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2010년 평화의 통신사’를 환영한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0-08-19 13:23
조회
2909
* <천안신문> 종교인 칼럼 원고입니다(100819).


‘2010년 평화의 통신사’를 환영한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 교회로부터 그 의미를 생각하는 주제의 강연 요청을 받고 다녀왔다. 교토와 오사카에서 각각 1회씩 두 차례의 강연을 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강연의 내용은 한일강제병합이 일어난 시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쟁점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양국간의 시각 차이를 확인하고, 나아가 평화를 이루기 위해 양국간에 어떤 공통인식과 실천이 필요한지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두 차례의 모임에서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정한론(征韓論)에서 한류(韓流)에 이르기까지 질문의 주제들은 다양했지만, 모든 질문들의 방향은 일제 침략의 실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평화를 이루기 위한 관심사로 집중되었다. 매우 우호적이고 열띤 분위기 가운데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만난 그 청중들은 어쩌면 일본사회 안에서는 예외적인 소수 견해를 갖고 있는 이들일 수도 있다. 우선 일본사회 안에서 기독교인 자체가 극소수이다. 그 가운데서도 일제의 ‘범죄적’ 침략행위에 공감하면서 한일간의 진정한 역사청산을 위해 애쓰는 이들은 더더욱 소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국의 국가적 범죄행위를 반성하면서 다시는 그와 같이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존재는 단지 그 양적 규모로 평가할 일은 아니다. 언제나 시류의 대세에 반하는 이들은 소수로 존재한다. 일제의 통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대세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은 결코 다수가 아니었다. 독재권력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외쳤던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대로서는 결코 다수일 수 없었지만 그 소수의 의견은 보편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고 그 정당한 공감대가 역사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우리의 역사에서 그 교훈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그러기에 일본사회 안에서 자국의 국가적 범죄행위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며 한일간의 진정한 우호와 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존재는 더 없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은 한국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게도 각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무래도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소위 서세동점(西勢東占)의 현실에서 일본의 팽창이 불가피했다는 인식이 대세를 이루는 것 같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재평가에서도 그런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안중근의 이토 저격으로 오히려 한일병합이 앞당겨졌다는 견해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최근에는 이토가 한국 ‘병합’에 반대했다거나 그나마 나은 제국주의자였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결국 민족주의자 안중근의 ‘테러’로 한국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식민지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실소(失笑)할 수밖에 없는 견해이지만, 자국 중심의 한계 안에 갇혀있는 상당수 일본인들에게는 그럴 듯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그런 현실에서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견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예사롭게 여길 일이 아니다.


일본 체류중,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2010년 평화의 통신사’를 조직해 8월중 2주간 남짓 평화의 행진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에도(江戶)시대, 그러니까 우리로 치자면 조선후기의 ‘조선통신사’에 착안하여 ‘평화의 통신사’를 만들어 한국의 역사적 현장을 방문하고 시민사회와 교류를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 ‘2010년 평화의 통신사’가 지난 13일 부산에 도착하여 평화의 행진을 시작했고, 24일이면 독립기념관에 도착한다. 일제 침략의 실상을 확인하며 진정한 한일간 우호관계와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뜻으로 큰 발걸음에 나선 평화의 통신사를 마음으로부터 환영한다.


지난 10일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는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에 즈음하여 담화문을 발표했다. 병합이 한국인들의 뜻에 반하여 이뤄졌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할린 동포 지원과 유골 반환 등을 명시함으로써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진전된 측면이 없지 않으나, 병합의 불법성과 전후배상 문제 등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표하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알맹이 없는 담화에 그치고 말았다. 국익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부의 공식 입장천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역사적 진실을 대면하고자 하는 양국간 민간 사회의 교류와 공동의 노력이야말로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일 양국 사회 안에서 두터운 민간 교류가 이뤄져 왔지만, 특별히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이하여 방문한 ‘평화의 통신사’의 발걸음이 양국간의 우호관계와 동아시아 평화를 이루는 일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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