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공정한 조건, 선명한 정책으로 심판받는 선거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12-21 18:17
조회
2114
* <뉴스앤조이> 청탁으로 쓴 원고입니다(20121221).


공정한 조건, 선명한 정책으로 심판받는 선거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 한신대 외래교수)


투표율이 높으면 야권후보에 유리하리라던 애초 예상과 달리 75.8%라는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18대 대통령선거 결과는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순전히 판세만 놓고 보자면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 번째 요인으로 기존의 지역간 대립경쟁이 고조된 데다가, 두 번째 요인으로 세대별 대립양상이 확연해진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이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여권의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 왔다.


첫 번째 지역간 대립구도 측면을 볼 것 같으면 새삼스러운 설명이 그다지 필요 없다. 영호남간의 투표율은 투표 당일 추이에서 이미 드러난 것처럼 서로 경합을 하듯 최고의 투표율을 달렸고, 그 양상이 이번 대선에서 투표율을 높인 한 요인이었다. 여기서 유권자의 인구비례로 볼 때 우위에 있는 영남에 지지기반을 둔 후보가 유리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두 번째 세대별 대립구도 측면에서 보자면, 방송출구조사 결과 20대의 투표율이 평균투표율에 못 미치는 반면 50대의 투표율이 이를 훨씬 상회하여 높은 투표율의 한 요인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7대 대선의 경우와 달리 이미 50대 고령층의 유권자가 20대 청년층의 유권자보다 훨씬 많아진 판세에서 양자가 비슷한 투표율이라 하더라도 청년층에 지지기반을 둔 야권후보에게 불리할 판이었는데 더욱이 고령층이 훨씬 높은 투표율을 보였으니 그에 기반을 둔 여권후보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대립구도는 이미 상당한 기간 경직된 대립구도로 지속되어 왔다. 여기에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연령대립구도 또한 근래 이어지고 있는 고령화 추세 속에서 상당히 경직된 구도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러한 판세가 지속되는 한 앞으로의 정치지형은 그 구도에 의해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것이 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승자독식을 보장하는 선거제도하에서 양자대결이 이루질 경우 영남과 노령층에 지지기반을 둔 후보가 호남과 청년층에 지지기반을 둔 후보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보수와 진보의 한판 대결’로 일컬어지는 이번 대선은 양자가 총력을 기울인 양상을 띠었다. 그런데 양자가 총력을 기울일수록 반복해서 양자의 힘의 불균형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더욱이 유권자의 대립구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보수적인 이념지형과 대중매체의 영향력 등 그 밖의 여러 요인을 감안하면 그 힘의 불균형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도가 지속된다면 우리 사회의 정치적 발전과 사회적 발전은 심각한 위협을 겪을 수밖에 없다. 언제나 정치적 승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세력과 암만 해도 정치적 승리를 맛볼 수 없는 세력으로 양분되어 정치적 냉소주의가 자리를 잡게 될 것이고, 그 냉소적 분위기 가운데서 산적한 사회적 의제들은 공론화될 기회조자 얻지 못한 채 뒷전에 파묻히게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양극화, 양분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우리 사회는 심각한 퇴행현상을 겪게 된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치지형을 변화시킬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우선은 국민의 양분화를 조장하고, 저마다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표현을 가로막음으로써 민의를 왜곡시키는 정치적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승자독식의 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유력한 제도로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비례대표제의 강화, 대통령 선거에서의 결선제 도입은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제기한 지 오래이다. 현재와 같은 승자독식 구도는 지지율과 대표성의 괴리를 불러일으켜 심각하게 민의를 왜곡하고 있다. 예컨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 1/3 남짓 지지율을 얻은 정당이 국회에서 과반의 의석을 차지하는 현상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정당지지율에 따른 비례대표제를 강화한다면 그 왜곡은 상당부분 조정할 수 있다. 또한 단판의 승자독식을 보장하는 대통령 선거로 말미암아 다양한 정치적 의사표현이 차단당하고 있다. 사표 심리 탓에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정치적 행위가 당연히 되는 현실은 정책의 대결이 아닌 진영간의 대결만을 조장한다. 이러한 구도가 바뀌지 않은 탓에 암만 정책대결을 강조해도 정책은 뒷전에 밀리고 힘겨루기만 되풀이하는 선거전이 지속되고 있다. 결선제를 도입한다면 단일화를 위한 소모전을 제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보다 선명한 정책대결로서 선거전이 가능하게 될 것이며 이로써 국민의 양분화를 넘어선 정당정치 또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선거제도의 개선과 관련하여 유권자의 투표율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여타의 방안 또한 강구되어야 한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쟁점이 되었으나 여당의 거부로 묻혀버린 투표시간 연장안도 그 대안 가운데 하나이다. 시간 연장이 어렵다면 직장의 근무 때문에 투표할 수 없는 이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각 사업체에 법적 강제를 부과하는 대안도 있을 수 있다. 이는 국민의 참정권 확대를 위해 당연히 강구되어야 할 것들이다. 더 나아가 국민의 참정권 확대를 위해서는 유권자의 연령하한선을 낮추는 것도 강구되어야 한다. 군입대, 결혼, 운전면허 등 여러 공민권 행사의 연령 기준과 선거권 행사의 연령 기준이 다른 것은, 정치적 기득권세력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선거연령 하한선을 묶어 둔 탓이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이와 같은 대안들이 쟁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파묻히고 말았지만, 이와 같은 대안들은 국민의 양분화 구도를 넘어서고 왜곡 없는 참정권의 확대를 위한 방향에서 필히 검토되고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선거제도의 개선만으로 현재의 정치지형이 변화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국민 양분화를 조장하는 정치지형을 바꾸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뿐이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정당 및 정치세력이 우리 사회의 올바른 진로를 가늠하는 정책을 선명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는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지금 낭패감을 느끼고 있는 이들의 편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의제를 선점하고 이를 통해 유권자들의 표심에 호소했다는 점이다. 그와 관련한 공약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문재인 후보의 대안에 못 미치는 것이었지만 그 차별성은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았다. 결과론이지만, 야권후보의 차별화 전략이 확실하게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현재 야권의 중심인 민주당이 과연 새누리당과 얼마나 근본적 차이를 지니고 있는지 따지는 문제는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박근혜 후보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이 그 실체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과거 시대와 차별화한 것으로 보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에 대한 대안 제시 없이는 어떤 세력도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국민들이 지켜봐야 할 것은 박근혜 후보가 내건 그 공약들의 실현 여부이다. 점진적이나마 재벌에 대한 일정한 규제, 중소기업의 생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등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실현된다면, 우리 사회의 극단적으로 가혹한 조건은 조금이나마 완화될 수 있다. 그 공약들이 단지 표심을 얻기 위한 전략에서 나온 것인지 진정성을 갖고 실현하고자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대통령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솔직히 말하건대 현재 지배세력의 연장으로 또 어떤 고통이 가중될까 염려되는 마음이 크다. ‘잘 살아보세!’의 구호와 함께 박정희의 후광을 떠올리면 더더욱 끔찍해진다. 하지만 스스로 변화를 외치며 국민의 선택을 받은 만큼 최소한 국민에게 약속한 것만큼이라도 실현하려는 의지를 보인다면 반길 일이다. 그의 실패로 5년 후를 기약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실패는 곧 국민의 고통이 그만큼 가중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성공이 더 진전된 우리 사회의 대안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기에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모색되고, 그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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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