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젊은이들의 꿈을 키워주지 못하는 사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02-20 17:18
조회
2735
* <주간 기독교> 다림줄 23번째 원고입니다(120220).


젊은이들의 꿈을 키워주지 못하는 사회


대학생인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씩 묻는다. “아빠는 대학시절을 어떻게 보냈어요?” 그 물음을 받을 때면 자신 있게 대답한다. “세상을 뒤집어엎을 기세로 살았다.” 정말 그랬다. 1980년대 초 시대가 엄혹했지만, 그런 만큼 오히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기백은 넘쳤다. 그 때 젊은이들은 “정의와 용기는 젊음의 생명!”을 노래하며 세상을 바꾸고자 혼신을 다했다. 혁명적 열기 또는 종말론적 기대가 넘쳐났다. 당시 젊은이들의 그 꿈 때문에 결국 한국사회는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일궈낼 수 있었다고 믿는다.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전설처럼 듣는다. 세상의 변화를 꿈꾸기보다는 저마다 경쟁력을 확보하여 그 세상에 적응하려고 발버둥치는 자신들 세대의 상황과는 너무나도 다른 부모세대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낯설게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을 보고 “너희들은 어째 그런 꿈이 없느냐?”고 다그치지 못한다. 젊은 시절 더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던 세대가 우리 사회의 중견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도 세상이 더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예전보다 나빠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권위적인 정치권력을 물리쳤다고는 하지만, 대신에 더 무시무시한 자본의 권력을 막아내지 못하여 젊은이들이 질식당하고 있는 상황을 두고 젊은이들을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얼마 전 교류관계로 일본교회 관계자들을 만났더니 낯선 개념을 이야기했다. ‘니트(NEET)’,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Not Education, Employ, Training’이란다. ‘교육도 못 받고, 취업도 못하고, 기술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격차의 심화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젊은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프리케리어트(Precariat)’라는 말이 통용된 지 오래다. ‘불안정한 무산자층(Precarious Proletariat)’라는 뜻의 신조어다.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비정규직, 청년실업자층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이 80%가 넘으니, 그래도 한국의 젊은이들은 교육받을 기회라도 있어 더 나은 처지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교육을 받아도 쓸모가 없으니 젊은이들의 낭패감은 더욱 크고, 사회 전반적으로 비효율과 낭비는 더 심각한 셈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우리 사회 젊은 세대와 그 부모세대의 차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느껴진다. 호기 있게 세상의 변화를 외치다가도 언제든 자신의 호구지책 찾는 것쯤은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것이 부모세대의 정황이었다면, 주어진 경쟁체제 안에서 순응하며 발버둥쳐도 호구지책 마련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오늘 젊은 세대들이 처한 정황이다. 물론 오늘의 시점에서 그로 인한 고통은 모든 세대가 동시에 짊어지고 있지만, 젊은 시절의 단면만 끊어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비교된다.


졸업과 입학의 절기에 아마도 젊은이들의 꿈을 독려하는 설교들이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젊은이들이 꿈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환경을 조성해나가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 아닐까.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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