 갖춰 이를 뒷받침하여 왔다. 교회와사회위원회와 평화통일위원회의 설치와 활동, 평화공동체운동본부와 생태공동체운동본부의 설치, 양성평등위원회의 설치, 그리고 최근에는 사회선교사제도의 운영 등으로 이를 뒷받침해오고 있다. 그 실천적 활동과 더불어 한국기독교장로회는 끊임없이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수행하여 총회 헌법과 4대문서, 그리고 제5문서 등으로 구체화하였다. 지금 총회가 (가칭) ‘제7문서’ 작성 등을 포함한 새역사 70주년 기념사업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그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선교적 실천과 성찰을 동반하는 가운데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해왔고, 나아가 앞으로도 그 태도를 더욱 철저히 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축으로서 민중과 함께 하는 사회선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역사적 현실 가운데 구체화하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문익환 목사의 말처럼 “사랑의 사회적 표현으로서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새역사 70년, 주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소서!”(시편 31:15~16) 오늘 우리가 70년의 역사를 되새기며 하나님께 사랑의 손길을 구하는 것은, 지난 역사 가운데 체험해온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뜻을 지니며 또한 지금 직면하고 있는 역사적 현실 가운데서 그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지 새삼 결의를 다지는 뜻을 지닌다.


2. 오늘의 사회적 현실과 선교과제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출범한 1953년 이래 지난 70년간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였다. 해방의 기쁨은 잠시였을 뿐 분단에 이어 전쟁의 참화까지 겪은 최빈국의 상황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는 극적인 변화의 시기였다. 절대적 빈곤과 정치적 독재의 상황에서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보기 드문 사례가 되었다. 특별히 1987년 민주화와 이후 경제발전은 더욱 눈부신 성과를 일궈냈다. 1997년 구제금융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단기간에 그 위기를 극복한 한국경제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였고, 정치적 민주화 역시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여겨졌다. 경제적 발전의 측면에서나 정치적 발전의 측면에서 여러 가지 국제적인 평가지수를 확인할 때 눈이 현란할 정도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은 물론 이른바 3050국가(인구 5천만 이상에 국민소득 3만불 이상 국가) 반열에 7번째로 진입한 국가, 구매력 수준에서 식민지였던 나라로서 그 지배국가의 국민소득을 추월한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민주화의 수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인 한류 열풍으로 국민적 자긍심 또한 높아졌다. 한국인은 그야말로 놀라운 한 세기를 지나 왔다.
그러나 그렇게 눈부신 발전 가운데서도 오늘 한국사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몇 차례에 걸친 정권교체가 있었고, 2016~2017년에는 촛불항쟁으로 새로운 변화가 기대되었지만,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변화한 것에 비하여 과연 얼마만큼 변화되었을까?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전된 것과 동시에 절정에 이른 민중운동의 결과로 1987년 민주화를 성취하였지만, 안타깝게도 그 변화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진전되었으나 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제한된 민주화였을 뿐이다. 경제개발 시대 주도권을 쥐어왔던 지배세력은 변화되지 않았고 지금도 경제성장 제일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여전히 경쟁과 효율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고 있으며 사회적 정의와 평화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고, 그에 편승하여 사회적 차별과 혐오의 정치가 폐해를 일으키고 있다. 이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효과로 귀결되고 있다. 남북간의 평화 정착 또한 오랜 과제로 남아 있다. 오늘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들은 곧바로 교회의 선교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1)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그 대안

오늘날 한국사회는 놀라운 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 명암이 가장 극적으로 대비되고 있다. 외형적 경제규모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로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의 체감은 극심하다. 자본의 지구화와 더불어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고조되는 동안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것은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사회 또한 그로부터 예외일 수 없었다. 더욱이 한국사회는 경제성장이 구가되는 동안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분배정책 및 복지제도 대신에 성장으로 인한 고용효과에 의존해 왔던 탓에 새로운 경제 환경 가운데서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에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코로나19 위기가 닥치면서 그 양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요컨대 기왕에 지속되어 왔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산업구조의 개편,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진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 각도에서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경제민주화의 과제는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헌법(제119조 2항)이 보장하는 바와 같이 경제민주화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의도하는 것을 그 요체로 한다. 이는 시장의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여 경제주체간 조화와 균형을 이룸으로써 국민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이뤄내면서도 적정한 소득분배를 실현하려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흔히 경제주체간의 조화와 균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존조건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 취지에 대한 좁은 의미의 해석일 뿐이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명확하게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자본과 노동의 균형을 뜻한다. 자본과 노동의 균형을 이룬 그 기초 위에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균형을 시도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진정한 의미이다.
