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한국교회사 15] 한국 근대화와 기독교의 지형도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04-04 22:29
조회
1646
천안살림교회 2012년 수요 성서연구

기독교의 역사 2 - 한국 교회사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 2012년 4월 4일 / 최형묵 목사


제15강 한국 근대화와 기독교의 지형도


한국 기독교는 100여 년의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성장과 함께 해외선교의 대규모 확장을 이뤘다. 뿐만 아니라 전체 인구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을 훨씬 넘는 사회적 상층의 점유율 및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것은 주류 한국 기독교의 뛰어난 적응력에서 비롯된다. 한국 기독교는 한국적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능동적으로 적응한 세력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한국적 근대화에 가장 능동적으로 적응했다는 것은 근대화의 긍정적 성과와 함께 부정적 폐해 또한 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주류를 형성한 기독교는 그 긍정적 성과와 부정적 폐해를 동시에 안은 채 성장하였다. 반면 또 다른 한편의 기독교는 한국적 근대화의 문제점을 넘어 대안을 찾아나서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1. 적응의 길, 성장 주도형 교회


한국적 근대화 과정에 가장 능동적으로 적응한 기독교는 성장주의를 체질화함으로써 교회의 대형화를 추구하였다. 물론 실제 대형화된 교회의 비율은 매우 미미하다. 하지만 대형화된 교회들은 한국 기독교 안에서 모든 교회들이 선망하는 모범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존재의 의미는 양적 차원을 넘어선다. 실제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대다수의 교회들은 대형교회들의 조직 원리와 신앙 언어를 모방하고 있다. 교회의 대형화 현상은 실제로 성공한 교회들에게만 해당되는 특수한 현상이라기보다는 그와 같은 교회들을 선망하는 한국교회 전반에 해당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한국 교회의 대형화 추세는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정 및 정치적 민주화의 발전과정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두 가지 단계를 거친다. 그 두 가지 단계는 오늘날 주류 한국 기독교를 이루고 있는 두 가지 교회의 모형을 형성시킨 계기이기도 하다. 그 첫 번째 계기는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에 이르는 기간으로, 급속한 경제성장 정책이 추진됨과 동시에 정치적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이다. 이른바 개발독재체제가 지배하던 시기이다. 두 번째 계기는 1980년대 후반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으로, 한국 사회에 소비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음과 동시에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된 시기이다.

첫 번째 시기에 등장한 대형교회를 일러 ‘선발 대형교회’라 할 수 있다면, 두 번째 시기에 등장한 대형교회를 ‘후발 대형교회’라 할 수 있다. 또는 서울의 남북을 경계로 하여 전자를 ‘강북형 대형교회’로, 후자를 ‘강남형 대형교회’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모형의 대형교회는 한편으로는 구별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선발 대형교회는 개발독재체제 하의 한국 사회의 속성과 상응한다면, 후발 대형교회는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자본주의가 안정화되고 나름대로 합리성을 띠게 된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사회적 상황에 상응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성장을 주도한 두 교회 모형은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힘에 대한 숭배 지향적 성격으로, 그 밑바탕에는 여전히 성장주의적 가치관을 따른 현세주의와 자기중심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2. 대응의 길, 변혁 지향형 교회

  

돌진적 근대화가 이뤄지고 이후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적응보다는 변혁의 길을 추구한 한국 기독교의 전통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비록 주류 기독교의 양적 규모에 비해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서도 그 역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비주류 한국 기독교 역시 그 역사적 계기에 따라 분류되는 두 가지 교회 모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두 가지 모형은 주로 1970-1980년대 개발독재체제 하에서 민주화 인권운동에 참여한 교회와 1980년대 후반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의 제도화 과정에서 새로운 대안적 모형을 추구하는 교회로 분류된다.

1970-1980년대 개발독재체제 하에서 민주화 인권운동에 참여한 기독교는 돌진적 근대화의 병폐에 주목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지향성을 지녔다. 무엇보다도 돌진적 근대화를 추구하며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구축한 국가권력에 대하여 저항적인 입장을 선명하게 취하며, 한국 사회의 변혁을 추구하는 민중운동을 배태하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 이 기독교는 그 동력을 현저히 상실했다. 특히 문민정부와, 사실상 정권교체가 이뤄진 국민의 정부 이후부터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그 상층 인사들이 국가권력에 여러 형태로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국가권력에 대해 이전의 저항적 태도에서 협력적 태도로 방향을 선회하는 경향을 띠었다. 국가권력의 성격이 변화된 상황에서 변혁보다는 적응의 태도를 취한 셈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기독교 내부에 이미 잠복해 있었다. 대개 1970-1980년대 민주화 인권 운동에 참여한 기독교 지도자들과 교회 사이에는 일정 정도 괴리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 및 제도와 교회 안에 구축된 제도와 가치가 괴리되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예컨대, 밖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교회 안에는 민주주의가 빈약하였고, 밖으로는 경제적 정의를 외쳤지만 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물질적 축복만이 지상의 가치로 존재하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사회적 적응을 지향하는 주류 한국 기독교에서는 교회 상층부 및 지도자와 교회 회중 사이에 신념상 동질성이 강한 편이지만, 사회적 변혁을 지향하는 비주류 한국 기독교에서는 교회 상층부 및 지도자와 교회 회중 사이에 신념상 이질성이 강한 편이다. 밖에서는 진보적인 목회자도 교회 안에서는 보수적이 되는 사연이 여기에 있다.  

바로 그 때문에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이뤄지는 1990년대 이후에 기독교 내부에서는 새로운 대안적 교회운동이 등장하게 된다. 민주주의적 가치와 제도를 교회 안에서도 철저하게 구현하고, 나아가 현실 적응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여러 가지 동기들과 근본적으로 단절하는 가운데 새로운 교회를 형성하려는 급진적인 교회 모형이 등장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대안교회’로 불리기 시작한 교회 모형이다. 이 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미 1980년대에 등장한 민중교회의 맥을 잇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 규모와 상관없이 현실적 사회제도와 부합하는 형태로 제도화된 교회를 보다 근본적으로 문제시하며 대안적 교회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1980년대 민중교회에서 진일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교회는 매우 뚜렷하게 사회와 교회의 변혁을 지향하고, 변혁을 지향하는 사회적 세력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교회 자체의 대형화를 원천적으로 거부하고 공동체적 친밀성을 교회 안팎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 또한 이 교회의 중요한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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