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특별강연] 한국 근대화를 돌아본다 - 산업화와 민주화를 중심으로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10-14 19:39
조회
3116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최형묵) 특별강연

2012년 10월 14일(일) 오후 1:00  


한국 근대화를 돌아본다 - 산업화와 민주화를 중심으로



1.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평가하기 위한 접근방법


1) 문제제기의 출발점: 근대화의 핵심요체로서 산업화와 민주화, 그 상호관계


근대화의 핵심적 요체로서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일반적 통설, 곧 산업화는 민주화의 전제조건으로서 산업화가 선행되어야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통설은 과연 타당할까?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룸으로써 근대화에 성공한 한국의 경우 전형적인 그 경로를 따른 표본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 논문은 그와 같은 통설이 사실적 관계에서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며, 한국의 경우 산업화와 민주화가 역사적 사실관계의 차원에서 선후적 시차관계에 있다기보다는 동시적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을 규명하고자 한다. 한편 산업화와 민주화의 관계를 선후적 시차관계로 인식하는 이와 같은 통설은 산업화 과정에서 정치적 권위주의의 불가피성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활용되어 왔고, 나아가 민주화가 가능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산업화의 성공 덕분이라는 논거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가 동시적 상관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사실관계가 규명된다면, 그 통설의 근거는 사라지게 되며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않는 산업화에 대한 전망이 가능해진다.        


2) 기독교 신학(기독교윤리)의 입장에서 한국 근대화를 평가하는 의미


이 논문은 근대화의 핵심요체로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사실관계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하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전반적인 과정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평가를 목적으로 한다.

윤리적 평가란 일정한 가치규범으로 현실을 평가하는 것을 뜻하며, 기독교 윤리라는 점에서 그것은 신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신학적 근거는 선험적 확신의 형태로 가치규범으로서 제시되지만, 사실은 역사적 과정에서 응축된 경험적 확신으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 확신은 객관적 검증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독단과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그 확신이 독단에 빠지지 않고 보편적인 윤리적 규범으로서 역할하기 위해서는 역사적ㆍ사회적으로 형성된 다른 가치 확신들과 소통할 능력을 지녀야 하고 또한 현실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 등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 점에서 가치 확신은 그 자체로 객관적인 검증의 대상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평가하는 적절한 윤리적 규범으로서 역할하기 위해서는 진지한 학문적 성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논문은 역사적ㆍ사회적으로 형성된 다른 가치 확신들과 소통할 능력을 지니고 있고 또한 현실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하나의 신학적 입장으로 민중신학의 입장을 취한다. 민중신학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그 문제를 진단하고 성찰한 데서 형성되었고, 그런 만큼 이 논문이 연구 목적으로 삼는 한국의 경제개발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평가를 시도하는 데 가정 적절한 하나의 신학적 입장이다. 무엇보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시점에서 성서와 역사를 해석하고자 하는 자기 이해를 스스로 밝힘으로써 역사적 과정에서 형성된 신학적 가치 확신들을 다루는 스스로의 입지점과 방법을 갖고 있다. 나아가 신학적 인식과 사회과학적 현실분석의 결합의 필요성을 인식함으로써 역사적ㆍ사회적 현실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을 신학의 내적 논리로 삼고 있고, 현실에서 전개된 실천과정에 함께 하고 현실의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역사적ㆍ사회적으로 형성된 다른 가치 확신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논문은 이 논문이 취하고 있는 기독교 윤리적 관점이 기독교 “사회윤리” 차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민중신학이 성취한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의 경제개발과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신학적 기독교 사회윤리 방법론을 설정한다.  


3) 기독교 사회윤리의 관점에서 한국의 근대화를 평가하는 기준


기독교 사회윤리의 관점에서 한국의 경제개발과 민주주의를 평가하고자 할 때, 그 평가의 규준을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핵심적 관건이다.

