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성서의 맥 07] 정의 없는 종교는 가짜다 - 예언자들의 신앙과 윤리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9-05-22 21:09
조회
192
2019년 상반기 천안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2019년 4월 3일~7월 10일 매주 수요일 오후 7:00~8:30
최형묵 목사

<7> (5/22) 정의 없는 종교는 가짜다 - 예언자들의 신앙과 윤리

1. 성서 세계의 독특성을 드러내는 예언

예언은 성서 세계의 독특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흔히 서구의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데 세 가지 원천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데, 1) 그리스의 이성, 2) 로마의 법, 3) 성서의 종교와 윤리가 그것으로, 예언은 종교적 신앙에 따른 윤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2.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1) 예언자들의 분류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언자들은 왕들의 등장과 함께 등장하여 500여 년간 활동하였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문서 예언자’와 그 이전의 예언자들로 구분된다.

<문서 예언자 시대 이전의 예언자>
예 언 자 기 록 활 동 연 대

나단 사무엘하 7장, 12장, 열왕기상 1장 다윗왕
갓 사무엘하 24장 다윗왕
아히야 열왕기상 11장, 14장 솔로몬왕, 여로보암왕(920년대)
스마야 열왕기상 12장 르호보암왕(920년대)
익명의 두 예언자(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 베델의 ‘늙은 선지자’)
열왕기상 13장 여로보암왕(920년대)
엘리야 열왕기상 17-21장, 열왕기하 1장 아합왕(850년대)
미가야 열왕기상 22장 아합왕(850년)
엘리사 열왕기상 19장, 열왕기하 2-13장 850-800년

<문서 예언자>
① 주전 8세기: 아모스(750년), 호세아(740년), 이사야(742-700년), 미가(722-701년)
② 주전 7세기: 스바냐(628-622년), 나훔(612년), 하박국(605년), 예레미아(626-587년)
③ 포로기 예언자: 에스겔(593-571), 제2이사야(540)[40-55장], 오바댜(포로기간중)
④ 포로기 이후: 학개(520-515), 스가랴(520-515), 제3이사야(500)[56-66장], 요엘(500-350년 사이), 요나(포로기 이후), 말라기(500-450년 사이)

2) 예언자의 직분
흔히 예언자는 미래의 일을 미리 말하는 사람들로 생각되기 쉬우나, 본래 정확한 의미는 ‘대언자’(代言者)라는 뜻을 지닌다(pro-phetes). 하나님을 대신해서 선포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예언자를 일컫는 히브리어 ‘나비’(nabi/navi)는 ‘부름받은 자’, ‘알리는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예언자들이 직분을 수행하는 데에는 대개 공통된 과정을 거친다: 소명 - 파송 - 전달

3) 예언자 말씀의 핵심 요체와 기본 구조
예언자들의 선포의 핵심은 정의를 이루는 길에 있다. 그 선포는 공통의 기본구조를 갖추고 있다: 심판의 말씀 - 희망의 말씀.

4) 말씀, 역사, 예언자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구체적 상황 가운데서 예언을 선포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의 말씀은 항상 특정한 역사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예언자마다 지식과 경험, 신학사상에 따라 개성 있는 예언을 선포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 예언자의 본분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자의 구체적인 인격을 통해서 선포되는 것이다.

5) 예언자들의 상징적 행동
예언자들은 심심치 않게 기인행각(奇人行脚)을 벌인다. 그러한 행동을 두고 현대의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들은 정신분열증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실은 예언자들의 독특한 행동은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예언자들의 이상한 행동은 일종의 ‘상징적인 행동’이다.

3. 예언자들의 선포의 핵심으로서 정의: 종교와 윤리, 신앙과 정의의 관계

예언자들이 외친 ‘정의를 강물처럼’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은 종교와 윤리, 신앙과 정의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정의론의 핵심은 ‘응분의 몫’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데 있고, 많은 경우 기여도(자격과 업적)을 기준으로 그 몫을 결정하는 데 있다. 반면 성서의 정의론은, ①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점 ② 자격 및 업적에 상관없는 은총을 강조한다는 점, 더 구체적으로 약자의 생존을 필수적인 요건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주요 요체이다.
성서에서 정의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함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의 편에서 그 정의는 신실한 하느님에 대한 신실한 인간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 때 정의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세다카’(zedakah)는 좁은 의미의 정의만을 뜻하지 않고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신실한 인간의 실존을 형성하는 모든 것, 곧 평화, 해방, 속죄, 은총, 구원 등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미쉬파트’의 의미 참고). 이런 의미에서 성서의 정의는 인간에게 베푸는 신실한 하느님의 행위에 상응하여 인간들 사이에서 온전한 관계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성서의 정의는 어떤 객관적 척도를 따른 선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과 인간의 온전한 관계에 근거하여 인간 상호관의 관계를 온전히 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관계적 개념에 해당한다.

4. 결론

예언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백성 앞에서 선포한 것으로, 그것은 인간사회의 변화, 내면의 각성을 일깨우고 있는 낙관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그 선포가 준엄한 심판의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윤리적으로 정화되는 인간사회에 대한 낙관적 기대에 기초하고 있다. 성서의 예언은 표면상으로 볼 때 명백히 비관적인 언어가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희망의 언어가 되는 것은, 부정의와 그로 인한 고통의 현실을 신랄하게 드러내고, 그에 대해 준엄하게 심판함으로써 그와는 전적으로 다른 세계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도록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이비 희망의 언어가 아니라 진정한 희망의 언어다. 바로 그 점에서 구약성서의 예언은 성서 윤리의 핵으로서, 인류사회에 끊임없이 윤리적 삶의 척도를 제공하는 원천으로서 역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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