자본소득분배율에 비해 노동소득분배율은 현저히 낮아져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한국사회에서 자본과 노동의 균형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여기에서 가장 시급하게 제기되는 과제가 노동권의 완전하고도 실질적인 보장이다. 오늘 한국사회에서 노동의 위기는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실질적 주체인 노동자의 권리와 삶의 실상은 외면당하고 있다. 세계 최고수준의 장시간 노동과 높은 산업재해,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포함하여 이른바 ‘중층적 분절노동시장’으로 일컬어지는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는 차별의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사회는 애초 자본과 노동의 불균형은 말할 것 없고, 노동시장 자체마저 심각하게 분절되어 있어 다양한 층위에서 차별현상이 노정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영세업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분절뿐 아니라 비정규직 내에서의 여러 균열 현상이 심각하다. 뿐만 아니라 특수고용노동자의 지위도 불안정한 상태이다. 특별히 코로나19 위기로 사회적 필수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극한의 상황에 처해 위험부담을 안고 있으며, 다수 영세 자영업자들도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다.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사람은 각기 적절한 노동을 통해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든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체제가 절실히 요청되는 상황이다.
불안정한 노동이 일상화되어 있는 한편 아예 고용의 기회조차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의 불안정성이 심화되어 현실에서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위한 새로운 복지체제의 형성이 절실하다. 사회적 불평등과 가난의 문제는 모든 문명사회의 관심사이다. 오랫동안 인류사회는 절박한 필요에 따른 공공부조의 원리로 그 문제를 해결해 왔다.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하면서 업적주의에 따른 보상의 원칙이 확립되었고, 그것은 사회보험의 보편화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완전고용을 전제로 하는 그 제도는 오늘날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이 심화되고 있으며,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 상황에서 기존의 복지제도와는 다른 대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지만, 근본적으로 공유부(共有富)는 함께 나누는 것이 정당하다는 인식을 기초로 한다. 우리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공유부를 갖고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토지와 천연자원 및 생태환경을 포함한 자연적인 공유부가 있고,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된 지식과 문화 등 역사적인 공유부가 있으며, 특별히 오늘날 플랫폼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정보자산 역시 공유부에 해당한다. 이 밖에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배타적 소유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공유부의 목록은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배타적인 소유나 사적인 이윤 추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공유부를 공존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나누기 위한 제도적 방안이다. 무절제한 사유화에 저항하면서 공유부를 지키고 함께 나누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기본소득은 단지 불평등한 물질의 분배구조를 재편하는 효과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의 무분별한 약탈과 상품화를 억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노동을 상품화하고 그에 따라 인간마저 상품화하려는 시장의 횡포를 막아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기본소득은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생태적 정의와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대안적 경제 질서를 향한 유력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놀라운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존 복지체제의 유산이 취약하여 불평등과 격차가 심한 한국사회는 오히려 보편적 기본소득을 실현함으로써 새로운 복지체제를 형성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편적 복지체제의 확대와 기본소득의 실현은 서로를 보완하는 가운데 수렴될 수 있는 방안이다. 기왕의 보편적 복지체제가 취약한 한국사회는 그 양자의 장점을 수렴하여 고유한 복지체제를 형성해나갈 수도 있다.

2) 사회적 차별과 혐오를 넘어선 포용사회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어 가는 가운데 그에 편승하여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 현상이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성차별은 말할 것 없거니와, 이주노동자와 난민, 성소수자,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위험한 수위에 이르고 있다.
