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한국교회사 12]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03-07 22:13
조회
1460
천안살림교회 2012년 수요 성서연구

기독교의 역사 2 - 한국 교회사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 2012년 3월 7일 / 최형묵 목사


제12강 “어둔 밤 마음에 잠겨”


1960년대 한국교회는, 지난 50년대 6.25의 뼈아픈 상처와 부끄러운 내홍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뎌야 했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짓누르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뒤척거리고 있었지만(계속되는 교회의 분열, 신흥종교와 분파적 부흥운동),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 무게를 떨쳐 버리고 새로운 교회로 거듭나려는 몸부림을 치며(교회일치운동/에큐메니칼운동, 한국적 신학의 형성, 역사참여) 새 시대를 예비하고 있었다.


1. 또 하나의 분열


50년대 전란의 와중에서도 분열의 외길을 걸었던 한국교회는 60년대 벽두에 또 한 차례의 분란에 휩싸인다. 예장 통합과 합동의 분열이 그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용공적이라고 계속 공격해오던 목사들이 1959년 예장 44회 대전 총회에서 논란을 일으키다 11월 24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합동 총회를 열었다(그러나 사실상 문제의 촉발 계기는 당시 총회신학교 교장이던 박형룡 목사의 신학기금 3천만환 유용사건). 이에 세계교회협의회 노선(이후 중국교회에 대한 태도, 월남전에 대한 태도 문제 등이 계속 논란거리가 됨)을 지지하는 총대들은 교단의 통합을 위해 세계교회협의의 잠정적 탈퇴를 결의하면서까지 1960년 2월 27일 서울 연동교회에서 통합총회를 열었다. 그러나 또다시 갈린 장로교는 서로가 정통임을 자처하며 오늘에 이르고 그 이후에도 끊임없는 분열의 연속을 이어왔다.

* 한국 교회를 근대사의 신비라고 주목했던 세계교회는 이로 인해 특히 한국 장로교회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분열하는 교회로 보고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볼 정도.

        

2. 일치를 향한 발걸음


그러나 한편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교회의 분열 자체에 대해 반성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6.25라는 동족상잔을 경험하면서 참된 의미의 ‘교회’, 성도의 사귐에 대해 새삼 깨우치고 한국 교회는 교회의 일치와 세상의 일치를 향한 발걸음을 꾸준히 내딛기 시작한다.(“앞으로 50년 혹은 100년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미워하지 않고 부드러운 대화로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각자 자기의 잘못을 시정하려고만 한다면, 교회 재일치운동은 꼭 성공하고 말 것이라.” 박양운 신부, 1964)

1959년 감리교의 무조건 합동 / 1961년 분열했던 예성과 기성의 1965년 결합 / 신학교육에서의 연합 - 1964년 4월 연세대에 연합신학대학원 설치 / 1965년 전국복음화운동 - “3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 /  1966년 3월 8일. 초동교회에서 250명이 참석한 신ㆍ구교연합예배 / 1968년 1월 8일부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에큐메니칼 정신에 입각해 특별 기도 주간을 마련하여 예장, 기장, 성공회, 감리교, 구세군, 복음교회, 그리고 천주교회와 강단과 강사 교류 / 1971년 부활절 신ㆍ구교 공동번역 신약성서 발간


3. 역사참여 전통의 회복


50년대 내부 문제로 골몰하던 교회는 4.19라는 역사의 대전환기에마저 무력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에 대한 반성에서 교회는 마땅히 세계와 현실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을 새삼 자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조선말 봉건사회에서의 교회의 역할과 3.1운동을 비롯한 일제 치하에서의 민족운동의 전통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 첫 실험이 5.16군사정권에 대한 대결이었고, 이후 1962년 민정이양 촉구, 1965년 한일협약반대성명, 1969년 삼선개헌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한국 기독교는 한국민주화 운동과 인권 운동의 선구로서 몫을 다해나가기 시작한다.

* 찬송가 261장 “어둔 밤 마음에 잠겨”(1967년)는 바로 이러한 역사의 여명기에 태어난다.


4. 한국적 신학의 모색


교회의 새로운 각성은 곧바로 신학적 각성으로 이어졌다. 1963년 토착화 논쟁을 시발로, 1965년대 이후 세속화론, 비종교화론, 희망의 신학과 미래 문제, 도시화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 성찰, 혁명의 신학, 정치신학, 생태학적 신학 등이 소개되고 수용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어떠한 경우에나 ‘한국적 신학의 형성’이라는 과제는 당시 모든 신학적 논의의 결론이 되었다: 이장식, 서남동, 안병무, 윤성범, 김정준, 유동식 등등의 여러 신학자들과 크리스챤아카데미의 강원룡 목사의 대화 모임 등이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노력들이 7ㆍ80년대를 경과하면서, 세계신학계가 주목한 민중신학의 밑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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