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국경을 넘나들며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08-19 11:29
조회
2362
* <주간기독교> 다림줄38번째 원고입니다(130819).


국경을 넘나들며


안식년 휴가로 일본에 상당 기간 체류하였다가 귀국하자마자 또 교류 프로그램으로 일본 손님들을 연이어 맞아야 했다. 국경을 넘나들며 교류하는 일이 일종의 특권일 수도 있지만, 이방인과의 직접적이고 친밀한 교류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선전환을 경험하고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번 8월 교류로 한국을 방문한 분들의 한 마디 한 마디 소감이 모두 기억에 남지만 그 가운데 몇 분의 소감은 특별히 인상에 남는다. 8월의 뙤약볕이 이글거리는 가운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일본 손님들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하였다.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동안 오히라 목사는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했다. 그 눈물의 의미가 가해자에 속하는 일본인으로서 느낌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같은 여성으로서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는 중에 타니무라 씨는 뭔가 위화감 같은 게 느껴진다고 솔직히 말했다. 제국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 드러내기보다는 가해자 일본과 피해자 한국의 대립구도가 압도하고 결국 그 압박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였다는 관점이 두드러진다는 소감이었다. 나로서는 수년 전에 독립기념관 관계자에게 공동의 평화를 추구하는 관점에서 새로운 전시관이 세워지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적도 있기에 그 소감이 무엇을 뜻하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교류 참가자들은 모두 한국의 역사, 그리고 한일간의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된 기회였다고 그 소감을 말했지만, 이 분들의 소감은 민족적 차원 또는 국가적 차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구도로만 파악할 수 없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재일동포 2세로서 일본에서 최초로 고유한 자기 이름으로 일본국적을 갖게 된 박실 선생의 자전적 이야기는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 보편적 가치를 재삼 확인해 주었다. 일본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마저도 국적과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겪어야 했던 눈물의 이야기는, 현실의 장벽에 갇힌 신앙의 무력함을 확인해주는 동시에 그러기에 거꾸로 진정한 복음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확인해주었다.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정치적 선동의 목소리가 높고 한일관계가 민감한 쟁점으로 떠오르는 8월에, 한일간의 교류를 통해 민족적ㆍ국가적 관점으로 환원되지 않는 문제 해법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대통령이 말했듯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 나 역시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 관점이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감추는 알리바이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분명한 역사로서 피해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사회에서 비롯되고 존재하는 피해의 현실 또한 직시해야 한다. 국가와 민족 또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그 어떤 경계에 의한 차별이 없이 그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꿈, 그것이 나는 복음의 보편성이라 믿는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전체 2
  • 2013-08-19 21:31
    피해 당했던 사실만이 아니라, 피해의 현실을 직시해야한다는 것이 '복음의 보편성'이라는 목사님의 지적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 2013-08-21 09:53
    짦은 글이라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었는데,
    rn어떻든 전달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