이 논문이 민중신학적 입장을 신학적 준거로 삼고, 그에 따른 사회윤리 방법을 설정하고 있는 만큼 윤리적 평가의 규준 설정 또한 그 방법을 따른다. 이 논문이 설정한 민중신학적 사회윤리 방법의 중요한 구성요소이자 원칙은 민중적 관점,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와 현실을 분석하는 방법을 그 내적 논리로 삼고 있는 점, 그리고 역사적ㆍ사회적으로 형성된 가치 규범들과의 소통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점 세 가지를 꼽는다. 이 점들을 유념할 때 윤리적 규준의 설정 방법은 기본적으로 “아래로부터의 방법”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민중신학의 고유한 개념으로 말하자면 “계시의 하부구조”에 주목하는 방식이다.

윤리적 규준의 설정이 “아래로부터의 방법”을 지향한다고 해서 신학적 지평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이 연구가 기독교 윤리적 평가를 목적으로 하는 한 궁극적 지평에서 상대적 현실의 차원을 평가하는 신학적 성격은 그 고유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 논문은 현실에 구체적으로 적용 가능한 윤리적 규준을 설정하고 그것들이 신학적 입장에서 어떻게 정당성을 지닐 수 있는지 검토함으로써 신학적 근거를 확보하고자 한다.


(1) 평가의 윤리적 규준으로서 인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윤리적 규준들을 설정할 것인가? 이 논문이 “아래로부터의 방법”으로 윤리적 규준을 설정한다고 할 때, 평가의 대상이 되는 한국의 경제개발과 민주주의 현실을 진단하기에 가장 적절한 가치규범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로 집약되는 근대화의 과정은 새로운 사회적 계급을 형성시켰고 동시에 그에 따른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시키는 가운데 여러 측면에서 그 현실을 진단하는 가치규범들의 형성을 동반하였다. 그 가운데서 오늘날 보편적인 가치규범으로 인정되고 있는 핵심적 가치 가운데 하나가 “인권” 개념이다. 오늘날 보편적인 가치규범으로 인정되는 인권은 항상 배제된 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제기되었고 일정한 역사적 단계들을 거치면서 그 권리의 범위가 확장되는 가운데 보편성을 획득하였다.

이 논문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형성된 가치규범으로서 인권이 갖는 의미에 주목하면서, 이로부터 한국의 근대화로서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 과정을 평가하는 윤리적 규준을 설정하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보편적 가치규범이 된 인권은 그 자체로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에 그것을 구체적 현실을 평가하는 데 적용 가능한 규준으로 삼기 위해서는 보다 분화된 인권 개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은 오늘날 보편적 규범으로서 인권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상황에 조응하는 인권 개념의 발전과정을 주목하고, 그로부터 구체적인 윤리적 기준을 설정하려고 한다.

오늘날 인권 개념은 대략 세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형성되어 왔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봉건적 정치권력에 대항한 시민계급의 권리로서 인권이 제기되었고, 오늘날 그것은 자유권 또는 시민적ㆍ정치적 권리로서 인권으로 정착되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자본주의적 산업화로 노동계급이 형성되면서 사실상 시민계급의 권리로 한정된 자유권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동자계급의 생존 및 생활의 권리로서 인권이 제기되었고, 오늘날 그것은 사회권 또는 사회적ㆍ경제적 권리로서 인권으로 정착되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는 다양한 인종적ㆍ민족적 집단들의 자주적 결정권과 문화적 정체성을 옹호하는 권리로서 인권이 제기되었고, 그것은 문화적 권리 및 연대의 권리로서 인권의 범주에 해당한다.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윤리적 평가를 시도하는 이 논문은 세 가지 발전단계를 거쳐 확립된 오늘의 인권 규범을 주목하면서, 특별히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가치판단과 직결되어 있는 두 가지 인권 개념 곧 시민적ㆍ정치적 권리로서 인권과 사회적ㆍ경제적 권리로서 인권을 윤리적 규준으로 설정하고자 한다.

