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세계 교회사 08]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분립 - 로마카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1-09-07 21:59
조회
3235
천안살림교회 2011년 수요 성서연구

기독교의 역사 1 - 세계 교회사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 2011년 9월 7일 / 최형묵 목사



제8강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분립 - 로마카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


서방교회(로마)와 동방교회(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는 수 세기 동안의 교회 발전과정에서 그 차이를 드러내게 되었다.


1. 신학적ㆍ교리적 논쟁


서방교회가 교회 조직의 발전에 치중하는 동안 동방교회는 정통의 교리를 수호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예> 필리오퀘 논쟁 : 니케아 신경 가운데 성령이 “성부께로부터 나온다”는 말에 후대 서방 교회는 “성자로부터”라는 말을 삽입하였는데, 동방교회는 이 구절(‘필리오퀘’)을 인정하지 않고 니케아 신경의 원형을 따른다.


2. 형상(성화상) 논쟁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형상 / 성화상은 중요한 문제였다. 형상을 금지한 성서에 따라 어떠한 형상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 신앙생활에서의 형상의 유익한 효과를 인정하는 입장이 서로 대립하였고, 동방교회 내에서는 이에 관한 격렬한 논쟁(정치권력과 결부)이 벌어졌다. 서방교회는 처음부터 형상을 배격하는 경향이었으나, 동방에서는 격렬한 논쟁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843년  형상예배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이를 기념하여 정교회는 매년 사순절 첫 주일을 정교회 주일로 지킨다).

형상 / 성상 문제는 종교개혁 시기에도 또 다시 문제가 된, 신앙생활에서 미묘한 문제에 해당한다. 서방교회가 공식적 입장으로 형상을 배격했다고 하지만, 점차 서방교회의 신앙생활에도 형상은 가득 차게 되었고, 오늘날 개신교 안에도 적지 않은 형상이 신앙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문제는 형상 숭배가 우상 숭배에 해당하느냐, 아니면 신앙의 궁극적 목적을 안내해 주는 유익한 도구로 머무느냐 하는 것의 경계를 판단하는 일이다.

어쨌든 오늘날에는 이른바 ‘멀티미디어 시대’가 전개되면서 형상의 신앙적 의미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 “이야기하는 말이 청각을 통해 표현하는 바로 그것을 그림은 침묵 속에서 모사를 통해 나타낸다.”


3. 정치권력과 세력판도


그러나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립을 가져 왔던 가장 결정적 요인은 정치권력과의 관계(그리고 그에 따르는 민족적 문화적 언어적 요인이 결합)에 있었다. 구체적인 예로 800년 성탄절 저녁에 교황 레오 3세가 칼 대제를 황제로 즉위 시켰을 때 동ㆍ서 교회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것은 동방의 비잔틴 제국에 대한 반역을 의미했으며, 그리스도교의 정치적 통일 곧 하나의 제국 안의 하나의 그리스도의 교회의 존재와 모순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정치와 정치권력의 결합은 두 교회의 완전한 분리를 초래했는데, 그 결정적 사건은 962년 신성로마제국의 오토대제의 황제 즉위였다. 이를 통해 두 교회는 공개적으로 단절하게 되었다. 이후 화해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었다.


4. 동ㆍ서 교회의 최종 결별과 오늘의 관계


1054년 로마교회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 대한 ‘파문장’ 사건으로 동ㆍ서방 교회의 분립은 최종적 낙인을 찍게 되었다. 곧바로 그 파문장은 폐기되었고 화해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역시 그러한 시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기나긴 세월을 분열의 상태로 남게 되었다. 1965년 12월 7일 교황 바오로 6세와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의 공동선언을 통해 파문의 걸림돌을 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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