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위기의 에큐메니칼 운동, 그 대안을 모색한다 - 일치와 갱신을 지향하는 신학과 실천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3-03-31 09:21
조회
128
위기의 에큐메니칼 운동: 대안을 위한 긴급 토론회
2023년 3월 30일(목) 오후 3:00-5:00 / 기독교회관 조에홀

위기의 에큐메니칼 운동, 그 대안을 모색한다
- 일치와 갱신을 지향하는 신학과 실천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 전 NCCK 정의평화위원장)

1-1.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이 위기에 처했다. 최근 NCCK 총무 사임표명으로 위기 사태가 촉발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위기의 한 징후일 뿐이다.
1-2. 그렇다면 지속되어 온 위기의 실체는 무엇일까? 특별히 그간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구심으로서 NCCK의 역할과 관련해서 볼 때, 그 위기는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그것은 곧 정체성의 위기와 사회적 영향력의 위축이다.
1-3. 그 위기가 촉발되고 심화되어온 역사적 맥락(한국교회 보수 헤게모니의 강화 추세, 그 원인과 현상)을 헤아리는 것은 대안을 모색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지만, 이 자리에서는 위기의 현상에 주목하며 몇 가지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2-1.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구심으로서 NCCK의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근거하되, 역사적으로 형성된 에큐메니칼 정신과 헌장에 집약된 정신으로 구체화된다.
2-2. 역사적으로 형성된 에큐메니칼 정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와 협력을 추구한다. 그것은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형성되는 가운데 분명히 천명되었다.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삶과 봉사(Life and Work)를 두 기축으로 하는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계의 일치를 위한 교회의 일치’로 집약된다.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계교회와 호흡하는 가운데, 그리고 스스로의 실천 가운데 그 정신을 구현해 왔다.
2-3. 그리스도의 복음을 근거로 하는 현대 에큐메니칼 정신은 현재 NCCK 헌장의 전문에 잘 집약되어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어 이 땅에 사랑과 정의에 기초한 평화 곧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을 선교 사명으로 삼는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대립과 차별을 해소하며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에 힘쓰고 인권을 증진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되 우선적으로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 소외당하는 자와 차별받는 자의 입장에 서는 예언자적 전통을 계승한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세계를 보전하고 모든 생명이 위협받지 않고 번성하도록 하기 위해 일한다.”
2-4. 현재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이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은 그 정신을 온전히 구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보수 헤게모니가 강화되는 동안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현하는 공교회로서보다는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보수교회의 노골적인 양상과는 다르게 보일지 모르나, NCCK 역시 내부 역학에서 힘의 우위에 의한 파당정치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으며, 이에 따라 한국교회에서 공교회 전통을 대변해온 NCCK는 매우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다. WCC 부산총회 전후 국면도 그렇거니와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를 둘러싼 현재의 국면 또한 그 위기가 심화된 것을 보여주는 뚜렷한 징후이다.