      

(2) 윤리적 규준으로서 인권의 신학적 정당성

이 논문이 역사적ㆍ사회적으로 형성된 가치규범으로서 인권을 주목하고, 그 안에서 분화된 두 가지 구체적인 인권 개념 곧 시민적ㆍ정치적 권리로서 인권과 사회적ㆍ경제적 권리로서 인권을 윤리적 규준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 논문이 신학적 기독교 사회윤리의 지평에서 그 규준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규준들은 신학적으로 정당성을 지닐 수 있는지 검토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배제된 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성격을 띠면서 그 범위가 확장되어 보편적 가치규범으로 자리 잡게 된 인권의 개념은, 민중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그 민중을 하느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보는 민중신학의 입장에서 신학적으로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보편적 인권의 분화된 개념으로 시민적ㆍ정치적 권리로서 인권 또한 하느님의 주권이 역사적으로 민중의 주권으로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사회적ㆍ경제적 권리로서 인권 역시 성서의 전통에서 민중의 생존권을 가장 핵심적인 정의의 요체로 인식하고 있는 민중신학의 입장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2.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전개과정  


1)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방법


이 논문이 제기한 문제의식의 타당성을 드러내고, 나아가 최종적 목적에 해당하는 한국의 경제개발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평가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평가의 대상이 되는 한국의 경제개발과 민주주의의 현상을 적절하게 분석할 수 있는 사회과학적 분석 방법론이 요구된다. 그 사회과학적 분석방법은 경제적 발전과정으로 산업화와 정치적 발전과정으로서 민주화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논문이 취하고 있는 민중신학적 입장에 부합하는 분석방법일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발전해 온 정치경제학적 방법론은 정치와 경제를 상호관계 차원에서 분석하고 있는 유력한 방법론이다. 이 논문은 경제적 토대와 정치적 상부구조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더욱 구체화된 논의의 지평을 연 현대 자본주의 국가론 논의와 시민사회에 관한 논의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쟁점들을 유념하는 가운데 경제적 발전과정으로서 산업화와 정치적 발전과정으로서 민주화를 동시에 검토할 수 있는 독자적인 방법론을 설정하였다.

그 방법론은 “발전연합”에 의한 산업화와 “민중연합”에 의한 민주화의 모순적 상호관계를 기본적 가설로 삼아 이를 뒷받침하는 몇 가지 세부적 가설을 설정함으로써 구성하였다. 그 세부 가설들은, 첫째 현대 자본주의사회 안에서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의 성격은 한국의 경제개발과정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는 점, 둘째 경제개발과정에서 국가권력의 주도하에 육성된 자본은 자기증식이라는 기본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치적 국면에 따라 유리한 조건을 활용해 왔다는 점, 셋째 한국의 근대화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시적 진전과정이 된 데에는 노동자의 동의와 저항이라는 모순된 이중적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점, 넷째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본격화되기 이전 한국의 시민사회는 취약했으나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함께 급격히 성장하며 민주화에 기여하였다는 점으로 집약된다. 이 가설들 가운데 특별히 강조되어야 할 것은,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가 모순적 관계 속에서 동시적으로 진전된 데에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민중들의 동의와 저항이라는 이중적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점이다. 이 논문은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주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원용하였다.


2)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전개과정


한국의 경제개발과 민주주의에 대한 분석은, 앞에서 설정한 방법론적 가설을 따라 산업화를 주도한 국가 및 자본의 역할과 이에 대응한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의 역할을 대비하는 것을 기본축으로 삼는다. 국가 및 자본의 역할에 주목한 것은 주로 산업화의 성격과 그 문제를 진단하고자 한 것이며,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의 역할을 주목한 것은 한편으로는 산업화의 진전에 실질적 기여를 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문제에 대항함으로써 민주화를 가능케 한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네 개의 시기로 나눠 검토한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집약된다.


(1) 한국 경제개발의 기원

첫 번째 시기는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기 이전 주로 1950년대에 해당하는 시기로, 경제개발계획을 가능하게 한 배경과 그 배경 속에서 경제개발계획이 어떻게 구상되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개발계획 이전 시대인 1950년대는 흔히 “불임의 세월”로 간주되는 것과는 달리 사실은 1960년대 이후 국가주도형 경제개발과 고도성장의 전제조건이 형성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농지개혁은 그 불철저성에도 불구하고 봉건적 지주소작관계를 청산하여 자본축적의 기회를 제공함과 아울러 봉건적 지주계급을 해체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산업화로서 경제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였다. 귀속재산 및 미국 원조물자의 분배에서 나타난 특혜는 국가권력과 유착된 독점기업중심의 한국경제의 특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한편 경제개발 시대 일관되게 지속된 노동자계급에 대한 국가권력의 통제도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노동자계급은 미약한 산업화의 수준으로 미약한 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직후의 특수한 정치공간에서 강력한 정치적 성향을 띠고 있었는데, 노동자들의 자발적 조직이 해체되고 국가통제하에 조직된 새로운 노동조직으로 대체되었다.


