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0-05-24 23:05
조회
2707
* <주간 기독교> 다림줄 다섯번째 원고입니다(100524).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호주의 아시아사학자 개번 맥코맥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정치가가 선거유세 트럭 위에서 GNP 성장률을 제로로 끌어내리는 정책을 지지한다고 선언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때, 경제학자들이 식량과 같은 상품의 시장가격과 그 생태학적ㆍ사회적인 가격을 구별하기 시작할 때, 식당과 호텔이 멀리 떨어진 지역의 생태계나 주민들에 대한 수탈에 의존하지 않는 메뉴를 제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문제들에 대한 대처가 시작되었고 새로운 세계질서의 전망이 밝아졌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일본, 허울뿐인 풍요』, 창비사, 1998)


모든 것을 시장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에 따라 운영되는 경제질서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세계경제 질서는 더더욱 시장의 독단적 가치를 강화해나가고 있으며, 시장가치로 환산되는 경제규모가 절대적인 척도로 통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인간의 진정한 삶을 위한 경제는 사실상 설 자리가 없다.


성서가 말하는 가나안 복지의 실체는 무엇일까? 순전히 물질적 차원에서 말하면 이집트 땅이야말로 풍요로운 땅이며, 가나안 땅은 보잘것없는 땅이다. 그런데 어째서 성서는 그 풍요로운 이집트 땅 대신에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말하고 있고,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말하고 있을까? 그것은, 이집트 땅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풍요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 풍요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어 있지 않으며, 스스로 흘린 땀의 결실을 누릴 수 없다. 반면에 가나안 땅은 그 땅 자체로는 빈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어 있고, 또한 스스로 흘린 땀의 결실을 누리는 것이 보장되어 있다.


오늘 우리들에게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길이 있으되 그 길을 가지 않아 문제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얽히고설킨 세상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혼자만의 결단으로 그 보이는 길을 걷기 쉽지는 않다. 누구나 얽히고설킨 세상의 관계 안에 있기에 그 관계를 통하지 않고는, 다시 말해 서로 연대하지 않고는 사람들이 나서지 않는 그 길을 가기가 쉽지는 않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선택의 기회가 왔을 때조차도 사람들은 엉뚱한 선택을 하고 만다는 것이다. 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많은 경우 선거 때 사람들은 엉뚱한 선택을 한다. 거기에는 제도 그 자체의 문제일 수만은 없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관련이 있는 요인이 있다. 경제성장의 구호와 개발의 구호에 더 솔깃해하지 않은가? 사실은 피부에 와 닿는 복지정책을 말하고 교육정책을 말하면 비현실적이라고 외면해버리는 것이 사람들의 태도다. 그 짓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


성서가 외치는 희망의 선포는 빈 말이 아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사람들의 삶을 보장하는 희망의 선언이다. 다만 사람들이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를 때 살아 있는 희망이 되는 선언이다. 그 희망의 선포가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다시 되돌아볼 일이다.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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