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인간을 위한 기술, 자본을 위한 기술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09-17 14:49
조회
2591
* <주간기독교> 다림줄29번째 원고입니다(120917).


인간을 위한 기술, 자본을 위한 기술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을 보고 있으면 마치 무슨 게임을 보고 있는 듯하다. 어느 나라에서는 누가 이겼고 또 다른 나라에서는 또 누가 이겼는지 언론은 그 게임 상황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호각지세의 형국이 이어지는 것 같았는데, 일단 애플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일방적인 판결이 났다. 물론 그 최종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다.


고난도의 디지털 기술의 문제를 두고 누가 원천 기술을 개발했고 누가 그것을 베꼈는지 일반인들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물론 겁도 없이 이 난제를 끄집어내어 왈가왈부하는 나 역시 그 기술적 문제에 대한 판단에서는 문외한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나는 아직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도 않고 있으니 지금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두 회사의 제품 사이에 어떤 기술적 차이가 있는지 단순 비교할 길도 없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소송에 관한 보도 내용들을 살펴보자니 고난도의 기술적 문제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내용도 있다. 예컨대 소송의 내용 가운데는 둥근 모서리가 있는 사각형 스마트폰의 디자인도 문제가 되고 있다. 누군가는 그걸 두고, 둥글게 만들어진 최초의 자동차 핸들과 똑 같이 그 다음에 만들어진 자동차 역시 그렇게 핸들을 둥글게 만들었다고 해서 특허권 침해로 문제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자동차가 처음 만들어질 때 특허권 소송제도가 있었다면 충분히 그럴 법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그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 사각형이나 팔각형의 핸들을 만들어야 할까?


이 대목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쉽게 생각해 인간에게 편리한 기술을 개발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욕망이고, 그에 따라 실제로 인간에게 편리한 기술이 개발되었다면 모든 인간이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인류문명은 바로 그런 경로를 따라 발전해 왔다. 인간이니 인류니 하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그저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된다. 기술의 적용이 표준화되어 있고 일반화되어 있을수록 소비자에게는 편리하지 않은가.


바로 그런 문제를 두고 어째서 치고박고 하는 걸까? 문제는 인류 공동의 지적 유산이 특허권 제도를 매개로 해서 사유화된다는 데 있고, 그로 인해 결국 특정한 자본의 독점적 이윤이 보장된다는 데 있다. 같이 쓰면 편리할 것을, 누군가가 그것을 선점했다고 해서 그 기득권을 항구적으로 보장해 주는 제도가 과연 어떤 점에서 정당성을 지닐 수 있을까? 사유재산권이 절대적 가치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지만, 장기적인 인류문명의 발달과정에서 볼 때 그것은 타당한 법칙이 될 수 없다. 소유권의 보호가 절실한 맥락이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이 누리는 많은 조건들 가운데는 사유화될 수 있는 것과 사유화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분별하는 것도 절실하다.


누구의 편을 들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늘 아래 새것이 없거늘(전도서 1:9) 서로 내 것만이 새것이라고 우기는 사태 속에서, 자본에 매인 삶의 방식이 지니는 모순을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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