(2) 한국 경제개발계획의 구상과 추진

두 번째 시기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1962년부터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추진된 기간이다.

정치적 정당성을 결여한 박정희 정권은 이전부터 형성되어온 국민적 공감대에 기반하여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함으로써 정치적 정당성의 결여를 상쇄하였다. 처음 경제개발계획은 기본적으로 내자위주의 균형발전을 기조로 하였으나 통화개혁의 실패와 쌀 위기 등의 악조건이 겹친 데다가 한국경제를 동아시아 국제분업구조에 편입시키려는 미국의 압력 등으로 경제개발계획은 외자위주의 불균형발전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한일협정과 베트남전쟁은 외자위주의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는데, 특히 한일협정과 그로부터 이어진 경제협력은 국내 자본의 형성이 미약한 상황에서 외자위주의 산업화를 주도하게 된 국가와 자본 간의 “발전연합”을 구축하게 되는 실질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발전연합”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추동한 “민중연합”을 구성하게 되는 실질적 계기이기도 했다. 한일협정에 대한 대대적인 국민적 저항은 향후 외자위주의 불균형성장과 동반한 정치적 권위주의에 대항한 “민중연합”의 사실상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개발계획의 선회와 함께 외적 계기를 통해 가속도가 붙은 산업화는 불균등 발전으로 인한 농민과 노동자의 배제 그리고 정치적 민주주의의 훼손을 본격적으로 야기하였고, 민중의 저항 또한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시기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시적인 모순관계의 원형이 형성된 시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3) 고도성장과 개발독재의 시대

세 번째 시기는 “고도성장”의 시기로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7~1971)이 추진된 시기부터 중화학공업화의 추진과 함께 유신체제가 형성되어 1979년 그 체제가 붕괴되기까지의 기간이다. 이 기간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시적 모순관계가 격화된 시기로서, 중화학공업화로 인한 자본 집중과 정치적 권위주의가 강화될수록 그에 대한 저항 또한 강화되어 강력한 민주화운동이 벌어지는 양상을 띠어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관계에 관한 핵심적 쟁점들을 내장하고 있는 시기이다.

중화학공업화의 추진은 고도의 자원집중을 필요로 하였고 이에 따라 자원의 특혜적 배분으로 육성된 소수의 대자본과 국가의 “발전연합”은 더욱 강고해졌고 동시에 정치적 권위주의의 강화를 동반하였다. 이것은 기왕에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된 이래 구조화된 불균형 발전을 심화시켰고 노동에 대한 억압적 배제를 본격화하였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언로 자체를 억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체제는 경제발전을 위한 고도의 효율성을 추구하였지만 그 밖의 다른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정치세력의 존재를 부정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출구를 지니지 못하는 체제였다.

그 체제에 균열을 내고 다른 가능성의 출구를 연 것이 민주화운동이었다. 경제개발 시작 이래 유신체제에 이르기까지 박정희 정권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두 가지 방향에서 민주화운동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성공의 결과요 또 다른 하나는 실패의 결과로서, 성공의 결과라는 것은 자본주의적 산업화로 중산층의 성장 및 노동자와 농민 등 기층민중의 성장을 초래했다는 것을 뜻하며, 실패의 결과라는 것은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권위주의를 수립한 결과 광범위한 저항세력을 형성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발전연합”이 강고해진 만큼 “민중연합” 또한 강고해지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결국 유신체제가 붕괴한 것은 그 모순관계의 폭발에 따른 것이었다.


(4) 1980년대 이후 산업구조정과 경제개방화

네 번째 시기는 유신체제 붕괴 이후 1980년 신군부체제의 형성, 그리고 1987년 민주화항쟁이후 정치·경제적으로 중대한 변화를 동반한 기간이다. 이 기간은 1987년을 기점으로 국가체제와 민중운동 양 진영에서 모두 중요한 변화를 동반하고, 따라서 그 기점을 중심으로 질적 단절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국면상의 단절에도 불구하고, 1987년 정점에 달한 민중운동이 1980년대 이래 연속성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 및 자본간의 발전연합이 1987년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어 양자의 기본적 대립구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하나의 시기로 다룰 수 있다.

