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새 차도 교회도 순행중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9-08-01 15:57
조회
3409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80번째 원고입니다(090803).


새 차도 교회도 순행중


사람이 고물스러운 탓인지 뭐든 끝장 볼 때까지 쓰다 보니 별의 별 사연을 다 겪는다.


예전에 처음 탔던 조그만 차는 사연이 많았다. 비 오는 날 한밤중에 차의 동력은 살아 있어서 멀쩡하게 달리는데, 결정적인 전선이 차단되어 차의 등이 일체 켜지지 않은 적이 있었다. 정비소로 갈 수 있는 시간도 아니어 일단 귀가하고 다음날 밝을 때 손을 볼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진땀이 났던지! 앞이 보이지 않으니 속도를 낼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하나밖에 없는 비상 손전등을 앞으로 비출 수도 없었다. 뒤에서 오는 차와 추돌 위험 때문에 집사람은 손전등을 뒤로 하고 깜박이며 가까스로 귀가를 한 적이 있다.


딱 10년 32만 킬로 혼신을 다해 봉사한 그 다음 차도 사연이 많았다. 역시 비 오는 날 밤 전면 와이퍼가 작동하지 않아 아슬아슬 귀가한 적이 있는가 하면 정차와 서행중 시동이 멈춰버리기 누차였다. 급기야는 주행 중에 시동이 멈춰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더 이상 부려먹지 말라는 신호였다.


사태를 감지한 교우들이 새 차를 장만하자고 했다. 마침 10년 사용한 차에 대해서는 세금을 감면해 주는 혜택도 있다 하니 기회가 좋았다. 새 차를 장만하기 위해 교우들이 마음과 지혜를 모으기 시작했다. 교회 재정이 넉넉하여 여유분이 있으면 간단한 문제였지만, 그렇지 못한 형편이니 정말 마음과 지혜를 모아야 했다. 세금 감면 혜택 마감 시한은 다가오는데 한 달이 다 되어 갈만큼 그 논의 과정은 더뎠다. 답답한 교우는 볼멘소리를 터뜨리기까지 했다. “목사님, 지켜 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런 소리하는 사태에 이르기 전에 빨리 결정하자고 다그쳤다. 마지막으로 결정하는 날에는 아예 목사 가족은 회의에서 제외시켜놓고 교우들끼리 허심탄회하게 논의한 후 단안을 내렸다.


더딘 논의 과정은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지며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안전한 대비책을 강구하는 과정이었다. 우리 교회에서는 ‘결정하고 몰아붙이면 된다’는 식의 방식은 잘 통하지 않는다. 매사가 그렇다. 현실적인 조건들을 따지는 것도 따지는 것이지만, 언제나 서로 짐을 나눠져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형편을 헤아리느라 마음을 쏟는다. 남들 보기에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 까탈스럽게 느껴질 법도 하다. 다른 동료 목회자들에게 그렇게 반문을 받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그러나 서로의 짐을 가볍게 나눠지고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온갖 의견을 다 경청하며 방안을 찾아나가는 교우들이 고맙다. 돌다리를 하나하나 두드리는 교우의 의견이나 볼멘소리를 외쳐대는 교우의 의견 모두가 소중하다. 덕분에 교회도 순행중이며 새 차도 안전하게 순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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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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