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사도(邪道)를 버리고 정도(正道)를...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01-16 12:18
조회
2801
* <주간 기독교> 다림줄22번째 원고입니다(120116).


사도(邪道)를 버리고 정도(正道)를...


“오직 너는 크게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지시한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이 말씀은 모세가 가나안 복지를 눈앞에 두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후 하나님께서 백성의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주는 말씀으로, 세대를 이어 지속되어야 할 삶의 정도(正道)로서 신앙을 일깨워 주고 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이야기는 언뜻 보면 중도통합노선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절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적중을 뜻한다. 곧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정도를 말한다. 이 말씀은 각 개인이 살아가야 할 삶의 태도를 일깨워 줌과 동시에 한 사회의 역사적 진로 또한 일깨워 준다.


우리 현대사에서 ‘진짜 보수’가 ‘가짜 보수’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역사적 인식은 일리가 있다(한홍구,『대한민국사』). 친일파, 그리고 그 맥을 잇는 수구세력이 보수주의로 위장한 까닭에 진짜 민족주의 보수노선을 걸었던 이들이 급진좌파로 인식되는 혼란이 벌어진 것이다. 예컨대 김구, 장준하, 함석헌, 계훈제 선생과 문익환 목사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야말로 건강한 민족주의 보수노선의 계보인데,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정계와 관계를 지배하면서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바람에 급진주의자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진짜 보수’로 일컬어질 수 있는 정치노선이 항구적으로 옳은 길이라 말할 수는 없다. 정치노선이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따라서 당대 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떤 선택이 최선이었는가를 따질 수 있을 뿐이다. 그 점에서 한국현대사에서 민족의 자주와 통일, 그리고 민주주의를 추구한 정치적 선택은 최대한의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연말 타계한 김근태 선생은 어떨까? 사람들은 그를 ‘민주주의자’로 불렀다. 그는 실제로 온건한 개혁노선에 충실한 민주주의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1980년대 ‘빨갱이’로 몰려 극한적인 고문의 고초를 겪었다. 그야말로 반인륜적 고문을 자행한 수사관이 빨갱이를 때려잡는 ‘애국’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 사연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것은 친일파에 기원을 두고 있는 수구세력이 지키려고 하는 체제가 정상적인 국가체제에서 크게 이탈해 있기 때문이다. 민족의 자주, 사회적 정의, 인권의 존엄성 등과는 거리가 먼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 주류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도(邪道)가 정도(正道)를 참칭해 온 역사 탓이다.


그나마 1987년 이후 역사는 건강한 민족주의와 온건한 개혁적 민주주의의 가치들이 점차적으로 실현되는 방향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수년간 그 역사는 확실히 뒷걸음쳤다. 지난 몇 년간 인권, 노동, 언론, 교육, 보건복지 등 사회전반의 상황이 과거 독재정권의 시절과 같이 후퇴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국가정책을 결정짓는 당국자들의 무능과 부정부패 또한 극에 달해 있다. 새해에는 그 후퇴한 역사의 물꼬를 바로잡을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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