이 시기에 이전부터 성장해온 저항운동이 민중계층의 성장과 함께 복합적인 민중운동으로 발전하였고 1987년을 정점으로 하여 폭발적인 양상을 띠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구축되어 온 “발전연합”과 “민중연합”의 기본 대립구도가 지속된 데에는 두 차례에 걸친 발전연합의 체제위기 봉합의 계기가 놓여 있다.

첫 번째 체제위기 봉합은 유신체제 붕괴 이후 신군부의 쿠데타에 의한 것이었다. 신군부 정권은 자본축적의 위기에 대응하여 산업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일정부분 경제개방화를 시도하였지만 기본적인 지배구조의 변화 없이 구체제의 정책을 거의 답습하였고, 권위주의적 통치방식 또한 그대로 연장한 상태에서 국가의 강권력을 총동원함으로써 더욱 강화하였다. 그것은 경제성장과 함께 성장한 여러 사회계층의 민주주의적 요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서, 그 부조화는 오히려 민주화운동을 강화시켜주는 효과를 지녔다.

결국 1987년 민주화항쟁으로 다시 지배체제의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는데, 지배세력은 민중운동의 요구를 절차적 민주화의 수준에서 수용함으로써 체제위기를 봉합함과 아울러 결과적으로 민중연합의 균열과 약화를 가져다주었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에 이어 7~8월 노동자대투쟁이 거세게 일었지만 이미 체제위기 봉합에 성공한 지배세력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했을 뿐 기존의 노동 배제체제를 지속시켜 나갔다.

1988년 이래 본격화된 경제의 개방화와 자유화는 한편으로는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체제의 사실상의 종식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자본의 지배력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것은 노동 배제체제를 지속시킨 결정적인 조건 가운데 하나다. 결국 절차적 민주화의 성취와 함께 기대되었던 실질적 민주화로서 경제민주화는 구현되지 못한 채 지체되었다. 이처럼 산업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질적인 민주화가 지체되고 있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의 선후적 단계론의 문제점을 드러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평가  


이 글은 민중신학의 입장에서 기독교 사회윤리의 방법을 구성하고 그에 따라 한국의 경제개발과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구체적인 윤리적 규준으로 시민적ㆍ정치적 권리로서 인권의 규준과 사회적ㆍ경제적 권리로서 인권의 규준을 설정하였다. 근대의 역사적 과정에서 형성되어 오늘날 보편적 가치규범으로 자리잡게 된 이 두 가지 인권의 규준은, 하느님의 주권이 역사적으로 민중의 주권으로 구체화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또한 민중의 생존권 보장을 핵심적인 정의의 요체로 인식하고 있는 민중신학의 입장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한국의 경제개발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평가를 위해 이 글이 채택하고 있는 인권의 규준은, 경제적 발전과정 및 정치적 발전과정이 구체적으로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서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보는 이 글의 근본동기와 맞닿아 있다. 그 근본동기는 하느님의 형상을 부여받은 인간의 진정한 삶의 회복을 바라고 믿는 신학적 관점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최종적인 윤리적 평가를 시도하기 위하여 앞에서 설정한 윤리적 규준의 핵심적 요체를 재삼 확인하고자 한다. 먼저 윤리적 규준의 정초개념으로서 인권은 어떤 경우든 모든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서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인간적 이상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구체화된 첫 번째 규준으로서 시민적ㆍ정치적 권리로서 인권의 규준은 통치권력의 임의적인 지배에 대항한 민중의 자유로운 의사결정 및 정치적 결정을 함축하는 주권재민의 원칙을 요체로 하여 정당한 정치적 주체로서 각 개인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 및 의사표현의 자유, 생명권의 존중 및 인신에 대한 부당한 처우의 금지, 그리고 민의의 정당한 대표권 보장을 위한 정치적 절차상의 정당성 확보 등을 그 세부적인 요건으로 한다. 기독교 사회윤리의 근거가 되는 신학적 의미에서 그것은 하느님의 형상을 부여받은 책임적 존재로서 인간 이해와 하느님의 계약상대로서 민중의 역할과 관련되어 있다. 두 번째 규준으로서 사회적ㆍ경제적 권리로서 인권의 규준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삶의 기본조건, 곧 만인에게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생존의 권리이자 나아가 적극적인 생활의 향유 권리로서 오늘날 그것은 노동권을 핵심으로 하여 적정한 교육과 의료의 보장 등을 포함한 매우 다양한 사회복지의 내용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신학적 의미에서 그것은 하느님의 신실함에 근거한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정의의 구체적인 실현으로서 사회적 약자의 생존과 생활의 보장과 관련되어 있다. 책임적 존재로서 인간 및 하느님의 계약상대로서 민중에 대한 이해가 철저하게 관계적 차원에서 이해되고 있듯이 사회적 약자의 생존과 생활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곧 하느님의 정의의 실현이라는 신학적 이해 또한 관계적 차원에서 그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제 이 두 가지 인권의 규준에 따라 각 시기별로 한국의 경제개발과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를 시도하고자 한다.


