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이른 비와 늦은 비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0-10-16 22:01
조회
2826
*<주간 기독교> 다림줄아홉번째 원고입니다(101004).


이른 비와 늦은 비


배추 등 야채 값이 폭등하여 난리가 아니다. 배추 한 포기 값이 15,000원까지 할 정도이니 김치가 없으면 안 되는 우리의 식탁이 위협을 받을 지경이 되었다. 음식점에서는 고기값보다 야채값이 비싸, 양껏 먹을 수 있었던 그 야채도 요즘은 눈치껏 먹지 않으면 안 된다. 농사의 절반은 하늘의 몫이라고 했던가. 적절한 비와 날씨가 농사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다. 인간의 지혜에 따른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천혜의 조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인간의 노력 또한 빛을 보기 어렵다. 예측하기 어려운 이상 기후가 인간의 과학기술의 남용과 무절제한 소비생활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면, 인간의 문명은 천혜의 조건 자체마저 스스로 차단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성서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집트 땅을 벗어나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그 땅에서 누릴 복을 선포한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땅이라 한다. 그런데 이집트 땅과 가나안 땅을 대조하는 성서의 언어가 흥미롭다. “이집트에서는 채소밭에 물을 줄 때처럼, 씨를 뿌린 뒤에 발로 물을 댔지만,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는 산과 골짜기가 많아서, 하늘에서 내린 빗물로 밭에 물을 댄다. 주 너희의 하나님이 몸소 돌보시는 땅이고, 주 너희 하나님의 눈길이 해마다 정초부터 섣달 그믐날까지 늘 보살펴 주시는 땅이다.”(신명기 11:10~12) 사람의 수고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풍부한 수량을 적절히 활용해서 농사지을 수 있는 이집트 땅과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해서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가나안 땅 가운데서, 그 자연적 조건만 두고 말하자면 과연 어느 땅이 좋을까? 두말할 것 없이 이집트 땅은 풍요로운 땅인 반면 가나안 땅은 빈약하기 짝이 없는 땅이다. 그런데도 성서는 그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한다.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 두 땅의 차이는 자연의 조건을 넘어서는 차이를 지니고 있다. 물을 발로 대야 하는 이집트 땅은 인간의 수고가 돋보이는 땅이다. 인간의 인위적인 질서와 사회조직이 돋보이는 땅이다. 인간의 인위적인 노력이 돋보이는 땅은 계급간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땅이요 거대한 권력이 자리 잡기 쉬운 땅이다. 그 땅에서는 소수의 사람은 풍요롭지만 다수의 사람은 빈곤하다. 반면에 하늘에서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물을 대는 땅은 하늘의 은혜를 실감할 수 있는 땅이다. 인간들 사이의 능력 여하, 인간들 사이의 공로 여하에 좌우되는 땅이 아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를 순전히 느낄 수 있기에, 그 은혜를 실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협력하고 함께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땅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은 그 진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오늘의 사태를 보면서, 새삼 성서가 전하는 그 말씀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하늘의 뜻을 거슬러 인간 스스로 삶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다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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