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05-01 10:08
조회
2413
* <주간기독교> 다림줄25번째 원고입니다(120501).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한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한 약속입니다.”(에베소서 6:3)
이 말씀은 부모공경을 일러주는 이 계명이 십계명 가운데 약속이 딸려 있는 유일한 계명으로서,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져야 할 계명 가운데 순서상으로 첫 번째일 뿐 아니라 의미상으로도 첫 번째 계명에 해당한다는 이야기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어떤 사회에서나 공통되는 인륜의 중심 덕목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계명을 잘 지킬 때 사람들이 잘 살게 되리라는 약속을 동반한 부모공경 계명은 혈연적인 가족주의 안에서만 지켜져야 할 덕목으로서 의미를 뛰어넘는 차원을 함축하고 있다.
이 계명은 노동능력이 있는 자식이 노동력을 상실한 부모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일차적 의미를 지닌다. 그 사실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의미를 지니겠느냐 생각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사실 매우 중요한 진실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 연대 정신의 기본 원리에 해당한다. 나아가 그것은 지금 자신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 모든 은혜를 환기시켜 주는 생명의 근본 원리에 해당한다.
흔히 생명의 법칙에는 적자생존의 원리만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더욱이 그 적자생존의 원리를 강자생존 원리로 이해하고, 그것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경쟁을 강조하는 경향이 일반화되었다. 이른바 사회적 진화론의 요체다. 그러나 오늘날 진지한 과학자들은 생명이 존속하는 데 더 중요한 원리는 경쟁보다는 협동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협동을 통한 공생이 생명현상에서 보다 결정적인 법칙이라는 것이다. 만일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물들의 존재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사회적 생명도 마찬가지다.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어린이들이 함께 교육을 받는 경우,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비장애인 어린이라는 것이다. 비장애인 어린이는 바로 곁에 있는 장애인 어린이 때문에 배려와 협동의 정신을 몸소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같이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는 계명의 뜻은 바로 거기에 있다. 단지 ‘네 가족의 안전을 지켜라’하는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사회적 연대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때 너도 안전하게 오래 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경쟁의 원리가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오늘, 가정의 달을 맞이하며 새삼 새기고 싶은 말씀이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한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한 약속입니다.”(에베소서 6:3)
이 말씀은 부모공경을 일러주는 이 계명이 십계명 가운데 약속이 딸려 있는 유일한 계명으로서,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져야 할 계명 가운데 순서상으로 첫 번째일 뿐 아니라 의미상으로도 첫 번째 계명에 해당한다는 이야기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어떤 사회에서나 공통되는 인륜의 중심 덕목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계명을 잘 지킬 때 사람들이 잘 살게 되리라는 약속을 동반한 부모공경 계명은 혈연적인 가족주의 안에서만 지켜져야 할 덕목으로서 의미를 뛰어넘는 차원을 함축하고 있다.
이 계명은 노동능력이 있는 자식이 노동력을 상실한 부모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일차적 의미를 지닌다. 그 사실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의미를 지니겠느냐 생각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사실 매우 중요한 진실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 연대 정신의 기본 원리에 해당한다. 나아가 그것은 지금 자신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 모든 은혜를 환기시켜 주는 생명의 근본 원리에 해당한다.
흔히 생명의 법칙에는 적자생존의 원리만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더욱이 그 적자생존의 원리를 강자생존 원리로 이해하고, 그것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경쟁을 강조하는 경향이 일반화되었다. 이른바 사회적 진화론의 요체다. 그러나 오늘날 진지한 과학자들은 생명이 존속하는 데 더 중요한 원리는 경쟁보다는 협동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협동을 통한 공생이 생명현상에서 보다 결정적인 법칙이라는 것이다. 만일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물들의 존재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사회적 생명도 마찬가지다.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어린이들이 함께 교육을 받는 경우,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비장애인 어린이라는 것이다. 비장애인 어린이는 바로 곁에 있는 장애인 어린이 때문에 배려와 협동의 정신을 몸소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같이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는 계명의 뜻은 바로 거기에 있다. 단지 ‘네 가족의 안전을 지켜라’하는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사회적 연대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때 너도 안전하게 오래 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경쟁의 원리가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오늘, 가정의 달을 맞이하며 새삼 새기고 싶은 말씀이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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