1) 경제개발 이전 시기


첫 번째 시기는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함께 정부의 수립으로 헌법을 통해 제반 권리에 대한 규범이 확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규범과 현실의 현저한 괴리 양상을 보인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시기에는 시민적ㆍ정치적 권리의 측면에서 냉전체제하의 단독정부의 수립과 전쟁 등으로 극단적인 이념지형이 형성됨으로써 일체의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표현이 금압되는 현상이 현저하였으며, 사회적ㆍ경제적 권리의 측면에서는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받기 어려울 정도로 피폐해진 경제적 현실에 더하여 적산불하와 미국의 원조물자 배분 등에서 특혜적 배분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과 불의의 만연으로 특징지어진다.

다만 이 시기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 일종의 “수동혁명”의 성격을 지닌 농지개혁이 실시됨으로써 훗날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할 객관적 조건을 형성함과 동시에 농자유전 원칙의 확립으로 배타적 소유권이 민중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한계 안에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을 들 수 있다.


2) 5.16군사쿠데타와 경제개발계획 추진 초기


두 번째 시기는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면서 민주주의가 억압되는 경향을 띠었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문제점들이 제기되면서 제반 민주적 권리 요구가 비로소 한국사회의 내재적인 가치로 등장한 계기가 된다.

이 시기에는 시민적ㆍ정치적 권리의 측면에서 반공주의와 경제성장제일주의의 결합 속에서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됨으로써 이념적 경직성과 경제적 효율성이 전면에 내세워짐에 따라 사상과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였다. 하지만 역으로 이에 대한 저항으로 민중들 가운데서 민주적 권리 의식이 점차적으로 형성되었다.

사회적ㆍ경제적 권리의 측면에서는 산업화의 성과로 전반적으로 절대 빈곤선을 벗어나는 긍정적 효과를 누릴 수 있었지만, 자원의 집중과 선택을 필요로 하는 산업화의 성격으로 산업간 불균형 현상이 노정되었고 이에 따라 도시 중산층 이외에 농민과 도시 노동자 및 빈민층의 심각한 생활상의 압박이 야기되었다. 그 압박에 따라 민중들의 생존권 요구가 점차적으로 싹트기 시작하였다.


3)고도성장과 개발독재의 시기


세 번째 시기는 자원의 고도집중을 요하는 중화학공업화의 추진과 함께 동시에 강화된 정치적 권위주의로 제반 민주적 권리가 극심하게 억압당할수록 동시에 그에 대한 저항 또한 더욱 강력해지는 모순적 관계가 격화되는 양상을 띠었다.

시민적ㆍ정치적 권리의 측면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공존을 욕구하는 국민적 요구의 분출에도 불구하고 지배세력이 유신체제를 통해 권위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사실상 민주적 헌정질서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국민들의 기본적인 권리 요구 자체를 부정하였다.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가 봉쇄되었고 저항세력에 대한 임의적인 인신의 구속과 고문 등이 일상화되었다. 이것은 산업화의 성공으로 성장한 사회 제 세력의 민주적 권리 요구와는 현저하게 배치되는 것이었다.

