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사생활 침해하는 전자주민증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1-06-27 11:16
조회
2415
* <주간 기독교> 다림줄 16번째 원고입니다(110626).


사생활 침해하는 전자주민증


편리한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가끔씩 생각하다 보면 오싹해진다. 매일 주고 받는 이메일, 수시로 행하는 인터넷 서핑, 각종 유선 무선 전화통신 등, 누군가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그 모든 것을 통제하고 사생활에 접근하려 한다면 어찌 될까 생각하면 끔찍하다. 여기에 더해 이동하거나 쇼핑할 때마다 필수품이 된 신용카드의 사용흔적까지 추적당하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까지 환히 드러난다. 공공장소와 거리에 숱하게 깔린 시시티브이 촬영에, 어쩌다 과속이라도 해서 교통위반 사진촬영까지 더해진 흔적까지 추적당하는 상황이라면 한 개인의 사생활은 거의 완벽하게 재구성될 수도 있다.  


사생활의 노출 위험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가 유출 당하고, 작은 정보저장치인 USB 하나만이라도 분실해 타인의 손에 들어간다면, 겉으로 드러난 사생활의 족적만이 아니라 어쩌면 한 사람의 내면세계까지 고스란히 타인에게 노출될 수 있는 위험성마저 있다. 그와 같은 위험성은 기우에 그치지 아니하고, 실제로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쉽사리 이뤄지고 그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국민이 태어날 때부터 국가가 부여하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이다. 평생 바뀌지 않는 그 번호 하나로 한 개인 신상의 많은 부분이 노출될 수 있다. 특별히 뗄래야뗄 수 없는 디지털 기기 활용 환경 속에서 그 위험성은 가중되고 있다. 이미 오래 전 정부가 전자주민증을 도입하겠다고 했을 때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는 그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1998년 전자주민증 도입 정책은 완전히 백지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근래 행정관료들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주민번호의 유출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을 내놨다. 주민등록증에 주민번호를 지우고 그 대신에 칩에 그 번호를 넣어 공공기관과 시중의 수십만대 판독기를 통해 인식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 주민번호를 판독기에서 인식할 때 비밀번호와 지문으로 본인을 확인하게 하겠단다. 과연 대안일 수 있을까? 오히려 주민번호에 더해 이제는 개인의 지문까지도 공공연한 정보망에서 유통되게 하는 사태를 불러일으킬 위험성마저 있다. 다행히 전자주민증 도입에 관한 논의가 6월 국회를 넘겨 하반기로 넘어갔지만 그 정책을 도입하고자 하는 행정관료들의 의지가 꺾이지 않는 한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전을 장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디지털 통신 환경에서 악용될 위험성은 다분하고, 그로 인한 심각한 인권 피해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성서 사무엘하 말미에는 다윗 왕이 인구조사를 하고 나서 하나님께 크게 혼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대의 인구센서스 개념으로 보면 낯설어 보이지만, 그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진실을 함축하고 있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권력의 강화와 통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뜻이다. 행정편의의 관점에서 보면 전자주민증은 매력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소중한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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