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지고 태어난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9-11-27 01:18
조회
3215
* <천안신문> 종교인칼럼 23번째 원고입니다(091127).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지고 태어난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우리 사회에서 저출산율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나라에서 산아제한을 하고자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던 시절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니 격세지감이다.


그런데 출산율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언제나 같은 맥락에 있다. 경제적인 이유다. 출산을 제한해야 했던 시절은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데다가 아직 산업마저도 발달하지 않은 형편이었으니 지나친 인구가 부담이었다. 오늘 젊은 부부들 가운데서 출산을 꺼리는 것도, 그 현상을 두고 걱정하는 것도 경제적인 이유다. 개인주의의 발달 탓이라느니, 부부 중심의 생활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의 성향 탓이라느니 하는 견해는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진단한 것이다. 많은 아이들을 양육하는 비용, 특히 그 가운데서도 교육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아이를 더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한다.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법은 아이들을 양육하는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어야 할 텐데, 출산저하율을 걱정하는 논의는 그 대안 마련보다는 현재의 경제적 조건은 그대로 두고 경제효과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만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줄어든 인구로 노동력 부족과 함께 소비 수요의 감소로 경제성장이 이뤄질 수 없다는 측면만 주로 부각되고 있다.


줄여 말하자면 인구를 줄이자는 것도, 인구를 늘이자는 것도 경제성장의 차원에서만 고려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검토하는 차원은 빠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논의에서 사람은 그저 노동력의 제공자 내지는 소비자로만 간주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지고 태어난다고 했던가? 옛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이었다. 오늘날 이런 말을 했다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면박을 받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먹고 살 만한 조건들이 풍요롭게 갖추어져 있어서 그런 이야기가 상식처럼 통용되었던 것일까? 아니다. 오늘날 물질적 풍요로움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한한 시절에 통용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물론 인구 또한 오늘날에 비해 훨씬 적었던 시절이었기에 바로 그 점이 그와 같은 상식의 그럴 듯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식이 통용된 데에는 그와는 다른 이유가 있다. 적어도 오늘날만큼 인간의 모든 활동이 시장의 가치에 의해 재단되지 않은 삶의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는 데 그 근본 이유가 있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돈을 벌어야만 살 수 있는 오늘의 경제법칙과는 다른 삶의 법칙이 통용되는 여지가 많았다는 데 그 근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돈으로 환산되지는 않지만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는 일거리들이 있었고, 품앗이 등과 같은 예처럼 사람들 사이의 상호부조의 관습이 폭넓게 자리하고 있었던 까닭에 사람은 누구나 자기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다는 상식이 통용될 수 있었다.    


옛사람들이 살았던 풍경을 목가적으로 그리려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팍팍하다는 것은 새삼 말할 것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현금을 손에 쥐지 않으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오늘 삶의 현실과는 다른 삶의 여지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는 오늘의 법칙이 변하지 않는 자연의 철칙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법칙은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비교적 짧은 시기에 확립된 경제 법칙일 뿐이다.


문제는 그 누구든 이 땅에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존엄성을 갖추고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조건과 삶의 방식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이 너무 근원적이라면, 최소한 그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경제 운용과 정책의 운용이라도 모색하는 것을 현실적인 과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나라의 경제정책은 항상 성장에 몰두해 있지만,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그 병폐를 넘어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대안이 제기되고 있고 실천 또한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기본소득’을 보장하자는 제안도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모든 필요를 돈으로 해결하는 방식 대신에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활동을 교환하는 ‘지역화폐’ 운동도 펼쳐지고 있다. 모든 것이 시장의 가치 판단에 맡겨진 오늘 우리의 삶의 현실이 팍팍하게 느껴진다면, 좀더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좀더 온기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들로 주목해야 할 대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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