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자유 민주주의로 충분하지 않은 까닭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1-11-14 12:15
조회
2666
* <주간 기독교> 다림줄20번째 원고입니다(111114).


자유 민주주의로 충분하지 않은 까닭


대기업과 부유층 위주의 정책이 계속되는가 싶더니, 이제는 교과부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마저 특정이념을 편향되게 주입하는 내용으로 수정을 시도하고 있다. 정말 ‘민주주의’ 대신 굳이 ‘자유 민주주의’로 국체의 성격을 한정해야 하는 것일까?


이른바 자유 민주주의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 및 의사표현의 자유와 함께 소유권의 보장을 요체로 하는 정치체제이다. 여기서 오늘 자유 민주주의의 핵심요체로 간주되는 개인 소유권의 보장 원리는 근대 시민혁명의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였다. 새롭게 등장한 시민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일해 모은 재산을 봉건적 절대권력에 빼앗길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 절대권력에 맞서 시민을 보호하는 권리로서 소유권의 절대성이 옹호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돈을 가진 사람은 그 돈으로 사람의 노동력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면서, 그 소유권의 자유는 무한정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각성이 일었다. 돈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의 노동력만을 산 것뿐이지 사람 자체를 산 것은 아닌데도 사람의 몸과 노동력이 분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노동력을 산 사람이 사람 자체를 산 것처럼 되어버렸다. 노동력을 판 노동자는 인격 자체가 돈에 구속되었다. 또한 열악한 환경과 장시간 노동에 지쳐 더 이상 노동력을 생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생명 자체의 위협을 받기까지 했다. 여기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노동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싹터 어린이 청소년 노동 금지, 부녀자 장시간 노동 제한, 그리고 보편적인 노동시간 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의 규범이 마련되었고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었다. 가진 돈이 없어 노동력을 팔아야 살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도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에서 비롯된 규범이다. 그것은 자유권의 한계를 보충하는 사회권의 핵심으로 현대 민주주의의 당연한 요체로 간주되고 있다.


오늘날 자유권과 동시에 사회권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를 떠나 국제적인 규범으로 인정되고 있다. 1948년 국제연합의 <세계인권선언>에 이어 1966년에 채택된 두 가지 인권규약, 곧 <시민적ㆍ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과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은, 자유권과 함께 사회권을 온 세계의 나라들이 따라야 할 규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 규범에 비추어볼 때 오늘날 그 권리들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는 결코 자유 민주주의로 한정될 수 없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자유권과 함께 사회권을 보장하고 있거니와, 건국초기 시행된 농지개혁은 그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농지개혁은 소유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농자유전의 원칙을 확립하여 사회적 권리로서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해 준 매우 중요한 조치였다. 그것은 개인의 배타적 소유권만을 강조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원리를 따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민주주의의 원리를 절묘하게 결합한 구체적 사례에 해당한다. 그래서 부담되는 것일까? 새로운 교과서 집필 원칙에서는 그 사실마저 삭제당했다. 지금 우리의 역사가 한참 뒷걸음치고 있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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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