사회적ㆍ경제적 권리의 측면에서는 경제적 고도성장으로 국민경제 규모가 확대되고 평균적인 물질적 생활의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균등 발전으로 인한 불평등 현상이 심화되었고 민중계급의 상대적 박탈현상과 권리제약 현상이 강화되었다.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면서부터 문제시되었던 농민층의 배제, 도시 노동자와 빈민층의 배제 현상이 강화되어 상대적으로 생활압박을 심하게 받았고, 이들의 권리 요구는 철저하게 탄압되었다. 반면에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특혜는 더욱 늘어 사회적 부정의가 강화되고 윤리적 가치관마저 혼미해지는 양상을 배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는 사회 제 계층의 권리 의식이 급격히 향상되었고 그만큼 민주화의 요구 또한 강력해졌다. 그 민주화의 요구는 당시로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곧바로 제도화될 수 없었지만, 훗날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상당부분 국가적 차원으로 수렴되게 되었다.  


4) 1980년대 신군부의 집권과 민주화 이행기


네 번째 시기는 유신체제의 붕괴와 함께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이뤄지리라 기대되었던 상황에서 신군부의 집권으로 오히려 민주주의의 훼손과 인권의 유린 정도가 훨씬 심각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강화된 민주화의 요구가 결국 1987년 민주화항쟁으로 분출하고 이후 민주적 제 권리가 국가의 제도적 차원에서 구현되는 시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존 지배세력의 “발전연합”이 해체되지 않은 조건에서 이뤄진 민주주의적 제 권리의 국가 제도적 차원에서의 구현은 분명한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는 이전 시대와 동일한 민주화운동의 국면과 민주주의의 국가적 제도화의 국면으로 나뉘는데, 시민적ㆍ정치적 권리의 측면에서 볼 때 그 양 국면간에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신군부의 통치시기, 곧 아직 민주화운동의 요구가 국가의 제도적 차원으로 수용되기 이전의 국면에서는 시민적ㆍ정치적 권리의 측면에서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 시기는 어떠한 정치적 정당성도 지닐 수도 없는 절차에 따라 신군부의 집권이 이뤄졌고 저항세력에 대한 유혈진압으로 국가의 강권력을 총동원하는 것으로써 지배질서를 구축하였다. 사상의 자유와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가 철저하게 금압되었을 뿐 아니라, 형식상으로 구현한 정당정치마저도 “관제화된” 틀 속에서만 가능하였다. 뿐만 아니라 광주항쟁의 유혈진압 외에도 사회악 일소를 명분으로 삼청교육이 실시된 데서 나타난 바와 같이 최소한의 형식적인 사법적 절차도 무시된 채 인신의 구금과 고문 등이 자행되었다. 어떠한 정치적 정당성도 없는 집권세력에 의한 민주적 제 권리의 박탈과 금압의 상황에서 민주화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고, 이후 1987년 민주화항쟁으로 시민적ㆍ정치적 권리 실현은 국가의 제도적 차원에서 현저하게 진척된다.

사회적ㆍ경제적 권리의 측면에서 보면 이 시기의 양 국면간에는 의미 있는 차이가 없지 않으나 시민적ㆍ정치적 권리의 측면과는 달리 연속되는 성격이 지배적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노동에 대한 통제의 측면에서 볼 때 국가의 강권력에 의한 물리적 탄압이 1987년 6월 민주화항쟁과 7~8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완화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기존의 “발전연합”이 해체되지 않고 오히려 민주화의 이행 국면에서 자본과 국가간의 역관계가 변화되는 가운데 노동배제 정책이 일관되게 지속되었다. 결국 절차적 민주주의는 진전되었으나 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제한된 민주주의의 상황이 전개되었고, 노동권을 확립함으로써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이루는 과제는 여전히 한국사회의 당면한 과제로 남아 있다.



4. 결론


한국의 경제개발과 민주주의의 과정에 대한 사실적 분석과 판단의 차원에서 볼 때, 현재 당면한 과제로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과제는 역시 민중세력에 부여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훼손하면서 국가와 자본 주도의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민주화를 진전시킨 것은 역시 “민중연합”의 주도에 의해서였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어떻게 될까? 그것은 이 글의 과제를 넘어선 것으로, 이 글에서는 그 방향만을 암시할 뿐이다.

