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박근혜의 역사인식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09-27 20:47
조회
2665
* <뉴스앤조이> 청탁으로 쓴 원고입니다(20120928).


박근혜의 역사인식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 한신대 외래교수)


오랫동안 박근혜 후보는 말실수가 없는 신중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의 정견에 대한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로부터 받는 인상이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나의 그 판단은 완전히 바뀌었다. 국회의원 공천과정상의 불법자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일 뿐이라며 잘라 말하기를 반복했고, 과거사 문제가 제기될 때는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 빈도가 잦아지다보니 무슨 녹음테이프를 반복해서 듣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말실수가 없었던 것은 신중해서가 아니라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사람과 소통의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서는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사실관계와는 다른 발언까지 했다. 생각과 소통의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국정 최고책임을 맡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엄중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사실인식마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은 당연하였고, 덩달아 지지율도 하락하여 소위 ‘대세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과거사 관련 대국민 기자회견은 그런 배경에서 이뤄졌다. 그런 만큼 그 회견문은 이전의 그의 발언들과는 달리 매우 전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민주주의의 가치로 전제하고, 5.16, 유신, 인혁당 사건이 헌법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기본요지다. 더불어 바로 그로 인한 인권침해로 지금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고통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과 가족들에게 사과를 한 것 또한 주요 내용이다.


역사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불과 2주일만에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학생이 학습을 하면서 생각을 바꾼 경우도 아니고, 국정 최고책임을 맡겠다는 대통령 후보가 단기간에 역사인식을 바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 인식의 변화 자체를 애써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에 따른 학습효과로서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박정희의 딸로서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2012년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서 이전의 입장과 달리 그렇게 공언한 만큼,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대통령 후보로서 그 입장에 대해 얼마나 책임적인 태도를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발언의 진정성 여부는 말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 말을 실제로 뒷받침할 수 있는 책임적 행동의 실행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국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물론 미심쩍어 보이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 기구의 운영은 대통령이 돼서나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다분히 선거용 공약일 뿐이라는 의혹을 지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공언한 만큼 그 약속을 어떻게 지키는지 지켜 볼 일이다. 그 약속이 단지 선거용 공약이 아니라면 그 기구를 설치하고자 하는 정신에 따라 지금 당장 제기되고 있는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 터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으고 있듯이 예컨대 장준하 선생 의문사 해결을 위한 노력은 그 약속의 진정성을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공언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기를 바라는 기대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정작 미심쩍은 점을 지나칠 수가 없다. 스스로 밝히기를 “얼마나 힘든 일인지” 헤아려 달라고 했지만, 여전히 헤아려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다. 회견문의 전반적 기조를 형성하고 있는 역사 자체에 대한 인식이 사실 근본적인 문제다. 회견문의 서두에서는 “과거사 논쟁으로 인해 사회적 논란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그와 동일한 취지의 발언은 말미에서 다시 반복된다.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며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적으로 말해 과거사 논쟁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뿐이며 그것이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이다.


과거사 논쟁이 고작 그런 정도의 의미밖에는 지니지 못하는 것일까?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현대 역사학의 고전적 명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지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과거사는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그로 인한 역사적 유산은 아직까지 온전히 극복되지 않고 있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은 당사자들이 여전히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산업화 과정에서 권리를 억압당했던 노동자들의 현실은 오늘도 반복되고 있고, 부당한 체제에 대해 이의제기한 사람들을 옭아매었던 국가보안법 역시 버젓이 살아 있을 뿐 아니라 걸핏하면 ‘종북’ ‘빨갱이’ 논란이 재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역사에서 상처받은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과거의 그 이유와 다르지 않은 이유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 점에서 과거사 논쟁은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오늘 이 땅의 사람들의 열망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과거사 논쟁은 미래로 향한 발걸음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발걸음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발판이다. 그것을 장애물로 인식하는 태도는 역사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인식의 결여를 보여줄 뿐이다.


나아가 역사 자체에 대한 인식의 결여는 과거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해법의 모호함으로 직결되고 있다.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증오에서 관용으로, 분열에서 통합으로”를 그 미래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말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스스로 의식하고 있는 걸까? “증오에서 관용으로”를 말하고 있지만, 여기서 ‘관용’이란 강자의 덕목이라는 점을 새삼 환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강자의 강권력에 의해 피동적으로 당해야 했던 사람들이 취해야 할 윤리적 덕목이 아니다. 그것은 마땅히 헌법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휘두른 당사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인 것이다. 그런데 회견문의 문맥상 그 요구는 청중을 향하고 있다. ‘이제 이 만큼 했으니 그만 미워하고 관용을 베풀어달라’는 것으로 들리지 않는가? 진정한 사과를 의도한 것이라면 관용의 정신을 훼손한 역사적 과오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다시 강조했어야 하고, 그에 기반하여 통합을 역설해야 하는 것이 옳다.


‘인혁당’을 ‘민혁당’으로 말함으로써 사과해야 할 대상의 실체도 잘 알지 못한다는 의혹을 자아낸 점은 우발적 실수라 치더라도, 역사에 대한 인식의 결여와 과거의 역사에서 비롯된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해법의 혼동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는, 반성을 말하고 사과를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주고 있는 문제다. 그 점에서 회견의 진정성은 믿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역사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다만, 차제에 공언한 바에 대해 어떠한 책임적 행동을 취하게 될 것인지 하는 것만큼은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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