한국사회의 성차별 현상은 성별 임금격차 면에서 OECD 국가중 오랫동안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이는 성차별 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지만, 다른 여러 분야의 성차별 현상을 가늠하게 해 주는 척도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근래 한국사회에서는 강고하게 자리 잡은 성차별에 더하여 여성혐오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기도 하였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이 보여주듯 강력범죄 피해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현저하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으며, 일상적 영역에서 공공연한 여성혐오 현상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미투운동’이 반증하듯 성폭력 현상이 일상화되어 있다. 과연 ‘구조적 차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이주민ㆍ노동자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만큼 인종주의적 혐오가 점차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절대다수의 외국인들이 인종혐오주의를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는 조사통계의 결과, 그리고 실제로 이미 반다문화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 더욱이 극단적인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사회의 상황을 감안할 때 사회적 불만의 왜곡된 형태로서 인종주의적인 혐오는 이미 회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는 노동기본권은 물론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 대신에 노동허가제를 요구하고 있다. 어떤 사회든 이주노동자를 규율하는 제도를 형편에 따라 운용하는 것은 불가피하겠지만, 그것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과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제약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불어 그 가족, 특히 자녀들의 교육권 등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 기본권이 보장될 때 포용적인 문명국가로서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난민에 대한 처우는 매우 부끄러운 수준이다. 2018년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제주에 예멘 난민이 다수 들어옴으로써 난민문제가 한국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한국은 국제연합(UN)이 제정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1992년에 가입하였을 뿐 아니라, 2012년 「난민법」을 제정하여 그 이듬해부터 시행중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 인정율은 국제적으로 최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를 실질적으로 개선하여 인도주의적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에는 아직 너무 멀다.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는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군형법에 성소수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존속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차별을 겪지 않고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규범적 법률로서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처음 발의된 지 15년을 넘긴 지금까지도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대한 반대가 주로 교회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점을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반대는 특정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성서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는 입장 때문에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교회가 신학적 과제로 안고 서로 다른 견해들을 경청하는 가운데 지혜롭게 대화를 지속해갈 필요가 있다. 현대의 과학 또는 의학 상식과 성서의 문자적 진술이 충돌한다고 여겨질 때,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성서해석학의 중요 과제이다. 오랫동안 성서를 근거로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장애가 있는 경우 성직에 임직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와 같은 견해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었다고 해서 성서의 진리가 파괴되는 것도 아니다. 그 이치를 따라 성소수자에 대한 교회의 입장 또한 충분히 재고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펼쳐지는 사랑을 일깨우는 성서의 정신과 더불어 오늘의 보편적 인권의 정신에 비추어 교회가 스스로의 편견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차별과 혐오를 넘어선 사회를 이뤄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 역시 한국사회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안전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운동이 상당 부분 결실을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온갖 사회적 장애로 고통을 겪고 있다. 최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가 펼쳐졌을 때 집권여당의 대표가 보여준 태도는 한국사회의 장애 인식이 얼마나 저급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이른바 ‘언더도그마’, 곧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는 논리에 부합하는 사태인 것으로 진실을 호도하였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곤경에 처하게 하는 사태가 불의하기 때문이다. 그 불의를 바로잡는 것은 기왕에 불편함을 몰랐던 사람들에게도 더욱 안전한 삶을 가능하게 한다.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는 그저 사회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고 정치화하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혐오의 정치다. 혐오의 정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논리를 특정 세력을 결집시키는 정치적 동원 기제로 활용하는 것이다. 일부 교회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논리로 세력을 결집하는 것이나,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현저하게 나타난 바와 같이 보수정당이 성차별 의제를 빌미삼은 ‘갈라치기’로 성별 대립구도를 만들어낸 것이 그 전형적인 경우이다. 이는 특정한 세력을 결집하는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 까닭에 그 효과를 아는 세력에게는 쉽사리 떨쳐버리기 어려운 유혹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파당정치로 귀결될 뿐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파괴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을 뿐, 포괄적인 인권 보장을 바탕으로 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형성에 걸림돌이 된다. 따라서 그 혐오의 정치를 극복하지 않는 한 해당 사회는 커다란 갈등과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3) 성숙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립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이에 편승한 혐오의 정치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성숙한 민주주의로 극복해야 한다. 5년 전 촛불민의를 따라 새 정부가 구성되었을 때만 해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는 낙관적이었다. 세계적으로 우익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상황에서도 예외적인 상황이 펼쳐진 것을 안도하였다. 그러나 촛불정부로 일컬어진 지난 정부하에서 그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결국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재벌ㆍ금융ㆍ행정ㆍ사법ㆍ언론 등이 결탁한 기득권 카르텔이 강고하다는 것을 확인해야 했고, 그 세력은 2022년 두 차례에 걸친 선거(대통령선거, 지방선거)를 통해 다시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을 강화한 세력이 오히려 공정을 내세우며 화려하게 복귀한 셈이다.
새 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정책은 시장의 법칙을 전면에 내세워 능력주의와 경쟁주의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날 것의 신자유주의 기조 위에 있다. 규제개혁, 자율성, 선택 등이 강조되는 것은 국가의 공공적 책임보다는 시장의 자율성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법인세와 종부세 인하, 각종 규제 해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52시간 근무제 개편, 최저임금제도 조정 등으로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정책만 두드러질 뿐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대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환경과 에너지 대안은 거꾸로 가고, 남북 및 국제관계에서도 긴장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더해 검찰권력을 중추로 하는 통치방식이 가시화되고 있다. 권력의 분립과 견제를 기본 취지로 하는 ‘법치주의’가 국민 통제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그에 편승하는 혐오의 정치, 그리고 그와 직결된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빈부ㆍ세대ㆍ성별ㆍ이념ㆍ학력ㆍ종교ㆍ정당 간 갈등이 세계 최고 수준에 해당하는 한국사회를 재구성하는 과제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통해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 갈등에 대한 해법의 기초 위에 국민의 기본권과 대표권을 강화하며 동시에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이 절박하게 모색되어야 한다.

