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난국을 극복하는 길 - 이사야 29:17~24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7-09-03 17:23
조회
8803
2017년 9월 3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난국을 극복하는 길
본문: 이사야 29:17~24

오늘 우리는 이사야서 29장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이 말씀을 대하면 이 당연한 진실에 어떤 부가적인 해설이 필요할까 느껴질 정도로 이 말씀은 성서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구원의 희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을 대하면 설교자는 오히려 말을 잃기 쉽습니다.^^ 그저 그 당연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당연한 구원의 희망이 오늘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절실하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교회에서 그 말씀의 의미가 제대로 선포되고 있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면 재삼 그 말씀의 의미를 깊이 숙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희망을 선포하는 오늘 말씀을 다시 환기하겠습니다.
말씀의 첫마디는 종말론적 선포로 시작됩니다. “레바논의 밀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고, 그 기름진 밭이 다시 밀림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천지개벽의 사건이 일어난다는 예고입니다. 그 천지개벽의 사건은 단지 자연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변화를 뜻합니다. “그 날이 오면, 듣지 못하는 사람이 두루마리의 글을 읽는 소리를 듣고, 어둠과 흑암에 싸인 눈먼 사람이 눈을 떠서 볼 것이다.” 하나님의 진실이 사람들 가운데 환히 드러나리라는 것을 말합니다. 두루마리에 적힌 글은 이미 인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인간들에게 주어져 있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인간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곧 그 진실이 환히 드러나고 이제껏 귀가 어둡고 눈이 어두웠던 사람들이 그 진실을 깨닫게 되리라고, 오늘 말씀은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진실이 드러나는 사태는 인간사회의 놀라운 변화를 동반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사회의 놀라운 변화가 곧 하나님의 진실이 드러나는 사태라는 것입니다. 그 변화가 무엇일까요? “천한 사람들이 주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며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성서에서 언제나 강조되는 진실입니다. 성서가 선포하는 구원의 희망은 언제나 구체적인 인간사회의 변화를 동반합니다. 천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사건, 그것이 성서가 선포하는 구원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뜻합니다.
그것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천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게 될 때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포악한 자는 사라질 것이다. 비웃는 사람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죄 지을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모두 끝장날 것이다.” 이들이 누구일까요? “그들은 말 한마디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을 올무에 걸리게 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의로운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던 자들이다.” 바로 이들이 사라짐으로써 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거룩한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오늘 본문말씀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철저하게 관계적 차원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권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관계의 형성을, 본문말씀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는 공동체의 온전성을 이루는 길이 됩니다. “이제 야곱은 더 이상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 이제 그의 얼굴은 더 이상 수모 때문에 창백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참으로 그들이 그의 자손, 곧 그들 가운데서 내가 한 일을 보고, 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길 것이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암송하면서 늘 되새기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말씀은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 사이에서 온전히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 혼자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그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온전히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말씀의 마지막은 그 의미를 다시 강조합니다. “야곱의 거룩한 분을 거룩하게 받들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길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혼미하던 사람이 총명해지고, 거스르던 사람이 교훈을 받을 것이다.”

예언자 이사야가 이 구원의 희망을 선포한 데에는 특별한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유다 왕조의 막바지에 유다의 지도자들은 강대국 앗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에 골몰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앗시리아편에 붙는 것이 국가의 안보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앗시리아편에, 다시 이집트편에 붙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이집트편에 붙는 정책을 취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그 동맹관계가 이스라엘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본문말씀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뒤에는 이집트와 맺은 조약의 무용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바로의 보호를 받아 피신하려 하고, 이집트의 그늘에 숨으려 하는구나. 바로의 보호가 오히려 너희에게 수치가 되고, 이집트의 그늘이 오히려 너희에게 치욕이 될 것이다. ... 너희는 이집트에게서 아무런 도움도 유익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와 치욕만을 얻을 것이다.”(10: 2~5)
이집트에 의존하고자 하는 지도자들에게 경고하는 말씀과 대비를 이루고 있는 오늘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일러 주고 있습니다. 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자의 몽상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요? 예언자 이사야는 본래 신분이 매우 유력한 사람입니다. 왕족이거나 아니면 유력한 귀족 가문의 일원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지체 높은 신분이었을 뿐 아니라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신학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당대의 국제정치 현실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선포한 메시지는 국제정치 현실에서의 어떤 정략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한 공동체의 온전성, 진정한 국가의 안보, 인간의 안보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선포합니다. 포악한 자들과 비웃는 자, 그리고 죄 지을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사라지고, 그럼으로써 천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는 삶이 보장될 때 공동체의 온전성이 지켜질 수 있다고 선포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가 이뤄질 때 진정한 국가안보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정의가 이뤄질 때 하나님의 이름이 온전히 거룩하다 여김을 받을 것이라 선포합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선포는 오늘 현실에서도 변함없는 진실입니다. 군사적 동맹과 그에 따른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한편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정책, 국제적 차원에서 정의가 사라지고 오직 힘의 우위만을 우선시하는 정책으로 평화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촉즉발의 불안한 대치는 그 잘못된 정책의 결과입니다.
나라 안의 정의를 이루고, 국제적 차원에서 정의를 이룸으로써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길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저 지난 주간 저는 필리핀 교회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왔고, 지난 주간에는 한ㆍ일교회간 협의회에 참석하였습니다.
필리핀에서는 교회 관계자들로부터 그 사회가 일상적으로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가난’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지금 당장 시급한 문제는 정부와 반군 사이의 평화를 위한 협상을 중재하는 일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실 낡거나 재난으로 파손된 교회당 몇 개 더 지어주는 일보다 바로 그와 같은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 힘을 모아 연대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한ㆍ일교회간 협의회에서는 불평등과 차별을 넘어선 사회를 이루기 위해 양국 교회들이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심 주제였습니다. 불안정한 노동의 문제, 성적 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 과거 역사에서의 국가적 범죄행위의 문제 등을 다루면서 양국 교회 관계자들의 인식이 일치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주류 한국 교회가 차별의 논리를 강화해나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현실에서 오늘 말씀은 더더욱 절실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선포는 오늘도 변함없는 진실입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선포하는 진정한 구원의 희망, 그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의 뜻을 이루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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