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의미있는 소수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04-03 10:42
조회
2116
* <주간기독교> 다림줄 34번째 원고입니다(130403).


의미있는 소수


지난 3월말 난생 처음으로 출판기념회를 타국에서 가졌다. 몇 년 전에 출간한 『한국 기독교와 권력의 길』이라는 자그마한 책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 오사카에서 출판기념강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 그 책을 발견하고 번역을 해 주신 분도 고맙고, 그 책이 일본에서 발간되는 것이 의의가 있다고 판단하여 출간을 맡아 준 출판사도 고맙다. 두 말할 것 없이 그 책이 발간되었다고 출판기념회를 열어 강연을 맡겨주신 분들 또한 고맙다. 예언자가 고향에서 존경받는 법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르며, 타국에서 대접을 받게 된 처지가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번역하신 분의 말씀과 서평에 앞선 짧은 강연에서 나는 그 책의 기본 내용을 다시 확인하며 나름대로 생각한 일본에서의 출간 의의를 밝혔다. 성장을 지향한 교회의 길과 변혁을 지향한 교회의 길, 그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 기독교를 조명한 것이 그 책의 기본 내용이었다. 특별히 강조한 것은 한국 기독교 전체에서 압도적으로 미미한 비율밖에는 점하지 않는 소수 기독교의 길이 오히려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권의 신장에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는 사실이었다. 오늘날 성장을 추구해온 교회의 정치적 보수주의가 득세하는 바람에 그 존재가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 기독교는 의미있는 소수자로서 역할을 맡고 있고, 바로 그 점이 그 책의 일본어 출간 의의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소수이지만 진지하게 성찰적 신앙을 추구하며 일본사회 안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서 그 몫을 다하고 있는 일본의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표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함께 한 분들의 진지한 물음과 대화 속에서 소수자에 지나지 않지만 일본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일상의 삶 가운데서 구현하고자 하는 신앙의 깊이를 재삼 확인할 수 있었다. 소수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양성평등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하는 등의 이야기를 깊이 나눴는데, 책을 내놓고 그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내용을 그렇게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이요 기쁨이었다.


그 자리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교류를 나누는 가운데 이미 구면이 된 분들도 적지 않았다. 그분들을 통해 또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분은 몇 년 전에 만났을 때 일본의 평화헌법 조항 수호와 관련된 자료를 건네 준 적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새로운 자료들을 잔뜩 안겨주었다. 보수정권이 등장하면서 평화헌법이 개정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것을 지키는 것이 어떤 의의가 있으며 어떻게 지켜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자료들이었다. 또 한 분은 일제시대에 오사카 지역의 방직공장에서 일했던 조선인 여공들의 생활과 교회공동체의 역할에 관한 현장조사 자료를 작년에 건네 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그 자료를 개정보완했노라며 또 다시 자료를 안겨주었다. 한 번 붙잡은 과제에 대한 집요함,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근성에 대해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자신의 사회 안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며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일본 기독교인들의 한 단면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양적으로 비대해진 교회보다 미미해보이지만 훨씬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새삼 확인한 셈이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 추신***

일제시대 오사카 하루키교회에서 목회한 "김태련(金泰鍊) 목사" 자손을 찾습니다.


"김태련(金泰鍊) 목사"

1903년 평양 출생

1919년 세례받음

1935년 안수

1940년대 일본 오사카지역 하루키(春木)교회에서 목회하다 일제말기 귀국.


사연인즉슨, 이렇습니다.

일제시대 오사카지역 방직공장에 수많은 조선 여공들이 일을 하였는데, 하루키교회는 그 조선 여공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현재 그 교회는 재일대한기독교단 사카이교회 하루키전도소로 존속).

김태련 목사는 그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일제말기에 귀국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 여비도 없이 귀국하는 목사님에게 가난한 여공 신도들은 한 푼의 여비도 드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때 일을 너무 가슴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당시 교인들이 이제 그 자손들이라도 찾아서 그 때 목사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당시 조선인 여공들의 실태와 교회공동체와의 관계를 현장조사하여 <바다를 넘어> 라는 자료집을 엮어낸 히구치 목사, 정부경 목사, 이상경 목사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특히 일본인 히구치(桶口洋一) 목사께서 꼭 그 자손들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부탁해 왔습니다.  


그 자손들을 찾는데 뭔가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까 생각중인데, 우선 여기에 알립니다. 소문이 나다보면 뜻밖의 소식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 우선 이렇게 알립니다. 이 공지를 보신 분 가운데 누구든 단서를 알고 있으면 알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최형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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