4)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체제 형성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정착은 두말할 것 없는 숙원과제이다. 분단과 극한적인 전쟁의 경험은 남북간 갈등의 비극 그 자체로도 문제려니와 이후 한국사회의 결정적인 제약 요인이 되어 왔다. 분단의 상황이 때로 민주화와 평화를 향한 강렬한 열망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면도 없지 않으나, 기본적으로 부조리한 체제와 현실을 정당화는 구실이 되어 왔을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 폐해는 실로 심각하다. 역대 민주정부하에서 일관된 남북화해의 시도, 그리고 가깝게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이어진 일련의 정상회담은 남북간 갈등을 끝내고 평화적 관계를 이루게 되리라는 기대를 안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너지고 지금 남북관계는 다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일관된 평화의 의지로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해도 국제적 역학 관계 안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상황인데도,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키며 안보불안 심리에 편승하려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장악하여 상황은 더 위태로워졌다. 일관된 평화의 의지와 더불어 담대한 상상력으로 남북관계를 타개하려는 시도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평화체제를 형성하기 위해 한국이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단순히 국력의 위세를 떨쳐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중견국가로서 평화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과거 강대국간 각축이 벌어지는 최일선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늘 어려운 선택의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오히려 과거 불리했던 그 요인을 능동적인 역할을 펼치는 지렛대 삼을 수 있다. 특별히 신냉전체제로 불리는 국제적 역학관계 안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일방적 동맹 강화 논리로 균형과 평화를 이룰 수는 없다. 남북간 평화 정착을 위한 일관된 노력 가운데 국제관계 안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모색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3. 기장교회의 거듭남과 사회적 신뢰회복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사회적 과제들을 확인하는 것은 단지 교회가 처해 있는 사회적 환경을 파악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감당해야 할 선교적 과제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애초 출범정신의 기초 위에 민중과 함께 하는 사회선교에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교회로서 고유한 본분을 다하고자 노력해왔다. 그것은 사랑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시편 31:15~16)에 근거하여, 불화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갈등을 극복하고(창세 50: 15~2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에베 4:3~4), 온전히 사랑을 펼치고자(요한 13:34~35) 한 것이었다. 이로써 기장교회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였고, 한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침으로써 신뢰를 얻게 되었다.
한국교회가 민주화 이후 현저히 사회적 신뢰를 잃어버린 데 반해 1970~80년대 높은 사회적 신뢰를 얻고 있었던 까닭을 우리는 새삼 새겨야 한다. 1970~80년대 교회는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여겨진 까닭에 높은 사회적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반면 민주화 이후 교회는 여러 사회적 의제들이 제기되었을 때 자기이해에 민감한 태도를 취했고 더불어 파당정치를 동조하거나 아예 선도하는 입장을 취했다. 교회의 그러한 태도는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교회가 도덕적 권위와 소통능력을 지니고 보편적 공공성에 기여할 때 사회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게 되지만, 자기이해에 몰입하여 그 권위와 능력을 상실할 때 신뢰를 잃게 된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특별히 사회선교의 영역에서 어떤 교단보다 진취적인 활동으로 한국교회의 귀감이 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을 평가하자면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1987년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그 몫을 다한 것일까? 민주화 이후 시대 진취적 민중선교의 현장과 에큐메니칼 운동 차원에서 기장교회의 선도성과 주도성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1970년대의 끈기도 1980년대의 결기도 느끼기 어렵다. 교회 전반의 분위기는 퇴행하였다. 최소한 한국기독교장로회의 공식적인 선교신학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선교론에 비추어 보더라도 과연 개별교회의 현실이 그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 의문이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사회적 참여를 억제하는 교회 분위기가 강화되었다. 그 점에서 기장교회는 보다 일반적인 한국교회 공통적 특성에 가까운 성격을 띠게 되었다. 보수적인 다른 교회 저변에서 과거 기장교회가 주력하였던 선교 방식을 취하는 반면에 오히려 기장교회는 기존교회로 회귀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그나마 저변에 사회선교, 민중선교의 전통이 살아 있어 겨우 ‘체면치레’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다행스럽게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는 그간 사회선교를 위한 총의를 일관되게 수렴해왔고,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 또한 갖춰왔다. 앞서 언급했지만 여러 관련 위원회는 물론 최근에는 사회선교사제도까지 갖췄고, 70주년을 기리는 여러 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있다. 이러한 시도는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가 사회선교를 향한 뚜렷한 정책적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의지가 각 교회 단위에서 공감되어 기장교회가 거듭나야 할 것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가 그간 주력해온 사회선교는 사실상 총체적 구원의 전망에서 보자면 선교 그 자체의 대의에 충실한 것이다. 그야말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차별, 정치적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현실 가운데서 한국기독교장로회가 70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창조적으로 계승함으로써 교회로서 본분을 다하고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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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