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일본 도시샤대학의 두 한국시인의 시비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1-08-02 12:39
조회
2680
* <주간 기독교> 다림줄17번째 원고입니다(110802).


일본 도시샤대학의 두 한국시인의 시비


일본 도시샤대학의 캠퍼스에는 두 한국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 “하늘을 우러러...”로 시작되는 <서시>의 시인 윤동주, 노래로 더 많이 알려진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시비다.  먼저 수 년전 먼저 윤동주의 시비가 세워졌고 근래에 정지용의 시비가 세워졌다.


두 한국 시인의 시비가 일본의 한 대학에 나란히 서 있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두 시인이 모두 그 대학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그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두 시인의 시비가 나란히 세워지게 된 데에는 일본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반성하며 한일간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위해 헌신해 온 많은 일본인들의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함께 뜻을 같이해 온 여러 한국인들의 노력이 배어 있다. 누가 봐도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서정적 시어 가운데 배어 있는 식민지 지식인의 아픔과 어떤 그리움에 공감한 한일 양국 여러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다. 그래서 일본 한 대학에 서 있는 두 한국 시인의 시비는 그저 그 대학출신 유명 시인의 시비로서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갈등 또는 그 어떤 이유로든 저마다의 소중한 삶과 꿈이 굴절당하기를 원치 않는 너무나도 당연한 소망을 간직한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기념비로 느껴진다.


지난 7월 한 달간의 연구휴가로 교토에 체류하는 동안 두 시인의 시비를 다시 찾을 기회는 없었다. 지척에 있었지만, 연구가 체류 목적이다 보니 나다닐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대신에 계속되고 있는 평소 교류관계를 통해 만나는 분들 이외에 한일간의 관계를 위해 헌신하는 여러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일 양국 기독교간 관계 자료집을 엮어내느라 땀을 흘리고 계신 이다 선생, 한일 양국 교회간 교류를 지속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재일동포지역에서 여러 일들을 협력하고 계신 사에키 선생은 식사초대를 해 주시기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방을 내 주신 하야시 선생은 두 시인의 시비를 세우는 데 중요한 일익을 담당한 이들 가운데 한 분으로, 지금도 드러나지 않은 듯하지만 한일간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고, 일본의 국가정책과 최근 불거진 원전 문제로 많은 염려를 하고 있었다. 그분 덕분에 1969년 삼선개헌 즈음 한국정부에 체포된 영국유학생 출신 김규남 등의 구명과 진상조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가 일본에 눌러 앉아 학생들을 가르치신 영국인 데이비드 보겟 선생 또한 만날 수 있었다. 일본통인가 했더니만, 이분은 이후에 스스로 만든 신문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인권상황을 세계에 널리 알린 분이었다. 국적에 상관없이 인간다운 삶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과의 만남으로,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귀국하고 나니, 일본 자민당 일부의원들이 독도문제로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정부는 이에 대해 강경대응을 하여 소동이 벌어졌다. 그 사태를 보자니, 시차가 없는 나라에 다녀왔을 뿐인데도 마음의 시차는 크게 느껴졌다. 두 시인의 시비가 상징하는 염원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었다.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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