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다른 지체의 아픔에 함께 하는 교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06-30 12:38
조회
2394
* <주간기독교> 다림줄27번째 원고입니다(120702).


다른 지체의 아픔에 함께 하는 교회


캐나다연합교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국ㆍ평화ㆍ경제정의에 관한 협의회로 필리핀을 다녀왔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공동연구에 이어 진행된 이번 3차 모임은 공동실천을 위한 첫 번째 기회로, 필리핀 사회 안에 나타난 제국의 지배 현상을 파악하고 이를 위해 두 교회와 현지의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가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기회였다.


필리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방문의 경험은 충격적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정치적 암살 문제였다. 현재까지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암살을 당했고 그 가운데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 교인이 목사와 평신도를 포함하여 25명가량 된다고 했다. 그것은 지금 필리핀의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었다. 강력한 ‘피플 파워(People Power)’로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필리핀 사회는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그다지 근본적 변화가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유력한 가문 중심의 대토지소유 지주계급이 사회의 지배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지구화의 물결 가운데서 외국 자본의 유치에는 열을 올리고 있는 반면 민중의 기본권리와 복지에는 무심한 듯했다. 그래서 그 체제의 문제를 지적하고 항의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공권력의 묵인 및 용인하에 암살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도대체 국가의 공공적 역할이 의심스러운 지경이었다.


협의회 참가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현장탐방을 하였는데, 역시 충격적이었다. 한 그룹은 주로 한국의 기업들이 심각한 노동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내가 속한 그룹은 광산개발과 플랜테이션 경작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한편 이슬람반군세력과 갈등을 겪고 있는 민다나오 지역을 방문하였다. 그 지역이 위험지역이 된 것은 반군세력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의 묵인하에 사실상 기업에 고용된 무장세력 때문이었다. 개발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암살이 이 무장세력에 의해 자행되고 있었다. 외국 기업에 의한 대규모 광산개발에 반대해 소규모 광산개발로 농업과 광업이 공존하고 나아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평화를 지향하는 활동가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모두 지역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있었다. 그 지역에서도 이미 수 십 명이 암살당했고 우리가 만난 활동가들 대부분이 암살명부에 올려져 있었다. 광산개발이 본격화되면 삶터를 잃게 되는 위험에 처해 있는 원주민 마을을 방문하였을 때는, 그 풍요롭고 아름다운 땅 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지금 놓여 있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야말로 자연과 인간을 파괴하는 자본의 적나라한 폭력성을 새삼 확인하는 기회였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서 필리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는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의 활동이었다. 협의회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필리핀 사회의 상황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뿐 아니라 이를 국제적으로 이슈화하고, 선교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내용을 포함한 공동과제를 확인하였다. 1970~1980년대 민주화와 인권을 위하여 헌신한 한국교회에 세계의 많은 형제자매 교회들이 지원해준 사실을 기억할 때, 오늘 세계교회의 한 지체로서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과제를 또 하나 분명하게 확인한 셈이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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