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애기봉의 성탄절 트리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1-12-12 14:33
조회
2834
*<주간 기독교> 다림줄21번째 원고입니다(111212).


애기봉의 성탄절 트리


지난해 성탄절 어간에 일간지에 실린 한 칼럼 기사가 눈에 띄었다. “애기봉 성탄 불빛은 꺼져야 한다”(한겨레, 2010. 12. 23)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민통선 평화교회 담임목사이자 시인인 이 적 목사의 글이었다.  


이 목사가 민통선 마을에 처음 들어갔던 1997년 마을은 대남 대북 방송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200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 열리고 난 다음부터 군사분계선 안에 설치된 선전수단이 철거되어, 그로부터 7년 가까이 꿀맛같은 평화를 누려왔다. 그런데 지난해 애기봉에 성탄트리 점등식을 한다는 발표가 있었고, 그 발표에 맞서 북쪽은 포를 애기봉 방향으로 집중배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목사와 교인들은 점등식이 예정된 날 ‘남북 긴장 조장하는 점등행사 반대’ 펼침막을 들고 외쳤지만, 생존의 절박감으로 외친 그 목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점등식은 진행되었다. 점등식은 서울 여의도의 큰 교회가 주최하였고, 그 자리에는 경기도지사가 참여했다. 이들은 점등식을 마치고 도망치듯 남쪽으로 사라졌다. 실제로 포탄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로 인해 민통선 안에 사는 주민과 그 안에 있는 교회의 교인들은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고, 칼럼은 그 절박한 상황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이 목사는 올해 얼마 전 다시 신문에 “목사가 성탄절에 또 대피소에 숨어야 합니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올렸다(한겨레, 2011. 12. 6.). 또 다시 예정된 애기봉 성탄트리 점등을 우려한 내용이었다. 다시 며칠 뒤 신문에는 군당국이 애기봉 성탄트리만이 아니라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에도 두 곳 더 추가로 성탄트리 등탑을 허용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에 대해 북쪽당국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 땅에 평화의 주로 오시는 아기 예수를 기쁘게 맞이하는 성탄트리가 평화를 가져다주기는커녕 거꾸로 갈등과 불안을 야기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더욱이 똑같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해야 할 형제들 가운데 민통선 안에 위치한 작은 교회의 형제들은 바로 서울의 큰 교회 형제들이 설치한 그 성탄트리 때문에 공포에 떨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목사는 외친다. “기쁜 성탄절, 애기봉 트리 하나 때문에 우리 교회 교인들과 민통선 주민들은 지금 공포에 떨고 있다. 도시의 큰 교회가 민통선의 작은 교회에 성탄선물을 주지는 못할망정 공포의 트리 선물을 주고 간 이 기막힌 사실을 예수님이 아신다면 뭐라고 얘기하실까?”


남북을 갈등의 상황으로 내몰고 힘없는 형제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성탄트리는,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가장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시고 그들에게 희망이 되신 예수 탄생의 의미를 기리는 기념물이기는커녕 그 뜻을 저버린 흉물이 아닐까? 약한 형제들의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스럽게 같은 일을 반복하는 교회의 행위에서 오직 승리주의에 도취된 왜곡된 신앙의 음산한 빛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낮은 자리에 오셔서 연약한 이들에게 기쁨이 되신 예수께서는 오늘도 역시 숨죽이며 공포에 떠는 이들, 전쟁과 같은 일상으로 고단한 이들의 자리에 함께 하실 것이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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