한편 민중을 하느님의 계약상대로 보고 민중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것을 하느님의 정의의 실현으로 보는 민중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여전히 노동자들의 권리와 민중의 생존 및 생활의 권리가 제약당하고 있는 현실은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민중의 정당한 권리 회복의 기대는 그 신학적 입장에서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


최형묵, 한국 경제개발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평가, 한신대대학원 신학과, 2012


선재원

2012.10.14.


총평


  본 논문은 고도성장을 실현한 경제체제로 평가되어 온 한국자본주의에 대해 민중신학에 근거한 기독교 윤리적 평가를 시도하여,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순차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민중의 동의와 대항에 의해 상호보완적으로 이루어진 점을 밝혔다.

  본 논문의 가장 큰 공헌은 첫째, 한국의 경제개발과 민주주의 과정에 대해 정치학(정치사)과 경제학(경제사)에서 각각 진행되어 온 연구를 신학(기독교 윤리)의 관점에서 재평가했다는 점이다. 둘째, 민중운동의 역할을 재조명함으로써 한국의 경제발전과정에서의 민주화는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간주하는 산업화논리를 근본적으로 비판한 점이다.

  다음과 같은 의문점을 제시하는 것으로 읽은 사람의 책무를 다하고자 한다.


의문점


  첫째, ‘민중’이란 무엇인가? 본 논문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민중신학의 논리에 기초하여 최초의 본격적인 평가를 시도한 점이다.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연구는 일정정도 축적되었다고 인정되지만, 민중신학이라는 평가기준에 기초한 분석은 없었기에 민중신학의 기반이 되는 ‘민중’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저자는 민중의 개념을 생산수단을 보유하지 않는 ‘계급’ 또는 소수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자’로 정의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렇지만 계급의 정의는 명확하지만 고정적이고, 피지배자라는 정의는 유연하지만 확정적이지 못하다. 저자의 민중개념이 시기구분과 어떻게 연동되고 있는지 아니면 관련 없이 구분되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알고 싶다. ‘민중’에 대한 저자 독자적인 개념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으면 본 논문의 또 하나의 중요분석개념인 ‘발전연합’과 ‘민중연합’에 대한 개념도 유동적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안병무의 ‘公’의 윤리는 국가의 공공성에 의해 실현가능한 것 아닌가? 다시 말하면 인권의 기반이 되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하나님나라의 현실화인 ‘公’의 윤리를 실현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다.

  셋째, 한국의 인권규범 역사는 해방 후에 외부의 충격에 의해 시작되었는가? 민중이 곧 하늘이라는 개항이전의 동학사상과 세계1차 대전 이후 민주주의이념의 보급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특히 일제 강점기의 보편적 이념에 기초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회운동을 민족해방운동으로 수렴시켜 평가하는 것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예를 들면 당시 최대의 사회단체였던 ‘신간회’의 강령을 인권규범의 측면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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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
  • 2012-10-14 19:49
    특별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준비해주신 선재원 교우님, 먼 곳에서,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달려와 주신 모든 분들, 점심식사후 졸음이 몰려오는 상황에서도 긴 시간 함께 하시고 토론해주시고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rn오전에 예배드리고, 오후에 곧바로 진행하는 특별강연이라 많은 분들의 참석이 어려우리라 생각했는데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분들이 참석했고, 함께 나눈 이야기도 유익했습니다. 선재원 교우님 정식 논평과 질문 가운데 하나만 답하고, 나머지 두 질문은 다른 토론을 하는 와중에 까먹고 말았군요. 죄송합니다. 그에 관해서도 할 이야기가 있는데...^^
    rn방대하고 복잡한 내용을 간결하게 전하려고 애를 썼는데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시간 넘는 강연과 토론 상황, 편집 없이 그대로 올립니다. 이 음성 파일은 짧은 기간만 올려두었다가 삭제하겠습니다. 말이라는 게 생생하기도 하면서, 허점이 많은 거라...
    rn살림교회의 저력을 깊이 느낀 기회였습니다. 다시 감사드립니다.

  • 2012-10-15 11:15
    무거운 주제였지만 재미있고 유익한 강연이었습니다. 제가 어디가서 이런 수준 높은 강연을 들을 수 있을까요? 살림교회 신도여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