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정치에 윤리적 잣대를 요구하는 게 무리일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1-08-29 17:02
조회
2618
* <주간 기독교> 다림줄 18번째 원고입니다(110829).


정치에 윤리적 잣대를 요구하는 게 무리일까?


무상급식에 관한 의견을 묻는 서울시의 투표를 보며 느낀 점이 많다. 여러 가지 생각꺼리가 많지만, 무엇보다도 정치란 정말 ‘고단수’들이 하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내 머리로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정황상 오 시장의 뜻대로 되기 어려우리라 예측되었는데도, 어째서 무리한 시도를 했을까? 납득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자신의 뜻대로 되리라 생각했을까? 다소 불안한 조짐이 있더라도 자신의 지위를 내건 승부수를 던지면 되리라 생각했을까? 밥 달라고 우는 아이는 볼 수 있지만 밥 안 주겠다고 우는 어른은 본 적이 없는데, 그런 진기한 풍경까지 보여주지 않았나? 스스로 그런 상황까지 ‘연출’해가면서까지 무리하게 강행한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은 역시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고 사실을 그 생각에 따라 판단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말 사태만은 아닌 것 같다.


오 시장이 던진 진짜 승부수는 투표가 무산된 사태, 바로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론에서 다들 그렇게 평하고 있는 것 같다. 보수의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킴으로써 차차기 대권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정말 그가 노리는 승부수는 거기에 있는 것일까? 자신이 선언한 대로 투표가 무산되자 곧바로 사퇴함으로써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사퇴의 변을 듣자니 정말 투표 무산 사태야말로 그가 기대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자아내기에 충분해 보였다. 무상급식과 보편복지에 대한 그의 견해가 더욱 강경해 보였으니 말이다. 산뜻한 퇴장과 더불어 그 만큼 그의 이미지는 선명하게 각인된 셈이다.  


만일 정말로 그것을 노렸다면 그는 정치를 추악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정말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가 서울시장으로 선택된 것은 서울시정을 잘 수행하라고 위임받은 것이지 자신의 야망을 채우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시정을 잘 수행해서, 결과적으로 그것을 발판으로 대권에 다가서는 것은 정치 도의상 용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예 한 도시의 중대한 정책을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면, 일종의 정치게임으로 시민을 우롱했다면 그는 정말 사악하고 부도덕하다고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자기 본분도 다 하지 못하는 사람이 꼼수로 시정이나 국정의 책임자가 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정치가 타락하고 사회가 타락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사태일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정치에 윤리적 잣대를 요구하는 것이 무망한 짓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란 본래 그런 것이려니 하고 넘어가기엔 평범한 사람들이 치러야 할 대가와 맞닥뜨려야 할 혼란이 너무 크지 않은가?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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