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탐욕의 말로 - 열왕기상 21:17~19 [강남향린교회 강제집행 문제해결을 위한 연합기도회 ]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8-04-29 23:22
조회
12658
2018년 4월 29(일) 오후 5시 롯데타워 앞 / 강남향린교회 강제집행 문제해결을 위한 연합기도회
제목: 탐욕의 말로
본문: 열왕기상 21: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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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절차가 지켜졌더라면 지금쯤 평화롭게 이사를 했거나 준비를 하고 있겠지요? 어째 그렇게 분별력 없이 ‘강제집행’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해서 이렇게 피차간에 성가신 일을 만들었을까요? 일이 벌어진 이후라도 사죄하고 현명하게 처신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올 필요도 없었겠지요?
그 어리석은 일이 지속되고 있는 까닭에, 지금 우리는 강남향린교회 ‘강제집행’의 실상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나아가 우리 사회 곳곳에 파고들어 사람들의 삶을 피폐화하고 영혼을 갉아먹는 자본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말씀은, 유명한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일으킨 아합 왕에게 내린 경고, 심판의 선언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전하는, 토지 강제수용과 강제집행의 최종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째서 이 말씀을 이 자리에서 함께 나누겠습니까? 마치 공중의 권세를 잡은 듯한 형국으로 우뚝 서 있는 롯데타워의 소유주가 그 추악한 사태의 배후 핵심세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분노하는 강제집행 사태를 일으킨 최종적 책임이 공중의 권세를 잡은 듯이 우뚝 서 있는 저 건물을 세운 자본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롯데월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런 ‘지옥세계’에 갈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불가불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 일대를 헤맨 적이 있습니다만, 과연 사람이 사는 공간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이 건축물과 공간 자체가 어처구니없다 느껴졌습니다. 지극히 비인간적인 공간이라 느꼈습니다. 인간을 자신의 질서, 자본의 질서에 순응하게 만드는 공간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이런 발상을 하는 이들이라면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사람의 삶을 먼저 생각하기에 앞서 자신의 소유를 과시하고 자본의 이윤을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싶었습니다.

오늘날 그 탐욕의 체제가 절정에 이른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지만, 오늘 성경말씀은 그 탐욕이 얼마나 유서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진실은 그 탐욕이 어떻게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지를 일깨워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경이 전하는, 토지 강제수용과 강제집행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아름다운 이스르엘 평원에 사는 나봇이라는 사람이 그 땅에 포도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땅은 사마리아 아합 왕의 왕궁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은 그 포도원을 자신의 정원으로 삼고자 나봇에게 넘기라고 요구했습니다. 대토도 해주고, 값도 쳐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나봇은 조상의 유산이라는 이유로 양도하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식음을 전폐하고 전전긍긍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이유를 잘 압니다. 성서시대 이스라엘, 성서의 가르침에서는 토지의 배타적인 사적 소유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삶의 조건으로 부여받은 토지는 임의적 소유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라도 그 가르침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딱하게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왕비 이세벨이었습니다. 아는 대로 이세벨은 풍요의 종교인 바알 신앙을 따른 페니키아 출신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관,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정의와 해방의 하나님이 아니라 풍요의 신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왕비는 왕이 되어 그깟 땅 하나 차지하지 못하느냐 핀잔을 주고 해법을 제시합니다. 이세벨의 음모에 따라 나봇에게 하나님과 왕을 모욕하였다는 누명을 씌어지고 결국 나봇은 죽음에 이릅니다. 그렇게 주인을 잃은 땅을 왕은 차지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 만행을 저지른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사람 예언자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의 말씀입니다. 열왕기서의 증언은 그가 결국 심판의 예언대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것을 전합니다. 그가 그래도 갈등하고 후회했다는 사실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큰 화를 입는 일은 없었지만, 그의 말로는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성서의 이 이야기는 두 세계의 대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삶을 보장하는 정의의 하나님, 해방의 하나님을 따르느냐, 그저 풍요와 번영을 빌미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뒷전으로 하고 소수의 지배자들의 배만 채우는 풍요의 신을 따르느냐 하는 대비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말씀의 결론은,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자는 결국 스스로의 삶 또한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성서는 배타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아 저마다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으로 삼은 땅은 거래될 수 없는 것이며, 하물며 그것이 임의의 세력에 의해 강제수용 강제집행의 대상이 되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근대적 혁명 이후 오늘날 소유권이 인간의 삶을 보장하는 자유권 가운데 하나로서 인정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성서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토지와 재산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인격을 지닌 인간의 구체적 삶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 까닭에 설령 그 소유권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그 누군가에게 넘어가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소유권 행사에 따른 결과가 기왕에 그 재산과 관계되어 있는 사람(기존 소유자이든 임대자이든, 어떤 형태로 활용하여 삶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됩니다.
신중한 절차가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법원이 있고, 경찰이 존재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 절차를 도우라고 있는 것이지 그것을 임의로 하도록 거들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 강남향린교회 강제집행 사태는, 우리가 아는 대로, 시행사인 조합의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법원과 경찰 공권력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사실상 긴밀히 협력하는 가운데 벌어졌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사태가 어떻게 벌어질 수 있었을까 캐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 원천적 책임이 시공사인 롯데건설에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의 공권력까지 좌우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대자본의 위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정황상 개발로 인해 피해를 겪는 사람들을 도운 강남향린교회를 고의적으로 표적 삼았다는 것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습니다. 표면으로 드러난 당사자들이 책임있는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 개연성이 높습니다. 만일 아니라면 당당하게 해명하면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일일이 거론하지 않지만, 롯데는 이미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켜 사회적 지탄을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총수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롯데건설 하석주 대표이사는 홈페이지의 CEO 인사말을 통해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상생경영과 나눔경영을 실천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이 빈말이 아니라면, 지금 일어난 엄중한 사태를 돌아보며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돌이켜보고 지금 벌어진 사태에 대한 응분의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천만다행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수인들 뒤에 숨어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려 한다면 장차 엄혹한 위기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70여년 우리사회를 지배해온 분단체제가 무너져내리고 있는 감격적인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빨갱이’ ‘종북주의’라는 딱지 하나만 붙이면 모든 판단이 끝나버릴 정도로 위력을 발휘해온 그 분단체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남북을 오갈 수 있는 희망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절대로 무너져내릴 것 같지 않았던 그 철옹성처럼 존재해왔던 분계선이 단 몇 초 사이에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목도했습니다.
아마도 자본의 전지전능함을 믿는 이들은, 자본의 위력은 그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믿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경고에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사람의 삶에 대한 보장 없이는 자본은 절대로 재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이 돈을 낳는다는 착각현상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남의 돈을 갈취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사람의 삶이 무너진 마당에 자본 또한 설 자리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깨어 있고, 우리 사회의 윤리의식은 높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상생경영과 나눔경영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 기대에 부응하는 지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정신을 잃는다면 롯데는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진실을 명심하고 응분의 책임을 다하기를 촉구합니다.
우리는 지금 강남향린교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강남향린교회만의 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저지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계속될 개발사업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이 겪게 될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번 사태 당사자들의 책임을 묻는 일을 끝까지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믿는 우리들, 우리의 교회가 끝까지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또 언젠가 억울한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희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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