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폭력을 돈으로 사고파는 사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08-12 22:13
조회
2570
*<주간기독교> 다림줄28번째 원고입니다(120813).


폭력을 돈으로 사고파는 사회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정상적인 사회’에 대해 간결명료하게 말한 바 있다. 누군가가 “강간을 하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 이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 나갔어?”라며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고 했다(슬라보예 지젝,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63쪽). 상식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윤리적 기준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면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 있는 반면 그 당연한 상식이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라면 비정상적인 사회라는 이야기다.


최근 노사분규 현장마다 용역업체들이 등장하여 노사분규 사태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경우들이 빈발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철거현장에만 용역업체들이 등장했지만, 근래에 이르러서는 중요한 노사분규 현장마다 경비업무를 맡는다는 용역업체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폭력을 행사해 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용역업체들이 등장하는 것은 노사분규 현장뿐이 아니다. 아예 사전에 위장취업을 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노조결성을 방해하고 와해하는 작업 또한 시도해온 사실 또한 드러나고 있다. 특별히 지난 7월 자동차부품업체 에스제이엠(SJM) 공장에 난입해 파업중인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경비업체 컨택터스의 활동은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심각한 문제는 그와 같이 폭력을 대행해온 용역업체들이 버젓이 국가의 공인을 받은 기업으로서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용역업체들이 노동현장에서의 물의를 빚을 때 국가 감독기관은 그에 대한 제재를 공언했지만, 이번에 드러난  컨택터스의 활동을 보면 그 제재가 실제로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 공권력에 의한 과잉진압 사태가 부담스러운 탓일까? 공권력은 이제 그 부담을 합법적인 민간 업체에 떠넘기고 팔짱을 낀 채 나 몰라라 하는 듯한 형국이다.


위임된 합법적 폭력은 오직 국가만이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근대 국가에 대한 상식이었다. 이 때 위임된 합법적 폭력이란 그것이 사회의 안전과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한계 안에서만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 국가가 문제시되는 것은 그 한계를 뛰어넘어 무소불위의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시민을 통제한다는 것 때문이다. 물론 균질의 시민으로 구성된 사회가 아니라 이질적인 집단들이 충돌을 빚고 있는 사회 안에서 그 한계 범위는 빈번하게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안전을 위한 공권력의 폭력행사는 말 그대로 공공성을 구현해야 할 주체로서 국가에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으로 견제될 수 있는 가능성 안에 있고, 실제로 여러 견제장치들 안에서 제한을 받는다.


그러나 ‘공권력의 민영화’ 또는 ‘폭력의 외주화’라고 불릴 만한 지금의 사태는 그 민주적 견제장치마저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공권력의 독점물이 시장에서 돈으로 사고 팔리는 대상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이윤의 극대화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공권력이 내다버린 그 탐나는 물건을 마다할 기업이 얼마나 될까? 폭력마저도 합법적으로 사고 팔리는 현상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결코 과거처럼 비합법적이거나 음성적이 아니다. 이런 사회를 과연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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