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흉악범죄에 대한 반인권적 대책, 범죄예방의 효과도 없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09-13 19:57
조회
2800
* <뉴스앤조이> 청탁으로 쓴 글입니다(20120913).


흉악범죄에 대한 반인권적 대책, 범죄예방의 효과도 없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 한신대 외래교수)


1.

‘묻지마 살인’과 ‘아동성폭력’ 등 흉악한 범죄의 빈발로 우리 사회가 불안에 휩싸여 있다. 흉악한 범죄 때문에 불안해하고 그에 대해 공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차제에 그와 같은 범죄의 예방을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요구 또한 당연하다. 바로 그 맥락에서 흉악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양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특별히 오래 전부터 여성계에서 제기해 왔듯이 성범죄와 관련하여 친고죄를 폐지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러한 대안들은 범죄의 심각성, 그리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 등을 감안할 때 현재의 법률체계를 보완하는 수준에서 타당하고 가능한 처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그러나 흉악 범죄에 대한 대책으로 제시된 경찰의 불심검문 강화 방침이나 성범죄자에 대한 물리적 거세 조치를 담은 일부 의원들의 입법안, 그리고 대선주자의 사형제 발언은, 그것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는지 근본적으로 검토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대안들을 일차적으로 인권침해의 요소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음으로는 흉악범죄의 억제 내지는 예방 차원에서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점에서 근본적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먼저 인권침해의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과거 권위주의 시절 이래 일상화되어 있었던 불심검문은, 2010년 9월 그것이 공권력의 권한남용을 야기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정으로 최대한 억제되어 왔다. 그 어떤 범죄의 정황 가운데 있지도 않은 사람이 범죄자의 혐의를 받는 것 자체가 인권을 침해받는 사태라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심문을 당하거나 수색을 당하고 심지어는 임의동행까지 당한다면 사생활 침해를 받는 것은 물론 신체의 자유까지 침해를 받는다. 그 권한남용의 문제점을 지적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판정은 적절한 것이었고, 그것은 민주화 이후 높아진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경찰은 그걸 다시 도입했다. 이것은 명백한 인권의 퇴보를 뜻한다.


성범죄자에 대해 물리적 거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방안은, 실소를 자아낼 만큼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사실 더 이상 언급해야 필요조차 없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구구하게 언급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상황이 딱할 뿐이다. 신체보전의 자유는 근대적 국가의 인권규범에서 빠트릴 수 없는 핵심적 내용 가운데 하나로서, 그것은 근대 이전의 국가에서 널리 행해졌던 신체형이 갖는 야만성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아무리 범죄의 흉악성에 공분한다 하더라도 전근대적인 적나라한 보복과 응징의 논리를 국가 법률체계 안에 도입하려는 발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형제의 문제는 많은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공의 안전 때문에 불가피하게 허용된 국가의 폭력이 각 개인의 생명권까지 좌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국가의 권한과 인권의 보호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국가의 사형제도는 인간에 의한 인간생명의 박탈을 합법적으로 용인한다는 점에서 신학적으로도 근본적인 논쟁점을 안고 있다.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사형제를 폐지한 까닭이 어디에 있겠는가? 한국 역시 실제적 사형제폐지 국가에 해당한다. 오늘의 그러한 경향은 인간의 생명과 관련한 국가의 권한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관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제를 운위하는 대선주자의 발언은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과거의 권위주의 국가권력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보이지 않아서이다.  


다음으로 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유력한 대선주자까지 이구동성으로 제시하는 범죄에 대한 강경대책이 과연 범죄의 예방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불심검문으로 범죄예방 효과가 있다는 객관적 증거가 제시된 바 없거니와, 사형제가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인과관계 또한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 신체형의 효과에 대해서는 언급의 가치도 없다. 보복과 응징의 논리를 따르는 범죄대응 방안들은 심각한 인권침해의 요소를 안고 있을 뿐 범죄예방의 효과 면에서는 지극히 의심스러울 뿐이다. 도대체 문명화된 국가에서라면 운위될 수 없는 방안들일 뿐이다.


3.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가능할까? 최근 흉악범죄가 주로 가난한 지역과 계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여러 조사결과들에서 일치하고 있다. 이 점은 범죄를 막는 대안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다음으로 최근 나주에서 어린이성폭행을 한 범인의 심리상태에 진단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의 분석에 의하면, 범인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자신의 행위로 인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 유형”이라고 한다. 이 사실 또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범죄가 주로 가난한 지역과 계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범죄자가 사회적 박탈계층 가운데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동시에 그 피해자 역시 같은 계층에 속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 박탈에서 오는 실질적인 곤경, 그리고 분노와 증오가 범죄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고, 덩달아 범죄로부터 보호장치가 취약한 환경에 있는 이들이 그 희생자가 된다는 것쯤은 이 사실을 통해 너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성으로 굳어버린 범죄자의 심리도 단순한 성도착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사회적 환경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 또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내 곁의 동료나 이웃이 어찌 되었든 자신의 생존에 급급해야 하는 가혹한 현실에서 열패감만을 맛본 사람에게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끊임없는 흉악범죄를 배태하는 온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범죄를 막는 해법 역시 그 현실을 직시하는 가운데 근본적 치유책을 강구하는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양극화 사회의 문제를 넘어서는 대안으로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이들을 막아내고, 또한 범죄의 잠재적 희생자들을 보호하는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그 진정한 해법이다. 요컨대 열심히 일하면 살아갈 수 있고, 또한 어떤 위기에 처하더라도 도움을 구하면 구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생존과 생활의 영위를 보장하는 사회권의 실현으로서 현대적 인권의 요체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오늘의 상황에서 해법을 찾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경쟁관계에 있는 아우를 살해한 카인에게 땅은 그 소산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조건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범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그러나 한편 범죄한 카인이 영원한 징벌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에게 징표를 주어 다른 사람들의 보복과 응징으로부터 그를 보호하였다. 그것은 보복과 응징으로 삶의 안정과 평화가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한편 범죄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형상’이 보편적 인권의 최고 근거에 해당한다면, ‘카인의 징표’는 범죄자에게도 부여되는 삶의 권리에 대한 근거에 해당한다. 여기에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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