3-1.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체성의 위기는 곧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과 영향력의 위축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3-2. 교회가 사회적으로 갖는 공신력과 영향력은, 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신실성을 근거로 하지만, 외적으로는 사회에서 인정되는 도덕적 권위와 소통의 능력에 근거한다. 교회는 사회적으로 공유된 보편적 가치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이를 구현하고자 할 때 자연스럽게 도덕적 권위를 부여받는다.
3-3. 한기총에서 한교총으로 이어지며 보수교회의 헤게모니가 강화되는 동안 NCCK는 그와 상대적으로 구별되는 교회의 위상을 확보하기보다는 오히려 발목 잡힌 형국에 처했다. 결국 지난 역사에서 축적되어 왔던 신뢰와 권위마저도 손상을 입었다.
3-4. 1970-80년대 NCCK가 지녔던 신뢰와 권위는 교회의 양적 규모의 우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신실성과 예언자적 통찰력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에 근거하여 사회적 의제를 이끌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헌신한 탓이다. 오늘날 변화된 조건에서 과거의 영광을 단순히 재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문제는 얼마만큼 우리 역사 가운데서 성취하였던 그 전통을 되살리기에 얼마나 헌신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단지 개인적 회심과 헌신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에큐메니칼 운동 내부에 그 정신이 발현되도록 조건을 구조화하는 노력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NCCK는 그 조건을 구조화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4-1. 여기서 우리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구현하는 방식으로서 협의체의 성격을 새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역시 NCCK 헌장에 잘 집약되어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신학적 전통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대화와 협력으로 일치를 모색하고 세계교회협의회와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세계 여러 나라의 교회협의회 그리고 국내의 교회연합기관은 물론 해외동포교회협의회와 지역교회협의회와도 연대하여 서로 배우고 협력하며 함께 선교한다.”
4-2. 각 교회의 “신앙과 신학적 전통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대화와 협력으로 일치를 모색하고... 연대하여 서로 배우고 협력하며 선교한다.”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는 일치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획일적 교리를 따른 단일한 ‘신조’에 기반해 있지 않고, 근본적이고 포용적인 ‘복음’ 안에서의 협력의 일치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가 갖는 의미이다. 협의체의 정신은 교리적 일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실 안에서 다양성을 보장하며 서로 협력하는 것을 뜻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대화하며 배우고 협력하는 것이다.
4-3. 따라서 협의체의 정신은 하나의 목소리로 총의를 모으는 것을 뜻하기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화합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NCCK가 각 교단과 기관, 그리고 지역협의체 등의 회원을 바탕으로 여러 단계의 의결구조를 갖추고 있고, 더불어 여러 위원회를 두고 있는 것도 이를 위한 것이다. 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것은 협의체의 정신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지혜에 해당한다.

5-1. 현재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은 구체적으로 몇 가지 당면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제의 목록은 이 발제에서 제시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고 더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5-2. 에큐메니칼 운동은 위와 아래의 운동이 만날 때 극대화된다. 하지만 현재 NCCK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은 바닥교회들(local churches)과의 접점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소수의 상층부 운동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은가? 에큐메니칼 운동은 반드시 바닥교회 운동을 기초로 할 때 비로소 활력을 얻는다. 이는 한편으로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지향하는 바닥교회 운동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제를 포함하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로 이미 형성되어 있는 바닥교회 운동과의 접점을 찾는 과제를 포함한다.
5-3.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신앙과 직제, 삶과 봉사의 두 축이 건강한 균형을 잃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에큐메니칼 정신은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대화하며 배우고 협력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신앙과 직제의 전통은 획일적인 교리나 직제의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통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추구한다. 현재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대립이 NCCK 내부에서마저 서로 배우고 소통하는 대화의 장이 결핍된 데서 비롯되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서로 배우고 소통하는 기회를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5-4. 현재 NCCK를 구성하고 있는 회원교단들이 진정한 에큐메니칼 정신을 구현하고자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지도 되돌아볼 일이다. 대표권을 지니는 인사 또는 파견 실무진에 맡기는 것으로 알리바이로 삼거나 필요할 때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방식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을 수단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세계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체화하는 과정으로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각 회원 교단 스스로 펼쳐나가는 노력이 절실하다.

6-1.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구심으로서 NCCK를 이끄는 지도력은 앞서 말한 에큐메니칼 정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행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정신의 구현을 위한 소통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6-2. 여기에 더하여 당면한 재정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한국교회가 지닌 물적 자원이 에큐메니칼 운동에 선용되도록 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물적 기반을 동원하는 논리가 에큐메니칼 정신의 훼손을 가져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런 경우가 불가피하다면 지금껏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구심 역할을 해왔던 NCCK의 위상을 재설정하고 그 대안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6-3.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현재의 총무의 사임의사 표명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에큐메니칼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선하여 구성원은 각기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득실을 따지는 대처방안으로는 현재 에큐메니칼 운동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 철저하게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신과 NCCK의 위상을 생각하며 그에 걸 맞는 지도력을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법한 절차와 더불어 여러 에큐메니칼 영역과 소통하는 가운데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여야 할 것이다. 소통과 의견수렴을 위한 비상한 기구의 한시적 운용도 생각해봄직하다.

7-1. 이상의 의견은 현재 NCCK의 구성과 협의 절차 등을 충분히 존중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결코 급진적 재편을 겨냥하며 내놓는 의견은 아니다.
7-2. 그러나 만일 이마저도 고려될 여지가 없는 조건이라면, 급진적인 재구성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의 상황처럼 한교총 곁에 NCCK가 덧붙여 있는 모양으로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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